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할 수 없는 개성파 - 1학년 9반
1-9 오승민
고등학교 1학년 생으로 성보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난 것이 3월 초였던가. 어째 많은 시간을 보낸 것 같지 않은데 우리는 벌써 고 1의 막바지를 달리고 있다. 그렇지 않은 것 같은데도 쌓인 추억은 많고, 쌓인 정도 많고, 쌓인 미련들도 많다. 그렇게 쌓이고 쌓인 느낌들을 정리하자면 정말 1학년에서 우리 반 같은 개성파들의 집합소가 과연 또 있을까 하는 것이다.
담임선생님부터 특이하시다. 우리의 1년을 인솔해주신 박완수 선생님. 별명이 임무완수라고 하셨던가. 첫 인상은 중후하면서도 고지식해 보인 감이 있었지만 그런 생각을 품고 있던 우리 반 모두에게 큰 반전을 보여주셨다. 지각하거나 잘못을 저지른 급우들에게 우리가 차마 보지 못한 연륜으로 일을 처리하셨다. 가만히 보면 우습지만 자세히 보다 보면 정말 자연스러운 일처리에 가끔 학급 전체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화를 내는 일은 거의 없으셔서 우리들에게 부드러운 인상을 남겨주셨고, 그 인상만큼 배려심도 매우 깊으신 분이란 사실은 알 사람은 알 일. 어눌해 보이면서도 확실한 일처리와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춘 개그코드. 이것이 박완수 선생님의 궁극적인 개성이 아닐까? 이런 선생님이 아니고서야 “대걸레 들어.” “이리 와 이리 와~” 같은 주옥같은 명대사가 과연 어디로 나올 수 있을까?
윗물이 맑으니 흘러 내려온 아랫물도 맑다고, 개성파 9반의 급우들은 어떤가?
여느 반이나 학기 초에는 다들 조용하다. 서로 다양한 학교에서 온 친구들이 서로에게 다가가기엔 아직 시간이 많이 흐르진 않은 것이다. 그렇다고 1년 마냥 조용하랴? 1주일 쯤 지나 O.T를 다녀온 후에 다들 서서히 말문이 트이기 시작하고, 축구, 야구 등으로 교감을 쌓아가며 서로를 알아갔다.
그 개성파들을 소개하자면 학기 초에 주옥같은 명대사를 남기며 반 분위기를 리드하던 현철이. 성격 좋고 힘도 우량한 농구왕 길영이. 공부 1등에 운동까지 잘하는 욕심쟁이 수민이. 9반 스포츠의 리더 범수. 범수와 축구로 자웅을 겨루는 카사노바 강열이. 폭풍 개그를 몰고 오는 폭풍 간지 진욱이. 남고로 잘못 진학한 숨은 여성 규선이. 성보의 검은 피부 소유자들을 인솔하는 마틴 루터 한주. 수학 투톱을 다투는 두 수학 천재 재영이와 태현이. 우리들의 재일 교포 기무라 윤기. 골키퍼로서 거미손을 갖춘 카시야스 김시영이. 모든 구기 종목을 섭렵하고도 공부도 잘하고 책도 많이 읽는 다현이. 이름만 추리왕이였던 도일이. 정 많고 배려심 많은 스포츠맨 상인이. 오리 같은 궁둥이로 정평이 나 있는 부잣집 아들 시민이. 9반의 날렵한 춤꾼 지환이. 성실하고 착하며 음악가가 꿈인 왕눈이 은혁이. 9반 런닝맨 게임의 주인공으로서 점심시간을 웃음꽃으로 만들어주는 동욱이. 능글맞은 알바생 혁기. 야시시한 말을 곧잘 하면서도 착했지만 지금은 자퇴해버린 항경이. 검은 피부와 훤철한 키로 저 멀리 백악관의 오바마가 된 영찬이. 언제나 말이 없지만 스타를 잘하는 현범이. 실존하는 패션왕 형주. ‘곱등이’ 라는 별명을 가졌지만 그에 상반된 착한 모습과 개그를 많이 보여준 수호. 반의 정신적이고 지주적인 리더 격이라고 할 수 있는 지도자 타입의 창엽이. 공부 잘 하는 순진한 모범생인줄로만 알았으나 사실 여자도 있고 알 건 다 아는 성우. 작은 몸집에도 불구하고 야구왕의 패기를 보여주는 역사학자 순범이. 길영이와의 상황극으로 우리 배꼽을 한강으로 소풍 보낸 상훈이. 평소엔 조용하지만 만능 스포츠맨의 잠재력이 깃든 창윤이. 우리 반에서 가장 커다란 몸집과 파워를 가진 권석이. PMP 안의 수두룩한 아이유 앨범 때문에 아이유 극성팬으로 오해받을 뻔한 동윤이. 일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우리와 함께 손잡고 친구가 된 폭풍의 전학생 주석이. 학기 초에 자퇴, 전출해버려서 대화도 얼마 못하고 잊혀져 간 상우라는 친구와 용희라는 친구…
정말 다들 둘도 없이 하나같은 개성파들이 아닐까? 특별히 악질인 친구들도 없다. 모두 말을 터 보면 착한 친구들이다. 그리고 대다수가 열성적인 운동파라는 점에서 동질감이 크다. 그 증거로 공만 있으면 골대 하나를 항상 9반이 점령하고 있으니까. 그런 만큼 공부가 좀 더 뒤떨어지나 싶을 정도로 학기 초에는 반 평균 최하급이라는 충격적인 보고도 있었다. 지금도 주간/야간 자율학습 참여도가 가장 낮은 반으로 손꼽힌다고 한다. 물론 긍정적으로 바라보면 이것도 개성이고 기억에 남는 희극적인 추억이 될 것이다.
1학년의 막바지를 달리는 만큼 우리는 좀 더 짐이 많은 2학년으로 향하고 있다. 반도 제각기 흩어질 테고 말이다. 1년이라는 시간은 그만큼 짧고 아쉬웠던 것 같다. 그런 만큼 우리와 함께한 추억을 생각하며 힘을 낼 수 있다면 참 좋을 텐데 말이다. 같은 반이라는 유대감 하나로 1년을 함께 굴러온 우리들. 훗날 어른이 되어 동창회 때 재회했을 때도 우리만의 동심이 마음 속 한켠에 살아 있어 그 것을 술안주인 양 함께 웃어넘길 수 있으면 좋겠다.
1학년 9반 파이팅! 우리는 서로를 만날 수 있었기 때문에 정말 행복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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