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문의 이메일을 받은 사람은 반드시 자살한다. 이메일에 담겨 있는 동영상은 수신자 다음 차례에 죽게 될 사람의 끔찍한 자살 장면을 보여준다. 우연히 이 사실을 간파하고 조사하기 시작한 기자 도엽은 차례차례 죽음을 맞는 사람들을 추적하다 어떤 단체의 존재를 감지한다. 작가는 이메일을 통해 배달되는 죽음이라는 설정 속에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흔히 일어나는 일들을 소재로 채워 넣는다. 비만, 병, 스토킹, 금전적인 어려움, 빚, 가정 폭력, 학력 고민 등 우리가 지금 이 순간에도 앓고 있는 고민이 섬뜩한 공포를 부른다. 만약 이 모든 문제에서 벗어나 행복을 누릴 수 있다면?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누구 하나 낯설지 않다. 가정 폭력을 일삼는 가장, 약혼자에게 에이즈를 옮겨 받고 절망한 여자, 짝사랑하는 사람을 스토킹하는 여자, 아무리 노력해도 성적이 오르지 않는 학생 등이 달콤한 유혹에 빠진다.
공포 소설은 개인적으로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데, 이종호 씨의 그만 <이프>를 보고 반해버렸다. 이 작품은 스티븐 킹 못지 않게 무시무시한 필체과 작품 자체의 추리소설 같은 치밀함,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과 인간의 행복에 대한 욕망을 적나라하게 반영한 수작이다. 더운 여름, 열대야를 조금이나마 잊게 해준 시원섬뜩한 작품이었다. 영화로도 준비 중이라고 하는데, 이 또한 상당히 기대된다.
선우라는 한 인기 공포 소설가가 바다에 접한 호텔에 틀어 박혀 소설을 집필 중이다. 집필 도중 이메일을 살피던 그는 <스벵가리의 선물>이라는 기묘한 동영상 메일을 보게 된다. 사람이 자살하는 모습이 실린 끔찍한 동영상이다. 그 이후로 이메일은 선우뿐만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도 보내져 그들에게 죽음을 선사한다. 참혹한 자살이 이메일이라는 단서에 맞물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데, 자살에 큰 관심을 가지고 기사를 쓰던 도엽이라는 기자는 일련의 자살 사건에 관심을 가지고 사건을 추적해 나간다.
계속되는 의문의 죽음과 이성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현실이 등장인물들앞에 펼쳐진다. 더없이 행복한 인생을 만끽하던 그들이었지만, 어느새 그들은 죽음에 몸을 맡기고야 만다. 이 작품의 특징은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들은 기자인 도엽과 함께 일련의 기묘한 죽음에 대한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재미가 있고, 공포 소설 애독자들에게는 숨을 죽이고 미친듯이 읽어나가게 하는 힘이 있다고 생각된다. 스릴러적 요소와 추리소설적 요소가 이 소설에는 넘쳐난다. 마지막 페이지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이 작품의 등장인물들을 조금 더 살펴보자. 베스트셀러 작가가 갑자기 무명의 가난한 소설가가 되고, 행복을 만끽하던 여대생이 투신자살을 한다. 성적에 비관한 남학생은 전철에 몸을 던져 죽고, 짐승만도 못한 아버지에 농락당한 소녀가 마침내 자기를 사랑해주는 남자를 만난다. 죽을 동기가 있는 사람은 그렇다쳐도 이들은 왜 스스로 죽었을까. 기묘한 자살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서 사건을 조사하던 기자 도엽은 사건의 실마리에 서서히 접근하게 되지만, 그에게도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우게 된다.
이 작품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우리의 일상에서 볼수 있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모두 그들을 죽고 싶을 정도의 삶의 고통을 가진 사람들이다. 베스트셀러 작가에서 갑자기 조폭과 사채빚에 시달려 아내와 아들의 피눈물을 보게되는 작가인 선우. 뚱뚱한 얼굴과 몸매 때문에 사랑하는 이성에게 한 마디 말도 못하고 속으로 치명적인 상처를 입는 여대생. 성적만으로 아들을 판단하는 부모 때문에 자살을 결심하는 꽃다운 나이의 학생과 죽은 아버지의 망령에 시달리는 엄마와 딸이 입은 정신적 상처에 이르기까지, 작가는 일상 속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을 주로 다루면서, 무시무시한 죽음의 공포와 사회의 어두운 본모습을 결합하여 선명히 비추어 주고 있다. 이러한 평범한 선남선녀들의 죽음을 보여주면서, 작가는 우리 또한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암시하는 것 같았다.
요즈음의 소설들은 모두 반전을 강조하고 있고, 이 소설 또한 반전의 요소에 무게를 실은 것을 볼 수 있었다. 미스터리한 자살 뒤에 감춰진 진실의 실체는 참으로 사이코틱하고 무시무시한 충격을 가져다 준다. 인터넷, 이메일과 핸드폰이라는 우리 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재를 사용하여 지푸라기같은 단서조차 찾기 어려운 견고한 구성을 갖춘 이 소설은 참으로 멋진 호러 + 미스테리 + 스릴러라고 생각된다. 수박이나 맥주 한 잔과 함께, 더운 여름에 읽으면 더 없이 좋은 작품이다. 개인적으로 스티븐 킹 단편집보다 훨씬 더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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