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15시 영등포역 대회의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300여명의 지지자들과 정동영 고문은 열띤 토론의 시간을 가졌다. 22명의 토론자와 200명 수용의 대회의실은 300명이 넘는 인파로 발디딜틈이 없어 복도까지 늘어 서있었다. (일부 언론들은 100이니 200명이니 하는데 정확한 숫자는 300명 조금 넘었다) 대부분 희망과 수권정당으로서의 대안이 없는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하라는 의견들이 많았다. 이에 정 고문은 즉답보다는 당안팍의 정치권 원로 선후배들의 의견을 들어 보고 전당대회를 전후해서 거취를 결정하겠다고 답했다.
많은 언론들이 앞다퉈 <정 고문이 탈당을 시사했다.탈당할 예정이다>라며 추측성 기사를 내보내고 있는데 아직 정 고문은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한다고 공식적으로 언급한 적이 단 한번도 없다. 특히 (측근들의 말에 따르면)이라고 표현을 하는데 정 고문의 측근들은 이와 관련하여 입밖으로 언론에 퍼트린 적이 없다. 정 고문의 일부 지지자들의 이야기만 듣고 추측성 기사를 작성하는 것은 언론본연의 자세는 아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언론기사들이 실시간 검색어순위 1위에 정동영을 올려 놓았을까? 정 고문의 탈당이 비단 한사람의 정치인의 탈당이라면 이렇듯 관심을 불러 모으지는 않았을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이 그동안 국민들에게 보여 준 실망감과 배신감에 대한 반증으로 보인다. 아울러 17대 대통령후보까지 했던 무게 있는 정치인의 행보라서 적잖은 기대감과 희망을 갖고 지켜 보고 있다는 이야기도 된다.
많은 국민들은 지금의 정치권을 신뢰하지도 관심도 갖고 있지 않다. 이미 야당은 야당으로서의 힘을 잃었고 여당의 독주체재에 형식적인 아니오를 외치며 소위 2중대로 전락했다고 보는 견해가 많다. 그렇다면 다수의 국민들과 중소기업들은 누가 지켜주나? 답은 결국 국민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희망과 그리고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주는 정당의 필요성이다.
다음은 왜 정동영인가?를 보여 주는 지난 기록들이다. 그동안 정동영 고문은 정치인들이 거들떠 보지도 않는 곳을 자주 찾았다. 정 고문은 힘없고 빽없고 돈없는 약자들을 찾아 위로하고 격려했던 지나간 정 고문의 민생현장 방문 사진들이다.
<4대강 여주시 강천보 공사현장을 찾은 정동영 고문이 공사중단을 촉구하고 있는 건너편 환경연합회원들에게 격력전화를 하고 있다> 한강유역의 4대강 사업현장뿐만 아니라 낙동강유역의 공사현장도 수시로 방문하며 공사중지를 촉구했던 정동영 고문
<엄동설한에 미권스 회원들과 집회중인 정동영 고문> BBK사건으로 구속수감중인 정봉주 전 의원을 격려하고 위로하는 보신각행사에 참석한 정동영 고문.
<고 장준하 선생 추도식을 찾아 미망은을 위로하는 정동영 고문> 민주당의 뿌리는 신익회선생 장준하선생으로 이어진다고 말하는 정동영 고문이 고 장준하 선생의 묘역을 찾았다.
<고 김대중 대통령묘소를 참배중인 정동영 고문과 유가족들> 정 고문을 정계에 입문하게 했던 고 김대중 전 대통령
<광주 5.18묘역을 찾은 정동영 고문과 유가족> 매년 5.18행사에 참석하는 정 고문은 다녀 올때마다 마음이 무겁다고 말한다. 우리 역사에서 한국동란에 이어 지울 수 없는 아픈 역사이기도 하다.
<지방선거 당시 성북구를 방문해 후보들 지원유세하는 정동영 고문> 같은 당 후보를 위해 불철주야 동분서주 하는 정 고문 덕분(?)에 전국 안다녀 본 곳이 없을 정도다.
<한미 FTA 독소조항과 불평등조약에 관한 연설을 하고 있는 정동영 고문> 참여정부시절 꼼꼼히 따져 보지 못한 반성과 함께 독소조항과 일부 불평등조항은 바로 잡아야 한다는 정 고문
<노동단체와 함께 철도,의료 민영화반대 투쟁 나선 정동영 고문> 의료 서비스와 철도가 민영화 될 경우 서민들의 부담이 커진다는 것이 정 고문의 말이다. 실제로 돈이 없어서 죽음을 맞이 할 수 밖에 현실이 초래될 수 있다.
<거창 양민학살사건 현장과 유가족을 만난 정동영 고문> 억울하게 이념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마을주민들에게 자유당 정권과 군인들은 (견벽청야)작전을 통해 빨갱이의 앞?이라며 대량학살했다. 3살짜리 젓먹이부터 부녀자들까지 이념과 무관한 양민들을 대량학살한 현장을 방문하고 유가족들을 만나 위로하고 격려한 정 고문.
