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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편소설]
동지[冬至]
- 은유시인 -
1
인간들이 결집(結集)하여 구축한 거대한 사회의 제도 안에서는 인간 개개인에게 제각기 짜여진 삶의 틀, 즉 운명(運命)이란 것이 강제로 주어지는데 이 운명이란 것은 특출한 몇몇 사람들만 제외하고는 개개인이 어찌 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어떤 이들은 태생부터 왕후장상의 품격(品格)을 이어받아 평생을 고귀하게 보내는가 하면, 또 어떤 이들은 버러지만도 못한 삶을 이어받아 철저히 소외되고 버림받는 한편 아주 하찮은 행복마저 타인에 의해 무참히 짓밟히고도 마치 운명처럼 받아들여야 한다는데 길들여져 있다.
***
1979년 12월도 거의 저물어가는 동지(冬至)를 이틀 앞둔 어느 날이었다. 거창댁의 집이 위치한 곳은 지리산으로 이어지는 산세가 비교적 험하고 인가가 드문 외딴자락으로 겨울의 입김도 그 어느 곳보다 숨 가쁘게 다가왔다. 그네가 굳이 나서지 않으면 찾아올 사람마저 전혀 없는 인적이 드문 곳에 일부러 술래잡기라도 하듯 터잡아온 지 어언 이십오 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일상처럼 늘 지녀온 외로움이 평상시 몸에 걸친 홑 누더기 못잖게 몸에 배었다고는 하지만 늦은 시각에 북녘을 향해 무리지어 날아가는 기러기를 바라보던 그네의 가슴속엔 문득 외로움이 밀물처럼 몰려들었다. 저렇게 하늘을 홀연히 날아가는 기러기 떼가 어디를 향해가고 있는 것인지 무지한 그네로서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함께하는 무리가 있기에 정녕 외롭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절로 한숨이 새어나왔다.
그네는 옷섶으로 깊숙이 파고드는 소소한 추위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기러기 떼가 사라져간 먼 하늘을 망연히 바라보았다. 저물어가는 태양과 붉게 물든 서녘하늘, 그리고 먼 산들이 조화를 이루어 화려하고 장엄하기 이를 데 없는 장관을 연출하였지만 그네의 가슴속에 쌓이고 쌓인 깊은 한마저 삭힐 수는 없었다.
석양은 어느덧 기울고 깊은 골 특유의 적막감에 사로잡혀 간혹 들려오는 산짐승들의 처량한 울부짖음만이 그네의 심기를 더욱 불안케 하였다. 한동안 그렇게 먼 하늘을 넋 놓고 바라보던 그네가 갑자기 제정신이 돌아온 듯 몸서리를 쳤다. 그리고 서둘러 산돼지들이 수시로 들락거리며 파헤쳐놓는 고구마 광 입구에 여러 개의 굄목을 덧대어 놓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땅거미가 기운지 오래인 사위(四圍)는 숨 막히리만치 고즈넉하여 소슬바람에 마른가지 스치는 소리마저 적막감을 더했다. 변덕스런 날씨 때문인지 초저녁과는 달리 어느덧 습기 먹은 바람도 찌뿌듯하니 금방이라도 눈발이 몰아칠 듯하고 별들마저 사그라져 사방은 지척을 분간할 수 없을 만큼 어두웠다.
어느 순간, 들려오는 별다른 소리는 없었지만 그네만이 지닌 특유의 육감으로 사람의 기척이 느껴졌다. 덩치 큰 사내 하나가 조심스레 그네가 있는 부엌을 들여다보고 있었으며 아궁이 불빛만으로 어른거리는 그의 모습을 얼른 식별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거창댁은 그 사내가 아들 승환이임을 대번에 확신하였다.
한 평 남짓에 불과한 좁은 부엌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바싹 마른수수깡으로 아궁이에 군불을 지피던 그네는 몽매에도 소스라칠 듯 마냥 안타깝게 여겨왔던 아들의 시커먼 모습을 보자 반가움보다는 지레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하이고머니, 이게 뉘기여?”
그네는 아직 오십 중반의 나이임에도 마치 칠순을 넘긴 듯 꽤 추레하게 늙은 몰골로 그 거동마저 휘청거려 자칫 위태롭게 보였다.
“어무이, 저라요. 승환이….”
“하이고, 내 새끼….”
그네는 말을 잇지 못하고 앞치마를 걷어 올려 저절로 눈에 맺힌 눈물부터 얼른 닦아냈다. 때가 꼬질꼬질하게 배인 무명 앞치마자락이 그네의 짓무른 눈가를 닦아낼 때마다 예리한 쓰라림이 긴 여운처럼 자근자근 남았다.
“어무이요, 지 땜시 맴 고생 많았지요? 참말로 지송합니더.”
아무렇지 않다는 듯 시침을 떼고 그에게 한 발 다가서려는 어머니의 얼굴을 바라보던 덩치 큰 사내는 차마 그 눈빛을 마주할 수 없어 고개를 깊숙이 떨어뜨렸다.
