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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정수학당 원문보기 글쓴이: 수공, 유성은
<수공의 군산 깜짝 여행과 이성당 소개(2012.12.29)>
오늘 멀리 경남고성에서 반가운 손님들이 오셔서 우리 부부와 군산에 다녀왔다. TV에서 몇 번 본 적이 있는 군산에 있는 70년이 가까이 되는 빵집 [이성당(李成堂)]에 갔는데 새로 빵이 나오자마자 수많은 사람들이 빵을 고르느라 북새통이었고 줄을 서서 계산한 시간까지 30분 정도는 걸린 듯하다. 그 후 다시 흑임자 쌀 빵을 사려고 1시간 30분 정도를 기다려 겨우 구입하여 먹어보니 정성스런 모양과 맛을 확인하는 순간 달지도 않으면서도 담백한 맛이 아!! 이 정도라면 기다릴 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성당의 2011년 매출은 56억 원. 지난 5월에는 월 매출 6억 원을 돌파, 올해는 65억~70억 원 정도의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수공생각으로는 그 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많은 고객들이 본래 사려던 양을 뛰어 넘는 충동구매도 하였고, 보통 3만원 정도 구입하는 듯하였으며, 서울과 경상도 등 원거리에서 방문한 손님들도 꽤 있었다.
이 집 주인 김현주 사장(50)은 창업주 고(故) 이석우 씨의 조카인 고 조천형 씨의 며느리가 3대째 가업을 이어오고 있는 셈이다. 이성당의 뿌리는 일제 강점기인 192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인이 운영하던 '이즈모야'라는 화과점에서 출발해 광복된 해인 1945년. 당시 조천형(1979년 작고)씨 형제가 1930년대 초반 일본인 주인이 화과자를 만들던 빵집을 인수했다. 빵집 경영은 줄곧 조씨의 부인 오남례(76)씨가 맡아 왔다. 오씨는 지난 2003년 경영권을 며느리 김현주(48)씨에게 넘겼다. 이 빵집은 1920년대 일제강점기 까지 포함하면 약 90년 정도의 특별한 역사를 가진 빵집이다.
흔히 빵집에서 빵을 기부하면 팔다 남는 걸로 한다고 생각하지만, 이성당은 기부를 위해 빵을 따로 만든다. '공짜도 손님'이라는 김 사장의 철학 때문이다.
-------------------------------------------------------------------------------------- ▣ 군산의 다른 맛집
군산의 우리나라 1호 제과점 이성당(063-445-2772)은 일본인이 운영하다 넘겨준 곳이고, 옛 조선은행 앞 빈해원(063-445-2429)은 50년 이상된 중국집이며, 군산 토박이들은 미원동의 복성루(063-445-8412)도 많이 찾는다. 위에 소개한 이성당(李成堂)을 등지고 약 10시 방향을 보면 <서진해물곱돌솥밥(063-442-2282>에는 은행과 밤 대추 등과 각종 다양한 해물 들을 넣어 돌솥에 바로 지은 [해물곱돌솥밥]을 자체 개발하였는데 새로 버무린 부추무침에 비벼 먹는 맛 또한 일미였다. +++++++++++++++++++++++++++++++++++++++++++++++++++++++++++++++++++++++++++++++++++++ 한 때 힘겨웠던 시절도 있었지만 약 90여년 동안 파도처럼 밀려드는 손님들의 방문을 있게 한 고객만족의 현장을 일군 핵심역량은 무엇이고, 또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것인가? +++++++++++++++++++++++++++++++++++++++++++++++++++++++++++++++++++++++++++++++++++++
1200원 앙금빵 하루 1만개 불티, 덕분에…
당당한부자<5>
김현주 이성당 사장 "동네빵집 새로운 롤 모델 만들어 재능기부"
자료출처 : 머니투데이 2012. 10. 23. 전혜영 기자
배만 불러도 부자인 것 같았던 시대가 있다. 배고픈 동네 꼬맹이들이 고소한 냄새가 진동하는 빵집 앞에 코를 대고 '미래 빵집 주인'을 꿈꾸며 허기를 달래던 1950~60년대 얘기다. 세월이 많이 흘러 어느덧 빵은 부식(副食)이 됐지만 60년 넘게 한자리에서 빵을 구워내며 변함없이 나눔을 실천하는 곳이 있다. 국내 최고(最古)의 빵집, '이성당'(李成堂)에서 대를 이어 훈훈한 사회공헌을 펼치고 있는 김현주 사장(사진·50)을 만났다.
