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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제가 여러분에게 부족하지만 간증을 할려고 합니다.
우리 성도님들이 많이 힘들어 하고 지쳐 있는듯해서 이시간 부족한 저의 간증을
통해서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풍성한 위로를 받으시고 새힘을 얻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한 여름밤에 부부간에 단 둘이서 촛불을 켜고 식사를 하면서 사랑을
속삭여 보신 적이 있나요?
저는 해 보았습니다.
부부간에 단 둘이 촛불을 켜고 식사를 하니까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한 여름에 전기가 끊겨서 불이 안들어와서 초를 사다가 촛불을 켰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었다면 전기가 끊겨서 비참하고 냉장고 안에 음식 때문에
고통스러워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저 이렇게 라도 하루를 살아갈수 있었음을 주님께 감사했습니다.
한겨울에 부부간에 따뜻하게 꼭 끌어안고 주무신 적이 있나요?
저는 그렇게 했습니다.
한겨울에 가스가 끊겨서 부르스타에 물끓여 씻고 밥을 해먹고 방이 너무나 차기에
둘이 꼭 끌어안고 잘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도 우리가 서로 사랑하며 살아갈수 있음을 주님께 감사할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얼마전에 제가 식당에서 게장을 먹고 식중독에 걸려 밤에 병원 응급실에
간 적이 있었습니다.
응급실 침대에 누워서 그때에 내가 감사했던 것은 다른분들-예컨대 두분의 산모와 사모님-은 괜찮으시고 나만 식중독에 걸린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몸이 나아져서 계산을 하고 나올때는 왠지 하나님께 서운한 맘이 들더군요.
왜 그랬냐면 응급실에서 퇴원한 날이 주일이고 전전날 금요일날 아침에 밥을 하지 않고 삶은 감자를 꺼내 놓더군요.
감자를 먹고 출근한다고.
그래서 나는 무슨 감자를 먹고 가는가 밥을 먹고 가야지..
하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니 쌀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쌀을 팔려고 어떻게 해서 8만원을 구해서 가지고 있던 거지요.
토요일날 자매는 산부인과 병원을 가야 한다고 해서 기름값,진찰비 경비가 2만원 가까이 들었고요.
내가 응급실에서 퇴원하고 나올때 병원비가 6만원이 나왔어요.
그래서 그날은 쌀을 못팔었지요.
그래서 나는 하나님께 -아니 하나님 왜 이러십니까..? 하는데
자매는 ‘정말 너무 감사하네요..그동안 결혼하고 우리가 6년동안 살면서 한번도
병원에 실려 온적이 없었잖아요.‘ 하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여러분 우리는 얼마나 감사하면서 살고 있습니까?
아침에 일어나 눈을 뜨고부터 저녁에 잠자리에 들때까지 과연 몇 번이나 주님께 감사하다고 고백하고 있습니까.
사실 우리가 보고 느끼는 것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감사해야 한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안좋은듯해도 주님께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은 모든 상황 여건에도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바라기는 오늘 이 자리에 오신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이 범사에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저는 중 2때 하나님을 만납니다.
물론 어려서부터 - 2~3세부터 - 어머니를 따라 시골에서 교회를 다녔지만 어린 마음에 그저 다녔던 것이지요.
그러다가 중 2때 학생수련회와 교회 부흥성회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헌신을 고백하며 서원하게 됩니다.
그 뜨거웠던 열정은 곧 신앙생활에도 나타나게 됩니다.
그이후로 군대에 갈때까지 새벽기도와 모든 교회의 예배에-학생예배와 어른예배까지- 참석하며 늘 하나님을 만나고 싶어합니다.
강원도 원통에서 군생활을 했습니다.
군생활중에 일병이후 주말군종을 맡아서 평일에는 일상 군업무를 보다가 수요일 저녁과 주일은 대대내의 종교활동을 맡아서 인도하게 되면서 저의 예전의 헌신과 서원을 위해서 다시 일어서기 시작합니다.
종교활동이라 함은 부대내에서 기독교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불교 천주교도 행사가 가능하도록 각자 막사를 지정해서 스님과 신부님을 모셔서 행사를 갖게하고 기독교는 강당에서 예배를 드리도록 준비하는 것입니다.
제가 그부대에 가는 초기에는 기독교예배도 막사하나를 빌려서 드려야 했습니다.
그때 저는 군부대에서의 저의 사명을 깨달았습니다.