“내사 아무렴 어떻것냐, 니가 더 걱정이제. 그런디 이리 불쑥 나타나도 괴얀켔나? 그 사람들 걸핏하면 니 몬 잡아 마구 설쳐대는디….”
“어무이요, 어매만 잠시 뵙곤 이 밤으로 바로 떠날라 캅니더. 지는 일본으로 바로 떠날 낍니더. 어쩜 한동안 어매 몬 뵐지도 몰라요.”
“일본으로…?”
그네는 일본이 어딘지 모른다. 막연하게 아주 먼 곳으로, 그네의 발길이 전혀 닿을 수 없는 그저 먼 곳으로 여기고 있을 따름이다.
그네야말로 살아오는 동안 거창이나 함양일대를 벗어난 적이 없어 바다를 구경할 기회도 없었으니 바다 건너 일본이란 나라를 알 턱이 없었다. 승환이가 고등학교를 입학할 때 처음으로 함양읍이란 번잡한 시내구경도 했고 그의 입을 통해 세상이 굉장히 넓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아득하게 넓은 바다 건너에 우리와 말이 안 통하는 전혀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얘기도 들었다. 그렇지만, 그렇게 먼 곳으로 도망가야만 내 아들이 잡히지 않고 살 수 있다니 일본이란 데가 왠지 낯설지 않게 느껴졌다.
“참, 내 정신 좀 보그레이. 니 지금 꽤 마이 출출 하제? 푸딱 일루 들어 온나. 내 금방 따신 밥 채려 줄 텐게.”
아들 승환이야말로 그네의 유일한 혈육이자 그네가 살아가는 이유였으며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버팀목이었다. 그런 그가 이제 두어 달 만에 불현듯 어미 품이라고 찾아와 머물 새 없이 또 다시 먼 길, 어쩜 결코 되돌아오지 못할 먼 길을 떠나야한다는 극히 당연한 듯한 얘기를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이제 그를 그네의 품에서 떠나보내면, 어쩌면 그네 살아생전에 그를 다시 볼 수 있는 기회가 영영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이 싸늘해지고 눈앞이 잔뜩 흐려져 가뜩이나 휘청거리는 몸을 더더욱 가누기가 힘들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세 사람의 목숨을 무참히 빼앗은 살인마로서 쫓기는 신세가 되었는지, 경찰이나 주위사람들이 아무리 설명을 해주어봤자 그네로서는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단지 일 저지르고 얼마 후인가 야심한 밤을 틈타 얼핏 숨어들어온 자식이 사건의 전말을 거두절미한 채 ‘지가 어무이한테 뭔 거짓말을 하겠는교. 지는 단 한 사람도 죽인 적이 업쓴게, 딴 사람은 몰라도 어무이만큼은 지를 꼭 믿어주셔야 합니더. 지는 결코 사람을 죽인 적 업씸니더’란 말만 되풀이하고는 황급히 그네를 떠났었다.
그네를 향한 자식의 눈빛은 공포와 절망감이 뒤엉켜 처절하게 보였으나 일견 단호하여 그 말의 진의가 그대로 전달되어왔다.
“하모, 내 자식이 어떤 자식이고. 참말로 딴 놈들 말은 믿을 수 없다카지만 내 자식 놈 말을 어찌 안 믿것노.”
그네는 당연한 듯 승환이의 말이라면 철썩 같이 믿었다.
승환이는 천성이 솔직담백하여 어렸을 때부터 어떤 사소한 거짓말도 늘어놓은 적이 없었다. 어쩌면 거짓말을 하려해도 얼굴부터 붉어져 금방 들통 날 것이 뻔해 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한 때는 그네의 흉한 얼굴 때문에 그네를 어미로 드러내길 싫어하였고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여 어느 것 하나 나을 것 없이 부족하기만 한 자신의 집안형편 때문에 괜한 반항심으로 그릇된 행동을 일삼아 그네의 속을 무던히 태우기도 하였지만 그 또한 철부지적 일이었으며 그러한 빗나감도 그리 오래지 않았다.
아이들 세계에서는 자기 집안의 경제적 부로, 아버지의 사회적 영향력으로 자신을 과시하고 그러한 간접지위를 이용하여 다른 아이들을 통솔하려는 경향이 짙다. 승환이의 경우는 아버지를 일찍 여윈데다 어머니 또한 떳떳이 내세우기 부끄러울 정도로 심한 언청이요, 집안형편이 너무 어렵다보니 공납금마저 제때 내본 적이 없었다.
