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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례자 연석회의 개성 간의역을 순례(巡禮)함에 있어서 아래 사항(事項)을 원칙(原則)으로 삼고자 회의(會議)를 시작하겠습니다. ♢역장(驛長)님, 개성시(開城市)의 전반적인 개요(槪要)를 부탁드림니다. ☞-개성시(開城市)는 경기도 북서쪽에 있는 시(市)로써, 개성시(開城市)·개풍군(開豊郡)·장풍군(長豊郡)·판문군(板門郡) 등의 1시 3군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면적 1,308.6㎢와, 인구 381,774명 정도의 도시입니다.(추정(1991) ♢바다님, 개성시의 자연환경에 대하여 말씀해 주십시오. ☞-개성시(開城市)의 북부는 아호비령산맥 말단부인 천마산 줄기가 황해북도와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북동부의 산악지대를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이 100m 이하의 구릉지입니다. 시의 북동부 경계선을 따라 임진강이 흐르고 서부경계를 예성강이 흘러 한강하구에 유입합니다. 지질은 금·아연·동·형석·석회석·화강석·천마암·고령토 등의 지하자원이 매장되어 있습니다. 기후는 대체로 온난습윤하다. ♢별님, 산업·경제 부분을 요약해 주십시오. ☞-농업 생산에 유리한 지형·기후·토양 등의 자연조건과 18개의 저수지와 150여 개의 양수장 외에 수백 개의 보를 축조하여 수리체계를 확립하였다. 곡물은 쌀·옥수수·콩·밀·보리 등이 생산된다. 특산물로서 흰복숭아가 유명하며, 고려인삼과 고려 청자는 해외로 수출되고 있습니다. ♢역장(驛長)님, 교통 현황은 어떻습니까? ☞-교통은 전철화된 평부선(개성-평양)이 개성역을 기점으로 개풍-여현역을 거쳐 북행합니다. 도로는 평양-개성 사이의 1번국도가 4차선으로 포장되어 있으며, 개성-박영, 개풍-공민왕릉, 개성-판문 사이를 연결하는 시내도로가 잘 포장되어 있습니다. ♢바다님, 유물(遺物),유적(遺蹟)에 대한 내용을 보고해 주십시오. ☞-개성시(開城市)는 개성성과 만월대·관음사·흥국사·남대문·선죽교·성균관 등이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시의 중심부에는 남대문로에서 북부도로에 이르는 1㎞ 구간이 보존거리로 정해져 300여 채의 옛 한옥이 원래 모습대로 보존되어 있고, 이중 20여 채가 민속여관으로 이용됩니다. ♦역장님, 그리고 바다와 별님, 개성역을 순례함에 있어서 위와 같은 회의 내용을 참고로 할 것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高太宇 글 참조) ☧천주교회 관련자료 [개성본당] 관할지역⇒개성(188명), 경기도의 장단,파주, 황해도의 배천외 14개 공소, 신자총수-1,579명 ○소재지-경기도 개성(開成)시 동본(東本)리(은행나무집) ○서울 약현(중림동) 본당의 공소, (송도, 개성)-1901년에 본당으로 승격, ☩역대 주임신부님들과 주요사업들 ▷초대-1901년 루브레(Henri Philippe Rouvelet, 黃 惠中) ☑⇒병인박해때 순교한 교우의 집인 은행나무집에 성당터 잡음 ▷ 2대-1909년 르 장드르(L.G.A.Le Gendre,崔昌根) ☑⇒관할지역은 장단, 파주외에 공소-14개소, 신자수 1,579명 ▷ 3대-1919년 안학만 루가(安學滿) ▷ 4대-1924년 서병익 바오로(徐丙翼) ☑⇒본당학교 운영, 샤르트르 수녀 4명 초청, 1930년 철수 ▷ 5대-1931년 박우철 바오로(朴遇哲) ▷ 6대-1933년 신성우 마르코(申聖雨) ☑⇒새 성당 신축(개성신자 634명) ▷ 7대-1942년 방유룡 레오(方有龍) ☑⇒1947년 이곳에서 한국순교수녀회 창설 ▷ 8대-1950년 유봉구 아우구스티노(柳鳳九) ☑⇒부임 한달만에 한국전쟁 발발, 서울로 탈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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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5월 초순, 늦은 봄날이었다. 부산에서 쉬지 않고 달려 온 급행열차, 백두(白頭)는 고도 40미터의 개성분지를 가볍게 뛰어 오르고 있었다. 백두(白頭)가 분지 입구의 모퉁이를 살짝 돌아서자 저 멀리 분지 중앙에 자리 잡은 자남산(104m)이 눈에 들어왔다. 그곳에는 건장한 청용(靑龍) 한 마리가 승천(昇天)하려는 듯 분지 중앙에 버티고 서 있었다. 더 자세히 살펴보면 억센 앞발로 강들을 하나씩 꽉 움켜잡고 하늘을 향해 오르려는 형상이었다. 백두(白頭)는 아랫배에 힘을 지긋이 주더니 용을 향하여 거칠게 표호하기 시작하였다. 천지를 뒤 흔드는 메아리가 개성 하늘에 천천히 퍼져 나가고 있었다. 드디어 용호(龍虎) 결투(決鬪)가 시작된 것이다.
