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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산림 대법회 제1강 - 2 (2010. 03. 01 )
世主妙嚴品 第一之一
一. 始成正覺
二. 莊嚴 - 1. 地의 莊嚴
화엄경 1권을 펼쳐 주시기 바랍니다.
이 화엄경이 어떻게 구성이 되었는가 하면, 맨 처음에 뚜껑을 열고 간행사. 일러두기 다 넘기고, 전체가 4권으로 되어있는데, 1권에는 전통 권수. 화엄경을 80권으로 했을 때 여기는 81권으로 됐어요. 왜냐?
보현행원품까지 제가 끼워서 제대로 교재를 만든다고 그래서 81권입니다만 전통적으로는 80권입니다. 이것이 옛날 목판본으로 딱 한 짐입니다.
장정이 짊어지면 딱 한 짐입니다. 옛날 우리 강원에서 공부하던 그 목판본 화엄경이요. 그런데 지금은 4권으로 토까지 달고 사이사이 과목까지 붙여가면서 이렇게 편집이 되었는데요. 전통 권수하고 맞추어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전통 권수를 다 이렇게 기재를 했습니다. 그 다음에
한 장 넘기면 제 2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제 2권에도 이렇게 되어있고, 그 다음
제 3권에도 이러한 내용으로 되어있고, 제 4권에도 이러한 내용으로 되어있습니다. 이것이 워낙 방대하고 내용이 복잡다단하니까 찾으려면, 이 목차를 보고 찾으려면 ‘무슨 품 어디를 보자.’하면 몇 권에 몇 페이지부터 있구나 하는 것을 그냥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이렇게 했습니다.
그 다음에 제 1 권 목차해서 이것은 細目(세목)입니다.
아주 자세한 목차를 현대적으로 정리를 했는데, 이 정리는 저의 자의로 했는데, 사실은 먼저 연구하신 청량국사, 청량스님의 과목과 통현장자라고 하는 분의 과목을 같이 참고를 해서 제가 현대적으로 많이 생략하면서 이렇게 과목을 달았습니다. 역대 화엄경을 연구한 소초로써 양대 산맥을 치는데 스님으로서는 청량국사, 유명한 오대산. 오대산 가보셨지요?
중국에 오대산, 거기에 주석하시면서 화엄소를 썼던 거기 청량산 아닙니까?
청량국사가 쓴 화엄소초가 있고, 그 다음에 이 통현장자라고 해서 이 분은 거사분입니다. 거사분이 쓰신 통현 장자 華嚴論(화엄론). 하는 것이 있는데 이것이 탄허스님에 의해서 번역이 다 완료가 됐었지요. 이것이 또한 화엄경을 해석하는 아주 뛰어난 내용입니다.
아주 시원시원하게 해석을 참 잘 했어요. 청량스님의 화엄경해석은 아주 미문으로, 아름답게 그리고 아주 세세하게 해석을 해서 강원에서는 주로 청량소를 보지요. 그 두 분의 과목을 참고를 해서 이렇게 했습니다.
大方廣佛華嚴經 卷 第一
唐于闐國(당나라 우전국) 三藏沙門(삼장사문)
實叉難陀 譯(실차난타 역)
韓國(한국) 金井山沙門(금정산사문) 無比(무비)
懸吐科目(현토과목)
序分(서분)
毘盧遮那의 成佛(비로자나의 성불)
擧果勸樂生信分(거과권락생신분)
第 一會 六品 說法(제 일회 육품 설법)
一, 世主妙嚴品(세주묘엄품) 第一之一
一, 始成正覺(시성정각)
如是我聞(여시아문)하사오니 一時에 佛이(일시 불)
在摩竭提國阿蘭若法菩提場中(재마갈제국아란야법보리장중)하
사 始成正覺하시니라
二, 莊嚴(장엄)
1, 地의 莊嚴
其地(기지)가 堅固(견고)하야 金剛所成(금강소성)이어든
上妙寶輪(상묘보륜)과 及衆寶華(급중보화)와
淸淨摩尼(청정마니)로 以爲嚴飾(이위엄식)하고
諸色相海(제색상해)가 無邊顯現(무변현현)하며
摩尼爲幢(마니위당)하야 常放光明(상방광명)하고
恒出妙音(항출묘음)하며 衆寶羅網(중보라망)과
妙香華纓(묘향화영)이 周帀垂布(주잡수포)하며
摩尼寶王(마니보왕)이 變現自在(변현자재)하며
雨無盡寶(우무진보)와 及衆妙華(급중묘화)하야
分散於地(분산어지)하니라 寶樹(보수)가 行列(항열)하야
枝葉光茂(지엽광무)어든 佛神力故(불신력고)로
令此道場一切莊嚴(영차도량일체장엄)으로
於中影現(어중영현)하니라
거기에 보면 序分 毘盧遮那의 成佛이라고 하는 것이 나오네요.
