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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4:28-37> 세상의 왕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바벨론의 영에 잡힌 사람들의 짐승과 같은 삶, 나의 하나님, 다원주의,혼합주의 신앙
1. 말씀배경
느부갓네살은 이스라엘을 세차례나 침공하여 예루살렘 성과 성전을 폐허로 만들었던 바벨론 제국의 왕입니다 (재위기간 : BC 604~562)
다니엘도 그의 1차 침공 때 포로로 잡혀 갔고, 에스겔과 여호야긴 왕은 2차 침공 때에, 시드기야 왕도 눈이 뽑힌 채 3차 침공 때 포로로 잡혀 갔습니다.
그리고 비천한 자들만 남겨 놓고 용사, 장인들과 같이 쓸만한 인물들은 모두 바벨론으로 잡아간 자입니다.
그가 한 만행은 열왕기하, 역대상, 에스라, 느헤미야 등 성경 여러 곳에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그는 한마디로 바벨론이라는 세상 왕을 대변하는 인물입니다.
그런 그가 다니엘서에서는 하나님을 경배하고 높이는 내용들이 나옵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그가 구원을 받았다고 주장하기도 하고 (Willet, Clarke, Cumming, Matthew Henry), 반대로 칼빈이나 케일과 같은 사람들은 참 회개의 영성에 이르지 못했다고 주장합니다. 그의 구원 여부는 하나님 외에 아무도 모르지만 저는 칼빈이나 케일과 같이 그가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오늘 말씀을 통하여 한번 알아보고, 우리들 가운데 세상의 왕을 대변하는 느부갓네살의 모습, 곧 느부갓네살의 영이 없는지 살펴보는 시간되기를 소망합니다.
2. 다니엘서를 통한 느부갓네살의 삶의 모습
다니엘서는 다른 성경에서 보여주지 않은 느부갓네살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을 직접 침공하기도 하고 장군들을 보내어 침공하게 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포로로 잡아가고 성전까지 파괴한 그인데, 놀랍게도 다니엘서에서는 그가 하나님을 인정하고 찬송하고 경배하는 모습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그의 모습을 통하여 그가 구원을 받았을까요? 하는 의구심이 생기는 것입니다. 천국에 가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 다니엘서에 나와 있는 그의 고백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다니엘 2:47] 왕이 대답하여 다니엘에게 이르되 너희 하나님은 참으로 모든 신들의 신이시요 모든 왕의 주재시로다 네가 능히 이 은밀한 것을 나타내었으니 네 하나님은 또 은밀한 것을 나타내시는 이시로다
그가 다니엘의 꿈 해석을 듣고 하나님에 대하여 ”모든 신들의 신이요 모든 왕의 주재“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정복한 바벨론 제국의 왕이 패전국의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대하여 이렇게 고백하는 것도 대단한 것입니다. 이런 고백도 아무나 할 수 없습니다.
그의 이 고백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요?
느부갓네살왕의 이 고백은 분명히 ”자기의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다니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너희 하나님은, 네 하나님은“ 이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느부갓네살의 하나님이 아닌 것이 분명합니다.
대단한 역사를 이루시고 계신 다른 사람, 다른 나라의 신에 대하여 얼마든지 높여드릴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그의 하나님으로 받아들인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질문 하나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이 믿고 있는 지금의 하나님은 여러분의 하나님입니까?
또 그에 대하여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는 꿈을 해석한 다니엘을 높여 바벨론 온 지방을 다스리게 하고, 바벨론 지혜자의 어른으로 삼으며 그의 친구들도 바벨론 지방을 다스리게 합니다 (단 2:48-49)
그 후에 그는 자신을 상징하는 금신상을 만들어 자신이 다스리는 총독과 수령과 행정관과 모사와 재무관, 재판관과 법률사와 각 지방의 관원들에게 금신상에게 절하게 합니다.
그러면 그가 금신상을 왜 만들었을까요? 그의 속내는 모엇일까요?
