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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마음으로 에세이 읽듯이 읽으세요^^
여러분 영어에 자극이 되실 겁니다.
글의 순서
4.한국 영어교육의 실태
“한도 많고 탈도 많은 영어!!!” “할 수만 있다면 해도 해도 너무 안 되니까 피해가고 싶지만 피해 갈 수도 없는 영어” 누구나 이렇게 말하지만 저도 이 말부터 하고 싶다.
2003년 3월 17일. 이날은 나에게 전환점이 된 날이다. 저희 시찰회에서 목사님들이 몇 년 준비해서 성지순례를 이집트, 이스라엘, 터키를13일 일정으로 떠난 날이다. 당시 대학 도서관에서 집중 독서할 계획으로 새벽부터 밤 11시까지 출근하며 살 때였는데 마침 도서관에서 성지순례에 대한 자료, 이스라엘이란 나라에 대해, 여행정보에 대해 3권 정도만 읽고 떠났다. 그런데 문제는 비행기 안에서 벌어졌다. 대학 1학년 봄 처음 C C C 4영리로 예수님을 영접하고 주님의 첫 사랑에 울며 취해 대학 4학년 가을학기 도중 24살에 강의 짬짬이 내려가 예배당 건축하고 예배인도하다가 대학을 졸업하고 시무한, 교회에서 생활비도 없이 18 년 살아 온 세월... 34살 때 신혼 여행도 여수 오동도로 4만원 가지고 출발한 어려운 교회 살림에 41살, 당연히 생전 처음 타보는 외국 비행기 여행이었다.
터키항공이었는데 키도 늘씬하고 예쁘게 화장한 스튜어디스가 타이트한 미니스커트를 입고 상냥한 미소로 다가와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더니 적은소리로 뭐라 하는데 잘 안 들리는 것이었다. 자기가 밀고 온 카트의 내용을 보니 음료수 중에서 뭘 원하느냐고 묻는 것 같아서 ‘오렌지쥬스 한잔 달라(I'd like to drink a cup of orange juice)고 해야 하는데 갑자가 숨이 ‘헉’ 하고 막히는 것이었다. 잠시 부지런히도 머리를 굴리며 몸부림을 쳤으나 나의 노력과는 다르게 허망하게도 끝내 아무 말 못하고 말았다. 물론 ‘오랜지쥬스’ 라고는 해서 해결은 했지만...
11시간이 넘는 비행이어서 밤에 잠을 자야했는데 추워서 비행기에서 주는 "담요 한 장 더 갖다 달라"는 (Would you get me a blanket ) 이 안 나올 때도 마찬가지였다. 막상 닥치니 담요가 블랜킷(blanket)인지 블랭크(blank) 인지도 헷갈렸다.
당시 춘삼월이었는데도 비행기 창밖으로 내려다보이는 중국 땅 거대한 대륙이 온~통 눈으로 덮여 풍경이 장관을 이루고 있었는데 반해 창가에 얼굴을 기대어 얼굴이 따뜻해 가지고 설경을 내려다보았었다.
그 당혹감... 부끄러움을 넘어선 창피스러움이란 참 큰 것이었다. 세상에 ~~~ 중, 고, 대학을 나오면 뭘 한단 말인가.
중고에서 그토록 단어를 외우고 숙어를 외우고 동명사가 어떻고 관계대명사가 어떻고.... 그게 무슨 소용이며 학교 과정 이 외에도 당시 성문 기본 영어를 한 두 번 보았고
대학 땐 어려운 형편에 장학금 탄다고 프래쉬맨 잉글리시를 외다시피 하여 쓰기도 했고 전공이 기계공학이라 2학년 때부터 4학년까지는 전공 공업영어를 원서로 보며 수없이 해석하며 사전을 찾아 댄 경험도 무색하게
이토록 자연스럽게 말 한마디 안 된다는 말인가! 정말 안 나오는 것이 아니라 안 되는 것이었다. 왜냐면 나중에 혼자 앉아서 영작을 해도 도통 되질 않았고 이집트 호텔이 상당히 커서 카운터에 가서 이것 저것 물어 볼 것도 나오지 않았고
테니스 좋아하는 동료 목사님과 같이 가서 ‘이 근처에 테니스 코트가 있느냐?’ ‘여기서 얼마나 걸리고 어떻게 찾아가야 하며 우리가 라켓이 없는데 빌려서 게임을 할 수는 있으며 비용은 어떻게 하느냐’ 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나오지 않았으니 말이다. 우리 목사들은 서로 망연자실 벌건 얼굴로 바라보기 일쑤였다.