서분하면 뒤에 본분이 있고 正宗分(정종분)이지요?
그 다음에 流通分(유통분). 이렇게 세 단계로 나눴을 때에 하나가 서분이고, 그 다음에 毘盧遮那의 成佛했을 때는 1강-1에서 제가 설명한 비로자나의 성불ㆍ보살의 성불ㆍ중생의 성불. 이렇게 세 단계로 나눴을 때에 한 과목이 비로자나의 성불이고, 그 다음에 擧果勸樂生信分 하는 것은 도표에서 보았듯이 信ㆍ解ㆍ行ㆍ證(신해행증). 네 단계로 나눴을 때에 그 중에 한 내용이 거과권락생신분이다. 이것이 이제 해당되는 장소에 가면 다 나옵니다.
그래 第 一會 六品. 이렇게 해서 전체를 머릿속에 그릴 수 있도록 이렇게 했습니다. 그래서 맨 첫 품은 世主妙嚴品 第一之一 해서 始成正覺. 莊嚴. 이런 식으로 해서 쭉 나가는데 과목 페이지하고 본문 페이지하고 페이지 수가 달리 되어있습니다. 넘겨서 細目이 이렇게 많습니다. 한 권의 자세한 과목이요. 이것 사실 상당히 생략하고 과목을 잡았는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많습니다. 그래도 공부하는 데는 아주 충분히 참고가 잘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 다음에
과목을 51쪽까지 넘기면 새로 1페이지가 나옵니다.
이제 비로소 大方廣佛華嚴經 卷 第一 전통적으로는 제1권이라고 하지 않고, 卷 第一 이라고 이렇게 해서 나오는데, 이것이 화엄경의 첫 시작입니다. 거기 보면 唐于闐國(당나라 우전국) 三藏沙門(삼장사문) 實叉難陀 譯(실차난타 역). 이렇게 했지요? 인도 말, 싼스크리스트 어 로 된 것을 실차난타라고 하는 분이 번역을 한 것입니다. 이것이 화엄경의 本이 몇 가지가 있는가? 이런 것들도 나중에... 한꺼번에 서론에 그런 것을 다 이야기하면 지루하니까 그래서 그런 것은 사이사이에 화엄경의 몇 가지 본이 있는가? 이런 것들도 이야기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 것을 다 뒤에 이야기하기로 하고, 일단은 우리가 공부하는 이것은 강원의 교재이고, 또 우리나라에서 제일 많이 보는 80권 본 화엄경. 또는 新譯(신역)화엄경. 새로 번역 했다 해서 신역화엄경. 또 당나라에서 번역 했다 해서 唐譯화엄경. 이렇게도 표현하는데 이것은 三藏沙門 實叉難陀라고 하는 인도 사문이 번역을 했습니다.
于闐國이라고 하는 여기가 화엄경을 편찬한 곳이다. 라고 이렇게 알고 있습니다. 우전국은 지금은 화전이라고 표시가 되어있는데, 저기 위구루자치국. 중국의 위구루 자치국 서쪽에서 서남쪽으로 내려가면 지금은 和田(화전)이라고 표시 되어있는 그 도시입니다. 바로 그 도시에서 화엄경이 결집이 되고 완성이 되었다. 이런 연구가 많이 있습니다. 또
이 實叉難陀라는 분이 그 나라, 그 지역 사람이고요. 중국의 이쪽에 당나라 때 예를 들어서, 서안이라든지 아니면 이쪽, 예를 들어서 동쪽에서 보면 그쪽만 하더라도 전부 서역입니다. 서역.
인도라고 표현할 수도 있을 정도로 西域(서역)이거든요.