처음엔 그러한 것들 때문에 아이들로부터 심한 놀림도 받았고 따돌림도 받았다. 그래서 한때는 공부를 열심히 하여 성적으로 만회해보려고 무진 노력을 해보았지만 그마저도 그의 여건에서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결국 그는 또래 아이들보다 두 살 많은 만큼 더 큰 키와 덩치를 이용, 무력으로 아이들을 제압하기 시작했다. 역시 힘과 주먹 앞에서는 제아무리 닳고 닳은 아이들이라도 꼼짝 못하고 복종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아이들 세계라도 힘과 주먹 또한 도전이 늘 따르게 마련이다. 그렇다보니 싸움이 잦게 되고 상대로 하여금 두 번 다시 기어오르지 못하게 하기위해 자전거체인이나 야구방망이나 심지어 칼과 같은 위험한 흉기를 동원하여 상대를 철저히 제압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는 천성이 여리고 순박하여 처음부터 그러한 잔혹함을 표방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가 고등학교 2학년이 되던 해, 같은 반에 배정된 영석이와 단짝처럼 어울리게 되었다. 영석이 역시 다른 학교에서 퇴학과 낙제를 되풀이하여 2년 묵은 상태로 전학을 왔기 때문에 또래아이들보다 두 살 많고 승환이와는 동갑이었다.
영석이는 그다지 큰 키는 아니며 마른 체형에 근력도 상대적으로 약했다. 말상이라 할 긴 얼굴에 숱이 거의 없는 눈썹, 콧등이 납작하게 눌린 작은 코, 윤곽이 모호한 얍삽한 입술을 지녔다. 대신 쭉 찢어진 눈은 섬뜩하리만큼 날카롭고 몸놀림도 날렵하여 싸움을 잘하였으며 무엇보다 꾀가 많고 교활하였다. 그런 영석이가 곁에 있었기에 힘과 주먹만으로 제압하기 어려운 상대도 쉽게 굴복시킬 수가 있었는데 당시 학교 안에서는 그 누구도 함부로 다룰 수 없는 악발이로 유명한 덕형이의 경우가 그러했다.
덕형이는 유연한 버들가지를 연상케 하는 영석이와는 상반된 절구통을 연상케 하는 짜리몽땅한 키에 떡 벌어진 다부진 체격을 지녔다. 이마가 유난히 좁으며 짙고 굵은 눈썹에 단추 구멍같이 파인 눈,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무표정한 얼굴은 어찌 보면 지능이 낮은 바보처럼 보였다. 그러나 대단한 뚝심을 지녔으며 더불어 악발이란 별명에 걸맞게 물불을 가리지 않는데다 싸움상대가 초주검이 될 때까지 물고 늘어지는 악착같은 근성마저 지녔다.
그러한 영석이, 덕형이와 콤비를 이루면서 학교 안에서는 물론 함양바닥의 주먹들과 연일 싸움이 끊일 날이 없었다. 그리고 그의 그러한 불량기로 점철된 방황을 멎게 해준 것은 아주 사소한 일로 비롯되었다.
고등학교 3학년 2학기를 맞고 얼마 후쯤 되었을 때다. 그날은 토요일이라 학교수업이 일찍 끝나고 각기 제 볼일이 있는 덕형이, 영석이와 헤어진 뒤 짙푸른 잡초로 무성한 밭두렁 길로 자전거를 몰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그날따라 날씨는 구름 한 점 없는 전형적 가을 날씨라 하늘은 높고 청명했다. 모처럼 날아갈 듯한 기분에 고조되어 자신도 모르게 집으로 가는 지름길이지만 의도적으로 잘 다니지 않던 길로 들어서서 예의 허름한 농가 앞을 지나가게 되었다.
고등학교 입학 이래 오래전까진 늘 그 집 앞을 지나쳤는데 언제부터인가 오그라든 두 다리를 바닥에 질질 끌 듯 도망가는 누렁개 한 마리가 눈에 띄기 시작했다. 그 개를 볼 때마다 측은하다기보다는 혐오스런 기분이 들었고 그런 불구의 개를 왜 키우고 있는지 그 주인 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오가는 동안 한번은 언뜻 놀라 내뺀 그 개가 지나간 자리에 붉은 생리혈이 길게 남아있는 것을 보고 차마 못 볼 것을 본 듯한 언짢은 기분이 들었다. 마침 생리를 하던 그 개의 음부가 땅바닥에 닿은 채 질질 끌린 흔적이었다. 그때 그 개가 암컷이란 것을 알았으며 그렇게 낯선 사람들 때문에 마냥 도망만 다니다보면 필경 그 여린 음부가 다 닳아 없어지겠거니 싶은 괴이쩍은 생각에 그 뒤로 그 길을 꺼려왔다.
그런데 그날은 처음 보는 다 자란 새끼들 여러 마리가 어미주위를 맴돌며 그가 다가오지 못하게 맹렬히 짖어대는 것이다. 처음엔 별 의미를 못 느끼고 같잖게 보았으나 일부러 그 앞을 몇 번 더 지나치면서 봐도 여전히 똑같은 반응을 보이자 그 까닭이 여간 궁금해지는 것이 아니었다.
이틀 뒤 등교 길에 일부러 그 개들을 보기위해 그 집 앞을 지났다. 개들은 여전히 같은 반응을 보였다.
“워~! 씨끄럽다, 고만 짖그라.”
카랑카랑한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든든한 주인이 곁에 있어서인지 아니면 할머니의 꾸짖는 소리 때문인지 개들이 짖어대는 소리가 다소 수그러들었다.
