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외국의 땅을 처음 밟은 것이 1981년 지금부터 25년전에 영국과 유럽의 일주를 위하여 유럽을 방문한 때이니 아마도 우리의 고등학교 동문 중에서는 가장 먼저 유럽의 일주를 한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그때는 해외 여행이 자유가 아니라서 반공교육과 신원보증서 8장을 써야 출국이 가능하였었다. 그후 미국은 1988년에 유학을 위하여 미국에 발을 디딘 이후에 올해까지 수차례미국을 방문했었다. 이로부터 세계30여개국 이상을 방문한 그 기록과 사료로 세계속을 완전 뒤집어 보는 연재를 시작하려고 한다. 오늘은 미국속 완전히 뒤집어보기 제 1탄으로서 미국의 대통령에 대하여 한 번 적어본다.
[미국의 탄생과 대통령]
미국은 우리가 알기로는 1620년에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영국을 떠난 청교도들이 만든 나라라고 알고 있지만, 사실은 이 이전에도 이미 영국인들이 방문을 하여서 개척을 시도하던 땅이었다. 그런데 이들이 떠난 곳은 영국이 아니고 히딩크의 나라 네덜란드였던 것이다. 언젠가 설명하겠지만 이로시작을 해서 미국의 공용어는 독일어로 될 가능성이 49%였다. 즉 초기에 국어를 정하는 투표를 하였는데, 51:49로 영어가 채택이 되었던 안타까운 순간이 있었다. 이러한 역사적인 일들은 다음에 이야기하고, 대통령의 역사를 보자
미국은 워싱턴이후 아들 부시까지 43대의 대통령이라고 말한다. 연임을 하면 표현을 할 때는 1대로 표현을 하는 것이다. 이 중에 연임을 4번이나 한 대통령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루즈벨트 대통령이다. 그 때문에 3번 연임 금지 조항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연임을 한 대통령은 아주 많아서 1-5대까지는 모두 연임을 한다. 그리고 최근에는 아들부시까지 연임을 한다.
그런데 아버지 부시와 아들부시 처럼 미국의 역사에서 아버지와 아들 또는 친척이 대통령을 한 경우가 몇 번 있었다.
1. 애덤스 집안 : 2대 존 애덤스(아버지) 와 6대 존 퀸시 에덤스(아들)
2. 해리슨집안 : 9대 윌리엄해리슨(할아버지)와 23대 벤저민 해리슨(손자)
3. 루스벨트집안 : 26대 T. 루즈벨트와 32대 F. D 루즈벨트
4. 부시집안 : 41대 조지부시(아버지) 43대 아들 부시(아들)
그런데, 집안이 한 경우나 연임을 한 경우는 많았지만 한 사람이 간격을 두고 당선이 된 경우에는 22대와 24대 대통령을 지낸 그루버 클리블랜드라는 사람이다. 이 사람은 연임에 실패한 후 미시시강 강에서 낚시로 소일하다가, 실의에 빠진 시골의 청년에게 꿈을 이루는 것을 보여주기 위하여 다시 상경을 하여서 당선이 되었다고 하는데 이 소년이 "톰소여의 모험"을 쓴 마크퉤인이라는 확인되지 않은 정보가 나에게 도달이 되어있어서 확인 중이다.
한 편 초창기의 대통령들은 애국심이 대단 했는지, 이들 5명중에 독립기념일인 7월 4일에 임종을 하는 특이한 현상이 벌어진다. 우연치고는 너무도 확률이 낮는 우연이 발생을 한 것이다. 그리고 미국하면 대통령의 선출 방법인데, 2001년에는 아들 부시가 얻은 표수는 적으면서도 대통령이 당선이 되는 혁명적인 상황이 발생되지만 사실은 이와 같은 경우가 23대 대통령 선거에서도 있었다. 22대와 24대에 걸쳐서 유일하게 2관왕을 차지한 클리블랜드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런데 많은 대통령 중에서 불명예 기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으니 그는 바로 워터게이트로 물러난 닉슨 대통령이다. 그는 미국 최초이자 현재까지는 유일하게 탄핵을 당한 대통령이다. 미국의 국민들은 닉슨의 도청보다는 안했다는 거짓말 때문에 탄핵을 했다고 한다. 즉 정직하지 않았다는 것인데, 닉슨에게 배울 점은 끝까지 시인을 하지 않은 그 지구력 바로 그 것이다. 그는 영원히 죽는날까지 인정을 하지 않아서 새로운 인간 승리로 알려지고 있다.
