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새재에서 표범 목격담
나는 등산학교를 나오고 등산학교에서 강의도 한 적이 있는 등산가이기도 하며, 시를 쓰는 시인이기도 하다.
산을 좋아해서 암벽 등반도 하고 수시로 산행을 즐긴다.
그래서 시인으로서 시 창작반을 운영하다 보니, 시를 자주 외우게 된다.
올해도 문경새재에서는 ‘시조 100편 암송대회’가 열려 성황을 이루었다.
그래서 지도 차원에서 내가 직접 시조 100편을 외워 보기로 하고, 조용히 산행도 즐길 겸 야간에 문경새재를 오르내리며 시조를 외우기 시작했다.
1주일에 2~3일씩은 새재로 갔다.
청정지역이기도 하지만 내가 사는 곳이고 밤이면 반딧불이와 맑은 물소리와 폭포가 나를 늘 유혹했다.
2017년 9월 22일.
이날도 나는 배낭에 보온병에 물을 끓여 넣고 컵라면과 과자와 과일 몇 개와 커피를 넣고 시집을 걸으면서 읽기 좋게 머리에 쓰는 랜턴을 준비하고 혹 비상시를 대비하여 손전등으로 줌이 되는 플래시를 하나 더 준비했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새재를 향한 시각이 오후 6시 7분이었다.
나는 산행을 할 때 출발 시각과 도착 시각을 꼭 기억해 둔다. 다음 산행에 참고하고 돌아올 시각을 계산하기 위해서다.
시집을 읽으며 올라가다가 구절초 사진도 찍어 지인에게 전송하고 ‘원터’를 지나고 주막을 지나고 하니 점점 어두워져서 랜턴을 켜고 시집을 읽기 시작했다.
제2관문인 ‘조곡관’에 도착하여 약수터 옆 평상에 배낭을 내려놓은 시각이 오후 6시 57분이었다.
랜턴을 켠 채로 컵라면에 물을 붓고 과자를 먹으면서 주변을 살피니, 적막 그 자체였다.
가끔 밤에도 등산하는 사람을 만나는데 오늘따라 한 사람도 만날 수가 없었다.
천천히 컵라면을 먹었다.
쓰레기를 모아 검은 비닐봉지에 담았다. 조그만 휴지 한 장, 과일 껍질 하나도 버리지 않는 것이 등산가의 철칙이다.
그리고 머리에 랜턴을 켜고 배낭을 메고 시집을 들고 조곡관을 출발한 시각이 오후 7시 15분경이었다.
머리 고정 랜턴을 출발하기 전에 건전지 교체를 하였기에 불이 참 밝았다.
랜턴으로 시집을 보고 외우고는 이리저리 주변을 비추면서 걸었다. 입으로는 쉴 사이 없이 시를 중얼거리면서.
내려오면서 반딧불이를 2번 정도 보았다.
교귀정을 지나고 주막을 지나고 한참을 오다가 보니, 오른편에 갑자기 푸른 불빛 2개가 커다랗게 비쳤다.
처음에는 반딧불인가 했는데, 반딧불이 치고는 너무 크고 밝았다.
순간 짐승이구나. 생각이 들었다.
두 눈의 간격이 족히 한 뼘이 넘는 것으로 보아 직감적으로 큰 짐승임을 알았다.
거리는 불과 20여m. 두 불빛은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나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머리의 랜턴으로는 푸른 두 눈만 또렷이 보일 뿐 형체를 알 수 없어 비상용으로 가지고 다니던 플래시를 주머니에서 꺼내 켰다. 줌이 되는 플래시라 족히 100m는 형체를 또렷이 볼 수 있는 플래시다.
순간 눈에 들어오는 쫑긋 솟은 두 귀, 검고 누런 얼룩무늬, 사람 머리만 한 대가리가 보였다.
나는 얼어붙었다.
새재에 이렇게 큰 짐승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어 본 적 없는 나는 궁금증을 더했다.
몇 발짝 더 다가가다 무서워서 플래시를 그놈의 눈에 고정한 채 조용히 쪼그려 앉아 돌을 집어 들었다.
이날 따라 시집을 읽는다고 스틱도 가져오지 않았고, 손에는 나를 방어할 그 무엇도 없었다.
약 1~2분 정도 우리는 그렇게 대치했다.
더는 내가 버틸 수 없었다.
그러나 등을 보이고 뛴다면 더 위험할 수 있기에 나는 머리의 랜턴과 손전등을 놈의 눈에 고정한 채 뒷걸음을 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을 걸은 후에 그때야 나는 바로 걸으면서 계속 뒤쪽을 확인하며 걸었다.
굉장히 긴 시간이었다. '원터'쯤 와서야 안심이 되기 시작했다.
촬영장쯤 오니, 젊은 연인 둘이서 불을 들고 올라오고 있었다. 더는 올라가지 말라고 일러주고 제1관문이 지나고 나서야 나는 이 사실을 지인에게 문자로 전송했다. 그 시각이 8시 1분경이었다.
아쉬운 것은 사진을 찍지 못했다는 것이다. 밤이라 찍기도 불가능했겠지만, 스마트폰을 켜면 내가 눈이 부셔 그놈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밤새도록 혼란스러웠다. 국내에서는 호랑이나 표범이 사라진 지 오래되었다는데 내가 본 것은 분명 표범이었다.
위로 솟은 두 귀, 불빛이 이글거리는 푸른 눈빛, 얼룩 무늬, 둥근 대가리, 그리고 큰 덩치.
표범이 아닌 다른 짐승을 떠올릴 수 없었다.
하지만 사진도 없고 혼자 보았기에 누가 믿어주겠는가?
그래서 지인들과 이야기 하는 과정에서 몇 년 전에도 목격자가 있었고 고라니와 노루가 맹수에게 물어뜯긴 사체와 맹수에게 쫓기다 추락한 흔적이 있어 조사한 적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같은 문경인 산북에서도 몇 차례 표범을 보았다는 목격담이 전해져서 문경시에서도 큰 관심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지리산에서도 표범을 보았다는 목격담과 여러 가지 사실들이 국내에 표범이 존재하고 있을 가능성을 내비치고 있다.
밤에는 인적도 없고 수렵도 금지되고 야생동물의 천국이 된 문경새재에서 고라니 세 마리가 맹수에게 쫓기다 절벽에서 떨어져 죽은 듯한 형상으로 발견되고 노루 한 마리는 물어뜯긴 채 발견되는 등 문경새재에서 맹수의 존재 가능성은 쉴 사이 없이 제기되고 있다.
이런 사례들이 모여져서 확실한 표범의 존재여부를 판단하는데 도움이 될까 하여 기록으로 남겨두고자 이 글을 작성한다.
황봉학 시인. bong6600@hanmail.net
첫댓글 와우 대단하십니다 용감하셨습니다 침착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