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11일, 기상청이 서해와 남해 해상에 풍랑주의보가 내린다고 해 비금도에서 개최 예정이던 제2회 전국도서(섬) 등반대회에 참석할 등산인들은 간밤을 설쳤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날 아침, 목포여객선터미널은 전국에서 온 많은 등산인들로 북적됐다. 신안군청이 전세를 낸 세 척의 배가 물길을 가르며 비금도로 향했다.
풍랑주의보가 내린 탓인지 쾌속선이 하얀 포말을 뿌리며 흔들리기 시작한다. 좁은 객실 안에서 졸음이 올 무렵 정확히 50분 후 선 착장에 정박한다. 배에서 내리자 섬 등반대회에 참가하려는 등산인들을 상암주차장으로 나르기 위해 비금도의 열악한 대중교통에도 불구하고 모든 차량(대형버스 1대, 교회 셔틀버스 1대, 유치원 승합차, 초등학교 스쿨버스, 4륜구동 지프차 등)이 동원되어 실어 나르기 시작했다. 아마도 비금도 입도사에 한낮 한시 이처럼 많은 관광객이 몰려든 적도 없을 것이다.
오전 9시, 상암주차장에 도착했다. 신안군수를 비롯한 이 지역 기관장들의 인사말이 끝나서야 산행이 시작됐다. 그림산의 산행들머리는 전형적인 육산이다. 소나무로 우거진 다소 밋밋한 산을 1,000여 명의 등산인들이 오르기 시작한다. 능선에 올라서니 세찬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흙길이 끝나갈 무렵, 그림산 정상이 보이기 시작한다. 뭉게구름이 핀 암봉을 쳐다보며 아마추어 사진가들이 바위에 올라 셔터를 눌러대기 시작한다.
비금도 사람들은 산세가 그림처럼 아름답다 하여, 또는 신비의 동물처럼 생긴 산이라 하여 그림산이라 하였다고 한다. 정상 암봉은 문자 그대로 그림처럼 아름다운 산이다. 육산을 30분쯤 오르자 암릉 제1봉에 도착한다. 신안군은 매년 이맘때 전국 섬 등산대회를 개최하기 위해 많은 경비를 들여 그림산과 선왕산의 위험구간에 철계단을 설치했다.
암릉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암봉을 오르는, 아슬아슬한 절벽에 철계단이 설치돼 있어 행렬의 이동이 지체된다. 능선에 부는 세찬 바람에 모자를 부여잡는 사람들도 눈에 띈다. 암릉 제1봉에 오르자 암릉이 바람막이 역할을 해, 많은 등산인들이 널찍한 바위에 앉아 가을볕을 쪼이며 한가롭게 휴식을 취한다. 이어서 2봉으로 쇠난간의 동아줄을 붙잡고 오르자 틈이 벌어진 곳에 마치 우리나라 지도처럼 생긴 바위가 있었다.
자세히 보니 신안군에서 '우리나라 지도 바위' 라고 안내판을 세워놓았다(후에 죽치 이장이 이 바위를 실제 우리나라 지도처럼 만들기 위하여 망치로 손을 봤다고 한다). 지도바위를 지나 통나무계단을 오르니 20m쯤 되는 2단 철계단이 나타난다. 철계단 아래를 내려다보니 수십 미터의 아슬아슬한 절벽이다.
그림산 정상. 비금도의 아름다운 모습이 사방으로 조망된다. 신안군에서 나온 행사진행요원이 정상에 도착한 사람들을 단체별로 일일이 체크한다. 그림산과 선왕산의 거대한 암릉의 모습은 비금도에 이렇게 기묘한 암릉산이 있었나 싶을 정도다.
그림산과 선왕산은 신안군 최고의 산이며 전국 섬에 있는 산 중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산임에 틀림없다. 선왕산 암릉은 아직도 멀리 보인다. 암봉 오른쪽으로 북한산 인수봉을 닮은 봉우리가 나타난다. 그 너머로 원평(명사십리)해수욕장이 멀리 조망된다. 그곳에 파도가 하얀빛을 발하며 부서지기 시작한다.
