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기차에서 좀 잤지만, 피곤하다)
안데스로 가기로 결정 난 이후 처음 우리 팀끼리 모였다. 앞으로 팀별로 훈련을 하며, 최종적으로 한번 단체 훈련이 있다.
1차 모임은 대장님이 계신 충주에서 한다. 토요일 오후 4시까지 충주역으로 집합한다. 처음 가는 충주...... 충청도는 예전에 속리산으로 수학여행 다녀온 이후 두번째이다. 하지만 충주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이기에 과연 어떤 곳일지 자못 기대가 되었다.
교통편을 알아보니 한번에 가는 것이 없다. 그래서 대전까지 버스로 간 후, 대전역으로 가서 충주역으로 가기로 했다. (광주에서 청주까지 가서 버스를 갈아타도 괜찮다.) 장원이형과의 에피소드가 있은 후 광천터미널로 가서, 11시 20분에 출발하는 대전행 버스표를 샀다. 토요일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꽤 많았고, 군대로 복귀하는 군인들도 여럿 보였다. 광주연맹의 다른 팀 사람들을 혹시 만날까 기대해보았지만 나처럼 배낭을 진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대전은 작년에 계룡산 등산하러 한 번 가본 적이 있다. 버스에서 원정 보고서를 읽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휴게소에 한번 들른 후 생각보다 훨씬 많은 2시간 45분이나 걸려서 대전터미널에 도착했다. 그래서 4시 집결시간을 맞추기가 빠듯할 것 같다. 마음이 급해졌다. 결국 버스를 타고 충주로 이동하기로 하였다. 충주터미널에서 역까지 택시로 가기로 한 채. 점심은 먹지 못한 채, 사과쪼가리로 대충 때웠다. 충주행 버스를 타려고 플랫폼으로 가는데,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경남연맹 출신의 다른 팀 대원이었다. 짤막하게 인사를 한 후, 다음 전체 훈련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우리 팀 다른 대원들도 지금 충주를 향해 오고 있겠지......
산악회라서 여러 곳을 돌아다니다 보니, 여러 고속버스를 이용하게 된다. 광주에서 대전은 중부 고속, 대전에서 충주는 서울고속이었다. 서울고속은 처음 타보았는데, 겉보기에는 후줄근해 보였지만, 좌석이 넓고 안락해서 '움직이는 휴게실'이라는 좌석커버에 쓰여진 말이 무색하지 않았다.
배가 고파왔다. 옆에 앉은 아저씨와 사과를 나눠 먹으려고 쪼개려고 했는데, 수 차례의 시도 끝에 사과에 흠만 내고 결국은 쪼개지 못해서 나도 그냥 안 먹어버렸다. 가는 동안 내내 집결시간을 지킬 수 있을 것인가 생각을 해보았다. 1시간 40분이 걸린다는데 계산대로라면 3시 50분 경에 터미널에 도착한다. 그래서 터미널에서 택시로 이동할 계획이므로 역까지의 거리가 관건이다.
하필이면 셀폰도 깜박 잊고 놔두고 와서 대장님께 늦는다는 연락도 못하겠다. 빌려서라도 전화를 할까 했는데, 전화번호도 셀폰에 저장되어 있어 모르기에 그냥 관뒀다. '에라 잘 되겠지.'
어제 세시간 정도밖에 못 자서 버스에서 계속 졸았다. 아니 걱정과 잠을 반복했다.
시간은 3시 50분을 넘어섰는데, 아직 도착하지 못했다. 하지만 거의 다 온 것 같다. 결국 54분에 도착했다. 허겁지겁 택시를 잡아타고, 역으로 이동했는데, 1,500원밖에 안나올 정도로 가깝다. 버스로는 한 정거장이다. 역 안으로 뛰어 들어서는데, 이런! 아무도 없잖아. '장소나 시간을 잘못 알았나?' 이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어쨌든 대장님께 연락을 드려야 한다. 민호의 도움으로 연락처를 알아내 전화 드리니 지금은 터미널에 계시고 역에서 기다리라신다. 준비 못한 간식을 사고 헤드를 다시 꾸리고 있으려니 환세형과 지호형이 오시고, 대장님, 세창이형, 마초 형, 지도위원님이 차례로 오신다. 한알이는 졸다가 역을 지나쳐서 제천에서 버스 타고 온다고 한다. 비나는 수업이 늦게 끝나 6시경에 온다고 하며, 남혁이도 6시경에 온다고 한다. 성관이형도 오기로 했다.