자신의 제국이 영원하고 자신이 경배를 받고 싶은 것입니다. 이것을 보더라도 그는 유일하신 하나님을 여전히 섬기지 않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꿈에 나타난 우상의 금 머리가 느부갓네살이라는 다니엘의 해석을 듣고 그의 통치와 나라가 영원하도록 하기 위하여 꿈에 본 은과 놋과 쇠와 진흙으로 구성된 우상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상의 전신을 자신을 상징하는 금으로 만들어 절하게 하고자 한 것입니다.
그리고 절하지 아니하면 맹렬히 타는 풀무불에 넣고자 했습니다 (단 3:1-12).
하나님의 계획을 자기가 바꾸고자 하는 것입니다.
자신만을 경배하라는 것입니다. 그가 진정 유일하신 하나님을 제대로 고백했다면 절대로 그렇게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더구나 느부갓네살은 금신상에 절하지 않는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낼 신이 누구이겠느냐“ (단 3:15 하반절) 하나님보다 자신을 더 높이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까지 보더라도 그는 하나님이 없습니다. 믿지 않는 자입니다. 그래서 구원을 받지 못한 자가 분명합니다.
또 그의 다른 고백을더 보도록 하겠습니다.
금신상에 절하지 않는 이유로 불 속에 들어간 다니엘의 세 친구가 하나님의 아들과 같은 모양을 한 사람이 함께 다니고, 불 가운데서 나오라 할 때에 불에 타지 않고 그을리지도 않는 모습으로 불속에서 걸어나오는 모습을 보고 그가 이런 고백을 합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그가 그의 천사를 보내사 자기를 의뢰하고 그들의 몸을 바쳐 왕의 명령을 거역하고 그 하나님 밖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그에게 절하지 아니한 종들을 구원하셨도다“ (단 3:28)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니 각 백성과 각 나라와 각 언어를 말하는 자가 모두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께 경솔히 말하거든 그 몸을 쪼개고 그 집을 거름터로 삼을지니 이는 이같이 사람을 구원할 다른 신이 없음이니라“ (단 3:29)
그가 하나님을 높여 드리고 있는 고백의 내용은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하나님께서 구원했다는 것이며, 사람을 구원할 다른 신이 없다는 고백입니다.
여기서도 하나님을 높여 드리지만 여전히 자기의 하나님이 아니라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구원하는 유일한 구원자로 인정하고 있지만 아직 느부갓네살의 하나님은 아닌 것입니다. 그에게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아직 다른 사람의 하나님인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여전히 자신이 경험한 하나님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경험한 하나님을 보고 따르고 있지 않습니까?
또 시간이 흘렀습니다. 느부갓네살이 또 꿈을 꿉니다.
꿈의 내용은, 땅의 중앙에 하늘에 닿을 만한 큰 나무가 있는데, 그 나무는 그 잎사귀는 아름답고 그 열매는 많아서 만민의 먹을 것이 될 만하고, 들짐승이 그 그늘에 있으며 공중에 나는 새가 가지에 깃들이고, 육체를 가진 모든 것이 거기서 먹을 것을 얻는 나무입니다.
그런데 한 순찰자가 이르는 대로 나무의 그루터기만 남겨두고 베임을 당합니다. 그래서 잎사귀는 떨어지고 그 열매도 헤치게 되고 짐승도 새들도 떠나가게 됩니다. 그리고 남겨진 그루터기는 쇠와 놋줄로 동이고 들풀 가운데 두어 하늘의 이슬이 젖고 땅의 풀 가운데 짐승과 더불어 제 몫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마음은 변하여 사람의 마음같지 않고 짐승의 마음을 받아서 일곱 때를 지내게 된다는 꿈입니다 (단4장)
이 꿈도 다니엘이 해석을 해 줍니다.
다니엘의 해석에 따르면, 한 큰 나무는 느부갓네살 왕인데 왕이 자라서 견고하여지고 창대하사 하늘에 닿으며, 권세는 땅 끝까지 미친다는 것입니다 (단 4:22-23).
그리고 왕이 사람들에게서 쫓겨나서 들짐승과 함께 살며 소처럼 풀을 먹으며 하늘 이슬에 젖고 일곱 때를 지낸다는 것입니다 (단 4:25)
실제로 다니엘의 해석대로 느부갓네살이 ”자기의 능력과 권세로 바벨론을 건설하였다“는 말을 하는 순간 정신병이 들어 왕의 자리에서 쫓겨나고 들짐승들과 같이 7년을 보내게 됩니다.