위험한 암릉에 안전을 위해 설치된 철계단이 이제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철계단이 없었다면 지금의 암릉을 오르내릴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림산의 마지막 암봉에서 본 선왕산은 더욱더 신비스럽게 보인다. 선왕산은 신선의 왕이 사는 곳이라 하여 이름 붙여졌다고 한다. 흥미로운 점은 비금도 사람들은 선왕산과 그림산은 별개의 산으로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한 덩어리다. 비금(飛禽)이란 유래에서 보자.
일반적으로 산과 산, 그리고 봉우리와 봉우리의 경계를 재로 구분한다고 봤을 때, 선왕산과 그림산의 경계는 죽치다. 그림산의 마지막 암봉에서 내려서면 재로 생각되는 지점이라고 하나 마을과 마을을 연결하는 길도 없고, 재와 관련된 지명도 없으므로 조릿대가 많이 자생하고 있어 죽치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일반적인 안부일 뿐, 실제적으로 안부에서 낮은 육산을 넘으면 죽치우실이 있는 곳을 죽치라고 한다.
낮은 육산에서 죽치마을로 내려가는 능선을 새의 목으로 생각하면 그림산은 새의 오른쪽 날개요, 선왕산은 새의 왼쪽 날개인 셈이다. 죽치마을 앞 들판에서 바라보면 그림산과 선왕산은 하늘로 날기 위하여 비상을 준비하는 영락없는 새(禽)의 모습이다. 결국 그림산과 선왕산은 한 덩어리의 산이요, 비금산인 것이다.
마지막 암릉에서 조릿대 숲 안부로 내려가는 등산로는 쉽지 않다. 철계단을 거치고 철봉에 연결된 동아줄을 잡고 내려가는 길이다. 조릿대숲 안부를 거쳐 나지막한 안부로 접어들자 한 무리의 등산객들이 식사를 한다. 정오가 되자 험한 암릉을 거친 뒤 배고픔을 참지 못하는 것이다. 육산을 넘고 마치 성처럼 쌓아놓은 돌담인 죽치우실이 나타난다. 마을과 마을의 경계, 마을의 허한 부분을 실하게 해주는 일종의 신앙적인 요소가 강한 돌담 울타리라 한다.
두 개의 돌담을 양쪽으로 경계 짓는 모습이 이채롭다. 죽치에 있다 하여 죽치 우실(울타리)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죽치에서 얕은 봉우리를 하나 넘으면 같은 규모의 죽치우실이 있다. 아마도 두 군데에 돌 울타리를 쌓은 듯하다. 이제 선왕산의 암릉이 나타난다. 능선 왼쪽으로 우이도, 흑산도, 홍도가 아련하게 조망되고, 칠발도가 바로 아래에 있다. 칠발도 일원의 해조류번식지는 천연기념물 제332호로 지정된 곳으로, 철새의 이동경로상 기착지로 알려져 있다.
좌우로 비금도의 아름다운 모습에 도취되어 암릉을 쉬엄쉬엄 오르니 정상이다. 선왕산 정상에는 무선중계소가 설치돼 있고, 정상에는 표지석이 서 있었다. 서쪽으로 하트 모양을 한 하누넘해수욕장과 칠발도, 서해의 망망대해가 펼쳐지고, 북쪽으로 원평해수욕장이, 동쪽으로 안좌도, 자은도, 팔금도, 암태도, 장산도가, 남쪽으로 도초도, 하의도, 우이도가 조망된다.
정상 표지석을 배경으로 비금농협의 김은정(37세), 강선애(49세)씨와 이번 등산대회를 준비해온 팔금면사무소 김영기(30세)씨가 기념촬영을 주문한다. 정상에 세워진 조망판을 잠시 바라보고 하누넘해수욕장으로 향한다. 일제 강점기에 세워진 군 참호터를 지나고 마지막 봉우리로 접어들자 고운 모래밭으로 이루어진 하누넘해수역장이 바로 아래에 내려다보인다.