그 집 주인인 듯한 허리가 꽤 많이 구부러진 할아버지와 그를 부축하고 있는 비교적 정정해 보이는 할머니가 마당에 나와 있어 자전거에서 내려 인사부터 했다.
“할무이요. 저 개들 말입니더. 참 희한하데요.”
“와? 먼일 있었나?”
“그기 아니구요. 즈그들끼리 잘 놀다가도 어미개헌티 가까이 갈라 카면 막 짖어대고 물려 안 캅니꺼.”
“으응, 즈거 어매 지켜줄라 안 카나.”
“……?”
“아무리 개라 캐도 사람부다 낫다카이. 즈그 어매가 빙신이라 지켜줄라 안 카나. 을매나 즈그 어매를 위해주던지…”
“……?”
“와? 내말이 안 믿기나?”
“아니요, 그기 참 신기해서요.”
“개들이라고 생각 엄는기 아이다. 어쩜 덜 되먹은 사람보담 훨 낫다.”
참 묘한 일이었다. 자신의 어미가 병신이라는 것을 사람도 아닌 이제 겨우 태어난 지 1년도 안되었을 개들이 어찌 알 수 있는지 그것도 궁금했지만 약하다하여 지켜줘야 한다는 사람 못잖은 생각을 개들이 할 수 있는지도 궁금한 것이었다. 참으로 불가사의한 일이었으나 그의 눈으로 직접 확인한 사실이었다.
그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불구의 개를 내치지 않고 키우고 있는 늙은 노인네의 인정은 그렇다 치고, 하찮은 개들마저 저를 낳아준 어미를 끔찍이 위하는데 하물며 사람의 탈을 쓰고도 일가붙이 하나 없이 오로지 저 하나를 낳고 키워준 불쌍한 어미를 부끄럽게 여겨온 자신이 너무 형편없는 속물처럼 느껴졌다.
그네는 대낮에도 버젓이 호랑이며 멧돼지며 여우 따위가 출현하는 외진 산간벽지인 청연이란 작은 마을의 한 가난뱅이농사군 집안에서 태어났다. 청연마을은 경상남도 거창군 신원면에 위치하고 있으며 인가라고는 인근 띄엄띄엄 터 잡은 20여 호 100여명이 전부였고 그나마 고구마나 옥수수농사밖에 안 되는 척박한 토양이라 화전민을 겨우 면했다할 원시마을이었다.
그네는 태어날 때부터 윗입술과 함께 코의 형태까지 뭉그러진 심한 언청이였다. 그리고 그네가 그런 몰골로 태어난 것을 알아챈 마을사람들 사이엔 흉흉한 소문들이 끊이질 않았다. 곱사등이라든가 소아마비라든가 곰보 따위는 몰라도 손가락이 여섯 개인 육손은 물론 그네의 그런 생김새 또한 마을 전체에 크나큰 재앙을 불러올 것이라는 주장들이 나왔다. 악귀가 들린 부정 탄 아이라 하여 일부러 죽이지는 못하더라도 산에 갖다버려 짐승의 밥이 되게 하자는 주장이 분분했으나 그리 모질지 못한 그네 부모는 마을사람들 눈을 피해 핏덩이를 살려뒀고 결국 그네는 철들기 전부터 홀로 깊은 산속에 움막을 지어놓고 산나물 따위를 채취하여 근근이 연명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살다보니 학교근처에는 얼씬도 못한 일자무식으로 마을과 산을 오가는 그것만이 그네가 아는 세상의 전부일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육이오 전쟁이 발발했어도 그네는 그러한 사실조차 까맣게 모르고 지냈다.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러 소강상태에 접어들자 피아(彼我)마저 불분명한 상황이었다. 그네가 사는 벽촌에도 낯선 군인들이 이따금씩 들락거렸는데 그들이 나타날 때마다 약탈행위가 벌어지고 그들의 이유 없는 만행에 의해 몇몇 사람들은 크게 다치거나 죽기까지 했다. 그들 군인들은 하나같이 너덜해진 군복에 군표는커녕 계급장마저 붙어있지 않아 어느 게 국방군이고 어느 게 괴뢰군인지 마을사람들은 그들의 겉모습만 봐서는 전혀 구분조차 할 수 없었다.
그냥 저희들 기분 내키는 대로 약탈하고 사람을 마치 파리 잡듯 수월하게 때려잡는 그들 군복 입은 사람들이야말로 마을사람들의 시각에서 보면 국방군 괴뢰군 따질 것 없이 모두 두려움의 대상일 수밖에 없었다.
그네는 그네의 고향인 청연마을사람들이 단지 빨갱이 동조자란 애매한 이유로 한 날 한 시에 국방군에 의해 무자비하게 살해당하는 와중에서도 눈에 띄지 않는 외딴 곳에 홀로 떨어져 삶으로써 유일하게 살아남은 생존자였다.
