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전 5:18> 왜, 범사에 감사해야 하나요, 하나님의 구원과 뜻, 인자하심과 선하심, 성숙한 자의 모습, 감사의 제사, 하나님을 인정하는 행위
1. 말씀배경
데살로니가교회는 마케도니아주에 있는 교회로 바울이 2차 전도여행시 세 안식일 동안 머무르면서 개척한 교회입니다 (행 17:1-2). 그리고 데살로니가전서는 바울이 주후 51~52년경 고린도에서 기록하여 데살로니가교회에 보낸 서신입니다 (글라디우스황제 통치).
당시 데살로니가교회는 믿는다는 이유로 많은 고난과 핍박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2:14살후 1:4). 그런 환경에 있는 그들에게 바울은 감사를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 어떤 상황 속에서도 감사하는 삶을 사는 모습이 신앙이 최고로 성숙한 자의 모습이라 생각합니다.
살면서 온갖 환경에 우리들이 접하게 되는데 그 중에는 감사할 일도 많지만 감사하지 못할 일들이 더 많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과 같이 범사에 감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런 감사하지 못할 일을 허락하신 나를 향한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믿는다면 의지적으로도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 5대 제사중에 감사제로 “소제”가 있습니다. 다른 제사와 함께 드리는 제사입니다. 날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이 필요함을 가르쳐 주고 있으며, 감사하면서 제사드리는 것이 받으시는 제사임도 함께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최근에 자신을 돌아보면서 참 감사를 많이 잃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가온 환경에 감사로 반응하지 않고 스트레스로 반응을 하고 있는 자신을 본 것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저와 여러분들 모두 다시 감사하는 신앙이 회복되시길 바랍니다.
2. 말씀 내용
1) 범사에 (헬, 판티)
범사라는 것은 먼저는 ① 모든 일에 (in everything) ② 모든 상황, 환경, 조건에(all circumstance) ③ 시간적으로도 항상 (every time)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헬라어 “판티”의 원형이 ”파스“인데 하나도 빠짐이 없는 전체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범사에 감사하라는 것은 모든 일에 감사하는 것이고 모든 상황에 감사하는 것이고 항상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범사는 우리가 볼 때에 좋고 나쁨의 환경, 여건, 결과를 다 포함하는 것입니다. 기쁜 일도 감사, 슬픈 일도 감사, 고난도 감사, 좋은 일도 감사, 감정상해도 감사, 기분이 좋아도 감사인 것입니다.
내가 걷다가 넘어져도 “감사합니다”, 오늘 죽는다고 의사가 진단을 해도 “감사합니다”하라는 것입니다. 작은 것부터 이런 훈련이 평소에 되어 있는 자가 정작 큰 어려움에 닥쳤을 때에도 감사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미리 예방주사를 맞아야 하는 것입니다. 어려움이 다가와도 감사하는 신앙을 가진 자에게 하나님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좋은 때에 감사하는 것은 쉽습니다. 평소에도 그저 감사하다고 중얼거리며 다닐 수 있습니다. 그것도 안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진짜 신앙은 고난, 핍박, 어려움 등이 다가왔을 때에도 감사하는 신앙인 것입니다. 그래서 고난의 대에 감사하는 신앙이 최고라는 것입니다.
▶ 출애굽시 이스라엘 백성 앞에는 홍해바다가 가로 놓여 있었습니다. 그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두려워 떨고 모세를 원망하고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 애굽사람을 섬기겠다고 했습니다 (츨 14:10-12).
생사를 가르는 큰 홍해바다가 가로놓여 있어도 하나님 하실 일을 기대하며 감사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신앙 수준입니다. 광야에서도 어려움이 다가올 때마다 원망, 불평하고 하나님과 모세를 대적했습니다. 결국 대부분 광야에서 다 죽었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처럼 하나님께서 구원해주시지 않아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신뢰하면서 감사하며 나아가는 것입니다 (단 3:18). 그러면 기적을 보는 것입니다.
감사를 하지 못한다는 것은 반대로 원망. 불평한다는 것으로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는 자의 모습인 것입니다.
결국 감사 여부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관련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믿음이 최고봉에 있을 때 범사에 감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외경 유딧서 (8:25)에도 어떤 역경과 불우한 환경과 사정에서도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2) 감사하라 (헬, 유카리스테이테)
신약성경의 대부분은 이 단어가 하나님에 대한 감사로 시용되어 졌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며, 주께 감사하며” 등등
사람에게도 감사를 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감사할 줄 모르고 은혜를 모르는 사람들은 사람과의 관계속에서도 그 관계가 오래가지 못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감사를 잃으면 그 신앙 뭔가 병들어 있다고 보면 됩니다.
우리들은 자기가 잘못을 해서 나쁜 열매를 맺고도 오히려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 병든 신앙의 모습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나요?
① 가장 큰 감사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들이 구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 무엇으로도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는데 그 아들 예수의 피로 해결해 주신 것입니다.
[요한1서 1:7]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요한계시록 1:5]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구약 시편 136편에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해 주심에 대해서, 이스라엘에게 기업을 주신 것에 대하여, 먹을 것을 공급해 주신 것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장엄하게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해 주신 이것 하나만 가지고도 평생 감사해야 합니다.
② 모든 일, 환경을 통하여, 그리고 때를 따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하셨듯이 (롬 8:28) 당장에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알 수 없을 수 있지만 결국에는 선으로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을 신뢰할 때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가 나오는 것입니다.