분지안에서 잠자던 용(龍), 그것은 바로 개성이었다. 함께 태여나고 함께 뛰놀던 친구들이 하나 둘씩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맏형격인 송악산(489m)이 북쪽의 상좌를 하고 나자, 용수산(룡수산:178m)이 형님에게 머리를 숙이면서 재빠르게 반대 방향인 남쪽으로 들어와 송악과 대좌하는 것이었다. 이런 광경을 보고 있던 지네산(203m)은 용수산을 나무라는 듯 처다보면서 분지의 서쪽에다 자리를 잡는다.
이들은 모두 용호(龍虎) 결투(決鬪)의 구경꾼들이었다. 사실 피 흘리는 결투는 일어나지 않았다. 허지만 이들의 보이지 않는 기(氣) 싸움은 대단하였다. 상대방을 향한 이들의 암투(暗鬪)가 너무 지나치자 지파리 천(川)의 아가씨가 선듯 중재를 자청하고 나섰다. 그녀는 분지 한가운데를 힘차게 가로 지르면서 자신이 끊임없이 뽑아내는 끈끈한 생명의 줄로 이들을 화해시키려 부단히 애를 쓰는 것이었다. 따지고 보면 분지는 동서로 횡단하면 5㎞나 된다.
이에 반해 남북은 조금 긴 6㎞이다. 넓은 분지가 분명하였다. 작은 지파리 천(川), 그녀로써는 분지를 모두 끌어안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지상낙원 건설을 위한 지파리 천(川), 그녀의 화해 노력은 시원스럽게 흐르는 동부의 사천 강(江) 등장으로 충분한 보상을 받았다. 사천 강(江)은 개성에게 있어서 어미와 아이를 하나로 묶어주는 탯줄과 같았다. 끊임없이 생명을 나누는 사천 강(江) 때문에 개성은 사계절 모두 활력이 넘치고 있었다.
이러한 상부상조의 조건을 모두 갖춘 개성분지는 하늘이 내려 준 명당(明堂)이 분명하였다. 확실한 명당의 조건은 이보다 더 많다. 송악(松嶽)·천마(天摩762m).성거(聖居) 등은 북쪽에서 내려오는 칼바람을 막아주고 좌우로 펼쳐진 임진강과 예성강은 대단한 풍요로움을 약속한다. 뿐만아니라 강화도와 교동도(喬桐島) 등은 땅을 한없이 메마르게 하는 해풍을 적당히 막아주니 개성분지는 명당중에 명당이 분명하였다. 이런 이유로 한때 왕융(王隆)과 궁예(弓裔)가 이 땅을 밟고 지나갔다.
백두(白頭)가 드디어 개성(開城)에 도착하고 있었다. 철마(鐵馬), 백두(白頭)의 심장에서는 아직도 뜨거운 불씨가 살아 숨 쉬는 듯 간헐적으로 증기를 토해내고 있었다. 백두(白頭)가 긴 여행을 위해 또다시 기지개를 피자 사람들의 마음은 또다시 바빠지고 있었다. 사실은 승하차를 위한 충분한 시간이 남아 있었지만, 구름같이 몰려드는 사람들 때문에 번잡해서 시간이 짧아보였던 것이다. 얼마 전 백두(白頭)가 부산에서 첫 번째 출발을 알리는 순간, 온 나라는 뜨거운 열기로 까맣게 타버리고 말았다. 그날이후 백두(白頭)는 하루 열 번씩 쉬지 않고 밤낮으로 달려가고 있었지만, 한 달이 지난 지금도 오고가는 사람들의 뜨거운 열풍(熱風)은 여전하다.