하지만 인도에서 온 여학생 둘이서 그토록 자연스럽게 안내 데스크 아가씨와 자연스럽게 영어로 대화하는 장면은 당시의 나로서는 하나의 그림이었다.
그 아가씨들이 이목구비가 뚜렷한 대단한 미인인데다 잘 차려입기도 했지만 그 인도 아가씨들이 입은 옷이나 그녀들의 머리카락까지 성스러워보였다고 한다면 촌놈이 처음 외국 땅 밟아 보며 여행 중 일어나는 흥분 때문 만이었다고만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마침 그때 소책자처럼 작은 영어 회화 책을 동행 중 제일 젊은 전도사님이 가져왔는데 어둠이 가시기도 전 새벽5시에 일어나 테니스코트에 혼자 가서 서성거리며 죽고 살고 암송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고선 그때 마침 옆자리에 독일 사람들이 식사를 했는데 이 독일 아줌마들부터 시작해서 식사 때 마다 몇 번 외국인 테이블에 가서
‘옆에 앉아도 되겠느냐’(May I sit ....) 하며 어디서 왔느냐, 왜 왔느냐, 난 한국에서 왔는데 남편은 있느냐, 자녀도 있느냐, 심지어 키가 얼마냐 부터 마치 형사가 죄인 심문하듯이 암송한 문장은 그 독일 사람들에게 데몬스트레이션을 하고 다니기 시작했다. 물론 내 영어가 얼마나 느리고 서툴러서 동료 목사들 피해 하느라고 애도 썼지만 워낙 성격이 쾌활하고 외향적이라 창피한 줄도 모르고 그러고 다녔는데 뒤돌아보면 이 철면피가 많은 도움이 되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두 번째부터는 조금 발전해 가지고 당신 예수 믿느냐(Do you belive Jesus christ?)고 하면서 예수 안 믿으면 지옥 간다고 (You'll go to the hell...) 웃으며 농담 하듯 전도하기도 하였었다.
그래서 영어는 미친 사람(미국사람하고 친 한사람)이 잘 한다고 했던가! 내가 카운터의 아가씨에게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면서 -십 몇 년 영어 했다고, -영한사전을 거의 페이지마다의 단어가 내 팬 자국이 있다고 자랑할 것인가?
그토록 단어를 외우며 영어선생님에게 매 맞으며 한 공부가, 당시 유행하던 성문기본영어 독파가 내게는 말 그대로 무용지물이었다.
무식한 놈이 전쟁터에서 M16 소총을 몽둥이로 쓴다고 하더니 난 그보다 못한 꼴이었다.
10년 영어 공부를 학교식으로 한 것이 차라리 두어 시간이라도 필요한 30문장이라도 부드럽게 외워 사용하면 100배 효과가 있었을 것을... TO부정사가 어떻고 관계대명사가 어떻고 어떻게 수식하고 ...
?h ?h.... 떠듬떠듬 말하며 외국인하고 말꼬를 터가며 마주 앉아 하는 일, 자기 직업을 소개 할 때도 내가 하는 일이 [목사]라고 말하기도 부끄러운 처지였다. 세계 어느 나라를 가도 그래도 목사는 지도자급 인사로 치는데 목사치고 간단한 인사나 자기와 가족소개, 하는 일 소개, 낮선 음식에 관한 단순한 질문, 화장실 묻는 말, 쇼핑할 때
‘저것들이(저것이 아님) 얼마냐’ ‘너무 비싸니 깎아 줄 수 있느냐’ 라고 영어로 말 한마디 못하고 인포메이션(호텔 데스크)에 가는 것 마저도 두려워 멀리 서있는 나라가 우리 말고 이 지구상에 있을까?
http://cafe.daum.net/gugudanenglish (구구단잉글리쉬까페)
2.영어공부의 방법을 찾아 헤매다 이 성지순례의 창피당한 이 경험은 집에 오자마자 서점으로 달려가 아예 영어 시리즈를 사기 시작하여 수 많은 영어 태잎과 20권이 넘는 영어 책과 영어 방법론에 관한 책이 9권 쌓이게 되었고
아침이고 낮이고 자주 ?X랐?X라@#$%&*.... 하며 나불거리고 다녔고 태잎을 들었다. 차만 타면 무조건 영어가 흘러나오는 것은 기본이었다.
