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황성공원>내 [독산]위 [김유신 장군 동상] 건립문
[ 건 립 문 ]
박정희 대통령 각하께서 명각 휘호하신 이 우람한 기마상은 1975년 4월 17일 동상을 웅장하게 다시 만들어 방향도 바꾸어 세우라는 분부를 받들어 신라삼국통일의 주역이신 김유신 장군의 위훈을 오늘에 되새기며 온 겨레의 호국정신을 일깨우고 조국의 평화통일 위업을 이룩해 나가는 벅찬 앞길에 찬연한 횃불을 밝혀 길이 후세에 전하고자 여기 화랑의 정기 넘치는 서라벌 옛 터전에 자리잡아 멀리 북녘을 향해 우뚝 세우다.
1976년 7월 15일에 기공하여
1977년 7월 1일에 준공하다
세운이 경상북도
만든이 경주 김만술
[김유신 장군 동상 비명]
오천 만 우리 겨레의 가장 큰 소원과 공통된 염원은 오직 국토 통일이다. 더욱이 북한 공산도배들의 발길이 분단된 조국의 강토에 피를 발랐고 그대로 계속하여 적화만을 노리는 그들의 악랄한 도발에 직면한 오늘, 우리는 1천 3백 년 전에 이룩했던 삼국통일의 역사에서 교훈을 찾고 그 날의 원훈이었던 김유신 장군의 구국정신을 길이 기념하기 위하여 월성 옛터에 동상을 세우고 행적을 적어 우리들의 귀감을 삼으려 한다. 장군은 가락국 시조 수로왕의 12대손이요 마지막 구해왕의 증손이며 조부 무력은 진흥왕때 신라로 들어와 백제군을 무찔러 공로를 세웠고 아버지는 벼슬이 소판에 이르렀고 대량군 사도독 서현공이며 어머니는 진흥왕의 아우 숙흘종의 따님으로 지체 높던 만병부인인데 일찍이 아버지 서현공이 태수로 갔던 만노군지금 진천에서 태어나니 때는 신라 제 26대 진평왕 12년이요 서기 595년 이었다. 15세에 화랑이 되어 무리들을 이끄니 그들을 일러 용화향도라고 했고 17세부터 삼국통일의 큰뜻을 품고 중악 지금 단석산 석굴로 들어가 심명에게 영감을 얻고 정신을 연마하며 검도와 무술을 닦았다.
35세에 낭비성 지금 청주에서 고구려군을 무찔러 이름을 떨쳤고 그 뒤 50세 때에 상장군이 되어 백제의 일곱성을 쳐서 크게 이겼으며 개선하여 돌아왔다가 다시 국경의 급보를 들고 그대로 말머리를 돌려 가족들도 만나지 아니하고 집 앞을 그냥 지나 전지를 향해 달려나갔다. 다시 54세에 대야성 지금 합천에서 백제 군사를 크게 무찌르는 등 무릇 30여년동안을 싸움터에서 용맹을 떨치고 공로를 세웠지마는 자나 깨나 가슴에 맺힌 영원한 오직 하나 삼국을 통일하는 그것이었다. 외교 방면의 태종무열왕과 군사 방면의 김유신 장군이 서로 짝을지어 삼국통일을 이루기 위해 신라와 당나라의 연합군을 결성했던 것이니 그것은 다만 하나 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신라의 정책이었던 것이다. 마침내 때는 왔다. 태종무열왕 7년 장군의 나이 66세 되었던 해에 먼저 황산벌판 지금 연산에서 백제의 명장 계백장군과 싸워 이긴다음 다시 나당연합군이 수륙으로 진공하여 백제 수도 사비성을 함락시켜으니 마지막 임금인 의자왕 20년 서기 660년 가을 7월 18일 이었다. 또다시 때는 왔다. 문무왕 8년 장군의 나이 이미 74세 되던 해에 고구려 정벌의 모든 계획을 세우고 또 왕 이 안심하고 진격할 수 있도록 수도에 머물러 후방을 담당하고 아우 흠승과 생질 김인문등을 출정시켜 문무왕의 통솔아래 당군과 더불어 협력하여 평양성을 진격함으로써 드디어 고구려마저 28왕 705년의 역사를 누리고 끝을 맺으니, 마지막 임금인 보장왕 27년 서기 668년 7월 21일이었다. 이같이 하여 신라는 역사적 숙제였던 삼국통일의 대사업을 성취시켜 단일 민족으로서 북방 민족을 대항할 수 있는 힘을 갖추게 되었거니와 이에 대한 사업들이 모두 다 장군의 손에 의하여 이뤄진 것이기 때문에 문무왕은 장군에게 태대각간의 높은 직함과 식읍 오백호를 내렸다. 그로부터 다시 5년이 지난 뒤 문무왕 13년 서기 673년 여름 6월 장군은 병석에 누워 문병차 왕림한 왕에게 간곡한 최후 유언을 드리되 부디 소인을 멀리하고 군자를 가까이 하사 나라를 든든히 하소서 하고 마침내 7월 1일에 대영웅이 향년 79세로 세상을 여의자, 문무왕은 통곡하며 특별한 부의로 비단 일천필과 벼 2000석을 내리고 모든 국민들의 애통속에서 성대한 대식으로 금산원에 장례 모셨는데 부인은 태종무열왕의 셋째 공주 지소부인이요 오남 사녀를 두었으며 가신지 일백 칠십 이년 뒤 흥덕왕때에 이르러 흥무대왕으로 추봉하니 어찌 역사를 창조한 큰 인물 앞에 바치는 큰 영광이 아니겠느냐!
슬프다 옛날 피로서 이룩한 통일 조국이 오늘에 다시 이같이 나뉘다니 우리 이제 단결과 의기의 화랑정신을 받들어 국토 통일의 맹세를 짓자.
덕지용 다 갖추신 화랑정신의 표상이며 삼국통일로 역사를 창조한 민족의 어버이 우러러 받드옵니다. 우리들의 힘이 되소서
서기 1977년 9월 7일
전주 이은상 글
안동 김충현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