경의선 열차(列車), 백두(白頭)의 첫째 목표는 물류수송이었다. 이제 막 개통된 백두(白頭)의 간이역등은 좁고 낡아 있었다. 문제점을 직감한 정부는 기내 방송을 통하여 숙박시설의 부족을 대대적으로 홍보하였다. 이런 조치들은 당장의 혼란을 막을 수 있었다. 사실 역사 주변의 발전을 위한 민자유치는 협상계획서에 표기 되었을 뿐, 아직 한 건도 성사된 것이 없었다. 역사는 물류수송을 우선으로 하기 때문이었다. 이런 이유로 기업인은 각자 유리한 지역을 선점하려고 벌써부터 현지 답사경쟁이 심하였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엉뚱한 곳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다급한 기업인보다는 천하의 백수들이 기차를 꽉 메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과 유럽으로 나갈 물품등은 간이역 창고 안으로 가득 쌓여 오건만, 백수들은 여전히 삼삼오오 자리를 지키며 백두(白頭)를 양보할 줄 모르고 있었다. 힘의 균형은 한동안 백수들의 편일 같았다. 별나으리도 그런 백수들 중에 하나였다. 그러나 이번 여행은 그들과 사뭇 달라 보였다. 얼마 전 기차 여행을 경험삼아 이번에는 동갑내기 바우와 함께 자신이 직접 운전하는 캠프카를 타고 신의주를 향하여 달려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둘 다 모두 회갑을 넘긴 중년으로서 한 달 이상의 긴 여정을 소화하기에는 무리이지만, 열정 하나만으로 출발을 서두르는 것이었다. 여행의 이정표는 역시 경의선 열차, 백두(白頭)의 간이역을 원칙으로 하였다.
“드디어 백두(白頭)가 온다. 바다야, 마중 가자...! 서울에서 불과 한 시간 반이면 달려올 수 있는 짧은 거리(78㎞)였건만 반세기 만에 오고있어!”
“예성강, 임진강들이 역류하고 있구나. 기상이변이야 별아, 용들이 움직이고 있나봐, 백두와 한바탕 할 것 같다.”
“이것이 바로 용호(龍虎)결투로구나.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부치라고 했다.”
“걱정 말거라. 저들은 단지 기(氣) 싸움뿐이니까....”
바다와 별은 이웃사촌에 불과하지만, 별난 취미까지 늘 같았다. 한발 더 나아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란성 쌍둥이로 착각할 정도로 얼굴마져 닮아 있었다. 용호 결투를 즉흥적으로 만들고 장군 멍군을 멋대로 소리치지만 어색함이 전혀 없는 것은 그들이 이미 하나로 동화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소년 청년에 이어 장년까지 왔으니 이제는 끝까지 동행할 모양이었다.
“바다야, 지금 네 기분(氣分)은 어떠니?”
“난 젊음이 넘쳐나고 있단다. 두 팔의 힘이 불끈 솟는구나...!!! 별아, 난 지금 당장 박연폭포(25㎞)까지 날고 싶다! ”
“그러니까 천마산[天摩山]으로 직행하자고..? 그 기분 충분히 알고 있다. 만경대(萬鏡臺), 청량봉(淸凉峰), 성거산(聖居山)에 이어서 대흥산성(大興山城)까지 날고 싶다는 말씀이라......, 허지만 천마산중은 너무 멀다. 바다야, 시내에 있는 선죽교등을 먼저 보자. 시내 유물등도 명품중에 명품들이야...,”
“별아, 최근에 박연까지 자동차 전용도로가 났단다...,”
“알고 있어, 바다야, 너무 욕심내지 말거라..”
“별아, 알았다. 배고프다. 보쌈김치가 먹고 싶다. 시내로 들어가자...!”
“그런데 묵산저수지(默山貯水池) 저수지에서 야영하려면 시장을 봐야 하는데..”
“별아, 묵산저수지(默山貯水池)는 왜 가는거야? 개성⇒개풍⇒여현리...”
“여현리 간이역 코앞에 저수지가 있다더라. 놓치기 아깝단다. 우리들의 이정표는 분명 경의선 간이역이야. 최종 목표는 신의주이고 갈 길은 정말 멀고 또 멀단다. 간이역 주변을 살피기도 무척 바쁘겠구나. 그러나 가끔은 그런곳에서의 하루 휴식도 괞찬을꺼야”
“저수지 에서 야영과 함께 야간낚시 가능하지? 붕어, 잉어가 많다더라. 그런데 일정대로라면 저수지에서의 야영 날자는...?”
“바로 내일이야, 네가 천마산에 너무 집착을 하니, 뭐든지 뒤죽박죽이야.”
“별아, 미안해. 시간표대로 하자. 송도삼절(松都三絶) 때문이야, 서경덕(徐敬德), 황진이, 그리고 박연폭포라....”
바다와 별은 백두가 개성역을 떠난지 한 시간만에 보쌈김치 전문점을 찾았다. 주인장은 캠프카를 한번 돌아보더니 무척 흥미를 보이고 있었다. 캠프카의 종류, 내부구조, 탑승인원 등을 꼼꼼히 살펴보고 난후 구입가격까지 확인하고 나섰다. 무척 맘에 드는 모양이었다. 음식 주문한지 십분정도 지났지만, 주인장은 아직도 보쌈김치 메뉴판을 들고 우리와 입씨름을 하고 있었다. 배를 웅켜 잡고 있던 바다가 주인장에게 음식 주문을 다시 확인하려는 듯 한마디 던졌다.