◇ "공짜도 손님, 남는 빵으로 기부 안 한다"
이성당은 1945년 광복을 맞던 해에 전북 군산시에 문을 열었다. 김 사장의 시부모님이 친척과 동업을 하다 1960년부터 단독으로 운영하기 시작했고, 김 사장은 1984년 남편인 조성용 대두식품 회장(56)과 결혼하면서부터 이성당과 인연을 맺었다. 1988년 조 회장이 팥 앙금과 쌀가루를 생산하는 대두식품을 설립하자 김 사장이 이성당 운영을 전담하게 됐다.
김 사장은 월 1~2회 복지시설에 빵을 전달하고, 군산시에 장학금을 기부하는 등 봉사활동을 꾸준히 해 온 공로로 올해 초 '납세자의 날' 기념식에서 '아름다운 납세자상'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이 상은 세금을 성실히 납부하면서 봉사활동 등 사회공헌을 실천한 납세자에게 주는 상이다. 김 사장은 인터뷰를 하는 동안 '사회공헌'이나 '나눔'이라는 말이 나오면 연신 손사래를 치며 수줍게 웃었다.
"어우, 한 것도 없는데 부끄럽네요. 빵을 좀 나눠먹은 것 밖에 없는데 좋은 일을 많이 했다고 하니 쑥스러워요. 시부모님이 정기적으로는 아니었지만 꾸준히 지역에 어려운 사람들이나 종교단체 등에 빵을 기부해 오셨기 때문에 저도 그대로 하는 것뿐이에요."
별 일 아니라고 말하지만 김 사장의 빵 기부에는 나름의 확고한 원칙이 있다. 흔히 빵집에서 빵을 기부하면 팔다 남는 걸로 한다고 생각하지만, 이성당은 기부를 위해 빵을 따로 만든다. '공짜도 손님'이라는 김 사장의 철학 때문이다.
"제 원칙은 돈 받고 파는 건 돈 받고 팔고, 좋은 데 쓰는 건 따로 한다는 겁니다. 남는 걸로는 기부하지 않습니다. 고아원이나 양로원을 갈 땐 따로 주문을 넣어서 빵을 만듭니다. 공짜도 손님이기 때문이죠. 맛이 없다고 할 수도 있고, 혹 탈이 날 수도 있기 때문에 늘 신경을 씁니다."
김 사장의 원칙이 확고하다 보니 빵이 남을 것 같은 날도 장사를 모두 마친 후 남는 빵을 기부하는 것이 아니라 저녁이 되기 전에 미리 공동체에 보내곤 한다. 김 사장은 "사실은 빵이 잘 팔리기 때문에 남는 날도 별로 없다"며 웃었다.
이성당은 빵 기부뿐 아니라 제과점으로는 이례적으로 올해 초 무료 음악회도 열었다. 김 사장이 후원하던 지방의 소규모 오케스트라를 초청해 박물관에서 음악회를 열고, 공연을 보러 온 지역주민들에게 사은품으로 빵을 나눠주는 형식으로 진행했다.
"오케스트라에 간식으로 빵을 후원해오다 지역 주민들에게 그동안 이성당을 많이 이용해 주셔서 고맙다는 취지로 음악회를 하면 어떨까 싶어서 하게 됐어요. 앞으로도 1년에 한번 정도는 무료 음악회를 열 생각입니다"
◇ "소규모 빵집창업 롤모델로 재능기부"
이성당에서 만드는 200여종의 빵 중 손님들이 가장 많이 찾는 건 앙금빵과 야채빵이다. 앙금빵(1200원)은 평일에 5500~7000개가 팔려나가고, 주말에는 9000~10000개씩 팔린다. 그야말로 '날개 돋친 듯' 팔리는 셈이다. 또 다른 인기 메뉴인 야채빵(1400원)은 평일에 1700여개, 주말에는 2,500여개씩 팔린다. 야채빵은 앙금빵과는 달리 준비된 재료가 떨어지면 더 구워낼 수가 없어 빈손으로 돌아가는 손님들도 종종 있다고 한다.