지금은 중국에 해당 되지만, 이 분도 과거에 번역한 60권 본이 있었는데, 말하자면 측천무후가 화엄경을 좋아해가지고, “완역본이 있다는데, 완전한 화엄경이 있다는데 그것을 좀 가지고와서 새로 번역하면 어떻겠는가?” 그 명을 받고, 완전한 화엄경을 가지고 중국에 와서 번역한 이가 實叉難陀라는 분이 번역을 했습니다. 개인 인물에 대한 이야기도 다른 기회에 좀 자세히 설명 드리기로 하고요. 그 다음에
제가 懸吐(현토). 토 달고 과목을 새롭게 정리를 했는데, 전통 강사가 이것을 보더니 정말 깜짝 놀라더라고요. “화엄경정리를 이렇게 잘 해놔서 이것은 그저 먹기구나!” 그런 이야기를 하는데 그것은 근거가 뭔가 하면,
옛날 우리가 공부할 때 木版本(목판본)이라고 하는 것은 새카만 한문만 꽉 차있어요. 그리고 어디에서 시작하고 어디에서 끊어지는지 전혀 분별이 없습니다. 또 그 단락이 나눠져 있어도 그 단락의 내용이 도대체 뭔지, 간추리면 그것이 무슨 뜻인지 전혀 분별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여기는 그 내용을 어떤 데는 그저 여덟 자. 그 다음에
열 자. 한 줄. 또는 두 줄. 심한 경우는 한 페이지. 이런 식으로 그 내용을 단락을 나누고, 그 내용의 뜻을 과목으로 딱 이렇게 올려가지고, 이해하기 쉽도록 이렇게 새롭게 편찬한 것이 바로 우리교재 이 과목입니다.
그래서 木版本만 보던 사람이 깜짝 놀란 적이 있어요.
이것을 제가 책을 보여줬더니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는가?” 하고 그랬는데 저도 참 이것 하느라고 정말 공부도 많이 됐지만, 애도 많이 썼습니다. 제가 여러 가지 책, 한 30여 종류의 책을 냈는데 그 중에서 가장 공들었던 책이 바로 ‘이 책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사실은 그렇게 공을 많이 들인 책입니다. 그만치 제 공부는 많이 됐겠지요. 그렇게 해서 과목을 정한 것인데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서툰 점도 있고, 또는 틀린 곳도 있을 것이고 하지만 참고로 ‘아, 이런 내용이구나.’ 이렇게 알면 그 단락, 단락의 뜻을 파악하는 데는 상당히 도움이 되리라고 하는 생각을 합니다.
이 품이 “39품” 그랬지요?
三十九品圓滿敎(삼십구품원만교) 諷訟此經信受持(풍송차경신수지).
우리가 약찬게를 하는데 그랬고, 늘 평소에도 외웁니다만, 첫 째품 이름이 世主妙嚴品(세주묘엄품). 이렇게 됐어요. 世主라고 하면 세상의 주인이라는 말입니다. 세상의 주인들이 妙嚴. 아름답게 장엄했다. 그랬어요.
그럼 구체적으로 세상의 주인이 아름답게 장엄했다. 바로 이 자리에는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개인의 승려생활입니다. 개인의 인생입니다.
어떻든 간에 바로 이 자리에서는 그 나름대로 전부 자기 몫을 하고 있고,
제 자리에 앉아 있고, 자기 인생 살아가는데... 다 그 분의 입장에서 보면 전부 세상의 주인입니다.
내가 중심이잖아요. 다 내가 중심인 겁니다. 내 중심으로 세상은 이뤄져있습니다. 어디 사람만 그렇습니까? 모든 존재가, 頭頭物物(두두물물)이 전부 자기중심입니다. 그래서 다 잘 났어요. 우리는 그것을 인정해줘야 됩니다. 그것을 인정해줘야 돼요. 벼가요. 우리는 쌀 중심으로 보니까 그 벼를 싸고 있는 껍질, 겨라고 그러지요. 겨는 쓸데없는 것으로 생각하지요. 겨가 없어 보십시오. 그 쌀이 존재할 수 있습니까? 겨의 입장에서 보면 겨가 주인입니다. 겨가 주인이라고요. 쌀의 입장에서 보니까 쌀이 주인지요.
그것만 그렇습니까? 저~ 밑에 있는 보이지도 않는 뿌리. 뿌리 없으면 어떻게 쌀이 맺힙니까? 그 뿌리가, 벼의 뿌리가 주인인 겁니다.