“주인장, 보쌈김치 금방 됩니까?”
“물론입니다. 조랭이 떡국을 맛보기 덤으로 드리겠습니다.”
“조랭이 떡국이라니요. 이집에 특선입니까?”
“맞습니다. 허지만 이집의 특선이 아니라 이 고장의 특선 음식입니다. 여기 그 사연이 있으니 보쌈김치가 나오는 동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주인장이 건네 준 팜프렛에는 보쌈김치와 더불어 조랭이 떡국의 모양, 그리고 만드는 법까지 자상하게 설명해 주고 있었다. 조랭이 떡국은 왠지 모르게 섬직하다. 목을 조르다니...., 바다가 혼잣말로 지꺼린다.
“이(李)씨가 여기서는 천덕꾸러기로구나...”
“바다야, 이곳은 왕건(王建)의 고향이야. 왕건왕릉은 개풍역으로 들어가는 해선리 만수산에 있단다. 여기서 3.5㎞ 떨어진 곳이야. 이곳 개성이 바로 고려 건국의 중심지란다.”
“고려의 숨결이 거칠게 느껴지는 곳, 바로 그곳은 송악산 만월대가 맞지?”
“바다야, 지금은 불탄 흔적(1361)으로 남아 있지만 현지답사를 해보면 회경전(42m), 그리고 별궁과 누정, 정원 등의 규모는 대 고려의 웅장함을 사실 그대로 들어내고 있단다.”
“별아, 박연폭포에 대해서 아는 것 있어? 간단하게 요약한다면!!!”
“폭포위에는 대략 8미터 정도되는 박연 연못이 있고, 일단 그곳에 모아진 물은 최대 높이 37미터로 쏟아져 내려와 지름이 41미터나 되는 연못(고모담)을 이룬다는 정도로만 알고 있어.”
“별아, 그 밖에 또 뭐가 있지?”
“남문...., 여기에는 아픈 역사가 있단다. 고려때의 규모는 송악산 남쪽 사면과 남산 전체를 감싸 안고 있었으며, 동서남북의 4대문과 중문 8개, 소문 13개의 규모를 자랑하고 있었지... 고려 멸망 후 조선 태조는 1393년(태조 2)에 다시 축조하였는데 그 규모는 반으로 축소해 버렸단다. 현재는 남대문, 건물터 등만 남아 있단다.”
바다와 별은 보쌈김치를 먹으면서 개성 향토사(鄕土史)에 대하여 많은 공부를 하였다. 주인장은 캠프카에 대한 특별한 관심사 때문인지 우리 옆에 붙어 앉아 무엇이든지 물어보면 자상하게 설명해 주었다. 바다는 산과 들, 그리고 그 안의 자연에 대한 질문 공세를 틈새없이 퍼부었다.
“주인장, 천수사(天壽寺)가 어디에 있습니까?”
“버드나무집을 말씀하시는 군요. 정확히 말씀드리면 개성시 개풍군(開豊郡) 청교면 덕암리 근처의 버드나무 숲속에 있었던 사찰이람니다. 뒤로는 기암절벽의 취적봉이 우람하게 버티고 서 있었고 간간이 절벽사이로 자라난 노송등으로 운치를 더해주고 있었으며, 앞으로는 임진강 지류인 사천강이 뱃머리 닿을 만큼 천수사(天壽寺)를 휘감아 돌고, 주변에는 천하일색 양귀비 물가에 머리 풀어헤치듯 수양버들 실눈 바르르 떨며 버티고 있으니, 오느니 가느니 탄복하지 않는 없었답니다. 한번 가보시겠습니까? 허지만 솔직히 말씀드리면 천수사의 흔적은 고려 시대의 1100년 경까지 구구절절 문서상으로만 남아있었답니다. 그 후 조선시대에 와서도 역시 빈객송영(賓客送迎)의 장소로써 계속 이용되었지만, 어느 날 갑자기 전설속으로 천수사(天壽寺)가 사라지고 말았답니다. 한참 세월이 흐른 후 천수사(天壽寺)로 짐작되는 지역을 추정하여 1582년 명승지로 지정하였답니다. 그 당시의 특별조치는 천수사(天壽寺)의 복원(復原)이 아니라 경관 보호차원으로 수목관리가 전부였으며 지금까지도 그 전통을 지키고 있으니, 비록 본질은 변질되었지만 역사상 최고의 보호가로수 사적지로 기록되고 있답니다.”
“주인장, 한 가지만 더 부탁드립시다. 북한의 철도노선 간의역에 대한 안내를 부탁드림니다.”
“철도노선 간이역은 아래와 같습니다.”