나를 이곳에 보내심은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는 것이다.
그래서 끝없는 영적전쟁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불교와 천주교땜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 신앙을 갖고 있다는 지휘관들로부터 시작됩니다.
아마도 그분들은 신앙이 같다고 해서 군종에게 만은 특혜를 줄수 없고 공평해야 한다고 생각 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막사에서 예배를 드리면 신앙이 전혀 없는 군선배들 때문에 제대로 예배를 드릴수 없음을 알았고 그래서 강당에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고집했습니다.
여러 가지 우여곡절과 어려움가운데-제가 타부대로 전출까지 고려될 정도였습니다-
결국은 강당에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고 시간이 흘러 새로운 강당을 신축했을때도 더 크고 깨끗한 강당에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실 초기에 있었던 여러 가지 영적전쟁들은 새 강당이 신축될거라는 정보 때문에 불교 천주교도 신강당에서 행사를 갖기 위해서 였기 때문에 일어났었고 군대는 계급으로 움직여지는 계급사회이기 때문에 스님과 신부님의 계급이 저의 기독교지휘관보다 높았었기 때문에 생긴거였다는 것을 뒤늦게 깨알았습니다.
그후에 제가 전역할때까지의 기도제목은 부대에 교회를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안타깝게도 후임군종에게 그 기도제목을 인수인계???? 시켜주고 전역을 했습니다.
제가 결혼하고 가장 먼저 떠올린곳이 부대였습니다.
그 부대에 가보니 교회가 세워져 있었습니다. 할렐루야....
제가 전역을 하고서는 잠시는 맘을 잡지못하고 직장생활을 해야 할지
공부를 해야 할지를 고민했습니다.
언젠가는 선교지로 나가겠지만 지금은 당장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업을 시작합니다.
컴퓨터 조립과 휴대폰 판매.
초기에는 꽤 잘되었습니다.
또 교회에서는 제가 청년회장을 맡아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업은 잠깐이었습니다.
워낙 내 자본없이 시작했던 것이라 부도가 나고 큰 빚을 지게 되었지요.
아버지의 유일한 소유인 집도, 승용차도, 모든 물건까지 빚으로 넘어가게 되고 집에 있는 살림들도 빨간 딱지가 붙게 되었습니다.
원인은 여러 가지 사유가 있었지만 세상은 정직한 사람을 원치 않았던 것입니다.
아무리 크리스찬이라 할지라도 적당히 사기도 치고 거짓도 말하고 세상적으로 적당히 타락해야 하는 것이었지요.
여하튼 제 인생에 있어서 첫 번째의 큰 위기였습니다.
어쨌든 나에게는 더 이상의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고 죽어버려야겠다고 결심합니다.
수천만원의 빚을 갚기도 쉽지 않았을뿐더러 내가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다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저기서 약국마다 다니면서 수면제를 사 모읍니다. 70알을.
한주먹이나 되더군요. 먹을려니까 한번에 먹기에는 너무 많아서 못 먹겠어요.
그래서 맥주를 좀 마시고 술기운에 한 입에 다 털어넣습니다.
이제는 끝이다.
모든 것이 끝장이다.
하나님, 정말 죄송합니다.
이러면 안되는 것을 알면서도 내가 왜이러는 것일까요.
하나님, 내가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요......
자살을 하면 지옥 간다는데 하나님
나는 그래도 추위를 많이 타니까 다행이어요...
그러나 하나님은 나를 살리셨습니다.
그당시에 함께 사업을 하시던 분이 내게 저녁부터 전화를 했는데 새벽3시까지
통화중이더랍니다.
이상해서 119에 신고하고 내 자취방까지 앰블런스가 와서
저는 구로고대병원에 실려가게 됩니다.
병원에서 의사가 하는 말이 위세척을 하면 약이 나와야 되는데 이미 술을 먹고 약을 먹었기 때문에 다 흡수가 되었습니다. 자게 놔두십시오. 하는 소리를 듣고 잠을 잡니다. 다음날 아침에 제가 깨어나게 됩니다.
여기저기 요양도 하고 기도원에도 가서 기도하게 되고.....
결단을 하고 21일 금식을 합니다.
금식기도중에 응답받은 것은 신학을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저같은 것이 무슨 하나님의 일을 하겠습니까.
주님은 계속해서 제게 신학을 해야 한다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또 신학교에 가면 배필을 붙여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주님, 저는 음악에 조예가 있으니 찬양 전도사가 되겠습니다. 주님.