운전 할 때 마다 들었던 시간만도 엄청날 것이다.
나중엔 없는 살림에 '영어는 듣는 훈련 밖에 없다'고 어디든지 움직이면서도 언제고 들어야 한다고 36만원 주고 MP3까지 사서 걸고 다니기도 하였다. 또 이 책들에서 시킨 대로 영어회화 태잎 들을 구하기도 하고 어떤 태잎은 수백 번을 듣기도 하였다.
[어른이 직장생활을 하거나 대학생의 일반생활과 대학 강의도 포함되어 있는] 일반용 태잎 40분짜리 2개를 오랫동안 들었어도 다시 외국인 앞에 서보면 여전히 대 여섯 마디하고는 또 멍- 해져 있는 자신을 보았다.
그래서 이번엔 중학생이 가정과 학교, 또 외국여행을 하면서 나누는 대화를 중심으로 한 비교적 쉬운 태잎과 교재를 택하여(40분짜리 태잎 두개와 스크립트가 담긴 책)
수 십 번, 수 백 번 듣다가 안들 리는 부분이 너무 많아 본문을 보면서 듣다가 그래도 시원치 않아 이 책 한권을 아예 외워버리자고 시도하기도 했었다.
한 단원 암송하면 아내 앞에서 검사받곤 했었는데 약 2~3페이지 한 단원 암송하는데 약 40여분 걸렸다. 물론 중간에 수 없이 중단도 했음은 말할 것도 없다. 혼자 한다는 것은 세월만 지나가지 눈에 보이지 않는 성과, 사기 저하. 혹은 이 일 저 일에 빠지다보면 영어에 대한 관심의 소멸 등으로 지속하지 거의 불가능 하지 않나 싶다. 영어 회화 책은 처음엔 더 좋은 것이 없나 하고 기웃거려 서점에 가서 고르기도 하고 여러 권 사게 되었으나
반복하여 암송하다 보니까 우리가 단 한권이라도 그 문장들이 [꿈속에서도] 나오도록 암송하지 못해서 문제가 되지 책은 다 그게 다 그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찾다 보니 정말 좋은 책은 두 어 권 있었다. 오신 분은 소개해 줌^_^)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가 해 왔던 멍텅구리 영어가 아닌, M16소총을 몽둥이가 아닌 100m 전방에서도 편안히 “빵! 빵! 빵!” 하고 넘어뜨리는 병기로 사용할 수 있듯이 정말 살아있는 영어, 외국인을 만났을 때 자국어 얘기하듯이 편안히 의사표현을 하는 영어를 어떻게 하면 가장 빠른 지름길로 갈 수 있을까 하여 영어공부 방법론’에 관한 책을 섭렵하기 시작했다.
10년이 넘게 했는데 외국여행하면서 기본적인 대화도 못한다? 영화 보면서 가족끼리 집에서 나누는 --학교 갈 시간이다. --오늘 수업은 어땠니? --선생님이 뭐라고 했는데? 라는 말마저도 섭타이틀(자막) 보면서 영화를 봐야 한다는 것은 뭔가 영어공부 방법이 잘못 되어도 보통 잘 못 된 것이 분명하지 않는가!!
어느 날 대학도서관에서 책을 보고 있는데 그 학교에 다니던 외 조카 녀석이 '영어에 대 혁명이 일어났다'고 하면서 내 책상 앞에 던져주고 간 책이 정 찬용씨의 ‘절대로 영어공부 하지 마라 시리즈’이다. 나 역시 멋도 모르고 이 책 3권에 매료되어 이 책 3권을 각각 3번 가까이 읽으며 정독한 후 이제 영어 공부는 끝났다고 생각하고 정찬용씨가 시킨 대로 그토록 본문(스크립트)이 보고 싶었으나 죽도록 듣기 만 하여 그 아까운 세월을 1년 반이 넘게 흘려보낸 것 같다. 물론 도중에 성과가 없으니 대부분 하다 말다 식이었지만 말이다.