<강원도 고성군을 찾아 금강산 관광재개관련 토론회 개최> 남.북통일과 전쟁없는 평화를 위해 금강산관광의 재개는 꼭 필요하다는 정 고문 그는 금강산관광 육로의 최북단 고성군을 찾아 지역주민들과 의견을 주고 받는 시간을 가졌다.
<도라산역을 찾은 정동영 고문과 희망래일에 참석한 대학생들> 로드넘버원(국도1호선)을 따라 이동한 젊은 대학생들과 함께 통일을 주제로 도라산역에서 행사를 가졌다.
<정동영과 통하는 사람들(정통들)은 정 고문에게 항상 든든하게 힘을 보태는 지지모임>
<좁은 한반도를 벗어나 대륙으로 가야 우리 민족이 번영할 수 있다는 정 고문은 (대륙으로 가는 길) 연구소공동대표> 매년 대륙으로 가는 길을 이루크츠크(러)부터 하바로브스크까지 대륙횡단행사를 하고 있다. 우리 민족의 뿌리라는 바이칼호와 백두산을 모두 다녀 온 정 고문은 왜 대륙으로 가야하는지 자주 역설하곤 한다.
<정동영 고문과 민혜경 여사의 가족들이 함께한 한마음 체육대회> 다복하고 단란한 가정들이 모여서 사회를 구성하고 국가가 된다고 믿는 정 고문 내외 (가화만사성)이라는 말이 생각나게 만드는 가족들이다.
<강원도 화천군 감성마을을 찾아 이외수 선생 내외분과 함께 한 정동영 고문 내외> 강남을 단일후보가 된 직후 어두운 밤길을 달려 화천 감성마을을 찾아 이외수 선생 내외분과 함께 자리한 정 고문. 지금도 자주 소통하는 모습이 여느 젊은 사람들 못지 않게 활발하다.
<강남을에서 낙선한 정 고문은 낙선인사를 다녔다> 낙선인사중에 세곡동의 한 젊은 여성유권자가 정 고문을 보더니 아이를 앉고 서럽게 웁니다. 정동영 고문은 그저 "미안하다 죄송하다"는 말만 할 뿐입니다. 지난 2007년 대선때도 어떤 할머님이 서글프게 우셨고 동작을에서도 이렇게 우시는 분들이 많았는데... 정 고문께서는 국민의 눈물을 많이 닦아 주셔야 겠습니다.
<문규현 신분님과 명진스님은 정동영 고문의 든든한 후원자이기도 합니다> 종교계를 떠나 음으로 양으로 많은 도움을 주는 분들이라는 정 고문.
<개성공단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회의도 개최한 정동영 고문>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에 맞물려 애먼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이 피해를 보고 있는 상황에서 개성공단을 만든 장본인 정 고문이 해결방안을 위한 여.야 정치인들을 초청한 토론회를 개최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 후보를 위해 밤낮없이 호남의 구석구석을 누비며 지원유세하는 정동영 고문> 왜 대통령선거를 겨울에 해야하는지 먼저 묻고 싶습니다. 정말 춥습니다. 그럼에도 정 고문은 광주,나주,고창,순처,고흥,벌교,화순... 그리고 군산,익산,전주... 구석구석 안가는 곳이 없이 문재인 후보를 위해 뛰어 다닙니다. 대충,대충하는 법이 없습니다.
<비정규직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정동영 고문> 얼마전 영화<카트>를 보고 비정규직 문제는 우리 정치권에서 꼭 다뤄야할 의제라고 언급한바 있습니다. 물론 자주 언급합니다. 비정규직문제 우리 사회가 선진국으로 가느냐 마느냐를 결정짓는 척도가 된다고 생각하는 정 고문. 최근 종영된 (미생)이라는 드라마에서 장그래의 일이 남일 같지 않았던 분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엄동설한에 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현장을 찾은 정동영 고문> 유독 긁직한 사건들이 겨울에 많이 일어 나는 것 같습니다. 바다바람이 세차게 불어 오는 부산 영도구 한진중공업 그곳을 찾은 정동영 고문은 일부정치인들이 행사에 눈도장만 찍고 간 뒤에도 끝까지 남아 노동자들과 함께 시간을 가집니다. 사실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는 노동자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이제는 정 고문의 진정성을 의심하거나 그 것을 따지는 노동자들은 이제는 없다고 합니다.
이후 정 고문은 국회 환,노위로 자리를 옮겨 한진중공업 조**회장을 출석시켜 "해고는 죽음이다"라며 강하게 따져 물었습니다.