그 응답이후에 저는 일을 시작합니다.
청계천에서 오토바이 퀵서비스를 하게 됩니다. 빚이 많이 남아 있으니까요.
퀵서비스를 아시나요?
신호등 빨간불은 빨리 지나가라는 표시이고 파란불은 원래가는 것이고
차가 많아 길이 막히면 차 사이로 빠져 나가고, 어려우면 중앙선을 넘고
그것도 안되면 인도로 가는 오토바이가 있습니다.
일주일에도 몇장씩 스티커를 떼일 정도로 불법운행을 하고 다닙니다.
그도 그럴 것이 퀵서비스는 시간입니다.
청계천에서 안산이나 인천까지 40분이면 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너무 늦게 도착하면 물건을 받지 않고 운임도 못받고 다시 돌려
보냅니다.
게다가 물건을 살려고 하는 사람들은 청계천에 전화를 하면 바로 물건을 싣고
나오는줄 아는데 그렇지 않아요.
청계천상가는 유통단지이고 공장은 아니죠.
그래서 물건을 주문하면 다른 공장에 수소문해서 물건을 준비 시킵니다.
그래서 시간이 걸리고 또 퀵서비스맨들도 그거 달랑 하나만 싣고 나올수는
없으니까 또 다른 건을 기다립니다.
그러다 보면 1시간이 훌쩍 넘어 버리고 안산이나 인천에서 전화한사람들은
넉넉하게 1시간이면 올수 있는데 안온다고 난리가 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서울 시내및 수도권의 지리와 신호를 다 외우고 다녔습니다.
여기서 대기하면 신호등 몇 개가 열린다 여기서는 빨간불 몇초후에 출발해야
신호등이 안걸린다..등등...지키고 있는게 바보다...
그러다 보니 넘어지기도 많이 넘어지고 다치기도 많이 했습니다.
그것이 다 하나님의 사인이었는데 나는 무시했던 것이지요.
어느 비오는 날은 여의도 그 넓은 대로에서 미끄러져 넘어지면서
신호대기중이던 8톤트럭밑으로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나는 일어날수도 없고 일어나지도 못하는채로 사람살리라고 소리를 질러댔습니다.
다행이 그차가 움직일려고 했을때 오른쪽 기사가 백미러를 보니까 바퀴사이에
오토바이가 들어가 있는것이 보였는지 차에서 내려서 나를 알아보고는
깜짝 놀래는 것이었습니다.
아이쿠 사람죽어요 빨리 오토바이를 빼주세요.
결국 그분이 빼주면서 혹시라도 자기가 덤탱이를 쓸까생각했는지
내가 인사를 하기도 전에 아저씨 나는 아무 잘못 없어요 하고 횡하니
차를 몰고 가버린 적도 있습니다.
다시 생각하면 아찔합니다.
저는 교통에 관한한 불법을 행하면서도 아무런 죄책감이나 꺼림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이일을 하게 하시고 빚을 갚게 하신 것이라면 할 수 없지 않은가.
그러던 어느날..
공덕동 로터리를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날도 오토바이에 무거운 짐을 가득 싣고 목숨 걸고 씽씽 달렸습니다.
공덕동 로타리는 구간이 굉장히 깁니다.
신호는 황색불로 바뀌고 있는데 빨리 지나가야 겠다고 생각하고 속도를 더 많이
내고 달렸습니다.
그런데 로타리 건너 횡단보도 있는곳에 조그만 강아지-다 큰개- 한 마리가 눈에
띄였습니다.
분명히 저 개가 뛰어들면 난 급정거를 하게 되고 오토바이는 무거운짐을
싣기 있기 때문에 난 또 넘어지겠다 싶어서 속도를 천천히 줄여가면서 로타리를
지나칩니다.
그런데 그 강아지는 횡단보도 턱에 그냥 서 있는 것이었습니다.
어라 저것이 왜 지나가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금 있다가 횡단보도신호등이 파란불이 들어오자 신호등을 보았다는 듯이
횡단보도를 지나가는 것이었습니다.
그 횡단보도에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때 나는 아....
나는 저 강아지보다도 못하구나 하면서 집에 돌아와 회개를 했습니다.
닭의 울음소리를 듣고 회개한 베드로 처럼 어찌보면 아무것도아닌 강아지를
통해서 하나님은 나를 깨닫게 하셨던 것입니다.
