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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 YMCA 30주년을 축하하며
- 국제 와이즈멘 부천클럽 소개
부천 YMCA가 30주년을 맞아 ‘30년 史’ 발간과 기념행사를 갖게 된다. 그리고 각 클럽 활동 편에 국제 와이즈멘 부천클럽을 소개하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부천 와이즈멘 클럽이 부천 YMCA에 속한 클럽이나 단체가 아님에도 이런 인연은 그만치 두 단체가 특별하다는 뜻이다. 그것은 부천클럽이 부천Y-창립의 모태라는 것 말고도 이후 수레의 두 바퀴처럼 동반자로서 분수를 지키며 헌신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전 YMCA 회원에게 와이즈멘 클럽을 소개하기에 읽고 이해하기 쉽게 써야할 것이다. 하지만 역사에 남는 귀한 자리라 결국 딱딱하고 재미없이 시작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와이즈멘이 YMCA와 버금가게 역사가 깊고 국제적인 조직을 갖추고 있으며 Y-회원들이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할 수 없이 1부에서 국제 와이즈멘 클럽을 요점만 추려 소개하고 이어 2부에서 부천 와이즈멘 클럽의 略史와 각 종 행사에서 교육하던 글을 중심으로 조금 가필하여 소개하려 한다. 아마 이 부분은 앞머리와 달리 그래도 읽을 만하고 재미도 있을 것이다. 인내심을 갖고 끝까지 읽거나 아니면 뒷부분부터 읽어도 좋을 것이다.
제 1 부 국제 와이즈멘
1. 역사와 조직
* 국제 와이즈멘의 역사
정식 명칭 ‘와이즈멘 클럽 국제연맹(The International Association of Y's Men's Club’s), 약칭 ‘국제 와이즈멘(Y's Men International)'은 1920년 미국 Toledo YMCA간사 'Evans'씨가 열심회원 ’Paul William Alexander' 등 17명을 모아 Y-를 돕는 오찬모임 ‘Tolimca'클럽을 만든 데서 시작되었다.
1922년 국제연맹을 결성하고 1973년부터 스위스 제네바의 ‘국제 YMCA연맹’에 같이 본부를 두고 있다. 현재 아시아, 한국, 아프리카, 캐나다, 유럽, 중남미, 남태평양, 미국, 인도 총 9개 지역(Area)에 70여 개국 약 1500여 클럽 3만 여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다.
세계 1차 대전 직후 세계의 중심이 유럽에서 미국으로 바뀌며 로타리, JC, 라이온즈 등 국제봉사클럽이 미국에서 많이 생긴다. 대부분 불확실한 정세 속에 사업적 화합이나 직접봉사를 위해 결성되는데 와이즈멘은 ‘영적 각성과 Y를 통한 봉사’의 모습으로 출발한 것이 색다르다.
또 하나는 미주 이외로 국제 Y's Dom의 확장이 최초로 1922년 중국 ‘상하이 클럽’을 시초로 필리핀, 일본 등 아시아에서 이루어진 것도 특이하다. 이는 당시 서구의 눈이 아시아를 향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 한국 와이즈멘 역사
한국 와이즈멘의 역사는 비극적이다. 1928년 ‘오사카 클럽’에서 출발한 일본 와이즈멘이 1929년 서울의 일본 YMCA에 ‘경성클럽’을 창립하여 1939년 세계 2차 대전 발발 전까지 활동하였다. 물론 현재 한국 와이즈멘은 이를 시작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1945년 해방 후 미국에서 와이즈멘 활동을 하던 군정고문관 ‘Carl V Bergstrom'씨가 내한, 적극적인 도움으로 ’46년 ‘부산클럽’이 창립된 것이 효시가 되었다. 이후 ‘47년 ’서울, 진주, 마산, 거제 클럽‘이 창립되며 ’한국지구‘까지 인준을 받는다.
현재는 우리나라는 260개 클럽, 약 6,000명 회원이 1개 부지구, 5개 지구로 ‘한국지역’을 이루고 있다. 국제 와이즈멘 중 단일국가로 최대클럽, 최대회원이 활동하는 중심 국가가 되었다. 올해 많은 논란 끝에 일부 와이즈멘의 숙원인 ‘한국지역’으로 독립하였다.
* 한국 와이즈멘의 운동 방향
한국 와이즈멘은 1996년 50주년 결의문을 보면 다음과 같이 운동 방향이 요약된다.
① 이웃과 사회에 그리스도 가르침 실천( 전도가 아님)
② 비젼, 사명을 재인식하고 지역사회 봉사의 질적 향상과 한국 와이즈 돔의 세계화
③ YMCA와 효율적 프로그램 진행
④젊은이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문호를 개방하여 미래 지도력으로 계발, 육성
그러나 방향은 올바르게 설정해놓고 와이즈멘 지도자들과 대부분 클럽들은 엉뚱한 길을 가며 오로지 구두선을 할 뿐이다. 예를 들면 점점 보수기독교 단체의 색채가 강해지고 봉사는 Y와 연대나 통해서 하는 수단적 봉사가 아니고 독자적이고 구호차원의 표출적 봉사로 나가고 있다. 세계화는 한국지역 독립으로 우물 안 개구리를 자처하며 젊은이들의 영입은 고사하고 외면으로 양로원 같은 클럽이 더 늘어나고 있다. 이는 일차적으로 와이즈멘 지도자들의 철학부재와 자질미달이 원인이다. 때문에 다른 봉사단체처럼 외형적인 봉사와 확장을 지향하며 선언과는 역행하는 경향이 보인다.