그러나 잎의 입장에서 보면, 벼의 잎의 입장에서 보면 잎에서 태양을 받아들여 갖고 거기에 온갖 작용을 해서 쌀이라고 하는 소중한 곡물을 만들어 내는데, 잎이 그 작용을 하지 않습니까? 잎 없으면 쌀이 안 됩니다.
잎이 주인이지요. 잎이 주인이라고요. 그와 같이 이 화엄경은 새로운 시각에서 불교를 이해하고 인생을 이해하고, 그리고 세상을 이해해야 한다 하는 그런 입장에서 볼 때 이 世主. 세상의 주인이 아름답게 장엄하고 있다 하는 것은 사람은 사람대로ㆍ동물은 동물대로ㆍ식물은 식물대로ㆍ광물은 광물대로 예를 들어서 지진. 지진입장에서 보면, 사람입장에서는 피해가 크지만 지진입장에서 보면 기지개 한 번 크게 켜는 겁니다. 사람이 아무리 많이 다치고 피해를 주더라도 지진입장에서 보면, 아주 멋진 기지개 한 번 켠 겁니다. 그런 거라고요. 그렇게 이해해야 됩니다. 그래서 그 나름대로 사물이나 사건이나 전부 이 세상을 아름답게 장엄하고 있는 것이다. 이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약찬게에 보면 그저 신장들 이름.
主風神(주풍신)ㆍ主空神(주공신)ㆍ主晝神(주주신)ㆍ아수라ㆍ가루라ㆍ긴나라ㆍ마후라가ㆍ야차왕ㆍ별별 이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대표 되는 것만 열거를 했습니다. 여기에 뒤에 곧 다 나오지만, 약찬게라고 하는 것이 화엄경을 이해하는 하는 정말 참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약찬게를 하나씩 돌렸는데요. 성을 맡은 신ㆍ산을 맡은 신ㆍ약을 맡은 신ㆍ물을 맡은 신ㆍ바람을 맡은 신ㆍ그 다음에 어떤 방향을 맡은 신ㆍ달이면 월천자ㆍ태양이면 일천자ㆍ 이 세상에 존재하는 아주 중요한 것들만 골라서 이 세상의 주인이다. 라고 표현을 하면서 이 세상은 그들이 그렇게 아름답게 장엄하고 있다.
이런 뜻으로 정말 화엄경을 압축하고 압축해서 약찬게로 간략하게 편찬한 그런 게송 속에... 그 쓸데없이 왜 그 신장들 이름만 그렇게 많이 열거 했겠습니까?
그 신장들 이름 하나, 하나 독립된 그 주체. 그 주체적인 입장에서 보면 그대로가 화엄세상이다. 이것을 우리가 제대로 이해했을 때, 인생을 정말 보람 있게 살고 가치 있게 사는 것이다. 이 뜻입니다.
이 世主妙嚴品이 상당히 양이 많거든요. 상당히 많은 양인데 이러한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참 근사하지요? 頭頭物物 모두가 주인이고 중심이다. 그 입장에서 보면 모두가 주인이고 중심이다. 하는 그런 뜻에서 그들이 세상을 이렇게 아름답게 꾸민다. 그럼 화엄경입장에서 보면요? 뭐 잘못 됐다. 옳다. 이거는 있어야 되고, 이거는 없어야 되고 이런 것이 없습니다. 일등ㆍ꼴찌가 동격입니다. 일등하고 꼴찌가 同格(동격)입니다.
담을 쌓는데 큰 돌 가지고 쌓다가 나중에 작은 돌이 필요해요.
작은 돌이, 마땅한 돌이 없으면, 큰 돌을 깨 가지고 작은 돌을 만들어서 밑에 바칩니다. 그것 뭐가 중요합니까? 작은 돌이 중요합니까? 큰 돌이 중요합니까? 그 값은 똑 같습니다. 그 중요성은 똑 같은 겁니다.
아무리 작은 돌이라 하더라도 그 큰 돌하고 중요성은 똑 같은 겁니다.