사람들이 만든법도 지키지 못하면서 하나님이 만드신 법을 지킨다고 생각한
나를 하나님이 다루신 것입니다.
그 즈음에 저의 어머니가 40일 금식을 하십니다.
그리고 응답받으신 것이 한국기독음악신학교에 가야 한다는 것이었지요.
나도 모르는 학교를 어머니가 어떻게 아는가 했는데 어머니가 기도를 끝낼때에 국민일보에 학생모집 광고가 나왔던 것입니다.
이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기로 했었기 때문에 학교를 알아보게 됩니다.
그날이 1997년 12월 31일이었고 바로 그날 입학원서를 쓰게 됩니다.
아마도 신학교 역사상 학기가 시작되기도 전에 입학원서를 쓴 사람은
저 밖에 없을 것입니다.
여하튼 낮에는 일을 하고 신학교를 야간으로 다니면서 공부를 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 한가지 하나님이 신학교에 가면 배필을 주신다 했는데 누구일까하면서 여학생들을 주시하게 됩니다.
그러나 야간부에는 2명의 여학생이 있었고 한명은 이미 짝이 있었고 또 한명은 신앙의 훈련정도가 나와는 너무 많이 차이가 나기에 아닌가 보다 싶었고 주간부에 있는가 해서 주간부 MT도 따라가 가보았습니다만 맘에 끌리는 자매는 없었습니다.
아 그럼, 이번 학기는 아닌가 보다 내년을 기다려봐야지. 하고 생각하고 특히나 저는 그때에 결혼 생각이 없었기에 큰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때 나이는 31세. 그러나 빚을 갚아야 하기때문에.
1학기가 끝나고 방학중 40일 작정 금식을 시작합니다.
왜냐면 신학을 시작하면 웬만큼 나의 환경이 개선될줄 알았는데 더 더욱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왜 그리 재판은 많은지. 왜 그리 힘들고 어려운지. 가히 산넘어 산이었던 시절이었지요.
그래서 돈벌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한 것입니다.
빨리 빚을 청산하고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해달라고요....
21일째부터 하나님의 응답이 있었습니다.
신앙훈련의 차이가 많이 있다는 자매와 결혼하라는 응답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첫 느낌이 하나님 지금 제정신이십니까? 였습니다.
왜냐면 그 자매는 저와 동성동본이었기 때문입니다.
한국사회에서의 동성동본은 무엇을 의미하는 지 잘 아실 것입니다.
하나님 저는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하고 선교사로 나가야 될 사람입니다.
그런데 동성동본인 자매와 결혼을 한다면 혼인신고는 어떡할 것이며 자녀들은
어떡하란 말입니까?
더구나 지금 제가 기도하는 것은 결혼시켜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돈을 벌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 아닙니까?
나는 돈벌게 해달라고 기도하면 그래 누구를 만나도록 해라
이렇게 이렇게 해서 돈을 벌어라 하면서 응답주실줄 알았어요
근데 돈이 아니라 결혼하라는것입니다
그 자매도 별로 돈이 없어 보이던데요??????
그러나 하나님은 계속해서 결혼응답을 주셨고 날짜까지 선명하게 정해 주셨고 ........
좋습니다. 주님. 제가 내려가서 자매에게 모든 것을 말하겠습니다.
그래서 한마디라도 NO라고 한다면 없던 걸로 하겠습니다.
그리고는 25일째 금식을 풀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날이 목요일이었습니다.
자매에게 전화를 해서 토요일날 만나자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자매는 약속이 있어서 안된다고 일언지하에 거절하더군요.
거봐요 하나님. 안된다잖아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면서 호박죽을 먹고 있었는데 토요일 오후에 자매에게서
전화가 옵니다. 지금 광명에 와 있다고요. 안오면 안될 것 같아서 막 왔다고.
나는 어라 이게 아닌데...이러면 안되는데...
하면서 집으로 들어와서는 하나님이 나에게 응답주신 내용을 다 얘기했습니다.
빚은 얼마가 있고... 앞으로의 비전은.... 하나님은 자매와 결혼 하라고 응답을 주셨다......
그랬더니 자매는 얼른 결혼해야지요 하고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그게 아니고... 내 말잘들어요....빚은 얼마고........
다시 얘기를 했는데도 역시 자매는 결혼을 하겠다고 말을 했습니다.
바로 그때부터 자매가 얼마나 사랑스러워지는지요.