다들 점심을 못 먹어서 애들 오는 동안 갈치조림, 청국장에 공기를 비웠다. 가볍게 소주를 곁들인채. 역 앞이라 대충 나올 줄 알았는데, 굉장히 맛있어서 놀랬다.
비나와 남혁이가 와서, 차 두 대에 나눠 타고 아홉사리 산장으로 출발했다. 충청도는 높지는 않지만 산이 많은 곳이었다. 도로 양쪽으로 수림이 울창한 산들이 멋진 풍경을 자아냈다.
산장은 수안보온천 근처에 있었다. TV에서나 봄직한 운치 있게 지어진 건물이었다. 손수 지은 흔적이 더욱 멋을 더했다. 가금분교의 김영식 선배님 소유라는데, mountain 5월호에서 그분의 기사를 읽은 기억이 있다. 학교에 인공암벽을 설치할 예정이며, 학생들을 데리고 해외원정도 계획중이라는 기사였다. 그 글을 읽으며, 2차 단체 훈련 때, 함께 상무지구 등반대회에 참가한 석희가 선생님의 지도학생이라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그렇구나∼
앞마당에 텐트 3동을 치고, 저녁을 안 먹은 한알, 비나, 남혁이가 라면을 먹는 동안 나머지는 탁자에 앉아 이야기를 했다. 잠시 후, 산장 안에서 옹기종기 모여 앉아, 등반대원, 탐사일정, 앞으로의 훈련 계획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다. 경남의 장민경이는 사정이 생겨 함께 등반하지 못할 것 같다. 같이 가게 되면 유일한 동기인데 아쉽다.
대장님은 개인적인 체력 훈련을 강조하셨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체력이 관건일 것 같다. 광주에서 모임 할 때까지는 꾸준히 체력 훈련했는데, 그 후로 시험을 보면서 운동을 안 했다. 나태해진 스스로를 반성하며, 다시 훈련할 마음가짐을 다졌다. 못다 한 얘기는 대장님이 준비하신 고기를 구워 먹으며 하기로 했다. 번개탄에다가 고기를 굽는데, 이렇게 먹기는 또 처음이다. 번개탄 덕분인지, 고기 자체가 그런 건지 굉장히 맛있었다. 소주잔이 돌아가니 금방 친해지는 기분이다. 역시 술은 사람을 가깝게 만든다. 세창이 형은 식량을 담당하는데, 그곳에서도 계속 먹을 것을 준비해서 직분에 충실한 모습을 보였다. 본받을 점이라고 생각한다.
복인규 지도위원으로부터 Whitney 다녀오신 얘기도 듣고, 다른 대원들과 이야기도 하고, 충북연맹 분들도 뵙고, 노래도 부르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 보니 시간이 많이 흘렀다. 2시경에 정리하고 얼큰히 취한 몸을 침낭에 묻었다.
이튿날, 6시 기상인데, 시간이 못되어서 다들 일어났다. 나는 피곤한데......
깨워서 일어나니, 아직도 통풍 증상이 남아있다. 머리는 아프지 않다. 어제 술을 조금 과하게 먹은 것 같다. 다른 대원들은 몸이 다들 괜찮은 것 같다. 해는 이미 떠서 훤하였지만, 주변에 안개가 자욱하다.
간단한 몸풀기 후 여대원들을 앞세우고 2열로 아침 구보를 하였다. 내려가는 길은 수월했지만, 올라올 때는 조금 힘들어하는 대원이 있었다. 특히 비나는 힘들 때마다 '아∼'하고 소리를 내고 멈추곤 했다. 우리가 잘 때 몰래 소주를 깠는가 보다.(^.^) 힘들어 못 가겠다는 의사표시도 귀엽게 했다. 비나와는 6살 차이인데(어느새 세월이 이렇게), 형들이 보면 얼마나 더 귀여울까.
올라와서 맛있는 콩나물국에 아침식사를 하고, 텐트를 걷고, 다시 패킹해서 출발준비 하였다.
오늘은 충주 남산으로 간다. 중부매일 신문이 후원하는 시민 남산 오르기 연례행사에 참여하는 것이다. 남들은 맨몸이지만 우린 배낭을 매고 간다. 636m의 산이라고 한다. 입구에서 바나나, 우유, 초코파이, 게토레이, 포카리스웨트, 부채를 나눠주었다. 공짜니까 좋았다. 남으면 이따가 집에 갈 때 먹으려고 막 챙겼다.