우리가 이렇게 이해하고 인생을 살자 하는 것이 이 화엄경의 주된 뜻이다. 간단하게 생각하면 그렇게도 볼 수가 있다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단순하게 ‘아, 화엄경은 또 그런 것이구나.’ 하고, ‘화엄경공부 다 끝났다.’ 하고 이렇게 이해하면 그것은 넌센스지요. 그 다음에
첫 제목이 始成正覺(시성정각)이라.
불교는 무엇으로 부터 시작 했지요? 부처님탄생으로 부터요? 천만에요.
깨달음으로 부터입니다. 세상에는 왕자도 많습니다.
왕자의 탄생은 역시 많습니다. 그렇다고 불교가 있는 것은 아니지요.
불교는 오직 깨달음으로 부터 시작했다. 그 첫 마디가 始成正覺. 비로소 정각을 이루다. 비로소 불교라고 하는 세계가 이로부터 펼쳐졌다. 거기에 우리는 한 사람, 한 사람 2700년이 지난 이 시간에 우리는 거기에 전부 이렇게 동참해서 그 불교의 세계. 始成正覺으로부터 펼쳐져 있는 그 많고 많은 넝쿨 속에 우리는 한 일원으로 이렇게 동참하고 있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법당이다ㆍ무슨 불상이다ㆍ불교미술이다ㆍ염불이다ㆍ목탁이다ㆍ죽비다ㆍ가사다ㆍ발우다ㆍ머리 깎은 거다ㆍ장삼이다ㆍ일체는 始成正覺으로부터 비로소 거기에 펼쳐지기 시작했다. 일체불교의 세계는 始成正覺으로부터... 근사하지요? 정말 화엄경답지요? 이 화엄경만 제대로 우리가 공부를 하면 불교공부 다 하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경전이 그렇듯이 시작은 如是我聞(여시아문)하사오니 이렇게 됐습니다. 이와 같은 사실들을 제가 들었습니다. 언제 결집을 했다 해도 모든 설하신 것은 부처님이 설하신 것이고, 보살이 설하신 것이고 들은 사람은, 들어서 재편집한 사람은 아란존자로 되어있어요. 무조건 그렇게 되어있습니다. 아란존자가 머리 좋고 기억력 좋은 것이 죄지 다른 것은 죄 하나도 없습니다. 지금 경전을 결집을 해도 부처님이 설했고, 아란존자가 듣고 기록한 이것이다. 라고 이렇게 나오게 되어있습니다. 이것 가지고 역사적인 사실이냐 어쩌냐? 그것 따지면, 그건 아주 저기 유치원생들의 수준이라고 생각해야겠지요. 불교는 그런 차원이 아닙니다.
一時에 佛(일시 불)이, 한 때에 부처님이, 지금 이 순간이 一時입니다.
그래서 一時입니다. 한 때입니다. 언제든지 화엄경을 펼치는 그 순간이
一時입니다. 부처님이 在(재)= 계셨다. 어디에? 摩竭提國阿蘭若法菩提場中(마갈제국아란야법보리장중)하사 始成正覺하시니라
佛生迦毘羅(불생가비라)ㆍ成道摩竭陀(성도마갈타)ㆍ說法婆羅奈(설법바라나)ㆍ入滅拘尸羅(입멸구시라). 우리가 巳時(사시)공양할 때 늘 외우는 칭명이 있지요? 여기에 나온 그대로 그야말로 摩竭提國이라고 되어있지만, 흔히 마갈타국이라고 그러지요. 거기 그야말로 부처님이 성도하신 부다가야입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阿蘭若法(아란야법)입니다. 고요한 법. 아주 寂靜法(적정법). 이렇게 표현을 합니다 寂靜法. 6성취는 여기서 그런 것을 진부하게 이야기할 필요가 없고, 阿蘭若法. 정말 모든 것이 눈앞에 이렇게 형상으로 소리로 존재하는데, 그 존재 이전에 현상이전의 본체의 입장. 그것이 阿蘭若입니다. 寂靜.
그 도리에서부터, 그 도리. 그 도리를 지니고 있는 菩提場中(보리장중). 깨달음의 장소. 깨달음의 장소에서 始成正覺(시성정각)하시다. 비로소 정각을 이루시다. 성도하셨다. 우리는 사실은 초파일 행사보다도요?
성도재일 행사를 더 크게 해야 합니다. 몇 배 더 크게 해야 됩니다 사실은... 그래서 부처님의 깨달음을 만 천하에 널리 알리는 그런 그 어떤 방편으로 삼아야 합니다.