1.평양 ⇔ 신의주는 급행으로서
간이역은 평양⇔문덕⇔박천⇔정주⇔용천 입니다
2.장연 ⇔ 만포는 준급행으로서
간이역은 장연⇔(은파)⇔사리원⇔평양⇔평성⇔순천⇔개천⇔구장⇔강계⇔만포입니다.
3.평양 ⇔ 개성은 급행으로서
간이역은 평양⇔사리원⇔개성입니다.
4.사리원 ⇔ 청진은 완행열차입니다.
간이역은 사리원⇔(평산)⇔세포⇔원산⇔고원⇔함흥⇔북청⇔단천⇔길주⇔청진입니다.
5.평양 ⇔ 평강은 완행으로서
간이역은 평양⇔사리원⇔(평산)⇔세포⇔평강입니다.
6.평양 ⇔ 청진은 완행으로서
간이역은 평양⇔평성⇔순천⇔고원⇔함흥⇔북청⇔단천⇔길주⇔청진입니다.
7.평양 ⇔ 두만강은 최대급행으로서
간이역은 평양⇔평성⇔순천⇔고원⇔함흥⇔북청⇔단천⇔길주⇔청진⇔라진⇔온성⇔회령⇔청진입니다.
8.평양 ⇔ 무산은 준급행으로서
평양⇔평성⇔순천⇔고원⇔함흥⇔북청⇔단천⇔길주⇔청진⇔고무산⇔무산입니다.
9.평양 ⇔ 혜산은 급행으로서
평양⇔평성⇔순천⇔고원⇔함흥⇔북청⇔단천⇔길주⇔혜산입니다.
10.혜주 ⇔ 만포는 준급행으로서
해주⇔은파⇔사리원⇔평양⇔평성⇔순천⇔개천⇔구장⇔강계⇔만포입니다.
2.묵산저수지[默山貯水池]에서의 하룻 밤
여현 간의역을 순례(巡禮)함에 있어서 아래 사항(事項)을 원칙(原則)으로 삼고자 회의(會議)를 시작하겠습니다.
♢역장(驛長)님, 묵산저수지 주변 상황과 관계용수 이용 현황, 그리고 생산되는 중요 작물에 대하여 자료를 주시기 바랍니다.
☞-.....,
♢바다님, 개성의 명품은 무엇입니까?
☞-개성의 명품은 고려인삼, 고려청자, 고령토(광맥)입니다.
♦역장(驛長)님, 그리고 바다와 별님, 여현역을 순례함에 있어서 위와 같은 회의 내용을 참고로 할 것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 경의선 ▶
◉부산 ..... ◉문산 ⇔ ◉개성 ⇔ 해선리-연릉리 ⇔ ◉개풍 ⇔ 묵산리-○려현리
여현리 간의역에 당도한 바다와 별은 즉시 역사(驛舍)를 방문하였다. 먼저 경의선탐방순례자임을 밝힌 다음 간이역 근처 저수지에서의 야영이 가능한지를 확인해 보았다. 역장의 대답은 아주 긍정적이었다. 환경을 오염시키지 않는다면 일정기간 숙식도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다만 수리조합(水利組合) 사무실에 가서 신고를 한 다음 허가서를 꼭 소지하라는 권고가 특별하였다. 우리는 즉시 저수지 뚝방에 위치한 수리조합(水利組合) 사무실(事務室)을 방문하여 단숨에 필요한 조치를 모두 끝냈다. 수리조합(水利組合)을 나오면서 바다가 별에게 한마디 던지는 것이다.
“별아, 저수지의 발원지를 찾아 볼까?”
“두 갈래 모두...?
“물론이지!!!”
“출발이다, 지금 당장...,”
바다와 별은 고향 생각이 문득 떠올랐기 때문이다. 실개천 끝자락에는 유난히도 가재와 식용개구리, 그리고 중태미 물고기 그리고 산채(山菜)가 많았었다. 이곳도 고향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 그것을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묵산 저수지의 발원지는 둘로 갈라진 석현천에서 시작되었다. 한나절의 수고 끝에 얻어낸 결과는 예상한바 그대로였다. 우측 지류의 발원지는 참나무와 물에 잠긴 버드나무 숲이 울창한 삼릉동이었고, 좌측은 밤나무와 소나무가 적당히 섞인 제마동이었다. 야영과 낚시터로는 삼릉동이 제격이었다. 캠프카를 삼릉동 입구 참나무 숲에 고정 시키었다. 삼릉동 개천의 수심은 50센치 정도였으나 말풀과 물에 잠겨진 버드나무 숲은 붕어와 잉어 산란처가 분명하였다. 그러나 제마동은 경기도 용인의 고초골과 흡사하였다. 바다와 별은 야영 준비를 간단히 끝낸 후 제마동으로 달려갔다. 제마동 실개천 끝자락은 일차적으로 무성한 찔래나무 숲을 형성하더니 겹겹이 덩굴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따라서 정확한 땅의 모습이 들어나지 않아 전진과 후퇴가 만만치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다와 별은 마냥 줄거워 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덩굴의 대부분은 칡뿌리 이거나 댕댕이가 고작이지만 가끔은 산마와 더덕밭도 만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별아, 더덕냄새가 솔솔나지?”
