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끊어진 도로 앞에서 -
전날 밤 몸이 좀 무겁고 머리도 아파서 다른 날 보다 일찍 잠자리에 든 탓인지, 핸드폰 알람을 끄고 잤는데도 이른 아침 일찍 잠이 깨었다.
빗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는데, 어쩌면 빗소리 때문에 깬 지도 모르겠다.
시계를 보니 늘 일어나는 시각보다 한 시간이나 이른 시각인데, 더 이상 잠이 올 것 같지 않아 자리에서 일어났다.
새벽 산책을 자주 하지만, 이렇게 비가 많이 오는데 산책을 할 수 있을까?
잠시 망설였지만, 그러나 산책을 나서기로 결정을 한 것은, 며칠 전에 새로 산 장화가 문득 생각났기 때문이다.
요즘은 장화를 신고 다니는 사람이 드문데 남의 눈에 너무 띌까봐, 내가 신을 장화를 고르느라 여러 군데 신발 가게를 돌아 다녔다.
그렇게 애써 구한 결과, 발목 위로 많이 올라오지 않고 색깔도 연한 미색이라 언뜻 보면 장화라는 것을 알지 못할 것 같아 내심 만족을 했던 것이다.
방수 잠바를 걸쳐 입고 우산을 쓰고, 바로 그 자랑스러운 장화를 신고 대문을 나섰다.
이렇게 비가 쏟아지는 새벽에 산책을 하러가다니, 어떤 사람은 이런 행동을 보고 정상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도 들지만, 비 오는 날 산책의 묘미를 알고 나면 그런 말을 하지는 않으리라.
20분쯤 걸어서 마을을 벗어나면 드문드문 논과 밭이 나타나고, 조경수 농장, 그리고 야산으로 이어진 길이 나타난다.
10년 전부터 하도 많이 다닌 길이라 이젠 눈을 감아도 한 바퀴 돌 수 있을 것 같다.
간밤에 비가 많이 오긴 왔나보다.
논에 물이 넘치고, 길 위에도 물줄기가 작은 도랑처럼 곳곳에 나타나곤 했다.
‘장마철이 오기 전에 장화를 사 놓길 참 잘 했다.’
나는 신고 있는 장화가 마냥 흡족했다.
그런데 바람이 계속 불어 비가 옆으로 비스듬히 뿌리치며 내리는 바람에, 우산을 썼는데도 비가 들이쳤고, 장화와 발목 사이로 빗물이 들어와 발이 조금씩 젖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의 산책 반환 지점인 야산 기슭까지 나는 묵묵히 걸어갔다.
이렇게 세찬 비바람이 부는 새벽에 나는 왜 이 길을 걷는 것일까?
평소에 자주 마주치는 조깅하는 사람들이나 산책하는 사람을 단 한 명도 볼 수 없는 이런 날, 비바람에 우산이 자꾸 뒤집어 지는 걸 애써 바로 잡으며 걷는 나의 모습을 떠 올리며 나는 하염없이 걷고 있었다.
걸으면서 명상을 하듯, 자신의 실체를 떠올리려 애를 썼다.
최근 얼마 전부터 나는 인간관계에서 몹시 힘들어하고 있었다.
물론 이 전에도 인간관계에서 오는 어려운 문제에 부딪힐 때가 숱하게 많았다.
오십여 년을 살아오며 어린 시절에는 내 의지보다는 주변 환경의 영향을 더 많이 받아 왔을 것이고, 성인이 된 후에는 나름대로의 생각과 판단을 하며 사회생활을 해 왔을 것이다.
‘인생은 선택이다. 선택에 의해 자신의 삶이 결정된다.’는 말을 단학 수련에서 들은 적이 있는데, 매 순간 선택을 하며 지금의 자신의 모습으로 살아왔을 것이다.
내가 남보다 잘났다고 생각하지 않으나 그나마 나름대로 긍지를 갖는 것은, 내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며 살아왔고, 남을 해치려는 마음을 가진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의도적으로 남을 힘들게 한 적이 없지만, 어떤 사람은 나 때문에 피해를 입었다고 여기는 일도 있었을 것이다.
