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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스크랩 곤지암전투(6사단청성부대 19연대3대대10중대)(현재:6사단신교대)
김치구 추천 0 조회 257 11.05.31 10:4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창의의 원칙

초기 6사단의 곤지암리전투

※ 출처 : 교육참고 90-30-1, 『전례집(1)』,1997.8.30, pp.517~527  

1. 전투개요

   1950년 5월 25일 북한군의 남침시 중동부 전선에서는 적 3개 사단이 춘천 및 홍천을 탈취하기 위해 노도와 같이 밀려들었다.

   이를 저지하기 위해 아 보병 제6사단은 현리로부터 가평 북방에 이르기까지 84km에 포진하였는데, 우일선인 홍천 북쪽엔 제2연대가, 좌일선인 춘천 북쪽엔 제7연대가, 또한 사단 사령부와 예비인 제19연대는 원주에 위치하고 있었다.보병 제6사단은 춘천전투와 홍천전투에서 선전(善戰)하여, 적 3개 연대와 전차11대를 격파시킴으로써 북한으로 하여금 3일간의 시간을 허비하게 만들었다. 그후, 육군본부의 전선정리를 위한 부대이동 명령을 받고 제6사단은 원주를 거쳐 충주로 철수하였다.

   제19연대는 6월 30일 횡성서 집결을 완료하고 부대 정비중, 7월 1일 24:00 사단명령에 의하여 이천으로 이동, 곤지암리에 이르는 낮은 구릉지대에 동(東)에서 서(面)로 제1, 제2, 제3대대의 순으로 진지를 점령하였다.

   본 전투는 1950년 6월 28일에서 7월 3일까지, 경기도 이천에서 아군 보병 제6사단 제19연대 제3대대 제10중대와 북한군 보병 제2사단 예하 병력과 전개한 전투로서 중대장의 창의적인 전투지휘, 즉 적절한 경계대책의 강구는 물론, 작전 지역내에 있는 부락의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소대장에게 민간복을 갈아 입혀 정보를수집 하는 등, 가용한 모든 방법을 작전에 활용, 완전한 승리를 한 성공사례이다.

2. 전 훈

    가. 중대장의 능동적인 전투지휘 : 중대장은 지형과 적 전술을 고려하여 194고지를 점령하자마자 2개 분대를 차출하여 서울과 양평으로부터 예상되는 접근로에 추진, 잠복을 명했다. 그 후 한참 있다가 연대장의 특별지시의 일환인 전방 및 좌측방에 대한 경계대책을 강구하라는 명령을 접수하게 된다. 상급지휘관의 지시 접수이전에 김대위는 창의적인 사고(思考)로 경계대책을 먼저 세워 시행하였던 것이다. 또한 그는 곤지암리 부락의 실태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하여 제1소대장 김소위로 하여금 민간복으로 갈아입혀 정찰을 실시하도록 하여, 그 결과를 차후 전투를 하는데 중요한 지침으로 활용하였다.

    나. 골육지정(骨肉之情)의 지휘통솔 : 훗날 중대장 김두일 대위는 당시를 회고하기를 "그때 전투는 자신감을 가지고 지휘했다. 왜냐하면 나는 부하들과 1년 여동안 공비토벌을 하면서 침식을 같이하며 싸워왔기 때문에 그들 하나하나의 성격을 알 수 있었고 또 그들도 나를 형같이 따랐다. 만일에 한 사람이라도 나의 의도에 어긋나는 행동을 취했다면 기습은 실패했을지도 모른다. 평소의 훈련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뼈져리게 느꼈다." 당시 한국군은 창군 이후 열악한 장비에 부족한 훈련 등 북한군을 상대하기에는 너무 열세였음이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함은 물론, 공비토벌을 통한 경험의 축적, 중대장을 믿고 따르며 골육지정으로 뭉쳐 1년여의 훈련으로 다져진 팀웍(Team Work)으로 성공적인 전투를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다. 주도면밀(周到綿密)한 계획과 과감한 실시 : 적 2사단은 승승장구인 여세를 몰아 자신만만하게 경계대책도 없이 내려왔다. 그러나 적이 예상치 못한 기습전으로 병사들은 총만 쏘면 되었고 적은 죽기만하면 되었다. 중대장은 적 발견보고를 받은 뒤부터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우선순위에 따라 지휘 및 명령을 하는 한편, 기습할 계획을 구상했다. 그는 적들이 남하하는 길목을 완전히 봉쇄해놓고 만일의 상황에 대비하여 철수순서까지 지시하는 치밀성과 여유를 가졌다. 중대장은 두번째 적을 맞이했을 때 침착하면서도 신속하게 전장을 정리하고 그들을 함정에 유인하여 과감히 공격에 나설 수 있었던 것은 상하가 일치된 강인한 훈련과 전투지휘의 결과라 할 수 있다.

    라. 빈틈없는 경계대책(警戒對策) : 연대장 민중령은 연대가 진지를 점령하자마자 각 대대에 지시하여 철저한 경계대책을 강구하였기에 기습의 효과를 최대한 증대시킬 수 있었다.  연대 수색대장 박준수 소위와 제10중대에서 나간 잠복조의 경우, 적을 먼저 발견한 사실도 중요하지만 이보다도 침착하게, 그리고 적절한 상부의 조치(연대장이나 중대장에게 보고하여 조치를 기다림)를 인내로 기다려 끝까지 적을 접촉하여 진내로 끌고 들어와 완전 포획섬멸의 계기를 만들어준 사실이 더욱 중요하다." 전투에 실패한 지취관은 용서 받을 수 있으나 경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 받을 수 없다."라는 말과 같이 경계임무 수행중인 보초나 잠복조, 그리고 첨병 등은 전투의 승패를 좌우하는 중차대한 책임과 사명이 있음을 인식하여 평소부터 간부는 경계의 중요성을 교육훈련을 통하여 부하에게 체질화(體質化)시켜서 유사시 이상없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마. 부하들에게 용기를 준 지휘관의 위치선정 : 제10중대장 김두일 대위는 가장 위험한 소대와 같이 전장터에 서지 않았던들 사격통제 및 적절한 전투지휘를 제때에 할 수 없었음은 물론, 두번째 적이 남하했을 때 신속한 상황판단과 지휘조치를 기대하기 곤란했을 것이다. 특히, 누구에게나 가장 소중한, 목숨을 두려워 하지 않고,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안전지역을 과감히 벗어나 사선 앞에서 진두지휘하는 중대장을 본 병사들은 용기가 솟아나고 안도감이 생겨, 흔히 전장에서 발생하기 쉬운 고독과 공포 등의 위험을 불식(佛械)할 수 있었다.

   여기서 우리는 전장에서 초급장교의 진두지휘와 솔선수범(率先垂範)이 얼마나 중요하고 승리에 필수적(必鎭飾)인가를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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