* 국제 와이즈멘의 조직
회원(Member)---클럽(Club)---지방(District)---(부지구/Section)---지구(Region)---(지구협의회/Council of Regions)---지역(Area)---국제연맹(Y's Men International)
이중 지구협의회는 우리나라만 있는 임의 기구로 사실상 한국 와이즈멘을 대표하고 있다.
2. 국제 와이즈멘 클럽 이해/ 꼭 읽어보길 권한다.
* Y's Men 명칭
Y's Men은 'YMCA 사람들‘이란 뜻과 ’동방박사들(Wise Men from the East)'처럼 ‘진리를 향하는 현자들’이란 숨은 의미를 갖고 있다.
* 목적
‘와이즈멘 클럽 국제연맹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따라 모든 신앙인들이 서로 존경하고 사랑으로 함께 일하는 범세계적인 우호단체이며, YMCA를 공동으로 성심껏 도우며, 적극적인 봉사할동을 통하여 지도력을 계발. 육성. 제공함으로써 모든 인류를 위한 보다 나은 세계를 건설하는데 힘을 다한다.’
굵은 글자가 와이즈멘의 대표적인 키워드라 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이라는 역사적 사상적 배경을 갖고 있으나 비기독교 선교단체로 ‘모든 신앙인들’이 함께 세계평화를 위해 사랑과 존경으로 일하는 개방성을 가진다. 개인적으로 ‘보다 나은 세계(a better world)'는 한국 Y의 목적문 ’하나님 나라‘보다 큰 감명을 받는다. 거창함보다 지금보다 한 발짝 더 몸과 마음이 실천하자는 소박함, 그리고 사심 없는 유토피아에 대한 긍정적 열망을 읽기 때문이다.
* 강령
가. YMCA를 위한 봉사클럽으로서의 역할을 최우선으로 한다.
나. 그 밖의 가치 있는 단체들의 활동을 지원한다.
다. 시민적. 국제적 제반문제에 있어 항상 당파를 초월하여 공의를 추구한다.
라. 종교. 시민. 경제. 사회 및 국제적 제 문제에 대하여 회원들의 의식을 계발하고 이에 적
극적으로 참여케 한다.
마. 회원 상호간에 건전한 우호관계를 촉진한다.
바. 본회가 주관하는 국제. 지역. 지구의 모든 계획사업을 지원한다.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않을 정도로 구체적이다. 와이즈멘이 전 지구적 현실문제에 누구와 어떻게 공의를 추구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국제 표어(Motto)
'To acknowledge the Duty that accompanies every Right'
'모든 권리는 의무의 이행에서‘라는 뚜렷한 목표를 설정하고 있다. 권리만 주장하기 쉬운 우리와 사회에서 의무의 이행은 남과 사회를 위한 선한 행위로 올바른 시민의식을 담고 있다.
* 휘장(그림 참조)
YMCA와 같이 영. 지. 체 삼중 프로그램의 붉은 삼각형으로 구성된다. 안에 ‘International'은 와이즈멘의 활동 영역으로 때때로 밑에 지구본을 달이 사용하기도 한다. 황금별은 베들레헴의 별로 와이즈멘의 이상과 봉사를 인도하는 영원한 안내자의 상징이다.
* 노래(그림 참조)
핀란드의 작곡가 ‘시벨리우스’의 ‘핀란디아’에 와이즈멘의 창시자 ‘폴 윌리엄 알렉산더’가 가사를 붙인 곡으로 웅장하고 힘이 있다.
* 와이즈멘 선서문
신입회원의 입회나 신생클럽 촤타 때 하는 선서문으로 와이즈멘 정신의 모든 것을 망라한 완결판이다. 선서문 중요부분만 게재한다. 개인적으로 읽을 때마다 깊은 감동을 느끼는데 와이즈멘이 아니더라도 찬찬히 음미했으면 한다.
와이즈멘 선서문
선서문1(모임 고위급 낭독자 1)
와이즈멘이 된다는 것은 이상주의자가 된다는 뜻입니다. 이는 우리의 목적과 강령에서 발견할 수 있는바 이상주의자가 그의 모든 행위의 동기가 됨을 의미합니다. 단체 중에는 사업상의 목적이나 사회적 지위를 얻기 위하여, 또는 교양이나 건강관리를 위하여 모이는 단체가 있지만 와이즈멘의 근본정신은 희생적 애타주의의 정신입니다.
선서문2(모임 고위급 낭독자 2)
와이즈멘이 된다는 것은 YMCA에 열성적으로 봉사함을 의미합니다. YMCA는 공동의 목적으로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결속체입니다. YMCA 간사들은 훈련받은 전문인으로서 우리의 활동을 위해 파견된 일꾼들이며 YMCA 건물은 우리의 공동목표를 성취시키는데 필요한 도구입니다. YMCA는 세계적인 인격형성체이며 교육기관일 뿐만 아니라 사회체육에 있어서도 지도적인 위치에 있습니다. 또 YMCA는 종족. 계층. 문화적 차이로부터 발생되는 각종 장벽을 제거하는 화해적 역할을 감당해왔습니다.