이성당은 현재 20년 넘은 제빵 경력자들을 포함해 직원 60명이 일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은 56억 원이고, 올해는 60억 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단일 매장으로 높은 수익을 내다보니 분점이나 프랜차이즈의 유혹이 찾아오기 쉽지만 김 사장은 단호한 표정으로 손을 내저었다.
"분점은 관리가 어려워서 할 수가 없고, 프랜차이즈도 감당할 자신이 없어요. 대신 요즘 동네빵집들이 다 어렵다고 하고 제과점 창업이 쉽지 않은데, 성공적인 소규모 빵집의 모델이 될 만한 걸 만들어 보고 싶어요."
김 사장이 구상중인 것은 일종의 '재능기부'다. 내년께 서울에 3~4명이 운영할 수 있는 수준의 소규모 쌀빵집을 론칭하고, 오픈 노하우를 무료로 공개하겠다는 것이다.
"작은 빵집을 하나 내려고 해도 투자금, 콘셉트, 근무조건, 디자인 등 신경 쓸 것이 많잖아요. 제가 먼저 운영해 보고 투자금이 얼마나 들었고, 매출은 어떤지 등을 다 공개해 보려고 합니다. 쌀 원재료를 우리한테 공급받는 조건으로 가게 디자인이나 레시피 등도 다 가져다 쓸 수 있도록 할 거에요."
김 사장은 동네빵집들이 프랜차이즈 업체에 밀리는 가장 큰 이유로 근무여건을 꼽았다. 대규모 물량 공세를 펴는 프랜차이즈 빵집들에 비해 적은 인원이 일하는 동네빵집은 경쟁력에서 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프랜차이즈 빵집들은 빵을 직접 만들기도 하고, 공급 받기도 하기 때문에 직원들의 근무시간을 유연하게 가져갈 수 있어요. 하지만 소규모 빵집은 그런 게 어렵기 때문에 하루 종일 문 여는 시간이 길고, 근무여건이 열악할 수밖에 없죠. '일주일에 한번은 쉴 수 있는 빵집'을 모토로 적은 인원으로 할 수 있는 조그만 제과점의 롤모델을 만들어 보려 합니다."
이성당 정도의 명성이면 좀 더 쉽게 돈을 벌 수 있는데도 김 사장이 위험을 무릅쓰며 새로운 도전을 하는 뭘까.
"저희는 제과점을 오래했어요. 처음엔 생계 수단이었는데 이걸로 인해 많은 식구가 편안하게 살고 있고, 제과업을 토대로 남편이 하는 팥 앙금 공장도 발전하고 있어서 항상 감사한 마음입니다."
1남 2녀를 둔 김 사장은 자녀들이 원한다면 대를 이어 이성당을 물려줄 생각이다. 그리고 기회가 닿는 대로 자신의 자녀들처럼 한창 공부할 젊은이들을 후원할 계획이다.
"기회가 되면 대학생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어요. 사실 제 아이들을 유학 보내면서 한국에서도 배울 것이 많지만 젊은 애들이 나가서 이것저것 배워보는 게 좋을 거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형편 안 되는 친구들을 해외로 보내주고 싶습니다. 그 나이에는 금전 부담이 클 텐데 얼마간이라도 나가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고, 학비 지원은 계속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사회공헌을) 더 많이 하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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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빵왕 김탁구'보다 유명한 빵집, 67년째…
[당당한부자 <5>] 머니투데이 : 2012.10.23. 전혜영 기자.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 '김탁구' 원조로 알려지며 유명세
이성당(李成堂)은 전북 군산시 중앙로 1가 옛 시청 건물 맞은편에 자리한 제과점이다. 1945년에 문을 연 이후 67년째 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이기도 하다.