이 깨달음을 통해서 비로소 불교가 있게 되었고, 화엄경이 있게 됐다.
다른 경전에는 이렇게 始成正覺부터 나온 경전 없습니다.
부처님이 깨달음을 이루셨다. 아니에요. 이것은 맨 처음, 부처님이 깨닫고 나서 깨달음의 어떤 法悅(법열)속에 계신 그 삼칠일 동안의 어떤 정신세계를 그린 것이기 때문에 바로 첫 깨달음에서부터 이렇게 시작하는 것으로 되어있습니다. 깨닫고 나니까 어떻다? 莊嚴(장엄). 우리가 보고 있는 이 세상은 그야말로 제 눈의 안경이라고 전부 각자의 그 소견대로, 각자의 깜량대로, 각자의 수준대로, 또 각자의 어떤 지금 기분만치만 세상을 봅니다.
이 법회를 이해하고 느끼는 것도 지금 각자의 기분만큼만 이해하는 겁니다. 그럼 부처님이 正覺을 이루셨을 때, 이 세상을 어떻게 느껴왔던가?
이 세상이 어떻게 보이던가? 깨달음의 안목. 깨닫고 나서 세상은 어떻게 되어있는가? 그러니까 깨달음의 눈으로 묘사한 세상입니다.
이것을 일일이 다 열거하지는 못하고 땅이 우선, 우선이니까
地의 莊嚴(지 장엄) = 땅의 장엄. 그 다음에 보리수 밑에 앉았지요?
앉아서 깨달음을 얻었는데, 菩提樹의 莊嚴(보리수의 장엄). 그 다음에
宮殿의 莊嚴(궁전의 장엄). 사실은 궁전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깨달음의 시각에서 보니까 어마어마한 궁전입니다. 그리고
師子座의 莊嚴(사자좌의 장엄). 거기 지금도 가보시면 아시지만 아주 차디찬 바위. 그리고 보리수가 거기에, 바위에 기대있었습니다.
거기에 길상초라고 하는 풀을 깔고 부처님이 일주일간 앉아 있었는데,
그때 벌써 말라버리고 형편없었어요. 우리의 안목으로 보면 그와 같이 평범하고, 그저 여늬 바위나 풀에 불과하지만, 깨달음의 시각에서 볼 때, 깨달음의 시각에서 볼 때 이 세상은 그런 것이 아니더라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오늘 복권이 하나 당첨 되었다. 큰 복권이 하나 당첨 되었다 하면 세상이 전혀 달리 보일 것입니다. 그런데 하물며 大覺(대각). 이 세상에 그 누구도 경험하지 못했던 큰 깨달음을 성취하신 부처님의 눈에 비친 그 땅은 어떠하겠는가? 첫 마디가
其地(기지)가 堅固(견고)하야 金剛所成(금강소성)이라. 그랬어요.
그 땅은 견고해서 다이아몬드로 이뤄졌다. 다이아몬드로 이루어졌더라 이 겁니다. 저는 진짜 다이아몬드가 거기 널려있는가 하고, 거기 부다가야에 가서 곳곳에 쫓아다니면서 다이아몬드가 있는가 하고...
경전에 분명히 다이아몬드 소성이라고 했으니까요.
金剛所成이라고 했으니까요. 다 주워가도 그래도 몇 개는 남았을 거라고 생각하고 훑어 봤지만 하나도 안 보이더라 이 겁니다. 왜 안 보이느냐?
저는 중생의 눈이니까 안 보였을 뿐입니다. 다이아몬드가 없는 건 아닙니다. 천지가 다이아몬드입니다. 그런데 저는 중생의 안목으로 보니까 그저 매마른 바위요. 부다가야 탑 밖에, 그 주변으로, 강가로 아무리 가봐야 척박한 땅이고, 모래자갈뿐이었습니다. 저의 눈으로 보니까 그런 것이지요.
그런데 깨달음의 눈으로 보니까 金剛所成이더라. 이렇게 일단은 해놓고, 그 다음에 좀 더 부연 설명합니다.