선서문3(모임고위급 낭독자3)
와이즈멘이 된다는 것은 세계정신을 갖는다는 뜻입니다.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오스트렐리아 및 미주에는 많은 형제클럽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한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그가 얼마나 넓은 시야를 가지고 있는가”에 있다고 믿습니다. 어떤 사람이 지역사회의 문제들에 굉장히 열심이었다 하더라도 국가나 인종간의 부정의에 대해 무관심하다면 그의 시야는 좁은 범위에 제한되어 바람직한 와이즈멘상에는 부합되지 않습니다. 와이즈멘은 세계적인 안목을 지녀야 합니다.
선서문4(모임 고위급 낭독자4)
와이즈멘이 된다는 것은 의무를 이행함으로써 권리가 뒤따른 다는 것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흔히 많은 사람들에게는 의무보다 권리를 먼저 주장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모토는 우리들로 하여금 권리의 주장보다는 의무의 발견과 그 이행에 더욱더 주의를 기울이게 하는 것입니다.
선서문5(모임 고위급 낭독자5)
와이즈멘이 된다는 것은 열성을 다해 활동함을 의미합니다. 열성(Enthusiasm)이란 말은 그리스어에서 파생된 단어로 “하나님 안에”란 뜻입니다. 열성적인 사람은 그의 내면에 하나님이 함께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와이즈멘의 열성적인 활동은 바로 끊임없이 영감을 받는 활동입니다.
선서문6(집례자= 모임 최고위자 낭독)
이상에서 낭독한 바와 같이 와이즈멘 클럽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따라 상호 이해와 존경으로 하나가 되어 보다 더 좋은 세계를 이룩하려는 국제적 우호 봉사단체입니다. 와이즈멘의 목적과 강령을 성실히 수행하여 열성 있는 와이즈멘, 메넷이 될 것을 다짐하는 뜻에서 오른손을 들어 선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선서문7(신입 회원 또는 신임회장 선서문)
나는 와이즈멘이 되어 언제나 이해와 존경으로 회원간의 친분을 두터이 하고 YMCA와 지역사회에 봉사하며 파당을 초월하여 항상 공의를 추구하고 나의 권리를 찾기 이전에 의무를 이행하며 국제적 친선과 우의를 증진함으로써 보다 더 좋은 세계건설에 이바지할 것을 회원과 사회자 앞에서 엄숙히 선서합니다.
선서문8(집례자=모임 최고위자 선포)
나는 여러분이 국제 와이즈멘 목적과 강령에 찬동하고 여러 증인 앞에 선서함으로 이제 와이즈멘이 되셨음을 선포하며 전 세계 와이즈멘 가족을 대표하여 진심으로 환영하는 바입니다.
3. 국제 활동 및 기타 주요 용어
전통적인 프로그램 몇 가지를 소개하며 이외도 UN이나 Unicef 등과 협조하여 활동을 하는데 ‘말라리아 퇴치 사업’도 그중에 하나이다.
* TOF( Time of Fast/ 국제 금식기금)
전 세계 와이즈멘이 매년 2월 중 한끼 금식한 기금으로 국제난민을 돕는 활동이다. ‘이웃의 고난과 고통에 참여’하여 고난을 함께 나누며 국가와 민족을 초월하여 ‘세계정신’을 함양하는 대표적인 프로그램이다.
* ASF(Alexander Scholarship Fund/ 알렉산더 장학기금)
창시자 알렉산더씨를 기리는 기금으로 YMCA 간사교육에 쓰인다. 모임에서 회원들이 애경사를 서로 공유하며 자발적인 헌금을 통해 조성된다. 국제회비에 포함된 의무회비는 국제적으로, 개별 클럽의 독창적인 활동으로 모아진 기금은 연관 Y- 간사 육성 기금으로 사용된다. 이 기금은 부천 와이즈멘 클럽이 전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 BF(Brotherhood Fund/ 형제애 기금)
국제적 우호 친선을 도모하고 활성화시키기 위해 각종 회의에 참가하는 와이즈멘의 경비를 지원한다. 헌 우표 판매나 여러 시상제도를 통해 조성되며 잘 이뤄지지는 않지만 분명히 BF의 자격에 Y- 연맹의 추천을 받은 자 혹은 와이즈멘 담당 간사가 포함된다.
* IBC(International Brother Clubs/ 국제형제클럽)
우리나라 와이즈멘 출발을 도운 Bergstrom씨가 주창하여 시작된 클럽 간 국제적 결연을 통한 상호교류 프로그램이다. 처음에는 어려운 국가의 클럽을 돕는데서 출발했고 현재는 상호방문 , 프로그램 교환 및 공유, 회원 자녀(Ling)의 교환 방문 등으로 서로 상승효과를 본다. 또 삼각결연(트라이 앵글)까지 발전하고 있다. 하지만 과다한 경비부담과 교류과정에서 회원갈등 등 부작용이 클럽의 존폐에도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부천클럽은 1993년 필리핀 듀마게티 클럽과 IBC를 체결하고 상호방문과 YEEF 프로그램 진행을 하고 있으며 아울러 듀마게티 Y의 시설개수를 돕기도 하였다.