마을사람들이 군인들에 의해 집단으로 몰살을 당하던 그 날에도 그네는 채취한 버섯이며 고사리며 더덕 등의 산나물을 잔뜩 이고지고 마을로 향하던 중이었다. 잡목이 우거진 숲을 막 벗어나려는 순간, 웅성거리는 소리가 평소와는 사뭇 달랐다. 조용한 산골마을이라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는 사람들이 그다지 모일 일이 없었다. 그런데 얼핏 보기에 적잖은 사람들이 떼를 지어 이동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 군인들이 간혹 끼어있는 모습이 보였으며 그중 한 군인이 마을사람 하나를 장총 개머리판으로 내리쳐서 쓰러뜨리는 모습도 보였다.
그네는 놀란 가슴을 간신히 진정시키고 후둘 거리는 다리를 질질 끌다시피 하여 겨우 우거진 잡목사이로 몸을 숨겼다. 금방이라도 무서움에 혼절할 듯하였지만 가족들이 걱정스러워 도저히 그 자리를 뜰 수가 없었다.
어느덧 마을사람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마을공터로 죄다 모여든 듯싶었다. 제법 너르다싶었던 공터는 발 디딜 틈 없이 꽉 들어찼으며 인근마을사람들까지 합쳐 대략 오백 명이 넘는 숫자였다. 그네는 우거진 잡목사이에 숨어 마을사람들이 하나도 남김없이 몰살되는 장면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봤다. 젊다 못해 어린애처럼 보이는 앳된 장교가 서른 명 남짓의 부하들을 시켜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마을사람들을 모두 한 자리에 모아놓고 서로 이간질 시키는 것이 보였다.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불과 엊그제까지 그렇게 절친했던 이웃사람들끼리도 군인들이 들이 댄 총칼 앞에선 어쩔 수 없었던지 상대를 서로 빨갱이앞잡이로 몰고 가는 것이었다. 서로가 서로를 지명하고 그렇게 지명된 사람들은 한쪽으로 불려나가 마을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군인들에 의해 몽둥이로 맞아죽거나 죽창으로 찔려죽었다.
간단히 내지르는 몽둥이에 머리통이 깨어지거나 뼈마디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고통을 이기지 못해 질러대는 비명소리, 가슴이며 배며 허벅지며 마구 쑤셔대는 예리한 죽창에 선혈이 낭자하게 튀고 속절없이 찔려 죽으면서 내지르는 비명소리들로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 그리고 얼마 후엔 그 짓마저 심드렁해졌던지 마을사람들 가운데 그중 젊어 뵈는 남자들을 불러내더니 둘씩 짝을 지어 붙여놓고 각자의 손에 죽창을 거머쥐게 하여 서로를 찔러죽이게끔 부추겨댔다.
그렇게 인간 살육을 즐기는가 싶더니 오후 느지막한 시각이 되자 커다란 구덩이를 파게하고는 나머지 남아있던 노인이며 여자들이며 아이들까지 모두 한 구덩이 속으로 몰아넣고 한꺼번에 생매장을 시키는 것이었다. 흙을 덮으면서도 구덩이에서 빠져나오려는 사람의 머리를 삽으로 내리치고 괭이 등으로 마구 으깨는 것이 보였다.
군인들은 마을사람들이 모두 처결되자 땅바닥에 널브러져있는 시신들을 두어 곳에 쌓아놓고는 그 위에 마른 나무와 장작들로 덮은 뒤 기름을 끼얹고 불을 질렀다. 시커먼 연기가 하늘로 치솟으면서 시체 태우는 누린내가 풍겨왔다. 오백 명이 넘는 마을사람들을 몰살하는 데엔 불과 한나절로 족했다. 그런 과정에서도 저희들끼리 히죽거려가며 장난삼아 사람들을 죽이는 듯한 군인들의 모습은 마치 지옥에서 온 악귀나 다름없었다.
그네는 사지가 사시나무 떨리 듯 떨면서도 정신이 혼절할 듯 혼미한 가운데서도 군인들의 마을사람 살육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빠뜨리지 않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네 아버지나 어머니, 동생들 역시 처참하게 살육되는 장면 또한 숨죽이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 몇 안 되는 군인들에 의해 그 많은 마을사람들이 아무 저항도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죽임을 당하는 것이 어처구니없기도 했다. 이왕 죽을 거 떼거리로 대항이라도 하고 죽었더라면 그토록 억울하지는 않을 것이란 생각을 두고두고 했다.
원래부터 자신의 흉한 모습 때문에 사람들과의 대면을 극히 꺼려온 데다 무심코 처참한 살육의 현장을 근접하여 직접 눈으로 목격한 그네는 그 후로 사람을 더욱 두려워하게 되었다. 더군다나 마을사람들끼리도 이웃을 서로 죽일 듯이 몰고 가는 것을 목격한 이상 사람만큼은 절대로 믿을 바 못 된다 여겼으며 사람을 더욱 멀리하기위해 깊은 산중으로 자꾸 파고들었다.