上妙寶輪(상묘보륜), 上妙하는 上자도 최고, 최고로 아름다운 보배바퀴다. 그리고 及衆寶華(급중보화), 아주 여러 가지 보배로 된 꽃과
淸淨摩尼(청정마니), 아주 훌륭한 摩尼. 마니도 아주 값나가는 보물의 일종이지요. 값나가는 보물의 일종입니다. 그것으로써 구석구석이 땅이 꾸며져 있어요. 땅의 장엄이니까요. 구석구석이 꾸며져 있어요.
以爲嚴飾(이위엄식)하고, 잘 장엄 되어 꾸며져 있고, 그리고
諸色相海(제색상해)가, 그랬어요. 여러 가지 모든 눈에 비친 사물과 모습들의 그 드넓게 펼쳐져 있는, 바다처럼 펼쳐져 있는 낱낱 그런 색상들이
無邊顯現(무변현현)이라. 끝없이 그냥, 정말 춤추듯이 드러나 있는데,
아! 정말 35년 동안 맹인으로 있다가 비로소 눈을 떴어요. 이 사람은 아주 총명해요. 그리고 그 정신세계와 그 영혼은 누구보다도 뛰어난 그런 영혼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런데 불행히 35년간 맹인으로 있다가 어느 날 눈을
딱~~ 떴어요.
그리고 그동안 들어온 모든 세상사를 다 알고 있어요. 그런데 눈을 탁 뜨고 보니까 이 세상에 펼쳐져 있는 그 무엇도 얼마나 감동적으로 가슴에 와 닿겠어요? 우리가 그것을 한 번 상상해 봐요. 아주 총명한 머리를 가진 그런 청년이 35년 만에 비로소 눈을 떴을 때, 세상 하나, 하나가 얼마나 아름답게 비쳐 왔겠는가? 그러한 것을 우리가 상상하면서 부처님의 깨달음의 입장에서 그려놓은, 묘사한 이러한 땅의 장엄을 우리가 이해하려고 해야 됩니다. 諸色相海가 無邊. 끝없이, 끝없이 펼쳐져 있으며
摩尼爲幢(마니위당)이라. 摩尼라고 하는 아주 값나가는 보배로써 깃대가 돼 있어요. 깃발이, 아주 높은 깃대가 되어있는데,
常放光明(상방광명)이여. 그것은 그대로 항상 큰 빛을 발하고 있고,
빛만 발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恒出妙音(항출묘음)이여. 항상 아름다운 소리를 거기서 내고 있고, 그리고 衆寶羅網(중보라망)과, 여러 가지 보물로 된 그물들과 그리고 妙香華纓(묘향화영)이, 아름다운 향기를 풍기는 아름다운 꽃들이 周帀垂布(주잡수포)라. 두루두루 한 곳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널리 곳곳에 펼쳐져 있어요. 周帀垂布여, 그리고
摩尼寶王(마니보왕)이 變現自在(변현자재)라. 마니보배, 그 중에서도 마니로 된 수 많은 보물 중에서도 제일가는 보배가 있는데, 그것은 온갖 그런 변화를 나타내면서, 변화를 자유자재로 나타내는 겁니다.
變現自在하더라. 라고 하는 것이 그 말입니다. 그냥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죽은 듯이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고, 온갖 그런 변화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더라. 여기 보십시오. 摩尼라는 말이 벌써 몇 번 나왔습니까? 그리고 보배 寶자가 또 몇 번 나왔습니까?
다이아몬드에서부터 上妙寶輪(상묘보륜)ㆍ寶華(보화)ㆍ淸淨摩尼(청정마니)ㆍ摩尼爲幢(마니위당)ㆍ衆寶羅網(중보라망)ㆍ妙香華纓(묘향화영)ㆍ摩尼寶王(마니보왕). 이렇게 이 세상에 있는 가장 값지고 아름답고 귀한 것들을 총 망라해서 다 이끌어 놨습니다. 아마 이보다 더 좋은 뭐가 있다면, 보물이 있다면 그것을 갖다가 표현했을 겁니다. 깨달음의 눈으로 세상을 볼 때는 그와 같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變現自在하며 雨無盡寶(우무진보). 여기 화엄경에 雨자가 자주 나옵니다. 비 쏟아지듯이 쏟아진다 이 겁니다. 비는 내릴 때 비입니다. 내리지 아니하는 비라는 존재는 없습니다. 그래서 비 雨자는 항상 비 내린다 라고 해석을 해야 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비는 안 내리는 비는 없지요. 안 내리는 비라는 존재는 없어요.