* EF(Endowment Fund/ 기부기금)
국제 와이즈멘의 목적사업의 원활한 지원을 위한 기부기금이다. 기금은 일정 금액을 기탁하고 ‘골든 북’에 명예를 기리고자 하는 와이즈멘이나 기타 사람들의 약력과 생애를 기록하여 국제본부에 영구 비치한다. 부천클럽에서는 허상보 촤타회원이 등재되어 있다.
* YEEF(Youth Educational Exchange Program/ 청소년 교환교육프로그램)
불우청소년을 위한 ‘Boy's Work' 활동으로 시작되어 회원들 간에 자녀를 교환하여 홈스테이 방식으로 생활하며 공부하는 프로그램이다. 한국은 언어나 교육제도로 활용되기 어려우나 앞으로 글로벌 시대를 맞이하여 더욱 기대된다. 동양권에서는 장기간인 YEEP보다 STYE(Short Term Youth Exchange/청소년 단기교류)이 실정에 맞는다.
* Banner(클럽기)/ 각종 행사참여나 시상기념품을 부착하여 클럽의 역사를 보여 줌
* Uniform(일명 Gown)/ 클럽의 창립배경이나 지향을 담아 디자인 하여 대개 국기, 국명, 클럽명, 와이즈멘 휘장을 담는다. 각국 고유의상을 응용하기도 한다. 모든 와이즈멘 행사에 착용하는데 한국에서는 와이즈멘 리더가 되면 유니폼을 안 입고 사복을 착용하는 못된 경향이 있다. 우리 클럽이 기회가 닿는 대로 개선을 요구했지만 당사자들의 철학부재로 시행이 잘 안 된다.
* Charter(헌장, 헌장인준)/ 국제연맹에서 클럽이 일정 요건을 갖추면 헌장을 전수하여 정식 등록클럽으로 인준한다. ~Night(헌장의 밤) ~ Member(헌장 회원) 등 개별 클럽의 가장 중요한 용어이다.
* FY(Fiscal Year/ 회계연도)/ 와이즈멘 회계연도로 보통 해당 년 07월부터 다음 해 06월까지로 보통 행사 때 FY 00~00로 표기한다.
* Fund Raising(기금 모금)/ 봉사 단체로서 여러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각종 기금을 조성할 일이 잦다. 특히 부천클럽의 경우 소수 회원으로 많은 활동을 하기 때문에 잦은 모금이 이뤄진다.
* Man(남자 회원), Menett(부인), Ling(자녀)/ 와이즈멘은 다른 국제봉사단체와 달리 전 가족이 모임을 같이 하는 것을 권장하는 특징이 있다. 때문에 남자 회원 개인을 지칭 할 때는 Man, 클럽이나 복수의 회원, 대외적 표현은 복수의 Men을 쓴다. 와이즈멘의 부인을 가리키는 Menettdms '신앙에 열심있는 여성‘이란 의미도 갖고 있으며 메넷으로만 별도로 결성하는 클럽도 생겨나고 있다. 여성으로만 결성된(메넷이 아닌) 클럽은 메넷클럽이라 안하고 ’~와이즈멘 클럽‘이라 명명하고 여성도 Man(또는 Men)으로 호칭한다. 와이즈멘의 Men은 남성 보다 남녀로 구성된 인류를 통칭하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제 2부 부천 와이즈멘 클럽
부천 와이즈멘 클럽은 매우 독특하고 자랑스럽고 활동하기 어려운 클럽이다.
독특하다는 것은 항상 클럽의 정체성을 고민하며 원칙을 지키려고 애쓰며 외형적 확장을 꾀하지 않는 ‘소수의 역사’를 감당함을 가리킨다. 자랑스러운 점은 부천YMCA의 창립을 주도했고 이후 Y를 통한 봉사를 소명으로 헌신하는 것이다. 어려운 것은 소수가 힘에 겨운 일감을 마다 않으며 이념써클처럼 늘 공부하며 성찰하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가 만연한 사회에서 좁은 문으로 방향을 잡으니 가시밭길이다. 그래서 더욱 귀하고 존경할 수밖에 없다.
2부는 부천클럽의 35년 역사 중 굵직한 사건만 뽑아 이해를 돕기 위해 약간의 설명을 붙인다. 또 필자가 클럽행사 때 강연한 내용으로 클럽활동을 소개하여 다소나마 지금까지 지루함을 덜어 본다.
* 부천 와이즈멘 클럽의 略史
1976. 10. 12/ 창립
5월 제일감리교회 최기석 목사와 허상보 창립회원을 중심으로 제물포클럽을 스폰서로 창립총회를 하고 국제연맹의 인준을 받아 10월 12일 촤타 나잇 행사를 갖고 한국지구 82번째 클럽이 됨. 당시 ‘살기 좋은 전원도시’를 상징하여 유니폼과 베레모를 연두색으로 채택하는 등 클럽의 지향점을 분명히 함.