나 또한 그렇게 당한 적이 많은데, 내가 한 번도 그리한 적이 없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금전적으로, 혹은 정신적으로 나를 힘들게 하는 자들도 있었으나, 그 당시엔 그 자가 너무 밉고 때론 증오스럽기까지 했지만, 미워하는 마음을 한시라도 빨리 지우려 노력했고, 화해의 손을 먼저 내미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어떤 사람은 나에 대해 말하기를 느긋하고 여유만만하게 행동한다고도 하지만, 나는 신경이 예민한 편이고 어떤 일을 맡게 되면 그 일을 마칠 때까지 긴장을 늦추지 못한다.
그런데 겉으로는 내색을 하지 않는데, 이는 내가 아무리 가정이나 개인적인 일로 심사가 뒤틀려 있는 날도 아이들 앞에 서서 수업을 해야 하는 직업의식 때문이리라.
화가 나는 일이 있어도 아이들 앞에서는 웃는 얼굴로 인사를 나누고, 대화를 주고 받고, 수업을 하고, 또 업무 처리를 하고......
그러다 보면 어느 새, 나를 화나게 하는 일들을 잊어버리고 일에 전념하게 되곤 했다.
직장은 이런 점에서 내가 힘든 일을 이겨 내는데 간접적으로 도움을 준 것이다.
개인적인 일로 마음이 아무리 착잡하다 해도, 그 날 그 날 처리해야만 할 업무가 쌓여 있기에 개인적인 일만 종일 생각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조경수 농장 옆길로 들어서는데 비바람이 점점 더 세어져서 우산대를 두 손으로 꼭 잡았다.
잎이 무성한 나무들은 묵묵히 비바람을 맞으며 서 있고, 길 가 풀들은 이리저리 흔들리다 못해 아예 옆으로 쓰러져 누워 있었다.
노란 달맞이꽃 무리는 잎을 편 채로 비스듬히 기울어져 비를 맞고 있고, 보랏빛 나팔꽃은 입을 꼭 다문 채 가만히 앉아 있었다.
거센 비바람을 맞으면서도 무저항하는 식물이지만 가련하다기보다 꿋꿋하게 여겨짐은, 다시 또 해는 떠오를 것이고, 식물은 저마다의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며 자기 소임을 다 하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길을 걷는데, 갑자기 도로에 물이 넘쳐 길이 끊어진 곳에 이르렀다.
왼쪽 야산 쪽에서 흘러 온 물이 오른 쪽 밭 있는 데로 쏟아져 내리며, 도로 위에 폭이 약 50m쯤 되는 도랑을 만들어 버린 것이다.
물이 얼마나 깊은가? 하고 조심스레 걸어 들어가니, 이내 장화 끝부분까지 물이 닿아서 얼른 뒷걸음질을 쳐야했다.
이왕 젖은 발인데 이 도랑물을 첨벙첨벙 건너가 버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왔던 길을 도루 돌아가서 다른 길로 가야하는데, 그러자면 시간이 꽤 걸리고 힘도 들 터인데 어떻게 하지?
나는 갑자기 나타난 임시 도랑물 앞에 서서 어떤 방법을 택할지 궁리를 했다.
장화 속 양말은 진작 다 젖어서 보지 않아도 발이 목욕탕에 오래 있었을 때처럼 우글쭈글해져 있을 게 뻔했다.
‘이미 다 젖은 발인데 물에 빠지면 어때? 그냥 이 길로 가 버려?
아니야, 그래도 다른 길로 돌아가면 더 심하게 젖지는 않을 텐데, 시간이 걸리고 다리가 좀 아프더라도 돌아서 가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선택을 놓고 잠시 망설이다가 나는 왔던 길을 돌아서기로 마음먹었다.
다리가 너무 많이 아프면 발이 젖을 각오를 하고 도랑물을 첨벙대며 건너서 빨리 오는 길을 택했겠지만, 다행이 내 다리는 건강하므로 1km 정도는 우회를 해도 거뜬히 걸을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살면서 내 갈 길을 막는 예기치 않은 도랑물을 만나는데, 그 때마다 어떻게 대처하는가는 본인의 선택에 달려있다.
지난 몇 년간 나는 견디기 어려운 문제에 봉착할 때면 내가 받은 단학수련의 연단을 떠 올리며 이겨내곤 했었다.
수련 초보자는 3분도 참기 힘든 자세를 취하고 5분, 10분, 20분..... 심지어 30분까지 버티는 수련을 할 때면 별별 생각을 다 하게 된다.
