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대장 추억: 노루고기냐, 개고기냐
박형규(朴炯圭):한양대 17기
1981년 6월, 전역을 20여일 앞두고 하루가 마치 수년이나 되는 듯 마냥 지루하고 더디게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전방에 육탄 십용사의 자랑스런 투혼이 서려있는 송악산(松嶽山)과 송도삼절(松都三絶) 중 이절(二絶)인 황진이(黃眞伊)의 묘와 박연폭포(朴淵瀑布)가 있는 몇 개의 험산준령들과 개성(開城) 시내가 포대경 속으로 환히 잡히는 관측소 아래에 낡고 좁은 퀸셋 식당이 있었다. 여러 소대 병사들이 오전 경계근무와 진지작업 등을 마치고 삼삼오오 배식을 받거나, 배식 받은 식판들을 몇 겹으로 쌓아올려 내무반으로 옮긴 후 막 중식을 시작하려던 참이었다.
선풍기도 없이 찌는 듯한 더위 속에 나는 소초에서 잡무를 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내무반 쪽에서 몇 명이 술렁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이어서,
"야, 이 새끼들아, 누가 내무반에서 밥 처먹으랬어? 당장 식당으로 못 가? 이 부대 완전히 개판이구만!"
누군가 착 가라앉은 음성으로 중식을 시작하려던 소대원들을 향해 호통을 치는 것이었다. 그는 이어서,
"야, 이거 무슨 고기야?" 하고 급히 물었다.
그러자 누군가, "개고깁니다." 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는 갑자기 목청을 돋구어,
"뭐라고? 이게 개고기라고? 내 눈을 뭘로 보는 거야? 내 군대생활 20년에 개고기 하고 노루고기 구분도 못 하는 줄 알아? 야, 여기 소대장 어디 있어? 당장 나오라고 해! 이거 단단히 혼나야 되겠구만."
나는 더 이상 머뭇거릴 수가 없어 다급히 간소복에 운동화 차림으로 소초문을 열고 내무반으로 향했다. 내무반 안쪽에 연대 정보주임인 장소령이 침상에 걸터 앉아 식판 속에 담긴 검붉은 고기 국물을 내려다보고 있었고, 그 옆에 소대원 대여섯이 잔뜩 주눅이 든 채 고개를 떨구고 서 있었다.
"전진!" 하고 내가 힘차게 거수경례를 붙이자 신속하게 인사를 받은 장소령은 대뜸,
"야, 너도 이번에 나가는 놈이냐? 너 이 새끼 영창 가고 싶어? 이거 무슨 고기야?"
"노루고깁니다."
"그래, 노루고기지. 근데 여름엔 노루 고기에 벌레가 생기기 때문에 일체 취식을 금하는 걸 모르고 있나?"
"압니다. 즉시 시정하겠습니다!" 그러자 그는 몹시 못마땅한 표정으로 서너 차례 나의 위아래를 훑어보더니,
"이 새끼 근무는 안 하고 부하들과 노루나 잡아 처먹고 있어.내 당장 너희 대대장에게 보고하겠다. 야, 저 고기 전부 즉시 내다버려. 알겠나?" 하며 눈을 부라렸다. 겁에 질린 소대원 두 명이 식판을 모두 들고 밖으로 나갔다.
"전진!" 하고 내가 거수경례를 붙이자, 그는
"임마, 똑바로 해!"라는 말을 남기고 관측소 쪽으로 올라갔다.
그날 오후 내가 내무반장인 정하사에게,
"정하사, 아까 그 고기들 모두 버렸나?" 하고 물었더니,
"그 좋은 걸 왜 버립니까? 영양보충 잘 했습니다." 하며 미소를 지었다.
마침내 그 지루했던 20여일이 다 지나고, 대대장 관사에서 송별연이 벌어지던 날이었다. 점심 식사와 함께 술이 몇 순배 돈 뒤 대대장 문중령이
슬쩍 나를 바라보면서,
"요새 박중위는 O.P. 에서 신선놀음 하고 있다며? 소대원들과 노루나 잡아 먹으면서..." 하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죄송합니다. 다시는 그런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이제 전역인데 언제 다시 G.O.P.에서 노루든 개든 잡아 회식을 하게 될 것인가.
벌써 25년이나 지난 까마득한 옛일이건만 말복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이면, 영내에서 몰래 키운 개를 잡아 끓인 개장국을 노루고기국으로 둔갑시킴으로써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했던 그 순간들이 마치 어제 일처럼 기억에 생생해진다. 최전방 G.O.P.에서 정말 성실히 그리고 열심히 군생활에 임해 주던 자랑스러운 우리 소대원들, 지금은 나처럼 쉰살 안팎에 희끗희끗한 머리로 다들 건강하게, 행복하게 잘 사는지. 부디 국내외 곳곳에서 제 맡은 몫을 다하며 후회 없는 인생을 살아가기를 간절히 기원해 본다.
(중앙회 글에서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