1979/ ‘새 소망 소년의 집’ 장학금
학생 6명에게 장학금을 후원하기 시작하여 장장 23년간 지속, 부천클럽의 건강성을 증명한 프로그램
1982. 4. 17/ 부천 YMCA 창립
부천이 1973년 시 승격을 하며 서울의 배후도시로 급속한 도시화가 이루어지면서 여러 가지 심각한 지역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예언자적 사명감과 헌신적인 지역 사랑으로 충일하던 와이즈멘은 대안으로 부천YMCA 창립을 결의하고 나섰다. 하지만 지역과 Y-연맹과 인천 와이즈멘까지 일천한 부천클럽의 부천Y-창립에 회의적이었다. Y가 와이즈멘 클럽을 조직하는 것이 통상적인데 역의 역사를 시작하였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영적으로 훈련되고 성숙한 지도자들과 회원들의 기도와 땀으로 금자탑을 완성하였다. 15명의 초대 이사 중 와이즈멘이 11명이 참여하여 전 클럽의 능력을 쏟아 부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세계 Y와 와이즈멘의 최초로 향 후 부천클럽의 Y에 대한 헌신의 전통이 되었다. 이런 것은 역대 Y-이사의 1/3 이상과 10명의 이사장 중 여성이사장 두 분을 제외하고 여덟 분 모두가 부천클럽 와이즈맨이었음이 웅변하고 있다.
1985. 동부천 와이즈멘 클럽 스폰서
역곡지역을 근거로 동부천 클럽의 스폰서로 공들여 창립을 지원 성사 시켰으나 와이즈멘 정체성 부족과 과도한 기독성 지향으로 곧 해체되었다. 또한 일부지도력의 업적쌓기와 자기 주변 인물들의 회원영입 등 과욕으로 탄생된 클럽은 제구실을 못했다. 이런 경험이 있음에도 십여 년 후 부천에 ‘부천복사골클럽’과 서울 서지방의 ‘에바다클럽’ 의 촤타를 스폰서했으나 전철을 밟고 현재 두 클럽 모두 활동중지 중이다.
1988. ‘꿈방’ 현판식과 ‘인천지방장 배출’(사진 별첨)
당시 변두리로 소외지역인 약대동에 맞벌이 가정을 위한 공부방 ‘꿈방’을 부천 Y가 모범적으로 운영하였는데 여기에 부천클럽이 재정적으로 연대하였다. 이전에도 부천클럽은 부천 Y를 성심껏 도왔지만 ‘꿈방’사업으로 가장 모범적인 ‘연대사업’의 표본을 만들었다. 300만원 지원금이 700만원까지 확장지원하였으나 주변의 개발과 유사 형태의 민관사업 등장으로 철수하고 다른 연대일감을 찾았다.
그리고 부천 Y 이사장이장이자 부천클럽었던 ‘이봉일 와이즈맨’이 처음으로 인천지방장으로 선임, 봉사하였다.
1990. 전 회원 부천 Y-회원 가입
이해부터 클럽회원 전원이 부천Y회원에 가입하였고 빛나는 전통이 되었다.
1992. 부천 Y부지 기금약정과 시민운동 참여
부지 기금 6,000만원 약정하고 5,700만원 모금하였고 공선협, 담배자판기조례제정 등 Y와 시민사회와 연대 활동이 활발하였다.
1993. IBC(국제 형제클럽 결연/ 사진 별첨)
필리핀 듀마게티클럽과 현지를 방문하여 형제클럽의 결연을 맺었다. 당시 부천 Y도 듀마게티 Y와 같이 자매결연을 맺었으며 이남주 국제부장이 동행하였다.
1996. ‘국제와이즈멘 부천클럽 20년사 발간’(사진 별첨)
호화양장본은 아니었으나 상당히 내용이 충실한 클럽사로 전국 와이즈멘과 각종 도서관에 배포하였으나 와이즈멘의 변화에는 미미한 아쉬움이 남아 있다.
또한 현 부천 Y회관 건축이 시작되며 부천클럽 회원들은 1억원의 기금을 기부하였다.
2004. 다움카페 ‘ 부천 와이즈멘 클럽’ 개설
클럽카페 개설(cafe.daum.net/Ysmenkorea/ 국제와이즈멘 부천클럽)을 통해 새롭고 젊은 지도력들이 역사에 새로운 주역으로 활동의 장을 열었다.
2006. Y-연대사업 ‘청소년 팀 프로젝트’와 클럽카페 개설
부천클럽의 빛나는 전통, Y와 연대사업이 옛날 ‘꿈방’ 이후 새로운 모습으로 시작되었습니다. Y-청소년 문화이 집과 공동으로 청소년 문화의 새 장을 열었습니다. 처음에는 청소년의 문화와 창의력, 협동심 개발을 목표로 했으나 점차 봉사로 올겨가 자연스럽게 정착되었습니다. 올해로 7회 째인데 모든 면에서 향후 부천의 대표적이고 모범적인 청소년 문화 프로그램이 될 것으로 믿습니다. 부천클럽은 단순히 재정적 지원보다 프로그램 진행에 시간과 경험을 나눠 행사의 질적 향상과 클럽과 자신들의 발전을 도모하고 있습니다.