극단적으로 우리의 죽음 가운데서도 그 선한 뜻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믿는 자, 곧 우리들을 향하신 계획은 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로 바벨론에 잡혀가는 아픔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생각은 재앙이 아니요 평안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예레미야 29:1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한마디로 우리가 잘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자식을 향한 부모님의 마음과 같습니다.
자식이 죽어 없어지라고 누가 진심으로 말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향하신 마음은 궁극적으로 “선”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좋으신 하나님”이라고 노래합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선하심 때문입니다. 어려움 가운데서 감사가 되지 않을 때 의지적으로 “감사”를 외쳐야 하는 것입니다. 훈련이기도 합니다.
그 선하신 뜻을 다 모르고 당장 눈 앞에 놓인 환경을 보고 하나님께 감사하지 못하고 더 나아가 원망, 불평하는 “원.불.교”신자가 되면 안되는 것입니다.
내 앞에 죽음이 다가와도, 망함이 다가와도, 하나님께서 무슨 좋은 것을 주시려고 그러시나 하고 기다리는 신앙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감사하는 신앙이 최고의 신앙인 것입니다.
많은 이적과 기사를 행하는 능력자가 최고봉이 아닌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사도 감사, 감사 한다면 얼마나 하나님 보시기에 이쁘겠습니까?
감사하기 어려운 고난 가운데서 축복을 주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고난은 축복의 통로라고 말합니다.
지금 쓰임을 받는 귀한 종들의 간증을 들어보면 대부분 엄청난 고난 가운데서 하나님을 만나고 능력 받아서 쓰임을 받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작은 아픔과 고난, 역경부터 감사해야 큰 어려움이 다가와도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갑자기는 안됩니다. 미리 감사로 예방주사를 맞아 놓아야 하는 것입니다. 코로나 한번 걸리고 나니까 다음에는 쉽게 넘어가는 것을 우리가 경험한 것과 같습니다.
물론 분별할 것은 있습니다. 죄로 인하여 다가온 고난 말입니다. 그 때는 즉시 회개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③ 또 감사해야 하는 이유는 오늘 말씀과 같이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3)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헬, 가르 델레마 데우)
뜻(헬, 델레마)은 원어적으로 의도, 소원, 바램, 의지입니다.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의지이기도 하고 소원이기도 한 것입니다.
▶ 왜 하나님께서 이런 소원을 가졌을까요?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께 감사함은 마땅한 일이기 때문이며, 매사에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이끄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인정하고 믿는 삶을 살게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를 향한 선한 섭리, 경륜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감사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행위입니다.
눈 앞에 놓인 환경에 좌절해 봐야 우리가 환경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감사하지 못하고 우울해 있으면 스크레스나 받고 우리들의 영.혼.육만 망가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감사를 하면서 살 때에 오늘 말씀에 이어서 나오는 23절 말씀과 같이 될 것입니다,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감사를 통해서 우리들이 거룩하게 되고 영혼육이 흠없이 보전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입니다.
4)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헬, 엔 크리스토스 이예수스)
지금까지의 모든 감사에 대한 말씀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없는 자들도 환경 여건에 따라 감사를 할 수 있습니다. 도덕적으로 사람들에게 모마우면 감사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이런 차원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해야 하는 감사의 차원인 것입니다.
예수 안은 축복의 영역입니다. 구원의 영역이요 하나님의 인자와 선하심이 미치는 영역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안에서의 감사는 마침내 구원을 받는 자들이 하는 감사인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서는 모든 것이 “좋은 것”임을 인정한다면 모든 것에 감사하는 감사인 것입니다.
어차피 믿지 않는 자들은 결국 지옥으로 가기 때문에 이 땅에서 좋은 것 있을 때 잠시 감사할 수 있지만 지옥에서 감사할 수 없습니다.
예수 안에서는 마침내 천국이기에 그래서 지금의 고난 가운데서도 감사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데살로니가교인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맺는 말>
감사하지 못하는 이유는 대체로 죄 때문입니다.
[로마서 1: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죄로 인하여 감사하는 마음이 어두워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감사함이 없는 것은 죄로 가득찬 말세의 사람들의 특징이기도 한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3:2]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우리들은 앞으로 하나님께 크게 감사해야 합니다(행 24:3), 많은 감사를 해야 합니다(고후 9:2), 항상 하나님께 감사 해야 합니다 (고전 1:4, 살후 1:3), 아침 저녁마다 감사해야 합니다(대상 23:30), 사나 죽으나 감사해야 합니다. 영원히 주께 감사해야 합니다 (시 79:13), 기도도 감사함으로 해야 합니다(빌 4:6), 노래하며 시를 지어서 수금으로 감사해야 합니다(시33:2,95:2),
그리고 감사로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시 50:14, 시 50:23)
[시편 50:2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감사하는 것이 제사를 드리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것을 인정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감사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감사하는 자를 구원한다는 것입니다.
감사는 나를 지으신 것도, 주신 것도 모든 것을 주관하신 것도 하나님이라는 고백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감사는 제사가 되는 것입니다.
인간 뿐만 아니라 모든 만물들도 감사해야 합니다. 만물이 그의 지은 바 되기 때문입니다. (계 4:11)
그리고 성도들 간에도 서로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롬 16:4). 보는 자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그러면 교회의 분위기가 달라지고 긍정파, 생명파가 퍼지게 됩니다.
그 사람이 감사하는 것을 보면 신앙의 수준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항상 감사가 그치지 않는 성도들이 되셔서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우리 모두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