등산로는 잘 정비되어 있고, 길 양쪽으로는 5월답게 산림이 울울창창하다. 경사도가 심해서 힘들지만 땀도 쫙 빼고,(형들은 땀이 아니라 술이라 한다) 기분이 마치 좋다. 정상을 한 500m 정도 남기고부터는 길이 오르락내리락 해서 한결 수월하다. 얼마나 올랐을까. 남산 정상의 충주산성이다. 경품추첨권을 넣고서 기념촬영 한번 한 후 다른 길로 내려왔다.
내려올 때는 엄마와 같이 온 7살, 9살짜리 애들하고 같이 이야기하면서 몸도 마음도 즐겁게 내려왔다. 옆에 가짜 무전기 찬 반바지 차림의 꼬마 여자애한테 노래하면 내려가서 아이스크림 사준다고 꼬였는데, 결국 안 넘어갔다. 흔치 않은 기회라고 했지만...... 아이스크림 정도는 엄마도 사줄 수 있다는 것인지...... 덕분에 재미있게 내려왔다.
꼬불꼬불 돌아가는 임도를 지나치며 밑으로 내려오니 시끄러운 음악소리가 들려 거의 다 내려온 것을 알았다. 하산한 코스는 더욱 멋진 곳 같았다. 내려가니 대장님이 계신다. 우유로 다같이 '짠!'하고, 매트리스를 깔고 김밥으로 점심식사를 했다. 옆에 무대에서는 남산 등산 행사와 함께 바이오 엑스포 홍보 행사가 진행중이다.
점심 먹고 이야기 하다가 경품 추첨을 했는데, 손목 시계 하나를 탔다. 쌀이 나왔으면 우리 팀 전체에 도움이 될 수 있는데......
어느 덧, 해산시간이다. 나와 세창이형, 성관이형, 남혁이는 인공암벽에 붙기로 하였으며, 나머지는 고향으로 돌아간다. 충주까지 왔는데, 암장도 구경하고, 좀더 지내다가 가고 싶어서이다. 대원들과 작별 인사를 하고, 강진 출신 선배님의 차로 전국체전을 치루었다는 경기장으로 왔다. 그런데 환세형은 부산으로 안 가고, 우리와 함께 하기로 했다. 대장님이 소속한 산악회 사무실 앞에, 사면이 등반 가능한 인공암벽이 서있었다. 세창이형의 리딩으로 자일을 깔고, 남혁이, 성관이형이 차례로 오른다. 나도 붙었는데, 아이고 힘 딸려서 못하겠다. 아까 남산 등산할 때만해도 몸이 좋았는데, 지금은 별로다. 그래서 올라가다가 하강하였다. 홀더는 촘촘해서 아무거나 잡고 올라가면 되는데......평소에 암벽 좀 꾸준히 해야겠다.
세창이형과, 남혁이, 환세형은 오른쪽 직벽과 삼각형을 했다. 남혁이가 가져온 장비가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자일 한 동과, 벨트 한 개, 하강기 하나와 카라비너 2개, 퀵드로우 6개 그리고 암벽화. 배낭이 많이 남아서 챙겨왔다는데, 이렇게 유용하게 쓰일 줄이야.
나는 등반하는 거 구경하고 확보도 봐주고 하면서 재밌게 보냈다. 벨트가 없어 허리에 슬링을 감거나, 퀵드로우를 감아서 확보를 보았는데, 이게 재미있었다.
치킨을 먹기로 하였기에 4시경에 짐 정리를 하고, 이동했다.
역 근처에서 먹었으면 좋겠는데, 암장에서 가까운 아무 곳이나 가려나 보다.
치킨집을 찾아가는데 시장통에도 없고, 시내를 가로질러 가도 없다. 중간에 하나 발견했는데, 점포임대라고 쓰여져 있었다. 한 20분쯤 걸었을까. 치킨호프라고 커다란 간판을 내건 집이 눈에 확 들어왔다. 모두들 반가운 마음에 배낭을 부리고, 시키려는데 닭은 안 된단다. 이유인즉슨 날이 더워서 닭이 안 나온다나. 참 허탈했다. 응당 닭은 될 줄 알고, 혹시나 호프가 안 될까봐 들어가면서 "호프 되죠?"하고 물어봤는데, 설마 닭이 안 될 줄이야. 빨간 양념치킨을 먹고 싶었는데 말이야......