그는 7년 동안 소처럼 풀을 먹고 몸이 하늘의 이슬에 맞고 머리털이 독수리 털과 같이 자라고 손톱은 새 발톱과 같이 되었습니다 (단 4:33). 그리고 일곱 때를 지나서 느부갓네살이 하나님에 대하여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신다“(단 4:17,32)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에 그의 총명이 돌아오고 그의 위엄과 광명이 돌아오고 그리고 그의 모사와 관원들이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단 4:36).
이 꿈이 이루어진 후에 느부갓네살은 또 고백을 합니다.
***** [다니엘 4:3] 참으로 크도다 그의 이적이여, 참으로 능하도다 그의 놀라운 일이여,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요 그의 통치는 대대에 이르리로다
[단 4:34] ~이에 내가 지극히 높으신 이에게 감사하며 영생하시는 이를 찬양하고 경배하였나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요 그 나라는 대대에 이르리로다
35 땅의 모든 사람들을 없는 것 같이 여기시며 하늘의 군대에게든지 땅의 사람에게든지 그는 자기 뜻대로 행하시나니 그의 손을 금하든지 혹시 이르기를 네가 무엇을 하느냐고 할 자가 아무도 없도다 37 하늘의 왕을 찬양하며 칭송하며 경배하노니 그의 일이 다 진실하고 그의 행하심이 의로우시므로 교만하게 행하는 자를 그가 능히 낮추심이라“
정리해보면, 하나님의 나라의 영원함과 하나님의 영원한 통치를 고백하고 있고 하나님의 권세와 나라가 어떤 것인지를 고백하고 있고, 모든 것의 주권자임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칭송하며 경배한다는 내용입니다.
바벨론을 자기의 능력과 권세로 건설했다고 교만을 떨었던 그가 하나님께서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고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주시는 하나님인 줄을 알게 된 것입니다 (단 4:32). 그의 나라 바벨론도, 왕권도 하나님께서 주셨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이제는 그가 구원을 받을 것 같은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하지만 여전히 하나님은 그의 하나님은 되지 않았습니다.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을 하고 있지 않으며, 그 이후에도 그가 예루살렘을 침공하고 성전을 훼파하는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행동을 하지 않습니다.
다니엘이 꿈을 해석하여 그가 총리가 된 년도가 그의 집권 2년차 입니다.
[다니엘 2:1] 느부갓네살이 다스린 지 이 년이 되는 해에 느부갓네살이 꿈을 꾸고 그로 말미암아 마음이 번민하여 잠을 이루지 못한지라
느부갓네살이 꿈을 꾼 것이 그가 다스린지 2년이라면 bc 603년이 됩니다.
바벨론이 이스라엘을 세차례 침공했는데 느부갓네살이 사령관 신분으로 bc 605년에 1차 예루살렘 침공이 있었고, 2차 침공은 bc598년, 3차 침공은 bc 586년입니다. 다니엘이 꿈을 해석하고 총리가 된 이후에 2,3차의 침공이 있었던 것입니다.
다니엘의 총리 재임기간을 알 수 없어 정확하지는 않지만 2,3차 침공이 다니엘의 재임 기간일 수 있는 것입니다.
느부갓네살이 하나님을 유일하신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구원을 받을 만한 고백을 하고 있었다면, 어떻게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을 침공하고 성전을 훼파하겠습니까?
오히려 약탈해온 기물을 예루살렘 성전에 다시 가져다 놓아야 하고, 다스리는 온 나라와 백성들에게 우상숭배를 버리고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고 여호와 만을 섬기라고 해야하지 않을까요?
그가 하나님을 믿지 않았기에 믿음에 합당한 행위가 없는 것입니다.
구원받을 만한 믿음은 행위가 따릅니다.