내촌에서 하누넘해수욕장으로 넘어가는 길은 마치 하늘길처럼 느껴지는 아름다운 길이다. 마지막 봉우리에서 하누넘해수욕장과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비금도 서해안 용머리 해안선을 바라보며 쉬엄쉬엄 내려가니 어느덧 하누넘해수욕장에 닿았다. 제2회 도서등산대회의 꼴찌는 필자와 비금농협의 두 아줌마였다.
그림산이 왼쪽 날개라면 선왕산은 오른쪽 날개다. 해발 255m의 낮은 산이지만 비금도의 중앙부에 자리잡고 있는 산으로 양 날개 암릉 능선에 오르면 마치 내륙의 높은 산처럼 섬 주위의 조망이 뛰어나다.
그림산, 선왕산 어느 능선에 서있다 하더라도 비금도의 염전지대, 칠발도, 하누넘해수욕장, 원평(명사십리)해수욕장, 자은도, 임태도, 팔금도, 안좌도, 장산도, 하의도, 우이도의 아름다운 비경을 조망할 수 있다.
그림산과 죽치를 거쳐 선왕산을 잇는 산행은 3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산행 후 섬 주위의 볼거리를 찾아서 여행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교통
서울(용산)-목포=고속철도(KTX) 1일 8회(첫차 05:50, 막차 20:20) 운행. 3시간10분 걸린다. 요금 40,700원.
차도선을 이용할 경우, 목포-비금도 가산=대흥페리1, 3, 7호(07:00, 13:00, 15:00). 2시간30분 걸린다. 요금은 승객 7,200원, 차량 30,000원. 목ㅍ ㅗ 북항-비금 가산=비금농협 카페리호(07:00, 11:00). 1시간50분 걸린다. 요금은 승객 3,000원, 차량 30,000원.
쾌속선을 이용할 경우, 목포-비금 수대=남해프린스, 남해퀸, 골드스타의 선박을 이용한다(07:50, 08:00(짝수일), 13:20). 50분 걸린다. 요금은 승객 14,900원. 대흥상사 061-244-0005, 동양고속 243-2111.
비금도에서는 택시를 이용하면 편리하다. 가산항-하누넘해수욕장, 수대항-하누넘해수욕장 요금은 10,000원, 20분 정도 걸린다. 가산항-상암주차장과 수대항-상암주차장은 4,000원.
*잘 데와 먹을 데
평림리 쪽에 많은 민박집들이 밀집되어 있다. 오란다민박(061-275-4620), 연복민박(275-5321) 등이 있으며, 4인 1실에 20,000원(비수기), 성수기는 30,000원을 받는다. 식당은 오란다횟집(275-4620), 하와이횟집(275-8179) 등이 있다. 도초도와 비금도는 연결되어 있으므로 서남문대교 부근에 숙박을 정할 수 있다.
*볼거리
비금도는 우리나라 서남단에 위치한 섬으로 섬의 아름다운 바위산들은 홍도의 비경에 버금간다고 한다. 본래 강우량이 많은 비금도는 일제 때부터 천일염을 만들기 어려운 곳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평안남도 용강군 주을염전으로 징용갔던 박삼만씨가 해방이 되자 고향에 돌아와 개펄을 막아 1946년 '구림염전'을 개척한 것이 시초이다. 구림염전은 우리나라 최초의 천일염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구림염전에 의한 소금제조법은 주변 신안군 다른 섬까지 전해졌다.
또 섬초라 불리는 시금치는 맛이 좋아 전국의 백화점에 많이 팔린다. 그리고 비금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으로 알려진 원평해수욕장은 해당화가 붉게 피고 고운 모래해변이 십리쯤 뻗어있다고 해서 명사십리로도 불린다. 한적한 곳에 위치한 하누넘해수욕장 또한 주변의 기암절벽과 함께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며, 비금의 용소와 몸섬 내부에 있는 기린봉, 떡메봉, 전통사찰인 서산사 등 볼거리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