정찬용씨 시킨 대로 그토록 들었으나 외국인 영어강사와 매주 목요일 오전 테니스를 하는데 .... 웬 걸, 내 가방을 열어 보이며 “너 어느 라켓으로 할 거냐?” 이런 표현도 자연스럽지 못하고 혼자 눈을 쬐려보며 내리 깔아 꼭 한번 생각해서 정리가 되어야 나오는 것이었다.
그나마도 잘 안되었다. 참 속 터질 일이었다.
난 정찬용씨에게 엄청 크게 당한 사람이다. 억울하기 짝이 없다. 여러분은 절대로 그런 방법으로 하지 마시라!!! 이러다가 다시 서점을 찾게 되고 인터넷 서핑을 하며 사고 읽고 했는데 솔직히 나도 영 헷갈렸다.
수많은 방법들을 주장했는데 다들 저마다 영어분야의 전문가들이어서 더욱 그랬다. 영어의 올바른 방법론을 찾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고 등록금(고생, 세월, 돈)도 제대로 치른 셈이다. 영어 회화 책을 11권을 사서 보기도 하고 또 영어를 어떻게 하면 외국인과 한국말 하듯이 머뭇거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대화 할 수 있을까 하여 지방서점엔 만족치 못하여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에 직접 올라가서 영어 회화 책이 아닌 [영어공부의 방법론] 에 대한 책을 9권을 사서 읽었다. 장안에서 유명하다는 영어방법론에 대한 책은 거의 섭렵한 셈이다. 이 중 좋은 책은 손 내밀면 손에 닿은, 가장 가까이 두고서 색줄 그으며 5독 이상 하였고 중요한 부분은 견출지를 붙이고 읽고 또 읽고 했는데 나중에 보니 9번 이상 읽은 곳도 있었다. 그러면서도 시내 영어 학원 원장이 대학후배이고 오랜 지기여서 늘 함께 집을 오가며 같이 식사하고 학원 강사가 일주일씩 자리를 비우면 중고생 강의 땜질도 해주면서 교재를 나누기도 하면서 자연스럽게 영어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었고 노하우도 늘어갔다. 이 후배 영어학원에 일주일에 한 번씩 미스타 이튼 이라는 30대 초반 원어민 강사가 왔다. 마침 취미가 테니스로 같아 매주 목요일 오전마다 원장, 미국인 강사, 나와 아내 넷이서 운동을 했는데 역시 즉시 즉시 잘 튀어나오지 않고 자연스러운 토론이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마침 이튼이 테니스가 초보여서 "기회는 이때다" 하고 오직 나는 영어 배우려는 속셈에 테니스를 가르치며 잔소리를 해 댔는데 운동 도중에 천천히 한 두 마디씩 나누는 것은 별 문제 없이 다시 물어서 별일 없었는데
운동이 끝나고 쉬면서 간식이나 물, 점심식사를 하면서 몇 마디 나누다가 그 몇 마디도 난 리스닝이 쉽지 않아 귀를 쫑긋 세우고 듣는 판인데
이 친구는 내가 마치 미국인이라 된 듯 내가 한국인 인것을 잊어 버리고 마구 이야기를 해 대버리는 것이어서
계속 "What do you mean?" 하면서 이튼에게 나만을 위해 달랄 수 만은 없고 그래서 계속 할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그저 알아 들은 척' 하며 고개를 끄덕여 주고 웃어주고 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고 커뮤니케이션이 안 되니 자주 만나도 별 소득이 없었다. 여기에서 절실히 느끼는 것은
나의 '머리 속에 기본 패턴의 수백문장이 꿈속에서도, 무의식간에도 말하고자 하는 이미지와 함께 동시에 튀어 나오도록 훈련되어 있는 [영어엔진] 이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선 미국인을 만난다는 것 자체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다는 것이었다. 영어엔진이, 문장 감각, 기본패턴 수백문장이라도 무의식중에 튀어나도도록 어느정도 완벽하게 되어있어야 어떤 종류의 미국인이 들어갈 듯 말 듯 이야기를 하여도 감으로 즉각 즉각 알아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후에 깊이 이 부분을 깨달음)
나의 리스닝의 경우 미국인 할아버지와 어린이, 그리고 아저씨와 젊은 아가씨의 발음은 알아 듣기에 너무나 차이가 있었다. 나같은 경우엔 젊은 아가씨의 발음이 가장 듣기에 빨랐다.
http://cafe.daum.net/gugudanenglish(구구단잉글리쉬) 3.우리나라 영어 교육의 실상 중고등학교 6년 동안, 그리고 대학을 나오고 대학원을 나와도 우리나라 영어 교육은 외국인과 얘기 몇 마디 자연스럽게 하지 못하고 외국인만 보면 두려워 한다는 것은 익히 들어 잘 알 것이다.