[야고보서 2: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그는 바벨론의 신들을 여전히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당시 전쟁에서 승리를 하면 자신이 믿고 있는 신이 이겼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전쟁에서 바벨론에게 졌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하나님이 바벨론의 신보다 열등하다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니엘을 통하여 역사하는 하나님을 높여드리고 경배하며 사람의 구원자임을 고백했지만 여전히 바벨론의 신 ”벨“ (마르둑, 므로닥의 히브리식 이름), ”느보“와 같은 신들을 섬기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다니엘에게 바벨론식 이름을 주었는데, 그의 신의 이름을 따서 ”벨드사살“이라 했습니다. 뜻은 ”벨이여 그의 생명을 보존하소서“입니다.
느부갓네살의 이름의 뜻도 ”느보여 왕위를 지키소서“입니다. 느부는 ”느보“신의 이름인 것입니다.
바벨론이 멸망당할 때의 왕이 나보니두스인데 그의 아들의 이름이 벨사살 (벨은 왕을 보호한다)입니다. 여기서도 벨 신의 이름을 볼 수 있습니다.
반대로 다니엘의 뜻은 ”하나님이 나의 재판장이시다“의 뜻입니다. 그러므로 그의 이름에 벌써 각자가 마음으로 믿는 신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느부갓네살은 민족적으로 숭배하고 있고 정치적 기반인 그의 신들 벨신과 느보신을 버릴 수 없었던 것이 분명한 것입니다.
유일신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느부갓네살처럼 다른 사람의 신에 대하여 인정하고 경배하고 찬송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혼합주의, 다원주의와 같이 말입니다.
3. 문제는 오늘날에도 이런 느부갓네살과 같은 신앙을 가진 분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구원에서 거리가 먼 신앙입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느부갓네살에게는 여전히 그의 하나님이 아니라 다니엘의 하나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의 하나님인 것처럼 이와 같이 오늘날도 ”나의 하나님“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역사하는 다른 사람의 하나님을 높이고 있는 분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꿈을 해석하고, 불에서 건짐을 받고, 사자굴에서 살아나는 것이 모두 느부갓네살 자신의 하나님을 경험한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의 하나님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한 고백인 것입니다.
이제는 남들에게 역사하는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나의 능력의 하나님, 나의 치료의 하나님, 나의 사랑의 하나님, 나의 예언의 하나님, 나의 지식의 하나님, 나의 공급자 되시는 하나님, 나의 구원의 하나님, 나의 피난처이신 하나님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느부갓네살처럼 남들에게 역사하는 하나님도 높이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지금부터는 나에게 역사하여 내가 다니엘처럼 꿈을 해석하게 하고, 내가 사자굴에서 건짐을 받고, 내가 불에서 건짐을 받는 그 하나님을 경험하고 나의 하나님을 고백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하나님으로 하나님을 인정하고 살아가고 있다면 우리들은 느부갓네살 신앙의 수준이 되는 것입니다. 구원이 없습니다.
언제까지 남들이 경험하는 하나님으로 만족하며 살 것입니까?
언제까지 남들의 간증만을 듣고 간접적인 하나님을 만나고 살 것입니까?
이제는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을 만나서 믿고 살아가야 합니다.
혹시 느부갓네살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그의 하나님으로 받아들였다고 해도 여전히 다른 신들을 섬기며 산다면 그는 종교 혼합주의, 종교 다원주의자인 것입니다.
하나님도 섬기고, 벨 신도 섬기고, 느보 신도 섬기고, 오늘날로 본다면 하나님도 섬기고, 부처도 섬기고, 돈 신도 섬기고, 명예 신도 섬기고, 쾌락의 신도 섬기고 있는 모습인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이 볼 때에는 하나님을 믿고 섬긴다고 하지만 하나님 볼 때에는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저 우상숭배자인 것입니다.
다시 정리해 보면,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내가 경험한 유일하신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다른 어떤 것들도 끼어들 여지가 없습니다.이 신앙고백에 구원이 있는 것입니다.
느부갓네살이 다니엘과 그 세 친구에게 역사하는 하나님을 보고 아무리 위대한 고백을 했다하더라도 이런 유일하신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구원이 없는 것입니다.
귀신도 멋진 고백을 할 수 있습니다.
귀신이 예수님을 보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막 5:7, 눅 8:28)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귀신이 구원을 받습니까? 아닙니다.
