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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 1월 / 운영위원회와 평신도 운영위원장 제도를 신설하고 초대 운영위원장에 김영남 집사를 선출하였습니다. 90년 3월 / 교회 아래쪽 방 두칸을 세내어(보증금 200만원, 월세 10만원) 교육관을 만들고 입주하였습니다. 교회 사무장으로는 김선호 집사님이 선임되었습니다. | |
" 교육관은 우리의 사랑방 " 봄 날 나른한 오후, 교육을 하다 보면 쉴 때도 있기 마련이죠. | |
90년 5월 / 제 2차 교회 수리 공사를 시작하였습니다. 비가새는 천장과 지붕을 뜯어내고 슬레트로 교체했으며, 교회 내부의 구조도 바꾸었습니다. 이민근 전도사, 조평호집사와 박재국 형제가 크게 활약하였습니다. | |
" 여기는 교회 지붕 위다. |
" 고집사님, 망치 거꾸로 들었어요 " 때론 열도 받겠죠. |
90년 5월 / 청년회를 개편하여 노동청년회(솔방울)와 제2청년회(우리 사랑이란 이름으로 만날 때)를 창립하였습니다. 각 청년회는 교회와 교육관으로 나누어 모임을 하였습니다. 교양교실 모임도 계속하였습니다. | |
" 단지 청년회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주일 예배가 끝난 후 청년회 모임을 가졌습니다. | |
90년 8월 / 한울림 교회 하계 수련회를 대성리로 다녀왔습니다. 수련장 한채를 세내어서 모처럼의 휴가를 마음껏 즐겼습니다. 그 푸르고 싱싱한 대자연 속에서 발견한 하나님, 그리고 우리들의 동지들. | |
" 일광욕 시간이에요. 방해하지 마세요 " '선녀와 나무꾼' 얘기 아시죠 ? | |
90년 10월 / 구로민중교회연합 2회 체육대회에서 종합우승을 하였습니다. 인애교회와 사랑교회가 강력한 라이벌이었지만 우리 한울림의 단결된 힘에는 어쩔 수가 없었던가 봅니다. 이날 우리는 우리의 저력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 |
" 승리의 깃발을 휘날리며 - 체력은 곧 교회력 ! " 정말 열심히 뛰고 열심히 당겼습니다. (깃발을 든 사람은 정장희 집사) | |
90년 11월 / 신희덕 전도사님이 탁아방 원장으로 취임하셨습니다. 이후 이지은, 원진숙, 박종숙, 강숙희 선생님께서 수고하셨습니다. 이 달에는 추수감사주일도 있었습니다. | |
" 올 해도 많은 축복을 주셨어요 " 생각하면 감사한 일 뿐인 것 같습니다. | |
91년 1월 / 제 2대 운영위원장에 조평호 집사님이 선임되었습니다. 노동청년회와 제2청년회를 청년회와 청장년회로 개편하였습니다. 동계 수련회를 우이동 사슴목장으로 다녀왔습니다. | |
" 야호! 북한산에 오른 한울림 사람들 " 수련회 프로그램 중 북한산 등반이 있었어요. | |
91년 3월 / 이승봉 전도사님이 목사 안수를 받으셨습니다. 이제는 도사님이라고 못부르게 되서 매우 아쉬웠답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교회가 세워진지도 만 4년이 다 되어갑니다. 그동안 함께 웃고 울며, 민족과 민중 현실에 가슴 아파하며 하얗게 지새운 밤들이 목사님을 만들었습니다.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참 목자가 되실 것을 믿습니다. 91년 4월 / 교육관을 폐쇄하였고 공부방 설립에 대해 논의를 시작하였습니다. 91년 5월 / 강경대군의 죽음으로 벌어진 민주화 대투쟁에 함께 참여하였습니다. 91년 9월 / 노동자 학습 프로그램을 실시하였습니다. 91년 11월 / 한울림 청년 중에 김영남, 김명선 집사가 처음으로 결혼을 했습니다. | |
" 한울림에서 맺은 인연, 평생 갈꺼에요 " 교인 가운데서 처음으로 결혼한 커플이 생겼습니다. | |
91년 12월 24일 / 탁아방 어린이들과 성탄절 축하 행사를 가졌습니다. 탁아방을 시작한지 3년이 좀 넘었는데 식구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동안 수고 많이 하셨던 황은희 선생님이 사임하고 새로 신희덕 전도사님이 원장이 되셨구요. 그동안 탁아방을 거쳐간 아이들도 꽤 된답니다. 탁아방 어린이들의 축하잔치가 끝난 다음 교인 모두가 선물을 한아름씩 안고 새벽송을 돌았답니다. | |
" 메리 크리스마스 " 탁아방 꼬마들의 손에는 제각각 다른 선물들이 쥐어져 있습니다. | |
92년 1월 / 나미혜전도사님이 교육전도사로 임직하였습니다. 3대 운영위원장에는 이종칠 집사님이 선임되었습니다. 공부방 설립을 결의하고 헌금을 시작하였습니다. 92년 3월 / 이경욱 형제의 누이 동생 심장 수술을 위해 헌금하여 지원하고 위로했습니다. 92년 5월 / 탁아방 식구들이 봄 소풍을 다녀 왔습니다. | |
" 내 김밥에는 소시지가 아니라 햄이 들었다 ? " 보라매 공원으로 봄나들이를 갔었죠. | |
92년 6월 20일 / 지역소식지 철산의 벗을 창간하였습니다. 92년 9월 / 이종칠 집사님이 운영위원장을 사임하고 김영남 집사님이 대행하였습니다. 92년 10월 / 한국민중교회운동연합 주최로 복음성가제가 한신대 오산캠퍼스에서 있었습니다. 전국의 민중교회 형제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시간입니다. 우리 목사님이 한민연 총무로 이 모임을 준비했습니다. 우리 교회는 구로민교 연합성가대에 참여하였습니다. 93년 1월 / 4대 운영위원장으로 김영남 집사님을 선임하였습니다. 나미혜 전도사님이 교육전도사 직을 사임하였습니다. 93년 3월 / 철산 아파트 나동 404호를 보증금 600만원, 월세 20만원에 임대하고 공부방을 설립하였습니다. 원장에 이승봉 목사님, 실무교사에 남일량 선생님이 수고하였고 여러분의 자원봉사 선생님이 함께하였습니다. 지역내의 호응이 컸습니다. | |
" 라면을 먹는 미래의 꿈나무들 " 매일 공부방이 있는 아파트 4층까지 올라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 |
93년 5월 / 숭실대에서 구로민교 체육대회가 있었습니다. 한울림 공부방 학생들과 함께 참여 했었습니다. | |
" 이젠 몸이 옛날같지 않아요 " 구로지역 민중교회 체육대회에 참석해서 단체 사진을 찍었습니다. | |
93년 6월 / 함석우 전도사님이 공부방 실무교사로 임직하였습니다.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보기에 좋았습니다. 93년 8월 / '남북인간띠 잇기 대회'에 다녀왔습니다. 95년을 민족 해방, 희년의 해를 선포하고, 남북 기독자들이 연대하는 행사의 일환으로 계획되었습니다. 북쪽의 조선 기독교도 연맹이 마지막 순간에 불참한 것이 아쉽습니다. | |
'남북인간띠잇기' 대열에 참여한 한울림"교우들의 모습. 손에 손 잡고 벽을 넘어서 " 후덥지근한 여름 한나절, 북쪽을 향한 사람들의 손은 끊일줄 몰랐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