그리고 혼기를 한참 넘긴 스물여덟이 넘도록 그 산중에서 홀로 살아왔던 것이다.
깊은 산중에서 나물 따위를 채취하다보면 온갖 짐승들과 맞닥뜨리게 되어있다. 늑대며 여우며 살쾡이며 멧돼지며 심지어 호랑이나 곰까지 만나다보면 모골이 송연할 정도로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그렇지만 그들 산짐승들은 이쪽에서 꼼짝 않고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아무 해도 입히지 않고 제 갈 길로 가버리는 것이다. 산중 생활에 이골이 난 그네는 어떤 산짐승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고 오히려 채취한 나물을 건네주러 가끔씩 들르는 마을 어귀에서 마주치게 되는 사람들이 더 두려웠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평상시와 마찬가지로 그네는 산나물을 채취하고 있었고 조금씩 자리를 바꿔가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근처에서 살쾡이 울음소리라기보다는 어쩜 어린아이울음소리에 가까운 애처로운 소리가 들려왔다. 그네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소리 나는 곳으로 조심스레 다가갔다.
길 잃은 어린산짐승이려니 생각했었는데 그곳에는 의외로 체격이 왜소한 남자 하나가 온몸이 이끼와 진흙으로 범벅이 된 채 쓰러져있는 것이었다. 그곳은 경사가 까마득하게 가파르고 습기 찬 곳으로 산을 잘 타는 그네로서도 기어오를 엄두를 못내는 곳이었다. 낌새로 보아 그 위쪽 벼랑에서 굴렀는지 심하게 다쳐 꼼짝을 못하고 바튼 신음소리만 내뱉고 있었다.
남자인데다 그것도 어른인지라 처음엔 두렵기만 하여 다가가기가 겁이 났다. 그러나 그대로 놔두면 필경 죽게 되리라는 것을 뻔히 알겠기에 차마 발길을 되돌릴 수 없어 그를 들쳐 업고 움막으로 데려와 온갖 정성을 다 기울여 치료를 해주었다.
그렇게 사나흘이 지났을까, 원기를 회복하고 나서 그가 들려주는 얘기는 ‘먹고 살기가 힘들고 약방에서 비싼 가격에 거래가 된다기에 딴에는 돈 벌 욕심에 아무런 경험도 없이 혼자서 산삼을 캐러 산중을 헤매다가 그런 사고를 당했다’는 것이다. 그네가 생각해도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말이었다. 그네가 거의 이십년 가까이 산나물을 캐어왔어도 산삼이라고 생긴 것은 구경조차 못했기 때문이다.
“댁은 지 생명에 은인이구먼요.”
“뭘요….”
“댁이 아니었슴 지는 버얼써 즘승 뱁이 되었을 낀데. 그 은핼 어찌 갚아야 쓸지….”
“괴얀아요, 은해는 먼 은해라구….”
그리고 그네의 처지를 대충 파악한 그는 가진 게 불알 두 쪽뿐인 40대의 늙다리 총각 박철규라 자신을 밝히고 ‘험한 산중에서 여자 혼자 어찌 살 수 있겠느냐’며 ‘자기와 내려가 함께 살자’고 떼를 쓰기 시작하였다.
“지가 몸은 약해 뵈지만 이래 뵈도 중핵교는 나왔는디요. 뭘 해도 묵고는 살 수 있겠는디요.”
처음 그네의 얼굴을 봤을 땐, 그 험악해 뵈는 입 주변모습에 만 가지 정이 다 떨어졌다. 두 개의 콧구멍으로 가지런해야할 자리에 검은 털이 숭숭 박혀있는 하나의 일그러진 큰 구멍이 퀭하니 뚫려있고 윗입술이 뜯겨져 나간 듯 벌겋게 벌어진 사이로 석류 알처럼 치열이 들쭉날쭉하고 거무튀튀한 치석이 덕지덕지 붙은 이빨들이 드러나 있어 보기에 여간 흉한 모습이 아니었다.
그러나 보면 볼수록 그네의 반듯한 이마며 서글서글한 눈매에 이끌리게 되었고 점차 한껏 무르익은 그네의 몸매에 매료되어갔다. 특히 남루하다 못해 헐벗은 차림새라 부지중 그네는 허벅지까지 훤히 드러내고 있었는데 비록 때에 절고 상처투성이지만 허벅지와 종아리로 이어지는 두 다리는 군살 하나 없이 마냥 매끄럽게 뻗어있어 그렇듯 예쁜 여자다리를 처음 본 그는 그네의 다리를 유난히 탐냈다.
그는 어렸을 때 소아마비를 앓은 이래 한쪽 다리가 기형적으로 변형되면서 다리를 절게 되었다. 그 때문에 어려서부터 아이들의 놀림을 받게 되고 커서도 숱한 농락을 당하면서 살아왔다. 그보다 그 자신을 괴롭혀왔던 것은 제멋대로 뒤틀린 두 다리로 인한 심한 열등의식이었다. 따라서 그가 조급증이 날만큼 그네의 건강하고 가지런한 두 다리를 욕심내는 것은 그가 지니지 못한 것에 대한 대리욕구를 충족하고자 함일 것이다.