이성당의 뿌리는 일제 강점기인 192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인이 운영하던 '이즈모야'라는 화과점에서 출발해 해방 직후 김현주 현 사장의 시아버님과 친인척이 함께 인수하며 지금에 이르렀다. 이성당이라고 불리기 시작한 건 해방 직후로 사실상 이때 재(再)창업한 셈이다. 전국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으로 군산기네스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성당 건물은 150평 규모로 내부에 공장이 따로 있다. 전체 직원 60명 중 절반인 30여명가량이 공장에서 빵을 만든다. 이성당은 일반 제과점과는 달리 공장장(Plant manager)중심이 아닌 팀 중심이다. 빵의 종류와 성격에 따라 팀을 나눠 소통하고 보고 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돼 있다. 최근에는 컨설팅 전문가를 따로 고용해 공정 등에 대한 컨설팅을 받고 있으며, 직원별로 돌아가며 단기 해외연수도 보내주고 있다.
이성당에서 만드는 제품은 빵과 과자, 사탕, 케이크, 빙과류 등 200여개 종이 넘는다. 대표빵인 앙금빵의 경우, 190원에서 시작해 지금은 1200원으로 세월의 흐름에 따라 가격이 올랐다. 또 야채스프와 토스트 등으로 이뤄진 '모닝세트'도 인기메뉴다. 1980년에 만들어져 30년 넘게 인기를 모으고 있다.
제품 원료인 쌀가루와 앙금 등은 김현주 사장의 남편인 조성용 회장이 운영하는 대두식품에서 공급받고 있다. 조 회장은 1980년부터 이성당의 경영을 맡아오다 88년에 대두식품을 차리고, 팥 앙금, 쌀가루와 함께 양갱, 죽, 화과자 등 완제품을 만들고 있다. 서울 서초동에 라이스베이커리 '햇쌀마루'도 운영 중이다.
이성당은 2년 전 인기드라마 '제빵왕 김탁구' 효과를 톡톡히 봤다. 2006년에 쌀로 만든 100% 쌀빵인 '블루빵'을 개발했는데, '제빵왕 김탁구'에 쌀빵 스토리가 나오면서 이성당이 '제빵왕 김탁구'의 모델이라는 소문이 난 것. 하지만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와 이성당은 전혀 관계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
이성당, 쌀 빵으로 67년 전통 잇는 `제빵 왕` 며느리
2012-10-04. 代를 잇는 家業 - 2세가 뛴다.
1945년 설립해 3대째 유지 / 대형빵집 진출로 경영악화 / 신메뉴 개발해 단골 되찾아
앙금빵·야채빵 최고 인기 / 전통 맛 그대로 재현 / 좋은 재료 구하려 정성 다해
전북 군산시 중앙로1가 12의 2. 옛 시청 건물 맞은편 자리에 이성당(李成堂)이라는 간판의 빵집이 있다. 이씨 성을 가진 사람이 만든 집이라는 뜻이다. 간단한 이름이지만 그 내력과 명성은 간단치 않다. 1945년 광복을 맞던 해 문을 연 이 가게는 67년의 전통을 갖고 있는 국내 최고(最古)의 빵집이자 제과점이다.
전통의 빵맛을 보기 위해 군산뿐 아니라 전국에서 손님이 몰린다. 평일에는 1500~2000명, 주말에는 3000명 이상이 찾는다. 하루 1만 5000개(주말 2만5000개 이상)의 빵과 과자가 팔려 나간다. 주말이면 가게 문을 열기 전부터 갓 구운 빵을 맛보기 위해 손님들이 장사진을 친다. 주말엔 1인당 구매량을 빵 10개 이하로 제한할 정도다.
이성당의 지난해 매출은 56억 원. 지난 5월에는 월 매출 6억 원을 돌파, 올해는 65억~70억 원 정도의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 이 집 주인은 김현주 사장(50)이다. 창업주 고(故) 이석우 씨의 조카인 고 조천형 씨의 며느리다. 3대째 가업을 이어오고 있는 셈이다.