2009. 이강인 와이즈맨이 인천지방장 피택
클럽에서 두 번 째 피선되어 봉사하며 인천지방대회를 ‘컨퍼런스’로 진행하여 새로운 전형을 제시하였다.
나의 와이즈멘 24년
촤타 30, 33주년 기념강좌 내용인데 오늘 시제로 가필하여 내놓는다. 개인의 클럽활동을 통해 부천클럽의 대강을 훑어볼 수 있을 것 같아 옮긴다.
안녕하세요.
먼저 이런 자리를 마련해주신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부천 Y에서 젊은 리더그룹을 모색하던 Y총무와 인연을 맺다가 당시 몇 분과 함께 와이즈멘에 입회한 것이 클럽활동의 시작이었습니다. 1987년이니까 올해로 꼭 24년이 되었습니다.
Y리더그룹의 결성은 무산되었고 엉겁결에 전혀 생각지 못한 와이즈맨이 된 것이지요. 이른바 준비 안 된 와이즈맨이였습니다. 저와 같이 입회한 분들은 모두 일찍 활동을 접었고 입회동기 중 부천Y 증경이사장으로 봉사하시며 이 자리에도 계시는 분이 변종묵 와이즈맨이십니다.
처음 와이즈멘이 되었을 때 솔직히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팔팔한 나이에 조급한 성격, 게다가 딴에는 사회나 신앙 측면에서 래디칼한 냄새를 풍기던 때였으니까요. 무분별한 오만 덩어리였다고나 할까요?
반면에 당시 부천클럽은 회원들이 특정교회 분들이 많았고 또 리더들 대부분이 장로님이며 지역유지 분들이었습니다. 신앙심이 깊으셨기에 모임은 경건회가 그야말로 경건하고 길었으며 회의는 내용 없이 간단히, 그리고 밥 먹고 헤어지는 그런 스타일이었습니다. 교회 속회나 친목회 같아 보였습니다. 더욱이 화제는 부동산, 사업, 인물근황, 교회 얘기가 주류였으니 얼마나 못 어울렸겠습니까?
모임만 다녀오면 아내에게 그만 둔다는 말을 하곤 하였습니다. 그러나 우연히 다음 해에 Y이사 직분으로 봉사하게 되면서 존경하는 허상보, 원종호님 같은 분들을 가까이 대하는 시간이 많아졌고 그만둔다는 말은 점차 줄어들기는 하였습니다. 그러나 와이즈멘에 대해 문외한이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는 중에 클럽의 총무를 맡게 되었습니다. 총무를 맡으면서 먼저 교본을 읽었습니다. 교본을 보니 와이즈멘 클럽은 포용성과 개방성 그리고 실천하는, 참으로 멋지고 체계적이었으며 가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언제나 동역자가 될 수 있는 Y라는 훌륭한 파트너가 있다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나 자신을 위해서도 지금과 달리 변화를 가져야만 하겠다는 결심도 생겼습니다.
그러나 교본대로 정체성을 찾아 가치 있고 멋있는 클럽으로 환골탈퇴 하기 위해서는 많은 우여곡절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었습니다. 고민하며 망설일 때 “단 7명이 남아도 뜻대로 해보라”는 허상보 와이즈맨의 강력한 후원이 있었습니다. 그 분에게 배운 와이즈 돔은 '하나님 질서 회복에 힘을 다하는 회원공동체 YMCA를 통해 세계정신을 가진 이상주의자들이 추구하는 보다 나은 세상’이었고 ‘신앙고백으로 평생을 씨름하며 충성을 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와이즈멘의 정체성을 찾고 그에 따른 클럽활동을 하여보자는 좁은 길을 택하였습니다.
교본을 구입하여 회원 모두에게 배포하였습니다. 다음에는 월례회 때마다 강사를 모셔서 정체성 교육을 통한 의식개혁을 시도하였습니다. 현 Y연맹의 남부원 사무총장님, 윤희영총무님 ,허상보 와이즈맨 등이 그 일을 맡아주셨지요.
모든 것이 처음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중부지구 사무실에 일일이 전화로 문의하며 틀을 짰습니다. 하도 자주 전화를 하자 지구 사무원은 목소리만으로도 알아들을 정도였으니까요.
모임의 내용도 바꿨습니다. 경건회를 5~10분 이내로 줄이고 자연히 매번 모시던 목사님의 말씀도 회원들로 대신하고 맨, 메넷이 함께 모였습니다. 모임 장소도 Y를 주로 정했고 음식도 메넷회 중심으로 스스로 준비하였습니다.
연중, 월별 사업과 재정 계획을 세워 실천하고 세계, 아시아 대회를 비롯하여 지구, 지방대회의 대거 참석 유도하였습니다.
Y의 회원가입과 아울러 각종 행사와 지역 NGO의 활동에 참가하였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하여 와이즈멘 클럽이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따라 Y와 함께 보다 나은 세계 건설을 자발적이고 헌신적으로 실천해 나가는 이상주의자들의 모임”이라는 정체성을 확보해갔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기독성에 대한 소홀함이 생기지 않도록 신앙간증 프로그램 등 각별히 신경을 썼습니다.