명문대를 나와 일류회사에 들어가 근무하면서도 대부분은 외국인에게 전화가 오면 서로 눈치만 보고 영어로 진행되는 회의나 브리핑, 외국인 바이어와의 상담, 외국 시장 조사에 파견 등에 끊임없이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한다.
요즘은 회사의 모든 승진시험 자체가 영어가 1순위, 그것도 본문중심 보다는 외국인과 30분 이상의 프리토킹이기 때문에 영어 때문에 밀려 자기보다 새파랗게 젊은 아이에게 허리 굽히며 상사로 섬길 수 없어 40초반, 젊디젊은 나이에, 이 어려운 사회에 어쩔 수 없이 스스로 사표를 쓸 수밖에 없는 절박한 심정을 닥쳐보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알겠는가? 제 조카가 서울대 공대와 전남대 공대를 나와 대기업고 공사에 있는데 명절에 내려와 이야기 해보면 우리 생각엔 대기업이나 공기업 임원정도 되면 영어에 자유로울 것 같은데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다.
회사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그 나이에 새벽 4시에 일어나 학원으로 ?i아 다니는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서는 되는 영어를 해야 한다. 영어권 나라에 유학 가서 박사학위를 따 와도 외국인과 자유롭게 이야기 하지 못하고
외국인하고 이야기만 하려하면 머리에서 짜 맞추어 나오느라 먼 산을, 땅을 바라보거나 이마에 손을 얹어야 하는 영어가 아닌,
말하려는 이미지와 동시에 말이 나오는 영어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였다.
읽고 분석은 하되 외국인과 만나 얼굴을 마주하고 듣고 말하지는 못하는 영어, 이것이 우리나라 영어공부였다. http://cafe.daum.net/gugudanenglish (구구단잉글리쉬까페)
4.덩달아 초등학교 딸들이 영어공부를... 그런데 이때 까지는 나의 영어에 대한 열심이 자녀교육에까지 나타나리라고는 생각조차 한 일도 없었는데 딸들이 아빠를 존경하는 눈빛으로 바라보기 시작하고 자기 엄마가 영어 조기교육이다 뭐다 해서 아무리 영어를 가르쳐 보려 해도 싫어하던 애들에게 대 변혁이 일어난 사건이 생겼다. 언젠가 봄날 시골 촌놈들인 개나리 봇짐인양 옷가지들을 짊어지고 우리 가족은 서울 나들이를 가게 되었다.
당시 6살, 8살이던 딸들이 유난히 적은 예쁜 분홍색 배낭을 각 각 짊어지고 서울을 돌아다닌 기억이 너무 인상적이고 예뻐서 그 모습이 지금도 새롭다. 초등학교 1학년에 다니는 큰 딸 학교마저 쉬면서 모처럼의 나들이였는데 한번은 동대문에서 잠실까지 전철을 타게 되었다.
마침 미국에서 온 대학생 남여 각각 2명씩 4명이 탔다. 난 성격상 무조건 말부터 걸고 보는데 한 20분 이야기 했을까? 나 요즘 영어 공부 좀 하려 하는데 좀 도와 달라, 너희들 학생이냐? 아니면 방학 중이냐? 몇 살이냐? 지금 어디로 가는 중이냐? 뭐 하러 와 있으며 얼마나 머물 거며 너희들은 교회 나가냐? 예수님 꼭 믿어라, 부모도 교회 안 나가셔? 부모는 뭐하시고? 한국에 온 느낌은 어떻고? 대강 이런 단순한 말들을 하고 갔는데 마침 그 녀석들이 무척 쾌활한데다 말이 안통하다 이나마 나를 만나자 임자 만난 듯 이것저것 물어서 아는 대로 또 영어가 되는 대로 대답해 주었었다.