김 사장이 이성당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84년 남편 조성용 대두식품 회장(56)과 결혼하면서부터. 조 회장이 1988년 빵과 과자 재료인 앙금과 쌀가루를 생산하는 대두식품을 설립하면서 이성당 운영은 오롯이 김 사장의 몫이 됐다.
이성당이 만들고 있는 제품은 빵과 과자, 케이크, 빙과류 등 200여 가지. 그중 가장 인기 있는 게 앙금빵과 야채빵, 고로케 등 전통의 아이템들이다. 이런 빵들이 이성당 전체 매출의 4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단골 박현심 씨(54)는 “이성당의 경쟁력은 전통의 맛을 제대로 낸다는 것”이라며 “어렸을 때 먹던 그 맛 그대로”라고 말했다.
이성당이 이처럼 67년 동안 변함없이 인기를 누리는 비결은 기술과 믿음에 있다. 이성당에는 현재 경력 20년 이상의 제빵기술자 7명이 일하고 있다. 이들은 전통의 맛을 지키면서 꾸준히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그중 성공작이 쌀가루 빵인 ‘블루빵’이다. 김 사장은 “웰빙 트렌드에 맞춰 손님들에게 영양도 좋고 맛도 좋은 빵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쌀빵 개발에 나서 2006년 국내 처음으로 성공했다”며 “반응이 좋아 현재 전체 빵의 60% 이상을 쌀가루로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두 번째는 믿음이다. 이성당은 개업 이후 한 번도 불량 식자재 때문에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다고 한다. 김 사장은 “대기업 프랜차이즈 제과점이 군산시내를 휩쓸었을 때도 이성당에는 손님이 끊이지 않았다”며 “좋은 식자재와 친절한 서비스가 그 비결”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성당 경영이 항상 수월했던 것은 아니다. 1990년대 말부터 군산시내 상권이 신도심 쪽으로 대거 이동하면서 구도심 공동화 현상이 일어났다. 구도심 한가운데 있던 이성당도 타격이 컸다. 김 사장이 경영권을 물려받은 2000년 초에는 3~4년간 내리 적자를 냈다.
김 사장은 남편과 함께 대책 마련에 몰두했다. 쌀빵 개발에 나서는 한편 커피와 야채수프, 토스트 등으로 이뤄진 모닝세트를 내놓고, 스파게티와 스테이크 요리 등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메뉴도 만들었다. 이성당이 쌀빵을 내놓기 시작한 2006년부터 손님들이 발길을 되돌리기 시작했고, 경영도 흑자로 돌아섰다.
김 사장은 “어려움도 있었지만 항상 진심으로 사업을 하면 고객들도 이를 알아준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며 “기본에 충실한 사업을 해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 사장은 불우한 이웃을 위해 군산시 복지시설에 빵을 정기적으로 공급하고 있으며, 각종 사회봉사단체에도 매월 정기적으로 후원금을 지원하고 있다.
김 사장은 1남2녀를 두고 있다. 그는 “아이들도 모두 이성당에서 일하고 싶어한다”며 “아이들이 이성당을 앞으로 100년, 200년 고객들로부터 사랑받는 기업으로 만들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성당은, 국내서 가장 오래된 빵집…쌀빵·스파게티 등 신메뉴 다양
이성당은 1920년 전라북도 군산시 중앙로1가에 세워진 ‘이즈모야’라는 일본인 제과점이 모태다. 이 제과점 이름은 일본 시네마현 이즈모시의 지명에서 따왔다고 한다. 광복 후 적산가옥 불하 과정에서 이성당 창립자 이석우 씨가 이 건물의 절반을 받아 제과점을 시작한 게 현재의 이성당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성당 건물은 150평 규모로, 내부에 공장이 있다. 전체 직원 60명의 절반가량이 공장에서 일한다. 이 중 20년 넘은 제빵 경력자가 7명에 달한다. 빵과 과자, 사탕, 케이크, 빙과류 등 200여개 제품이 이곳에서 만들어진다. 지난해 매출은 56억원. 최근 신제품 개발로 매출이 늘면서 올해 70억 원 정도의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
제품 원료인 쌀가루와 앙금 등은 김현주 사장의 남편 조성용 씨가 운영하는 대두식품에서 공급받고 있다. 대두식품은 1988년 세워진 곡물 가공 업체로, 앙금, 쌀가루와 함께 완제품인 화과자 등도 만들고 있다.