어쩔 수 없이 다시 배낭을 지고 걷는다. 이제는 닭 먹는 것을 포기했다. 그냥 세창이형 말대로 국방에 소주나 해도 좋다. 기차시간 늦지 않게 뭐나 먹었으면 좋겠다. 이제는 역으로 이동해서, 먹기로 하였다. 버스를 타고 가는데, 가는 길에 '네오치킨'이 보인다. 결국 역으로 가서 표를 끊고, 114로 전화번호를 알아내서 역으로 배달시켰다. 배낭을 부리고 우리 영역임을 표시한 후, 매트리스를 깔고 쉬기도 하고, 보고서도 읽으면서 시간을 보내니, 아줌마가 "통닭 시키셨죠?" 하시며 반가운 봉지를 들고 다가온다.
pet병에 담아진 맥주를 따르고 건배에 맞춰 한 잔 들이키니, "캬∼"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게다가 빨간 양념통닭은 왜 이리 맛있노. 남혁이 말대로 이런 재미가 있어 산에 다니는거 아니겠어?
출발 시간이 10분 정도 남았을 때, 충주대와 세명대 산악회 형들이 역으로 오셨다. 시간은 많이 남지 않았지만, 산악회 사람들이 만났는데, 어찌 그냥 갈 수 있겠어? 어디선가 나온 누룽지 술을 나눠 마시고 바로 출발했다. 7%짜리 술이라서 그런지 전혀 거부감이 없어 좋았다. 산악회를 하면서 여러 지역 구경하는 것도 좋은데, 각양각색의 술도 골고루 마셔보니 금상첨화다. 다음에 충주가면 몇 병 사와야지.
이제 가는 일만 남았다. 어제 지호 형 기다리면서 바라본 풀들과 어우러진 기찻길 모습이 아름다워서 가능하면 기차를 타고 가고 싶었는데, 드디어......
충주에서 광주까지 한 번에 가는 기차라서 마음이 더 편하다. 환세형이랑, 남혁이는 조치원까지 같이 타고 가서 갈아탄다고 한다. 같은 칸에 탔는데 나만 좌석이 떨어져있다. 내 짝은 누구일까 궁금해 하며 좌석을 찾아가는데, 아버지뻘 됨직한 아저씨가 앉아 계신다. 혹시나 하고 품었던 희망을 배낭과 함께 떨구고 자리에 앉았다. 차창 밖의 풍경을 보고 있노라니, 아저씨가 말을 먼저 걸어오신다. "산에 갔다오니?" "네."로 시작한 대화는 약 2시간동안 계속되었다. 알고 보니 그분도 나처럼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시는 분이었다. 중학교 때 교훈 집에서 읽은 '경험은 인생의 스승'이라는 말이 가슴 깊게 다가와서 지금까지 많이 돌아다니신 것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인 5월에 장발차림으로 광주에서 서울까지 고속도로 타고 걸어가기로 계획하고 출발했는데, 고속도로는 못 걸어가게 통제하기에 철길을 따라 걷기로 하고, 걷다가 도중 어느 역에서 간첩으로 몰려 경찰조사 받은 일, 그리고 올라가면서 모내기를 도와주면서 식사를 해결하기로 했지만 한 번도 못 얻어먹고 비상금으로 가끔씩 라면 사먹은 일. 또 인천에서 몇 개월 고기잡이배 타려고 친구들이랑 기차 타고 인천 갔는데 막상 가니 일자리가 없어, 있는 돈은 기차에서 다 술 사 먹어버려서 결국 흩어진 후 각자 광주까지 오기로 하고 당신은 몰래 무임승차하고 내려오다가 결국 정읍에서 공안에게 덜미를 잡혀 열차에서 쫒긴 일 등등......젊은 시절 얘기를 듣고 있노라니 옆에 예쁜 아가씨가 앉은 것보다 훨씬 좋았다. 얘기 중에는 목이 마를까봐 캔 맥주도 사주시고, 피곤할까봐 잠자라고 배려도 해주시고, 광주역에 도착해 배낭을 매고 기차에서 내리는데 가방이 걸려서 힘들어하자 도와주시기도 하는 등 참 좋은 아저씨였다. 서로 말동무하면서 장거리 여행을 즐겁게 수놓을 수 있는 것. 여행이 가진 매력이 아닐까.
이제 또 작별의 시간. 아버지가 마중 나오시기로 해서 그분께 제대로 마지막 작별인사도 드리지 못한 것이 계속 후회가 된다. 다음에 또다시 뵙게 된다면 정말 좋을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