역시 고통과 무리가 따른 변화였습니다.
한마디로 대학생 의식화 교육 같았으니 얼마나 재미없는 클럽이었겠습니까.
당시 재적 회원 수가 27명이었는데 보통 활동회원은 21명 정도였습니다. 부천 클럽 30년 중에 가장 많은 회원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재적 15명에 실제 활동 11명으로 확 줄어버렸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Y를 향한 구심운동으로 나타났고 십년을 버티는 기둥이 되었습니다. 또한 회관건축과 IMF, Y-이사회의 위기 등을 극복하며 지금껏 Y를 지켜올 수 있었습니다.
항상 감사를 드리지만 사표가 되시는 허상보 와이즈맨이 초지일관 도와주시고 밀어주시고 이끌어주셨습니다.
와이즈멘 봉사의 개념을 바꾸는 것이 제일 힘들었습니다.
와이즈멘이 봉사클럽이니까 와이즈멘 봉사는 결국 와이즈멘의 운동이 되는 것이고 바로 정체성 확립과 연결되는 것이 아닙니까?
신앙이 돈독한 회원들은 클럽을 전도단체 정도로 이해하고 따라서 성서적 구제활동으로 보아 일차적이고 자선적인 봉사, 즉 표출적인 봉사를 합니다.
그것도 물론 중요한 봉사임에는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목적과 강령에서 보듯이 “Y를 공동으로 성심껏 도우며” “ Y를 위한 봉사를 최우선”일 경우에 좀 더 포괄적이고 구조적인 봉사가 됩니다. 다시 말하면 와이즈멘 봉사가 Y지향성을 갖는 것은 목적과 강령에 충실하는 것이며 정체성을 견지하는 것이 된다는 말입니다.
예를 들면 와이즈멘처럼 비전문가이고 훈련이 덜 되어있으며 인적, 시간적, 공간적 제한이 있을 경우 우리의 힘을 훈련되고 전문가며 경험과 노하우가 쌓인 Y에 집중시키면 아주 효과적이고 능률적이 됩니다.
비록 우리의 얼굴이 잘 드러나지 않지만 우리는 그 과정에서 회원으로 함께 하며 성숙되고 훈련되며 예수의 모습을 닮아간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경우와 같습니다.
하지만 세상 잣대로 보면 “죽 쒀서 개주는 꼴”로 재미없지요. 더구나 요즈음이 어떤 세상입니까? 돈 들여 자기 PR을 해야 사는 세상 아닙니까? 따라서 봉사에 대한 개념의 확장과 이해가 필요하고 그것은 훈련과 성숙한 인격에서 나올 수 있습니다.
이런 봉사에는 헌신성과 자발성이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지속되기 힘드니까요. 그래선지 골수 와이즈멘이 되는 것은 어렵고 긴 시간이 필요하더군요.
그렇다고 당시 부천클럽이 유독 격이 떨어진다는 말은 아닙니다. 오히려 한국 어느 클럽보다 Y 지향적인 편으로 많은 업적이 있었지요. 그렇지만 Y실무지도력의 기대와 신뢰를 얻지 못하고 오히려 무시를 당한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아마 창립 이후 매너리즘에 빠진 결과일 것입니다. 이점은 뒤에 가서 다시 말씀드리지요.
다음은 와이즈멘 클럽의 운동 영역 확장이었습니다.
친목 중심의 프로그램 진행에서 방향을 바꾸고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하자 Y와 같은 목적과 지향성을 갖게 되었습니다.
당연한 결과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와이즈멘은 Y 볼룬티어들이 어떻게 하면 Y를 더 잘 도울까 하는데서 시작했으니까요. Y의 각종 행사와 프로그램에 열심히 참가했습니다. Y의 내부 문제 뿐 만아니라 Y가 하는 지역, 사회, 환경, 통일, 생명, 평화 등 모든 부분에 동반자로 때로는 동역자로 함께 해나갔습니다.
대표적으로 폐수은 건전지 수거운동, 공선협운동, 통일 인간띠잇기 운동, 생협운동,? 담배자판기 철거운동 대표적인 Y의 운동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몸과 시간과 의식을 내 놓아야하는 프로그램이었기에 속으로 많이들 피곤해하였습니다.
따라서 자발성과 헌신성이 떨어지고 리더에 끌려가는 형국이었지만 낙숫물에 바위가 뚫린다고 그 과정에서 조금씩 훈련되고 성숙되어 갔으며 새로운 형태의 친교가 형성되었습니다. 이때 “적당히 믿고 적당히 놀고 적당히 봉사” 하자는 말을 자주하였습니다. 적당히는 눈치나 보자는 뜻은 아니었고 우리의 처지를 알고 할 수 있는 것부터 실천하자는 권유였습니다. 목적문의 “보다 나은 세계(Better world)”를 현학적인 말이 아니라 “지금 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세계”로 희망하고 실천해보자는 우스개 표현이었지요.
한편으로 프로그램을 많이 개발하였습니다.
