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7월 3일부터 12일까지 여름방학을 맞아
교내외 교수 몇분과 태국 북부의 고도 치앙마이와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답사를 다녀왔다.
치앙마이는 옛 타이제국의 수도라고는 하지만
유적유물들이 대부분 붕괴되어 그 흔적만을 남긴 곳이고
지금은 여름철 휴양지로서 골프와 코끼리 트래킹, 강 레프팅,
그리고 소수민족의 생활체험과 같은 관광 자원을 활용하여 살아가고 있는 곳이다.
이번 여행 중에는 로얄 치앙마이 골프장 등 2차례의 골프 라운딩과
코끼리트레킹, 레프팅 등을 즐길 수 있었다.
태국 치앙마이는 캄보디아와의 접경지역이어서
이곳에서 캄보디아 시엔립에 있는 앙코르와트를 육로로 접근할 수 있다.
매우 어수선하고 혼잡한 접경지역에는
지독히도 가난한 아이들의 슬픈 눈망울과
여행자의 주머니를 유혹하는 카지노가 공존하기도 한다.
12세기경 최고의 번영기를 누렸던
위대한 제국 크메르의 작은 도시 씨엔립에는
앙코르와트를 비롯한 2000여개의 사원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보호되고 있지만
재정적 어려움으로 세월의 무게에 짖눌려 허물어져가고 있다.
앙코르와트 사원을 비롯한 씨엔립의 여러 사원 답사는
지금까지의 나의 여행이력 가운데 가장 황홀한 것이었다고 해도 좋을 것이었다.
비록 많은 훼손이 있었다고는 하나
여전히 그 위엄과 우아함을 빛내고 있는 수많은 부조물과 탑신들을 보면서
나는 크메르인들의 높은 문화적 식견과 위대한 조형문화를 볼 수 있었다.
섬세하기 이를데 없는 수많은 부조물과 우아하기 이를 데 없는 동상이나 부조물,
그리고 균형잡힌 사원들의 건축들은
그 어떤 민족도 그 수준을 넘어서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 속에 담겨진 수 많은 이야기들을 다 알 수 없었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언젠가 다시한번 씨엔립을 찾아갈 것이다.
씨엔립에는 또 다른 문화가 존재한다.
호수인지 바다인지 구분할 수 없는 톤레삽 호수에서 살아가는
위험하고 혼탁하며 가난한 선상주거민들의 삶과
북한에서 운영하는 아리랑음식점의
북한 여성들의 삶이 그것이다.
흙탕물이라고 해야할 호수에서 목욕하고 식수를 사용하며
학교를 운영하고 결혼식을 치르는 모습에서
어찌할 수 없는 비애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남한 가이드 청년과 사랑에 빠져버린 북한 복무원 처녀의
이루어질 수 없을 것만 같은 사랑은
이 여행이 내게 남겨준 깊은 상처의 하나로 남았다.
캄보디아 씨엔립을 떠나 다시 치앙마이로 돌아와
방콕과 파타야를 거치며 골프 라운딩과 즐거운 회식들이 이어졌지만
앙코르문화와 갈라진 조국으로 인한 비극적 사랑의 이야기는
내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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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앙마이에 대한 네이버 백과사전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차오프라야강의 가장 큰 지류인 핑강 연안에 위치하며, 해발고도 335m의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1296년 란나타이 왕국의 멩라이 왕이 건설한 여러 도시 가운데 하나로서 1345년 치앙라이에 이어 란나타이의 2번째 수도가 되었으며, 16세기까지 번창하였다. 그러나 치앙마이 분지의 풍부한 농업생산력은 17세기부터 타이와 미얀마의 분쟁의 불씨가 되었으며, 최종적으로 타이 중앙정부의 관할에 들어간 것은 19세기(라마 5세 시대)에 미얀마가 영국군에 패배하고 난 뒤였다.
은세공·칠기·견직물·티크 조각·우산·도기 등의 가내공업이 활발하며, 벼의 2기작, 과수재배 등 타이에서도 가장 농업이 발달한 지대이다. 주변의 산지에서는 각종 목재, 특히 티크재를 벌채하며 제2차 세계대전 전에는 타이의 주요 수출품이었다. 또한 아름다운 자연과 오랜 역사가 어울린 관광지로, 성벽·별궁·사원(13세기) 등이 있으며 민족색이 짙은 풍습 및 축제 등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