군산=박수진 기자 psj@hankyung.com --------------------------------------------------------------------------------------
추억 + 65년 내공… ‘옛날 빵’ 인기 빵빵
문화일보. 2010. 04. 14. 군산 = 박경일기자. 국내最古 빵집 ‘이성당’
군산에는 65년 동안 매일 빵을 구워내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이 있다. 중앙로 사거리의 ‘이성당’.
이성당이 문을 연 것은 광복된 해인 1945년. 당시 조천형(1979년 작고)씨 형제가 1930년대 초반 일본인 주인이 화과자를 만들던 빵집을 인수했다. 빵집 경영은 줄곧 조씨의 부인 오남례(76)씨가 맡아 왔다. 오씨는 지난 2003년 경영권을 며느리 김현주(48)씨에게 넘긴 뒤에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빵집에 나와 손님을 맞고 있다.
“그때는 가마에 장작불을 때서 빵을 만들었어. 기술이나 재료가 좋아졌다지만 아무래도 맛은 옛날만큼은 못한 것 같아.”
시집와서 몇 년 동안 하루 하나씩 ‘앙꼬빵(팥앙금빵)’을 먹었다던 오씨는 “갓 구워낸 달달한 팥이 든 그때의 앙꼬빵이 어찌나 맛이 좋던지 지금도 잊지 못한다”고 입맛을 다셨다.
그러나 이성당에는 옛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세련된 진열장에는 파운드케이크며 쇼콜라를 비롯해 크림치즈빵과 요플레빵 같은 고급 빵들이 쌓여 있다. 그러나 아직도 손님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빵은 앙금빵과 야채빵, 고로케 등이다. 모두 문을 열 때부터 만들어 오던 것들이다. 군산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이 세 가지 빵만큼은 다른 곳에서 절대로 ‘흉내 낼 수 없는 맛’이라고 인정한다.
일제강점기 개항돼 일찌감치 서구 문물을 받아들인 군산에는 광복 이후 빵집들이 잇달아 문을 열었지만, 지금은 이성당만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아직까지도 빵이 나오는 시간이면 매장이 손님들로 북적인다. 그 비결은 ‘추억의 맛’이 가진 힘일까.
며느리 김씨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김씨는 “추억이 절반이라면, 나머지 절반은 온전히 빵맛 때문”이라고 했다. 65년의 시간을 담고 있는 이성당이 반가운 것은 분점 하나 내지 않고도 경쟁력을 잃지 않은 채 당당하게 살아남아 있기 때문이다.
매뉴얼화된 프랜차이즈 빵집들이 감히 넘볼 수 없는 시간과 정성, 정직한 재료, 그리고 맛까지 두루 겸비했으니, “이성당이 앞으로도 지나온 시간만큼은 넉넉히 살아있을 것”이란 김씨의 자신있는 말에도 믿음이 갔다. ---------------------------------------------------------------------------------------
[양재찬 칼럼] 리치몬드 과자점과 이성당 빵집
미투데이. 2012. 02. 08. 양재찬 논설실장
30년 동안 서울 홍익대 앞에서 빵을 구워 팔던 리치몬드과자점이 지난달 말 문을 닫았다. 대한민국에 8명뿐인 제과제빵 명장 중 1명이 운영하는 이 빵집은 치솟는 임대료를 못 견디고 재벌 계열 커피전문점에 자리를 내줬다. 빵집 주인은 5년 전 프랜차이즈 제과점이 들어온다는 소리에 임대료를 두 배 올려주었지만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어 포기했다고 한다.