“이런 숭한 얼굴로 어떠케….”
처음엔 그의 제안이 믿어지지도 않았지만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을 만큼 두렵고 내키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 역시 그 홀로는 산을 내려가지 않겠다며 몇날 며칠 끈덕지게 보채다시피하여 그네로서도 마음이 자꾸 흔들렸다.
그네 역시 어려서부터 지겹도록 겪어온 외로움이 더 이상 싫어진데다 과년한 여자로서 은연중에 남자의 정분을 목말라하던 터라 나중엔 그가 은근히 좋아졌던 것이다. 게다가 다리를 유난히 절며 약골로 보이지만 의외로 순박하고 선량한 그에게 모처럼 안도감을 느꼈기에 결국 그를 따라나섰던 것이다.
박 씨와 그렇게 인연이 되어 함양 석복이란 그 또한 외진 산골로 그를 쫓아온 것이 스물여섯 해 전인 1954년 늦가을쯤 되었을 때이고 그 이듬해인 1955년9월 중순에 아들 승환이를 낳았다. 여전히 땅 한 뙈기 없는 살림살이라 궁핍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남의 집 품앗이에 억척같이 나선 그네 때문에 겨우 입에 풀칠하며 살았지만 그래도 곁에 박 씨가 있고 아들까지 품안에 있어 그런대로 살만하다 여겼었다.
그런데 불편한 몸인데도 진득하지 못한 것이 박 씨의 성격이었다. 어쩌다 얻어걸리는 날품일 외에는 벽촌에서 특별한 소일거리가 없던 그는 무료함을 견디지 못하고 이웃마을을 드나들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함양읍내까지 출입이 잦아졌다. 그러다 어느 날인가 가뜩이나 어수룩하고 귀가 여린 박 씨는 남의 말에 솔깃하여 대처로 나가면 큰돈을 벌 것이라며 이집 저집 안면 있는 집들마다 닥치는 대로 얼마씩 빚을 얻어가지고는 어느 날 갑자기 어디로 간다는 말도 없이 훌쩍 떠났다.
그리고 그 후론 아무런 연락도 없다가 거의 몇 년 만에 상 거지꼴로 다시 나타났는데 그때 패혈증이라든가 문둥병이라든가 하여튼 병변과 치료방법을 알 수 없는 무슨 몹쓸 병을 얻어왔던지 온몸이 피고름 범벅되어 시름시름 앓다가는 그 다음해를 못 넘기고 어이없게 죽어버렸다.
이제껏 승환이를 홀로 키워오면서 동냥 반 날품 반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그네가 겪은 고통은 일일이 풀어놓을 수 없을 만큼 참으로 고단한 것이었다. 그래도 승환이가 아무 탈 없이 무럭무럭 잘 자라주었으며 제 또래에 비해 허우대가 헌칠하고 이목구비도 또렷했다. 그러나 그네는 워낙 무지한데다 살림 또한 궁핍하여 자식을 학교에 보낼 엄두를 내지 못했다. 또래에 비해 2년이나 늦게 그것도 마을이장의 성화에 못 이겨 승환이를 국민학교에 겨우 입학시킬 수 있었다.
승환이는 여느 시골 애들보다 신수가 훤하고 귀티가 흘러 또래 무리 중에서는 단연 돋보였다. 따라서 거창댁은 처음 한동안 승환이 손을 잡고 거리로 십리가 족히 넘는 학교까지 바래다주고 데려오는 것을 큰 낙으로 삼았다. 오가며 만나는 사람들마다 흘끗 쳐다보는 눈빛마저 다 잘난 자식 놈 때문이란 생각에 우쭐하는 마음도 들었다.
그네가 지레 자식 놈 흉 잡힐까하여 한 손으로 자신의 코와 입을 아무리 조심스럽게 가리고 다녔다지만 그네가 심한 언청이란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 알 사람은 다 알게 되었다. 따라서 아이들 사이에 그네에 대한 이상한 소문들이 증폭되어 갔다.
“어매여, 애덜이 자꾸 머라쿤다. 이제부텀 핵교는 절대 오지 마요. 어매가 핵교 오면 내 핵교 안 갈 끼다.”
“뭐라케쌓노? 얼라들이 느거 어매 핵교 드나든다꼬 막 놀려대든가?”
“어매를 마구 할망구라 카고…, 또 얼라들 간을 빼 묵는다 카고….”
“참 씨잘 데 엄는 소리덜 해 쌌네. 그람, 니도 니 어매가 그리 숭해 보이드나?”
“우야튼 실탄 말이다. 어매 핵교 오는 거 실여.”
“옹냐, 알긋다. 니가 정 실타 카면 어매 핵교엔 두 번 다신 얼찐 안 할 텐께. 대신 공부나 열씨미 하그라. 그람 되것제?”
