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의로운 길에서 얻으리라"(잠 16:31)
"젊은 자의 영화는 그 힘이요 늙은 자의 아름다운 것은 백발이니라" (잠 20:29)
'뷰티풀 그레이'
우리가 노년에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우리의 백발이 아름답고, 하나님 앞에서 영화로운 자랑일 수 있을까?
그리스도 안에서 백발은 영광이요, 자랑이다. 백발을 존중하고 사랑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장차 우리의 모습에 힘을 잃게 될 것이다. 우리에게도 노년은 찾아올 것이요, 우리가 지금 연로한 분들을 대하는 것처럼 후일 젊은이들이 우리를 대할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지금 그리스도인 20대가 노인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느냐는 것은 주요한 문제이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에서 노인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많은 청년들을 발견한다. 그런데 그들의 관계는 어떤가? 청년들은 노인들과 정기적으로 만나고, 그 분들에게서 삶과 신앙을 배우며 그들을 위로하고 섬기고 있는가? 청년들의 정열과 힘을 전부 청년 그룹에서만 사용하고 있지는 않는가? 노인들은 그저 힘없이 앉아 있는 존재에 지나도록 하지는 않는가? 우리가 어른들에게 합당한 존경을 드릴 때, 그들의 삶의 연륜은 놀라운 빛을 발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 분들과 가까이 하지 않을 때, 교회는 또 하나의 힘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
나 자신은 어린 시절 조모 밑에서 자란 탓인지, 가까이에 여러 노인들이 있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교회 생활을 하면서 노인들과 좋은 관계를 맺어 왔었다. 때로는 성미가 까다로와 여타 청년들이 꺼려하는 그런 노모님과도 개인적으로 친 가족같은 관계를 맺기도 했었다. 물론 그것은 20대의 많은 시간들을 그 분을 찾아 뵙고, 정기적으로 문안하고 격려하며, 섬긴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러한 경험으로 해서 많은 유익을 얻었기 때문에 나는 특별히 노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했다. 지금도 주변에 연로하신 분들이 많이 계시고, 그들을 만날 때면 언제나 남다른 감회를 느끼고 더 잘해드리지 못하는 것에 마음이 아프다. 그래서 항상 교회에서도 젊은 청년들에게는 인사를 못할지언정 노인들에게는 찾아가서 손을 잡아드리거나, 어깨를 만져드리는 일을 한다. 그런 스킨쉽은 의외로 좋은 반응이 나타남은 경험한 사람은 누구나 알 것이다.
어느 날은 교회에서 가장 연로하신 모친과 막역한 사이가 된 후, 그 분의 집을 개인적으로 방문한 적이 있다. 그 때, 나는 다른 청년 그 누구도 들을 수 없었던 그 분의 옛 간증을 들을 수 있었고 1900년 대 초의 이 땅의 복음의 역사와 교회의 발자취를 더듬는 감격의 기회를 가졌었다. 이제는 돌아가셔서 천국에 가야만 만날 수 있는 그 분은 언제나 나를 보시면 웃으면서 이렇게 불렀다.
"기관이, 가관이, 명주관이 탕관이..."
무슨 뜻인지는 두고두고 모르는 말이었지만, 나는 그렇게 나를 불러주는 소리가 그렇게 좋을 수 없어서 언제나 안마해 드리고 손을 잡아 드리곤 했었다.
교회이기에, 우리는 이런 백발의 영광을 쉽게 만나고 함께 생활할 수 있음을 감사하자. 젊은이들의 모임만이라면 우리는 연로한 인생의 선배들에게서 신앙의 깊은 옛 맛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얻지 못할 수도 있지만, 하나님의 교회는 어린 아이부터 노인까지 모두가 '한 울타리' 안에서 주님을 섬기는 공동체이기에 우리는 다양한 삶의 간증들을 듣고, 다양한 환경속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배우게 되는 것이다.
20대가 성숙해 지는 또 하나의 지름길은 백발의 영광 앞에 앉아 그들의 길을 같이 더듬는 것이다.
분명 20대의 열정은 보석처럼 아름다운 것이요, 그 누구고 쉽게 소유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백발의 경륜은 결코 20대가 가질 수 없는 하나님이 준, 역사와 함께 한 산물인 것이다. 그것을 나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축복인가! 때로는 책에서 배울 수 없는 무궁한 삶의 지혜와 신앙적인 명철을 그분들의 입술을 통해 배우기도 할 것이다.
물론 때론 연로한 분이지만 신앙 안에서 늦게 된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 분들에게서도 우리는 삶을 배울 수 있고, 때로는 그들을 도울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을 섬기는 그런 일들을 통해서 진정한 그리스도의 섬김이 무엇인지 깊이 깨닫는 은혜를 또한 맛볼 것이다.
오늘날 세대는 무서운 속도로 바뀌고 있다. 한 세대의 주기가 너무나 짧아져서 불과 10살 남짓 한 차이에도 우리는 '세대차'를 느낀다고 말한다. 우스개 소리로 불과 몇 분 차이로 태어난 쌍둥이 동생이 형에게 이런 말을 했다 한다.
"우린, 세대차가 나"
그런 시대이다. 그렇기 때문에 젊은 이들이 매스 미디아에는 친숙하지만 노인들의 삶에 연루되는 것은 꺼릴지 모른다.
그러나 주님을 섬기는 삶은, 하나님의 축복을 나누는 삶은 그 모든 것을 초월해서 노인과 아이가 하나되고, 서로 섬기는 그런 모습일 것이다.
교회 안에서 지금까지 신앙생활 해오면서 노인들을 개인적으로 사귀어 보지 않은 청년들이 많을 것이다. 지금까지야 어쨌든 시도해 보기를 바란다. 예배가 끝난 후, 어른들을 찾아가서 먼저 인사하자. 그리고는 그 분들을 안마해 드리라. 그렇게 친교를 시작하고, 차츰 개인적인 관계를 맺어 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하나님이 특별한 축복을 주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