클리블랜드는 선거인단의 표수에서는 이겼으면서도 미국의 독특한 선거방식으로 희생이 되었던 것인데, 이 것이 다시 2001년에 발생하였던 것이다. 지금은 미국의 대통령이 세계의 대통령으로서 힘을 쓰는데, 사실은 이 전에는 더한 막강한 시대가 있었다. 1950년의 세계경제의 51%가 미국이었으니, 참으로 대단한 힘이었던 것이다.
오늘은 미국의 대통령을 돌아보는 맞보기 글인데, 다음에는 일본의 천황역사뒤집어보기로 오겠습니다.
동광 박관선
첫댓글 박관선의 세계속 뒤집어보기 연재 앞으로 많이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일본, 중국, 노르웨이 스위스, 이탈리아 편 등 이 계속 될 것입니다.
동광 박관선 동문! 기대되는 글이구만! 앞으로 관심을 갖고 올리는 글을 기다리겠음! --- 그리고, 동광처럼 업무나 여행차 세계를 두루 다닌 경험이 있는 동문이 여행 중에 겪었던 뒷얘기도 올리면 좋겠네! 유능한 우리 동문들은 이런 이야기거리가 많을 거라 생각되네!
동광, 잘 읽었다. 다음 글 기대한다.
goood
博學多識
연임 전통은 초대 대통령인 죠지 와싱턴이 3선, 4선 심지어 종신 대통령, 심지어 왕으로 추대하려는 주위의 권유를 뿌리치며 후대에 욕심부리는 대통령이 나서면 안되니 내가 모범을 보이리라 하면서 퇴임하여 만들어 졌고, 4선 대통령 루즈벨트은 2차 세계 대전으로 상하원을 압도적으로 장악한 민주당 정부가 비상시라고 밀어부쳐서 그대로 3선 4선 대통령을 만들다보니 횟수로 4선가 되어버린거 아닌가? 3선 4선에 전국적인 선거가 있었남? 그시절에 살아 보지 않아 잘 모르겠네. 물론 4선 직후 종전 전에 서거했지만 (재직 만 12년). 너무 훌륭해서 그 뒤를 잇는 후계자 양성에 소흘했다는 평 - 후임 투르먼은 외교 등에 젬병 -
태성군 이 거 미국에 사시는 분에게 실례를 했구먼. 잘 지내고 있겠지. 루즈벨트는 3선 때는 공화당의 윌키라는자와 붙어서 449대 82라는 압도적인 표차로 승리를 하게되지. 그리고 4선 때도 선거에서 기록으로는 선거인단수로 432대 99로 승리를 하나 1달만에 독일의 항복을 보지 못하고 사망을 하게 되었다는 기록이네.
6.25 전쟁 전후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지 않았을까? (투르먼은 부통령으로 루즈벨트 서거 후 대통령직 승계, 재선)
본래 대통령 명칭을 두고 많은 논의가 있었으나, 그중에서 언뜻 기억에 "His Highness"가 뭔가하는 안이 강력하게 떠올랐으나 당시 연방에는 의회나 정부도 없고, 예산운영권 조차 없는 등 아무런 권한이 없고, 단지 대륙회의 의장 정도의 직함이었기 때문에 워싱턴이 "President"룰 고집했다는 것 아이가??? 그후 수정 헌법 등을 통하여 연방에 권한이 생겼으나 심지어 소득세 징수권한 마저도 처음에는 연방에 권한이 없었다던가... 할말은 많은데...
이렇게 열띤 공방을 열심히 읽다보면... 미국사는 상식으로 알게되겠다! 동문 여러분 자녀들 중에 중,고생 있으면 회원가입하라구 그래! 여기가 바로 산 교육장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