전통적인 새 소망의 집 장학금 프로그램을 빼고는 거의 다 바꾸거나 새로 도입을 하였습니다. 신입회원 오리엔테이션 캠프, 선상 월례회, 문화행사, 스포츠 댄스, 여름 캠프, Y 회원 초청 송년회, IBC체결, 합동월례회, 가정 개방, 찾아가고 함께 하는 봉사, 메넷회의 활성화 등이 기억납니다.
이것이 십 수 년 전 촤타 20년 전후에 클럽이 겪고 준비하고 실천한 것들이었습니다. 우리가 발행한 “20년사”에 모두 들어있는 내용인데 당시 자부심이 넘쳐 전국 모든 와이즈멘 클럽과 지방, 지구, 하다못해 국회도서관까지 보냈습니다. 답은 없었습니다. 안 읽혔나 봅니다.
이제 자랑은 그만하고 우리 클럽의 모습을 훑어 보려합니다.
부천클럽은 전원도시를 꿈꾸는 지역 종교인들을 중심으로 1976년 창립되었습니다. 6년 만에 부천 Y를 창립하고 Y를 구심점으로 하는 극적이고 역사적인 활동방향을 설정하였습니다. 대부분 Y유지지도력이었던 와이즈맨들은 창립 때부터 와이즈멘 클럽을 잘 이해한 선각자들이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Y와 연대하여 봉사하고 운동해가는 이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대표적으로 제가 입회하던 해 시작한 “꿈방”은 소외지역 어린이를 위한 공부방 사업이었습니다. 와이즈멘이 재원을 대고 Y의 전문지도력이 붙어 서로 연대하여 같은 목표를 이뤄나가던 사업으로 지금도 한국 와이즈멘이 상고할 충분한 가치가 있는 모델이라 생각합니다.
이후로도 클럽은 모든 역량을 동원하여 Y를 위해 전력투구를 하였습니다.
촤타 20주년 전후에 와이즈멘 클럽이 3년간 Y에 헌신한 것을 대충 금전으로 계산해 본적이 있었는데 9300만원 정도였습니다. 이후 회관건축 때부터 지금까지는 아마 서너 배는 더 헌신하였을 것입니다.
이 와중에 많은 고난을 겪었고 더욱이 IMF 중에 Y 회관건축이라는 엄청난 사건을 겪으며 클럽은 많이 위축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IMF를 맞아 Y이사회가 구성되기도 어려울 때 와이즈맨 거의 전원이 이사로 봉사하며 위기를 넘기는 내공을 보였고 오늘날까지 봉사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결과는 확고한 클럽의 정체성에서 나온 산물이라 믿습니다. 비록 클럽의 규모는 작았으나 무엇을 하고, 할 것인가가 분명했기 때문에 감당해야 할 것은 마다 않았고 더 나가 할 것을 찾아 봉사를 자임하였지요. 부천 클럽이 지금도 비록 초라한 모습이지만 바른 길을 가고 있다고 확신합니다. 작은 기적이자 주님의 역사이지요.
촤타 30주년을 맞을 때 김동섭 회장님은 “Let's learn the Y's men &the YMCA!"를 모토로 다시 정체성 확립과 새로운 지평을 제시하는 일을 하였습니다.
저는 믿습니다. 이런 노력이은 또 다시 십년의 이정표를 세웠다고 말입니다.
특히 Y와 연대하여 시작한 “청소년 프로젝트”는 “꿈방”을 이은 모델로 클럽의 긍지와 자랑이자 밝은 미래를 담보할 것입니다.
부천클럽은 회원수는 적으나 젊고 다양한 전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Y를 구심점으로 하는 운영방향과 파트너 쉽이 확고합니다. 그러나 취약점과 개선할 점도 많이 있습니다.
첫째, 회원확장입니다. 지금보다 최소한 배는 되어야 합니다. 이 점은 회원들도 노력해야지만 무엇보다도 Y의 적극적인 후원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그간의 역사로 보아 와이즈멘은 Y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단체이고 Y도 회원의 완결 구조로 와이즈멘 만한 것이 없습니다.
둘째, 메넷회가 활성화되어야합니다. 와이즈멘이 가정을 오픈하고 가정 단위로 모임을 하는 장점을 갖기 때문에 메넷의 도움은 필수적입니다.
셋째, 자발적인 참여를 제고 시켜야합니다. 회원이 체면이나 개인적 친분이 아니라 프로그램을 통하여 친교, 훈련, 성숙, 봉사하고 기독성을 찾아야합니다. Y의 각종 프로그램을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입니다.
넷째, 와이즈멘은 Y의 지도력으로 훈련될 각오가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회원 개인의 풍성한 삶을 위해서도 소중하고 의미 있는 변화입니다.
끝으로 경청해 주셔서 감사드리며 허상보 촤타회원의 30주년 기념 글꼭지를 빌어 마칩니다.
“30년이라는 우리의 과거는 역사의 끝이 아니고 미래에 대한 과정이다.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정신으로 우리의 달란트를 찾아 매진하는 와이즈멘이 되어야 한다는 다짐이 촤타 30주년을 맞는 우리의 자세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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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국제 와이즈멘 메뉴로 글이 인 올라가요. 할 수 없이 여기에 올리니 이동해주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