비 내린다. 無盡寶. 다 할 수 없는 보배와, 그 다음에
及衆妙華(급중묘화). 여러 가지 아름다운 꽃들을 비 내려서
分散於地(분산어지)라. 땅도 이미 다이아몬드로 이루어졌고, 온갖 아름다운 마니보배로 이루어 졌는데, 거기다가 또 온갖 무진장의 보물과 아름다운 꽃들로써 온 천지에다가 흩고 있더라. 이런 말입니다. 그 뿐인가?
寶樹(보수)가 行列(항열)이여, 보배로 된 나무가 쭉~~~ 쭉 줄을 지어서 늘어서 있는 것이지요. 항열이라고 그렇게 읽습니다. 줄을 지어서 늘어서 있고 그 보배 나무는,
枝葉光茂(지엽광무)라. 가지와 잎은 아주 빛으로, 아주 튼실하게 잘 자라서 빛을 발하고 아주 무성하게 되어있다.
佛神力故(불신력고)로, 부처님의 신력 때문에
令此道場一切莊嚴(영차도량일체장엄)으로, 이 도량의 일체장엄으로 하여금 於中影現(어중영현)이라. 그랬어요. 그 가운데 도량 장엄이 다 나타난다. 그 가운데 어디라고요? 보배 나무가운데... 크~~~ 아름다운 보배 나무가 서 있어요. 하나만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쭉~~~ 쭉 서 있어요.
가로수처럼 行列(항열). 가로수처럼 서 있는데 거기에 온갖 도량에 아름다운 장엄이 그 나무에 또 착~~ 이렇게 이중삼중으로 비치고 있는 겁니다.
그 나무만 쳐다보다 도량의 아름다운 모습이 그냥 그 속에 다 반연이 되고 있어요.
이런 것은 요즘 발달 된 3D 기술이나 홀로그램 만드는 그런 기술로써 얼마든지 재현 할 수가 있습니다. 제가 이런 것을 보면서 요즘 아주 발달 된 그런 기술로써 아~ 참, 표현하면 정말 근사하겠다 싶은 생각이 들어요.
요즘 얼마나 그런 컴퓨터 기술이 뛰어납니까? 영화 같은 것도 보면...
저는 요즘 영화 한 번씩 보면 저것이 진짠가? 가짠가? 전부 컴퓨터 조작이 아닌가? 무슨 3D 기술로 한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그렇게 기술이 발달했어요.
여기에는 2700년 전에 그런 기술에 대한 내용을 그대로 설명 다 하고 있어요. 오늘날 우리가 겨우 그 어떤 기술을 가지고 표현 할 수 있는 내용을 그대로 설명 다 해 놨어요. 나무에서부터 그런 모습이 그림자처럼 나타나고 있다 라고 하는 이런 것이라든지, 앞으로 이러한 내용이 무수히 나옵니다. 그래서 현대 물리학을 아주 깊이 공부한 사람들이 이런 화엄경이라든지 불교의 어떤 이론을 보고는 감동을 하지요. 탄복을 합니다.
어찌 이 2600년 700년 전에 이렇게 설명할 수 있었나? 도대체 그 분의 정신은 어느 정도의 차원이기에 이런 내용을 그 때 벌써 이야기할 수 있었나? 이것이 그냥 단순하게 무슨 소설가가 상상한다고 될 일이 아닙니다.
정~~말 지혜가 명철해가지고 이 존재의 실상과 하나가 된 겁니다.
하나가 된 거라고요. 우리는 사람을 봐도 ‘저 사람이 나에게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 캄캄하지요. ‘이 식물은 어떻게 자라는가?’ 캄캄합니다.
그런데 깨달은 사람의 입장이 되면 바로 식물이 돼버립니다.
바로 그 사람이 돼 버려요. 곧 바로 생각 하자마자 그 사람이 돼 버려요.
생각 하자마자 비가 되고ㆍ구름이 되고ㆍ물이 되고ㆍ나무가 되고ㆍ돌이 되고ㆍ순식간에 그렇게 돼 버려요. 100% 그렇게 되니까 존재의 실상을 꿰뚫어 아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이런 표현이 2700년 전에 나올 수 있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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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방광불화엄경 대방광불화엄경 대방광불화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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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대방광불화엄경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