“조심해, 더덕밭에는 독사도 많아...!!”
“..., 산마 넝굴이 제법이구나!”
“심봤다-----!!”
제마동의 실개천 끝자락은 무척 기름져 있었다. 바다와 별이 애써서 찾아 낸 산마와 더덕뿐만 아니라 원추리, 곰취, 고사리, 고추잎, 엄나무 그리고 두릅등 산채들이 풍성한 잔치상을 차려 놓고 바다와 별을 기다리고 있었다. 가끔은 귀한 손님도 눈에 들어왔다. 당귀, 작약, 오가피, 지황, 삼지구엽초, 감초등이 바로 그들이었다. 덩굴아래에서 물소리가 들려왔다. 조심스럽게 들추어보니 가재랑 중태미가 보였다. 용인보다 더 풍성하였고 활기차 있었다.
삼릉동에 돌아 온 시간은 오후 세시경이었다. 별은 서둘러 제마동에서 채취한 산채등으로 요리 솜씨를 보였다. 살짝 삶아 내고, 볶아내고 튀기니 시골밥상보다 다양하고 풍성하였다. 그중에 특별 한 것은 더덕 탕수육이었다. 바다와 별은 역장(驛長))과 소장(所長)을 초청하여 한바탕 잔치를 벌렸다. 별이 소장(所長)에게 소주를 권하면서 한마디 하였다.
“소장(所長)님, 늘 수고가 많습니다. 지금이 5월 중순임에도 불구하고 저수지가 그대로입니다. 삼릉동, 제미동의 울창한 숲 때문입니까?”
“보통 7-8월중에 내리는 우수로 저수지(貯水池) 수위(水位)는 평소보다 1미터 상승하여 만수가 됩니다. 말씀하신대로 삼릉동, 제미동의 작은 숲 때문에 연평균 저수량은 거의 일정합니다. 풍부한 저수량 때문에 고기반, 물반입니다.”
“붕어도 많습니까?”
“1미터 이상되는 잉어도 많습니다. 간간히 메기, 가물치도 잡힙니다. 모두 대어(大魚)들입니다.”
“소장님, 저수지의 관개용수 이용도는 어느 정도 입니까?”
“여현리, 묵산리, 개풍읍 일대로 대략 680여 정보됩니다. 사실 개성시의 경작지는 시의 전체 면적의 27%에 불과합니다. 논밭의 비율은 4(밭):6(논) 정도인데 논의 경우 판문점과 개풍일부에 거의 편중되어 있답니다. 개풍군 여현리 일대는 주요한 논 경작지입니다.”
“소장님, 밭에서는 무엇이 납니까?”
“주로 곡물들이지요. 강냉이, 콩, 밀, 보리 등이 생산됩니다.”
“특산물은...,?”
“유명한 고려인삼입니다. 고려인삼은 술, 인삼탕, 꿀삼, 인삼정액, 고려선녀삼, 인삼영양정, 인삼엑기스, 인삼차와 경옥고, 장수보약, 인삼지사정, 인삼보양알약, 인삼주사약 등, 아주 다양한 상품을 생산합니다.”
소장은 개성고려인삼 효능에 대한 자랑을 끊임없이 하고 있었다. 세계적인 인삼이 되기까지는 적절한 환경이 참으로 중요하다며 비옥한 땅과 적당한 기후의 조건등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나갔다. 한마디로 결론지으면 씨도 좋고 밭도 좋아야 하지만 날씨도 따라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행은 한동안 음식 나눔조차 중단하고 소장의 말에 집중하였다. 얼마가 지나자 소장의 열변에 지친 듯 역장(驛長)은 갖고 온 선물을 내게 내 밀었다.자리에서 일어서고 있었다.
“고맙습니다. 다기(茶器) 아닙니까?”
“이곳의 특산품입니다.”
“청자...?”
“맞습니다.”
고려청자(高麗靑瓷) 역시 천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이곳의 명품(名品)이었다. 까다로운 조건과 환경속에서 고려인삼이 태여 나듯 고려청자 역시 고려인삼(高麗人蔘)을 쏙 빼 닮았다. 가치있는 고려청자가 되려면 장인(匠人)도 중요하지만, 작품의 재질 즉 흙(高嶺土)이 적절하여야 한다. 이곳 개성의 고령토(高嶺土)는 무한정에 가까운 광맥(鑛脈)으로 형성하고 있지만, 그들 모두 명품(名品)중에 명품(名品) 이었다. 이것은 하늘이 내려 준 커다란 선물이었다.