승환이는 그로부터 고등학교 입학할 즈음까지는 별 말썽이 없이 공부에도 열의를 보였으며 매사 행동거지도 반듯하고 어른들께 고분고분하였다. 그런데 얼마 후부턴가 불량스런 아이들과 어울려 다니기 시작하면서 공부는 뒷전이고 노상 싸움질에다 말썽만 일으키니 기어코 학교선생들뿐만 아니라 걸핏하면 잡혀 들어가기를 반복했던 파출소의 순경들 사이에서도 구제불능의 골통취급을 당하기 시작했다.
아들의 빗나감을 의식한 것은 그가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을 맞고 얼마 후인 1974년8월 초로 어떤 낯선 사람과 파출소 순경 둘이 그네의 집을 찾아오면서부터였다.
순경을 대동한 낯선 사람이 자신을 가리켜 승환이 담임선생이란 소리에 그네는 까닭모를 두려움에 몸부터 떨었다. 무슨 큰 사고라도 저질렀는가 싶어 눈앞이 아찔했으나 간신히 그들을 마당가의 평상에 앉히고는 서둘러 찬물에 미수가루를 타서 날랐다.
“승환이 안즉 안 들어 왔습니꺼?”
“아침에 나간 뒤론 여직…. 근디 승환이 한티 뭔 일이라도….”
정복차림의 순경 하나가 그네의 말을 자르고 끼어들었다.
“그 짜슥이 읍내 정순돌외과의원 원장 아들네미 정병학이를 뚜드려 패 엉망으로 만들어놨다지 뭡니까.”
“뭐라꼬예?”
그네는 갑자기 심한 현기증이 일어 휘청거리는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그 자리에 엉덩방아를 찧다시피 주저앉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순경의 말이 마치 꿈결에 날파리가 귀청을 왱왱거리며 후비는 소리처럼 들려왔다.
“뚜드려 패기만 했다면야 까짓 뭐가 큰 문제가 되것습니꺼. 얼라들이 쌈박질하믄서 클 수도 있것거니 하긋지만… 한쪽 볼텡이를 칼로 마구 그어 놨다 아입니까. 요눔의 시끼 어디로 내뺀 거 아니여?”
그네는 주변의 사물들이 심하게 요동치고 빠르게 빙빙 도는 듯한 어지럼증이 좀처럼 멎지 않아 자리에서 일어날 수조차 없었다. 호흡이 가빠지고 얼굴의 핏기마저 사라져 창백해졌으며 이마에는 어느새 식은땀이 송송 배어났다. 도무지 그네로서는 믿기지 않는 말이었다.
담임선생은 말끝마다 욕을 내뱉는 순경에게 눈치를 주면서 그네에게 다가가 그네를 부축하여 일으켜 세웠다.
“아니, 즈이 승환이가 남에 얼굴에 칼을 댔더란 말인교? 하이고 이를 어쩐다냐…. 선상님요. 우리 승환이 어쩐다지요?”
“예, 얼굴이 찢겨져 서른 방 넘게 꼬맸다 캅디더. 승환 어무이요, 너무 걱정은 마이소. 일단 승환이랑 영석이를 찾아서 자세한 얘기를 들어봐야겠고, 또 지도 일이 잘 해결되도록 노력할 테니 잽혀가는 일은 없을 낍니더.”
“잽혀가다니요? 그럼 잘 몬 되면 잽혀갈 수도 있다 그런 말잉교?”
다음날 함양경찰서에 잡혀 들어간 아들 승환이를 구제하기 위해 물론 피해학생이라는 정병학이 부모를 포함하여 이 사람 저 사람 찾아다니며 손발이 닳도록 빌고 또 비는 등 그네가 치룬 심적 고통은 이루 말할 나위가 없었다.
그런 일 외에도 승환이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숱한 말썽을 일으켜 그네의 마음을 늘 졸이게 하여 한시라도 편치 않았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여느 공장에라도 취직하여 제 몫을 하게 되면 나아질 것이란 기대 때문에 그저 몸이 부셔져라 악착같이 일한 때문인지 그는 간신히 고등학교까지는 마칠 수 있었다.
그리고 승환이는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두어 달 후엔가 제 수단껏 친구들과 어울려 이웃마을의 국수를 만든다는 새마을공장에 취직하여 한동안은 공장 일에 착실하였으니 별 말썽을 피우지 않는 것으로 보아 어느덧 마음을 잡은 듯도 보였다. 월급도 꼬박꼬박 타서 그네에게 가져다주었고 장대한 기골만큼이나 몸에 살도 붙어 한결 어른스레 여겨졌다.
그렇게 사 년여가 훌쩍 지나갔고 한동안은 살림살이도 펴나가는 듯하여 그네의 가슴에도 모처럼 사람 사는 듯한 뿌듯한 충만감에 젖어들었다. 무시로 껄렁한 친구들이 드나들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모두들 별다른 사고를 내지 않고 지내기에 제 앞가림을 할 만한 어른이 되었으니 철도 들었으려니 여겼었다.
(200자원고지 83매 분량)
- 제2회에서 계속 이어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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