그이후로 날마다 사랑이 더 깊어지고 있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돈은 얼마나 갖고 있나요.
하나님은 나에게 자매는 천오백이 있다고 말씀하셨는데요.
했더니 어머, 전 전세금 팔백밖에 없어요 하더니 한참을 생각한 후에
아, 병원 퇴직금 칠백이 더 있어요. 했는데 병원이 그해에 연봉제로 바뀌면서 퇴직금을 다 나누어 주게 됩니다. 우린 그돈으로 결혼을 하게 되지요.
1998년 12월 12일입니다.
하나님 그런데 우린 동성 동본이어요
어떡하나요
너희는 가만히 있어 주가 하나님됨을 알찌어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보십시오.
그달에 동성동본이라 할지라도 혼인신고를 할수 있도록 하나님은 나라의 법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아마도 다른 보통 사람들은 그냥 바뀌었으려니 하지만 저는 우리 때문에 하나님이 법을 바꾸어 놓았다고 지금도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훈련하시고 사용하시기 위해 나라의 법까지도
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그 이유는 지금은 혼인신고가 안되도록 다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그리고 1999년 9월추섯연휴 첫날에 아들을 낳게 됩니다.
임신 약 6,7개월 정도에 하나님이 아이를 위해 기도하게 하셔서 일주일 금식을 합니다.
왜 그러실까? 하나님이 나에게 기형아라도 주실려는 것일까?
아이한테 문제가 있는 것일까? 하면서 기도합니다.
얼마전 자매는 검사를 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무슨 검사를. 기형아 검사를 해야 돼요.
아니? 뭐라고요. 그러면 기형아면 수술하겠다는 말인가요?
하나님주신 자년데도 어떻게 그렇게 하실수가 있나요? 검사 안됩니다.
그러면서 검사를 못하게 했지요.
어쨌거나 우리는 너무나 행복했지요.
날마다 자매의 볼록 나온 배를 만지면 안수하며 찬양하며 아이를 위해
기도했답니다.
이 아이가 하나님의 귀한 사람으로 자라게 하여 주옵시고 하나님이 이땅에 보내신 사명을 온전히 이룰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귀한 백성으로 양육할수 있도록 우리에게 은혜와 능력을 덧입혀
주옵소서.....
그후 추석연휴 첫날 2시간의 진통끝에 너무나 간단하고 쉽게 아이를 낳습니다.
아들이었습니다.
저 그 아들을 이리저리 요모조묘 살폈습니다. 기형아인가 아닌가 해서요.
그러나 정상이었습니다.
의사 선생님도 아이도 산모도 모두 건강하고 정상이라 말했습니다.
추석연휴라서 집에가서 쉬면 어떨까하고 의사 선생님에게 말했더니 아이, 산모 모두 건강하니까 그렇게 해도 좋다고 해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밤새도록 아이를 이뻐하고 사랑하고 안아주고......그러나 그것이 끝이었습니다.
아침에 자매가 아이에게 젖을 물려 보았지만 아이는 젖을 빨지 않았습니다.
내가 그냥 놔두세요. 배고프면 젖을 빠는 것이 본능입니다.
그러나 자매는 아기 숟가락에다 물을 떠서 아이에게 먹였습니다.
그런데 그 물이 아이의 기도를 막았던 것입니다.
119구급대에 실려서 병원에 갔지만 아이는 이미 숨을 거두었습니다.
나는 다시 한번 회개를 하면서 하나님앞에 쓰러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내가 내생명을 경시 여겼던 것을 하나님은 분명히 기억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내가 회개를 했었기에 나의 죄는 사해 주셨지만 죄값에 대한 보응이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나는 아직 이땅에서의 사명이 남아 있었기에 살려 주셨지만 나의 아이는 하나님이 바로 데려가셨던 것입니다.
나의 멘토는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하나님께 바쳤던 것처럼 나의 첫 아이도 하나님께 바치기를 원합니다라고 기도했지만 죽음으로 데려갈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생명은 하나님의 주권에 있는 것임을 믿기에 하나님의 행하심에 순종하기로 했습니다.
저는 앞으로 아브라함처럼 일곱아이를 더 기를 것이며 -내가 3명을 낳고 4명은 입양을 할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되었듯이 저의 가문에서 제가 우리 조상들의 죄과를 끝내고 믿음의 조상으로 거듭나고 싶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를 활용하여 날마다 하나님을 찬송하며
감사하며 살아갈 것입니다.