개성에 있어서 고려청자는 고려인삼과 더불어 해 볼 만한 사업이었다.
3. 금천역
금천 간의역을 순례함에 있어서 아래 사항을 원칙으로 삼고자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역장(驛長)님, 금천 간의역에 대한 전반적인 개요를 부탁드립니다.
☞ 금천은 황해북도 남부에 있는 군으로 1개읍 14개리로 면적 454㎢, 인구 97,900명 정도입니다.(추정1988).
♢바다님, 금천의 자연환경은 어떠합나까?
☞-금천은 아호비령산맥의 남쪽지역으로 예성강 유역에 발달한 분지지형입니다. 지하자원은 유색금속광물·철·대리석 등이 매장되어 있습니다. 산에는 소나무·떡갈나무·잎갈나무·잣나무·밤나무·아카시아나무 등이 자라며, 고사리·다래·밤·도토리·머루 등이 풍부합니다.
♢별님, 산업과 교통은 어떠합니까?
☞-경지면적은 군면적의 30%이며, 특히 콩은 질이 좋기로 유명합니다. 그밖에 양잠·축산·과수재배가 활발합니다. 지하자원으로 연·아연·석회석·석탄 등이 매장되어 있으나 개발은 부진한 편이며, 식료·일용품·화학·피복·제지·가구 공장이 있다. 교통은 남서부지역을 지나는 평부선(평양-부산) 철도가 있으며 개성·장풍·평산·토산, 황해남도 배천·평천을 연결하는 도로가 있습니다. 또한 예성강을 이용한 여객과 화물수송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역장(驛長)님, 유물, 유적, 관광은 어떠합니까?
☞-원명리에는 1674년(현종 15)에 축조된 원명사의 일부가 현존하고 있으며, 오조천 주변의 기암절벽과 임꺽정의 근거지였던 우봉(금천), 고려왕들이 나들이했던 쌍봉동이 있습니다.
♦역장님, 그리고 바다와 별님, 금천역을 순례함에 있어서 위와 같은 회의 내용을 참고로 할 것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高太宇 글 참조)
◀ 경의선 ▶
◉부산 ..... ◉문산 ⇔ ◉개성 ⇔ 해선리-연릉리 ⇔ ◉개풍 ⇔ 묵산리-○려현리 ⇔ 강남리-파골-계정리-월암리 ⇔ ◉금천 ⇔ 문명리
려현리를 떠나 금천역에 도착할 때까지도 바다와 별의 작은 다툼은 계속되었다. 뜨거운 날씨 때문인지 캠프카의 에어컨 소음은 무척 크게 퍼져 나갔다. 조용한 간이역의 정오취침을 방해한 셈이다.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제복을 입은 누군가 캠프카를 향하여 소리를 버럭 지른다. 시동을 끄라는 지시였다. 둘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낯선 곳에 와서 갑자기 난처해질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이었다.
“별아, 오조천 쪽으로 가서 차를 세우자.”
“아니야, 묵산 저수지처럼 역장에게 양해를 구하는 것이 정석이야...!”
“....?”
“내가 갔다 올께!”
별은 자동차 시동을 끄더니 즉시 역무실(驛務室)로 들어갔다. 오늘따라 별은 무척 침착하게 일처리를 해 나가는 듯하였다.
“사실 저희들은 경의선탐방순례자들입니다. 부산에서 출발하여 문산, 개성 그리고 금천까지 왔습니다. 금천에 와서는 예성강의 뱃길을 보고 싶은데 방법이 없습니까?”
“려현역장에게서 보고 받았습니다. 차는 이곳에 정차시키고 선착장으로 가 보세요.”
바다는 별의 소매를 잡아당기고 있다. 별은 무척 신경질 적이었다.
“별아, 순례일정이 너무 길어지면 낭패야, 왕복에 얼마나 걸리는지 물어 봐!”
바다는 무척 불안하여 별의 등을 떠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은 여전히 천하태평이었다. 바다의 얼굴이 이제는 울그락 불그락 가을 단풍이 피어오르기 시작하더니 드디어 별을 와락 밀어제치고 나서는 역장에게 따지듯 확인하고 나섰다.
“역장님, 왕복이 얼마나 걸립니까?”
“급하게 서둘러도 이틀 정도입니다. 보통 닷세 걸립니다. 늦으면 일주일도 모자랍니다.”