물론 우리가 시끄러워서 그랬는지 아니면 신기해서 그랬는지 전철에 탄 사람들이 온통 우리만 바라보고 있었다. 난 원래 이런 분위기는 전혀 상관하지 않고 나 하고 싶은 영어 다 하는 사람이다.
콩글리시를 하면 어떤가? 지네들도 우리나라 말 못한 걸!!
내가 미국인이 아닌데 영어를 자기네들처럼 하면 내가 비정상이 아닌가?
아내는 나더러 항상 주변도 안 살피고 대단한 사람이라고 눈 흘기면 나는 항상 아내에게 이런 식으로 대꾸한다. "그렇게 얌전한 당신은 영어 잘 해? 난 비행기가 내릴 때까지 영국인과 조잘거리며 가지만 당신은 세 마디가 다야? "
그런데 잠실에 내려 롯데월드에 들어가려고 하는데 큰 딸이 다가오더니 상기된 얼굴로 내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손가락을 내밀면서 집에 가면 꼭 자기에게 영어를 가르쳐 주기로 약속을 틀림없이 하라는 것이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이 영어 가르쳐 달라는데 안 가르칠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나중에 들은 아내에게 들은 얘긴데 전철에서 외국아이들 하고 밝게 웃으며 이야기 하는 아빠를 딸들이 뚫어져라 쳐다보았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아내에게 '아빠는 비행기 타고 터키를 갔다 오셔서 저렇게 영어를 잘하는 것'이냐고 묻더란다. 집에 도착한 즉시 아이들은 식탁에 의자를 당기고 앉아 내가 영어를 가르치면 스펀지처럼 흡수되었다. 그토록 진지하고 열심일 수가 없었고 당시 우리 몸의 부위 단어부터 가르쳤는데 온 몸, 등, 머리에서 발가락까지 즉시즉시 기억하였고 식탁에서도 ‘Give me some water please’등의 단어를 반복하더니 초등 3년, 초등1년인 지금은 영어 시디 88개 과를 거의 외운다. 이 영어시디가 88과까지 있고 한 과가 10번까지 있으며 1번에 4개의 상황 그림이 있으니 대충 잡아도 3000장면 이상의 다양한 그림이 나오는데 영어 본문 안보고 그림만 보고 대부분은 설명이 가능하다. 그러니 우리 딸이 약 2000문장에서 3000문장은 다 외우는 것이다.
예를 들면 “빨간 마이크를 들고 있는 여자가 하얀 집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라고 말하면 바로 튀어 나온다. 애들이 우리 앞에서 놀라운 발음으로 현재 진행형, 미래진행형, 과거완료 내용의 그림을 정확히 구별하여 표현하는 것을 보면 나와 아내도 놀란다. 돌이켜 볼 때 이것은 나의 영어에 대한 열심이 애들에게 흘러간 것이다. 우리 애들만큼은 중학교 이전에 외국인과 프리토킹 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어떻게 보면 당연한 욕심이 들었던 것이다. 물론 이런 생각은 숱한 영어 책과 자료, 전문가와 토론 중에 나온 생각이다.
어른이 되면, 특히 중고생이 되면 너무 늦어 버린다. 어린이들은 외국어를 가르쳐 보면 수학이나 과학과는 달리 얼마나 빨리 가는지 놀라운 지경이다. 서울 명문대가 아니라 유학을 갔다 와도, 박사학위를 따 와도 영어를 못하면 --리딩하여 해석하는 것 말고. --물론 영어는 읽기, 쓰기. 듣기. 말하기가 모두 잘 되어야 잘하는 것이다
취직도 안 되고 취직했어도 몇 년 내에 밀려나는 세상이고 박사가 수 만명이 일자리가 없어 노는 이 절실한 현실에 외국어, 특히 영어는 호흡과도 같은 것이 되어 버린 세상이 아닌가. http://cafe.daum.net/gugudanenglish (구구단잉글리쉬까페) 오 갑식 목사. 2005. 11. |
첫댓글 너무 공감할 수 밖에 없는 글이군요. 시간을 내어 체면 불구하구 참석하겠습니다.
예... 오십시오. 가슴이 뛰고 참으로 놀라운 흥분을 느끼실 정도로 우리 캠프가 좋습니다. 약속합니다. 결코 실망하시지 않으신다고... 기대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