느부갓네살은 구원이 있을 만한 고백도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예루살렘과 성전을 공격함으로 그에 합당한 삶도 살지도 못했습니다.
오늘날로 본다면 잠시는 성령의 감동도 있을 수 있으나 본질적으로 성령의 이끌림 받는 사람이 아니라 마귀에 이끌리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 느부갓네살은 멸망당할 세상 왕의 모형입니다.
그에게는 바벨론의 영 곧 사탄이 주는 짐승의 영이 역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파괴하고 무너뜨리고 죽이고 포로로 잡아가는 삶을 산 것입니다.
또 바벨론은 음녀가 역사하는 곳입니다. 그래서 바벨론은 우상숭배가 가득했습니다. 그 나라의 왕이 느부갓네살인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7:5] 그의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하였더라
바벨론의 영은 짐승의 영인 것입니다. 대표적인 왕이 느부갓네살의 인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제국의 왕들을 성경은 ”짐승“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단 7:3] 큰 짐승 넷이 바다에서 나왔는데 그 모양이 각각 다르더라 4 첫째는 사자와 같은데 독수리의 날개가 있더니 내가 보는 중에 그 날개가 뽑혔고 또 땅에서 들려서 사람처럼 두 발로 서게 함을 받았으며 또 사람의 마음을 받았더라 5 또 보니 다른 짐승 곧 둘째는 곰과 같은데 그것이 몸 한쪽을 들었고 그 입의 잇사이에는 세 갈빗대가 물렸는데 그것에게 말하는 자들이 있어 이르기를 일어나서 많은 고기를 먹으라 하였더라 6 그 후에 내가 또 본즉 다른 짐승 곧 표범과 같은 것이 있는데 그 등에는 새의 날개 넷이 있고 그 짐승에게 또 머리 넷이 있으며 권세를 받았더라 7 내가 밤 환상 가운데에 그 다음에 본 넷째 짐승은 무섭고 놀라우며 또 매우 강하며 또 쇠로 된 큰 이가 있어서 먹고 부서뜨리고 그 나머지를 발로 밟았으며 이 짐승은 전의 모든 짐승과 다르고 또 열 뿔이 있더라
여기서 사자는 바벨론 제국을. 곰은 메대 바사제국을. 표범은 헬라 제국을. 그리고 열뿔을 가지고 쇠로 된 이를 가진 짐승은 로마 제국을 상징합니다.
제국을 강력한 짐승으로 성경은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느부갓네살은 사자처럼 죽이고 물어 뜯는 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가 정신병이 들어 들짐승과 함께 지내는 모습이 짐승의 영이 들어간 자의 비참한 모습의 한 부분인 것입니다. 짐승처럼 산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정신병자처럼 살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 구실을 못하고 짐승처럼 풀을 먹으려 이슬을 맞으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막 9:29)
기도를 해야 내 안에 있는 짐승을 쫓아낼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기도로 느부갓네살의 영을 몰아내야 합니다.
바벨론이 망하는 것처럼 느부갓네살은 결국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역사적 바벨론도 100년도 못되어 망했습니다. 요한계시록에는 ”한 시간“에 망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계 18:10,17,19). 그들이 가진 온갖 화려한 것, 진기한 것 다 불타 없어지고 강하게 구축해 놓은 성도 한 순간에 망하는 것입니다. 바벨론이 페르시아에게 그렇게 망한 것입니다.
느부갓네살처럼, 바벨론처럼 망하는 자의 삶으로 살아가면 안됩니다. 혼합주의, 다원주의의 신앙으로 살면 안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이 경험한 간접적으로 만나는 하나님이 아니라 직접 경험하셔서 하나님을 유일하게 ”나의 하나님“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나님을 나의 유일한 주인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래야 짐승의 영인 바벨론의 영이 떠나갑니다.
그러면 성령이 임하게 됩니다. 영의 사람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의 삶에서 하나님 나라와 성전을 파괴하는 자인 짐승의 모습은 사라지고 생명의 열매가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자연히 따라오는 것은 믿는 자의 합당한 삶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들 가운데 느부갓네살의 모습이 짐승과 같은 삶의 모습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영의 기도로 몰아내시고, 구원의 복을 받는 자의 삶을 사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