중국 문화선교에도 뜻을 이룰수 있도록 늘 기도하며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선교사들이 무료로 휴식하고 쉴수 있는 게스트 하우스-선교센타-를 세우는 것이 저의 꿈이고 비젼입니다.
지금의 고난은 하나님이 사용하시기 위한 그릇을 만들기 위함이며 언젠가는 하나님이 준비되어지는대로 사용하실 것을 믿습니다.
이제 자매의 배속에는 한 아이가 자라고 있습니다.
다음달이면 산달입니다
이제 꼭 한달 남았습니다
저는 분명히 믿습니다.
이 아이가 자라 하나님의 위대한 일을 감당하게 될 것이라고.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분명히 감당하게 될 것이라고.
이 아이에게 부모된 우리가 분명한 믿음의 본을 보여주리라고.
여러분 우리의 자녀는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이요
하나님의 거룩한 사명을 이루고자 이땅에 보냄을 받은 자들입니다.
부모된 우리가 믿음의 본을 보여 우리의 자녀들이 하나님말씀가운데
순종하며 살아갈수 있도록 인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모든 것이 감사합니다
그리고 지금 이순간도 생명을 연장시켜 주셔서 조금이나마 주님이 주신 사명을
위해 일할수 있게 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지금껏 인도하심도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토록 함께 하실 것도 감사드립니다.
우리 모두 늘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갈수 있기를 바랍니다.
첫댓글 이 간증은 작년(2004년) 9월 즈음에 교회에서 했던 것입니다.지금 벌써 1년이 아스라히 지났군요. 아무 정신도 없이.....한달후 자매는 예쁜 딸아이를 낳습니다. 이름을 에스더라고 지었지요. 하나님은 에스더마저 3일만에 데려가십니다. 저에게 주어지는 훈련이 너무나 고통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생사화복은 주님이 하신일....주님은 지금의 저에게 새로운 소망을 주십니다. [이제는 묵은 땅을 기경하라]고...한번뿐인 인생에서 하나님의 뜻을 바라보라고... 이젠 이생명 주님만을 위해 바칠 각오가 되어있습니다. [십자가의 길 순교자의 삶]을 살아갈 준비가 되었습니다. 주님..이생명 주님을 위해 바칩니다.
더 좋은 것으로 준비하신 하나님의 계획이 있음을 압니다............. 그래서 감사합니다.
많은 은혜 받았습니다.. 제게 기도제목이 하나 더 늘었어여.. 순례자님을 위해 기도할께여.. 주님에 귀한 도구로 쓰여지시길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빛과소금님..저도 너무나 부족합니다..주님의 은혜로 살아갑니다..우리가 주님의 나라를 위해 위대하게 쓰임받을 것을 분명히 믿습니다..
suleja님의 간증을 찬찬히 읽어 내려가면서 고개를 숙이게 되는군요..주님께서 크게 쓰시기 위해서 여기저기 망치질을 하고 계신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길을 걸으실 수 밖에 없는 숙명이셨기에...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주님을 위해바치신다는 믿음에 큰 감동과 저 또한 다시한번 더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게 됩니다. 우리는 모르지만 먼저 우리를위해 준비해주시고 합당한 열매와 아니 그보다 더 많은 축복을 주시리라 믿어요.
아멘...우리는 주님의 행하심에 늘 기대를 갖고 감사를 드립니다..
자녀를 잃는다는 것은 부모된자만이 느낄 수 있는 아픔이지요. 그 아픔은 하나님만이 아실꺼예요. 그러기에 더 많은 것으로 채우시고, 복 주시고, 귀하게 쓰시리라 맏습니다. 많은 은혜 받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늘 주님의 능력으로 충만하길 소원합니다.새로운 히을 주시는주님.독수리와 같이 높이 날수 있도록 힘을 주시리라 믿습니다..
주님과의 만남은 우리가 선택하는 것 같지만...간증문을 읽으면서.. 실은... 주님께서 선택해 주신 것이라는 생각에 가슴이 뭉클해 집니다..새해에는..Suleja님과 아내되시는 사모님을 위해 기도 드리겠습니다...할렐루야~^^
감사합니다...이스라엘님..우리는 모두가 주님의 도구임을 확신하니다.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사역이 이루어짐을 믿습니다.우리가 준비되어질때 주님이 우리를 사용하심을 확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