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11월 열린 '서울 G20 비즈니스 서밋'에 보험업계 CEO로는 유일하게
금융분야 한국대표로 참여한 점에서도 보험업계에서 그가 차지하는 위상을 엿볼 수 있다.
신 회장은
의대 교수에서 경영자로 변신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신용호 교보생명 창립자의 장남으로 경기고와 서울대 의대를 나와 서울대 의과대학 교수를
지냈다.
서울대 의대교수로 재직하던 1993년 공익재단인 대산문화재단 이사장을 맡았고, 1996년 교보생명 이사회 부회장으로
경영의 첫 발을 내디뎠다. 2000년 5월 대표이사 회장에
취임하면서 경영일선에 나선 이래 12년째 교보생명을 이끌고 있다.
IMF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두 번의 험난한 파고 속에서도 교보생명의
성장을 주도함으로써 100년 장수기업의 토대를 탄탄히 다졌다는 평이다. 지난 해 5월 세계적인 경제매거진
포브스(Forbes)지 글로벌판에서는 '경영인이 되길 꺼렸던 경영인(The Reluctant Executive)'라는 제목으로 신회장의
경영혁신 노력과 경영성과를 커버스토리로 상세하게 다뤘다.
포브스는 한 번도 경영인을 꿈꿔보지
않았던 의사 출신이지만 한국에서 두 번째로 큰
보험사인 교보생명을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다고 평가했다.
신 회장 취임 당시 교보생명은 IMF
외환위기로 큰 시련에 직면해 있었다. 거래하던 대기업이 연쇄 도산하면서 2조4,000억원에 달하는 막대한 손실을 입게 된 것. 2000년엔 무려
2,540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생존을 걱정할 만큼 큰 위기였다. 이 시기에 경영일선에 나선 신 회장은 위기를 정면돌파하기 위해 대대적인
경영혁신에 착수했다.
신 회장은 잘못된 영업관행을 뜯어고치고 경영효율, 생산성 향상에 주력했다. 또한 모든 임직원들이 참여한
가운데 '국내시장에서 타깃고객이 가장 선호하는 회사'라는 새로운 비전을 수립하고 회사의 모든 조직과 전략, 규정, 제도, 업무프로세스를 비전에
맞게 바꿔나갔다.
아울러 임직원들과 부단히
커뮤니케이션하며, 일하는 방식을 바꾸고 고객중심의 기업문화를 정착시켜 나갔다. 그의 흔들리지 않는 경영혁신은
교보생명의 체질을 완전히 바꿔 놓았고, 그 위력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더욱 빛을 발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속에서도
일관된 내실경영과 선제적인
리스크관리를 바탕으로 생보업계 전체 순익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며 업계 1위에 올랐다.
신 회장은
소탈한 성격과 격의 없는 소통 스타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의
리더십 스타일은 '소통과 솔선수범'으로 요약할 수 있다.
최근 우수
재무설계사를 시상하는 '
고객만족대상' 시상식에서 신 회장은 샌드아티스트로 변신해 또 한번 화제가 됐다. 바쁜 일정 속에서도 틈틈이
연습한 실력으로 새로운 비전을 향해 함께 나아가자는 의미의 샌드애니메이션(Sand Animation)을 선보인 것이다.
신회장의
변신은 이번만이 아니다. 때로는
앞치마를 두른 웨이터에서 둥근 모자를 쓴
파티쉐로, 또 통기타를 든 가수로 변신했다. 직접 만든 쿠키도 나눠주고 가짜 수염을 붙인 채
재무설계사(FP) 앞에서 난타공연을 선보이기도 했다.
임직원들의 사기를 북돋아주고 친밀하고
자유로운
조직문화를 만들기 위한 노력들이다. 이러한 신 회장의 독특한 커뮤니케이션 방식은 중요한 시점마다 임직원들의
행동변화를 이끌어 내며 위력을 발휘했다는 평이다.
He
is▦1953년 서울 ▦서울대 의학과 졸업 ▦1987~1996년 서울대 의과대 교수 ▦1993~ 대산문화재단
이사장 ▦1996~1999년 교보생명 이사회 부회장 ▦1999~2000년 교보생명 이사회 의장 ▦2000년 교보생명 대표이사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