동네빵집이 몰락하고 있다. 2003년 초 1만 8,000여개였던 것이 지난해 말 4,000여 곳으로 급감했다. 기업화한 프랜차이즈 베이커리에 밀리고 커피전문점과 제과점을 결합한 럭셔리 베이커리 사업에 재벌가 2ㆍ3세 딸들까지 뛰어든 탓이다.
반론도 있다. 경쟁과 효율을 따지는 옹호론자들은 시장경제 원리를 내세운다. 재벌이 사업을 접는다고 죽어가는 업태가 살아나느냐고 반문한다. 재래시장 물건이나 자영업자가 만들어 파는 것과 품질과 가격대가 다르고 위생 상태도 낫다고 한다. 보다 쾌적한 환경에서 마음에 드는 상품을 고를 수 있는 소비자선택권이 먼저라는 논리도 가세한다.
이런 태도와 상황에서 동네빵집이 설 땅은 없다. 재래시장과 골목상권도 대형 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SSM)에 점령당하고 만다. 내 돈 갖고 사업하는 데 무슨 상관이냐는 식의 자본의 탐욕은 공멸을 부를 수 있다. 재벌과 기업화한 프랜차이즈, 대형 마트와 SSM만 즐비한 채 동네빵집과 분식집, 전통시장 상인들 대부분이 망하면 대형 마트에서 재벌이 만든 제품을 살 사람도 없어진다.
왜 동네빵집을 걱정하는가. 동네빵집이 무너지면 떡볶이ㆍ라면ㆍ순대집도 무너진다. 김밥ㆍ비빔밥ㆍ청국장에 이어 분식집ㆍ포장마차까지 전국이 획일화된 맛과 가격으로 소비자선택권을 박탈할 것이다. 동네빵집 문제는 단순히 빵집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 뿌리에 중소기업과 자영업 문제가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거대 프랜차이즈와 영세 자영업자 간 공생 문제가 달려 있다.
시장에 맡긴다고 세상 일이 다 잘되는 것도 아니다. 시장이 해결할 수 있는 게 있고, 못 하는 게 있다. 시장이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것은 정부와 사회가 바로 잡아주어야 한다. 1% 자본가의 탐욕이 99%의 영세기업과 자영업자를 울리는 사회는 지속 가능하기 어렵다. 경제발전과 정치의 민주화를 일궜으니 이제 '경제민주화'에 신경 쓸 단계다.
여론이 나빠지자 재벌가 2ㆍ3세들이 럭셔리 베이커리 사업 철수를 선언했다. 제빵시장의 지배적 사업자로 등극한 프랜차이즈도 가맹점 확장을 자제하는 분위기다. 아직까진 우리 자본주의가 상대적으로 건전하다는 증거다.
동네빵집들이 전부 몰락하진 않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 된 빵집 군산 이성당은 빵을 굽기 무섭게 팔린다.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처럼 특히 단팥(앙금)빵과 야채빵이 인기다. 군산시민은 물론 새만금방조제와 군산 구불길 관광객들이 입소문을 듣고 찾는다.
멋들어진 이름도, 럭셔리한 건물도 아니지만 이성당은 군산의 자존심으로 통한다. 엄선한 재료를 숙성시켜 수작업으로 하루 7,000여개의 빵을 만든다. 불티나게 팔린다고 계속 더 만들지도, 흔한 인터넷 홍보도 하지 않는다. 그래도 고객들이 알아서 찾아온다. 2ㆍ3호점을 내고 프랜차이즈 가맹점을 모집하라는 요청도 거절한다. 그러면서 대한민국 정부보다, 자본주의 역사보다 긴 67년째 3대를 이어 한 자리에서 빵을 굽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일본처럼 대를 이어 맛과 장인정신으로 굽는 더 많은 동네빵집을 보고 싶다. 그러려면 제2의 리치몬드과자점이 나타나지 않도록 서로 욕심의 그릇을 줄이고 보듬어야 한다. 그리고 제2, 제3의 이성당을 키워야 한다. 지금 전 세계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탐욕의 자본주의가 아닌 절제된 자본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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