‘내가 왜 이렇게 힘든 걸 참고 있어야 해?
단학이면 다냐? 이렇게 사람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 수련이야?
이런다고 내가 뭐 도인이 되는 것도 아닐 텐데, 지금 당장이라도 박차고 수련장 문을 나가버릴까?’
이런 생각에서부터 수련을 진행시키는 트레이너를 원망하는 마음까지 솟구치곤 했다.
그러나 연단이란 쇠를 단단하게 한다는 문자적 의미에 더하여, 고통을 견뎌내는 훈련을 하는 것임을 알기에 끝까지 참아내곤 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참을성이 적고 신경이 예민했다.
목에 편도선이 조금만 부어도 징징 울며 엄마, 아버지께 매달렸고, 위에 통증을 느끼면 바로 병원에 가서 내시경을 찍고 난리를 피우고, 감기만 들어도 온 몸이 아프다고 가족들에게 엄살을 부렸다.
이런 육체적 아픔을 못 참을 뿐 아니라, 정신적인 고통도 잘 참지를 못해서 누가 조금만 싫은 소리를 하면 며칠씩 식사를 하지 못하고, 불면의 밤을 보내곤 했다.
남들은 그냥 지나칠 일도 민감한 반응을 일으키는 내 육체는 자주 신경성 위염과 편두통에 시달렸다.
바로 5년 전, 그 때 만난 것이 단학인데, 그 어떤 병원의 의사도, 나와 절친한 종교인도 낫게 하지 못한 병에서, 서서히 벗어나게 되었다.
20여년 간 먹어야했던 위장약을 끊었고, 신경안정제를 과감히 버린 것도 그 때 부터였다.
육체적 고통을 참아 내는 힘,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을 미워하지 않는 마음,
이런 걸 어느 정도는 갖추게 되었다.
물론 순간적으로 감정이 솟구쳐 실수를 하고, 이내 후회를 하고,...... 그런 적도 많지만, 예전의 나에 비하면 많이 나아진 편이다.
“김문희, 나아졌다는 게 고작 지금의 이 정도냐?”
하고 누가 내게 말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 자신을 누구보다 잘 아는 나로써 몇 년 전보다는 조금은 더 나아졌다고 자부를 한다.
최근 얼마 전부터 끊임없이 나를 괴롭힌다고 여겼던 문제는, 어찌 보면 나 스스로 그 문제를 내 머리 속에 가두어 놓고 괴로워한지도 모른다.
세월이 가면 언젠가는 풀어질 문제를 당장 어쩌지 못해서 안절부절 못하고 허둥댄 나 자신.....
마음을 좀 더 넓게 가지려고 애 써 보자.
凡人에 불과한 나지만, 저속한 사람은 되지 말아야겠다.
밤새 내린 폭우로 일시 끊어진 도로로 가지 못하고, 다른 길을 택해 집으로 돌아오며 이렇게 자신을 돌이켜 보는 시간을 가졌으니, 임시 도랑물에게 감사를 해야 할까?
이제 장마도 어느 정도 그친 모양이니, 내일은 도봉산 신선대를 목표로 산행을 해야겠다.
- 폭우 속 산책길을 회상하며 -
첫댓글 멋진 선택 글 끊어진 도로 앞에서 전개된 인생~~~ 가장 쉽게 접하는 일상생활은 너무 가볍게 스쳐버리는 습관들 아주 작은 일부터 돌아볼 수 있는 기회 감사합니다 예쁜 미색장화 패션에 앞서가는 멋쟁이 선생님 투명한 비옷 한벌 선물 할께요 산책할때 가벼운 베낭에 물은 작은 마우병에 담고 초코랫 두개 비옷한벌 맑디 맑은 비타민을 찾아 산보 나들이 야~호 참 맛잇게 읽고 갑니다 굿 ^**^
새벽 산책을 좋아하시는군요. 글을 통해 선생님의 일상을 읽을 수 있네요. 도봉산 신선대는 잘 다녀오셨는지요? 종종 안부 물으며 살 수 있음에 감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글을 쓰다보면 감추질 못하고 다 털어놓아 버리곤합니다. 시를 쓰면 이러지는 않을 텐데 말입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