“별아, 과욕은 절대 금물이야. 임꺽정(林巨正)이나 보고 가자!” 바다와 별과의 전쟁은 이제 이 차전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별의 낙천적인 삶은 몇 번이고 완만하게 휘감아 돌며 유람하는 예성강 나룻뱃 길이 딱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었다. 수없이 오고가는 여객선과 화물선들, 별은 그들 안에 빨려 들어가 세월의 흐름을 강물에 접고 뱃머리를 벼개 삼아 무한정 머물고 싶은 별의 맘을 바다가 어찌 모르겠는가.
바다는 캠프카로 돌아와 별과 대좌하더니, 긴 협상 끝에 결투없이 타협을 이끌어 내고야 말았다. 뱃놀이가 아닌 등산을 선택한 것이었다. 협상이후 바다와 별은 전과 같이 즐거운 마음으로 오조천을 따라 400년을 거슬러 올라갔다. 바로 1559년경이었다. 황해도 경기도와 평안도 일대의 양반 토호와 관청등은 도적때들의 출몰로 무척 불안에 떨어야 했다. 홍길동(洪吉童)·장길산(張吉山)과 함께 조선의 3대 도적, 임거정(林巨正)이 우봉(금천)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특히 임꺽정과 그의 수하들은 심신단련을 위해 오조천 주변의 기암절벽을 다람쥐처럼 건너 다녔다. 그러나 그 역시 사람이었다. 그는 마침내 자신이 아끼던 참모, 서림의 거미줄 덫에 걸려 파란만장한 그의 일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잔혹(殘酷)한 도적(盜賊)의 심장을 흠쳐내어 의적(義賊)으로 만든 곳이 바로 여기다. 오조천은 상류로 올라 갈 수록 경치는 더더욱 화려(華麗)하였다. 북으로는 봉화산, 아래로는 제석산, 그리고 전방으로는 라복실고개, 바로 그 아래로는 월양산의 고봉들이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 옛날 고려의 왕들도 즐겨 나들이 했던 쌍봉동이 눈 앞에 들어왔다. 이러한 자연의 조건은 창조주(創造主), 신(神)의 작품이었다. 어느 날 하느님은 예성강과 임진강들로 하여금 힘 자랑을 시키었다. 이들은 밀치고 떠밀기를 얼마동안 하였다. 이들 사이에 낀 금천은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여 끌어 오르는 열기를 푸른 창공에 발산시키었다. 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지각융기(地角隆起)라고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고산(高山)등은 대체적으로 기암절벽(奇巖絶壁)등으로 인하여 경치가 수려하다. 금천 오조천의 비경(秘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오조천의 탄생은 긴 뿌리의 끝자락일 뿐이었다. 그 처움은 아호비령산맥(阿虎飛嶺山脈)에 두고 있었다. 강원도(북한)와 평안남도 경계에 솟아 있는 두류산(1,323m)을 시원(始原)으로 하는 이 산맥(阿虎飛嶺山脈)은 송악산을 거처 이곳에서 최종 마감을 하고 있었다. 이 산맥(阿虎飛嶺山脈)의 주봉, 백년산(1,341m)은 북북동에서 남남서 방향으로 뻗어 있으며, 천을봉(1,210m)·육판덕산(1,323m)·동백년산(1,251m)·선바위산(1,106m)·명지덕산(910m)·태을산(682m) 등과 함께 웅장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오조천의 이웃 사촌들은 이들로서 참으로 대단하였다. 바다와 별은 금천역장으로부터 순례 기념으로 특별한 선물을 받았다. 금천의 자랑인 포도송이였다. 순례자들은 오조천의 시원한 계곡으로 깊숙이 파고 들어가 흐르는 물에 발을 담구니, 바로 그 순간 신선(神仙)이 된 느낌이었다. 그보다 임꺽정의 동료가 된 기분이었다. 특히 역장으로부터 받은 포도송이를 입에 넣는 순간 입안에 확도는 감칠 맛은 그들을 무아지경(無我地境)에 빠져들게 하였다. 한동안 계곡의 고요함과 하나되어 침묵이 흘렀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악 ---, 하는 소리에 바다와 별은 현실로 돌아왔다. 사고의 주범은 땅벌이었다. 짙은 포도향기에 매료된 벌들은 바다와 별의 간식 주변으로 하나, 둘씩 모여 들기 시작하였다. 그들 중 하나가 별의 팔등에 앉았으나, 별은 파리인줄 잘못 알고 쫓아 버리려고 했던 것이다. 별의 손짓에 놀란 땅벌은 자신의 강력한 무기를 발사하고 만 것이었다. 이뿐만 아니었다. 달콤한 포도송이에 앉은 땅벌은 별의 입속으로 함께 빨려 들어갔다. 별의 손등과 입속은 금방 부풀어 올랐다. 별의 얼굴은 말 그대로 찡그러져 같다. 이들의 신선(神仙)노름은 여기에서 끝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