<울산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집회현장을 찾은 정동영 고문> 왜 그들은 고압선철탑에 올랐을까요? 높은 곳에서 이상을 ?아가려고 그랬을까요? 아닙니다. 그들은 비정규직의 서러움과 비정규직을 홀대하는 사회를 향해 소리를 치고 싶었을 뿐입니다. 같은 일을 하면서도 임금은 절반수준이거나 이하로 받는 이상한 논리에 맞서고 있는 것입니다.
<용산참사현장을 찾아 유가족들을 위로하는 정동영 고문> 우리가 잊어서는 또 하나의 아픈 현실 용산참사. 매년 용산참사 행사에 빠짐없이 참석하는 정 고문. 유가족들은 정 고문에게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아무도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 주지 않았는데 정 고문께서는 잊지 않고 찾아 와주시고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감사하다"라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정치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용산참사 이후 정 고문은 유독 민생현장에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참석하려고 합니다.
<정봉주 전 의원의 홍성교도소 출소일에 만나 정 전의원에게 "미안하다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건네는 정동영 고문> 그 날은 성탄절을 앞두고 함박눈이 내리던 날이였습니다. 말 그대로 화이트크리스마스입니다. 자정무렵 BBK사건으로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정봉주 전 국회의원이 만기출소하는 날이 였습니다. 이상하게도 대부분 형집행정지로 출소 하는데 반해 정봉주 전 의원은 괘씸죄(?)가 적용 되었는지 복역기간을 꽉 채우게 합니다.
정봉주 전 의원을 부둥켜 앉고 정 고문은 "미안하다,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 합니다. 그리고 "그동안 고생했다"는 말로 미안함을 대신합니다.
<건강한 체력은 건강한 정치를 만든다는 정동영 고문> 운동을 좋아하는 정 고문은 우리 나이로 환갑을 넘긴 나이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은 사람들 못지 않게 운동을 잘 합니다.
<고 김대중 대통령의 영결식장의 정동영 고문>
<2007년 광주 5.18마라톤대회에 참석한 이명박 전 대통령과 정동영 고문>
이제는 말하고 싶습니다. 정 고문이 이명박과 17대 대통령선거에 맞 붙어을때 왜 졌을까요? 정 고문은 당신이 부족해서 졌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저는 생각이 다릅니다. 당시에 구체적인 이유없이 노무현 대통령을 싫어하는 사회적 분위기였습니다. 여기에 보수뿐만 아니라 진보성향의 언론들은 앞다퉈 정 고문을 BBK와 다스로 이명박 후보를 네거티브한다고 몰아 갑니다. 이와관련하여 청와대는 같은 당임에도 불구하고 강건너 불구경하듯 손을 놓고 구경만 했습니다. 문국현 후보도 이인제후보도 비공식적으로 만났으나 단일화를 거부했습니다. 정 고문은 같은 당의 청와대 지원도 야권의 지원도 없이 혼자서 고군분투한 셈입니다. 이런 정 고문에게 누가 감히 비난을 하고 욕을 합니까? 잃어버린 몇백만표? 과연 그 표를 잃어 버린 걸까요? 저는 잊어 버린 것이라고 봅니다. 훗날 역사가 모든 것을 말해주리라 봅니다.
<선종하신 김수환 추기경님의 묘소를 찾은 정동영 고문 내외> 대선이후 정 고문은 미국으로 유학을 떠 납니다. 미국에 있는동안 우리나라 종교계의 거목 김수환 추기경님이 선종합니다. 귀국하자마자 용인에 있는 김수환추기경님의 묘소를 방문한 정 고문 내외.
<대형마트로 골목상권이 무너진 현장을 찾아 상인들을 위로하는 정동영 고문> 재래시장특별법을 만들어 시장상인들과 소상공인들을 적극 도왔던 정 고문 SSM에 밀리고 대기업들이 편법,탈법으로 골목상권까지 위협하자 현장을 방문한 정 고문은 목속리가 커집니다. "이 것은 말이 안된다 대기업들이 왜 서민들 터전까지 죽이려는지 모르겠다"
정 고문은 경제민주화를 주장한다. 갈수록 심화되어 가는 부익부 빈익빈은 결국 정치권에서 규제를 해야한다는 것이 정 고문의 생각이다. 규제조차 하지 않는다면 대한민국은 대기업들만 존재할 수 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자주 정 고문은 중.소기업들이 건실해야 대기업들도 튼튼해진다고 언급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 하기 때문에 정 고문은 법으로라도 규제를 해서 힘없는 서민들을 보호해야한다고 하는 것이다.
<쌍용자동차 희망텐트를 찾은 정동영 고문> 정말 쌍차에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많이 갔던 정 고문. 많은 노동자들이 죽음으로 내몰리고 차가운 아스팔트위에서 노숙하며 복직을 염원하던 노동자들 그들과 함께 하며 현실정치는 여의도 국회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 있다고 강조하는 정 고문.
<명진 스님과 함께 부처님 오신날 경축법회참석한 정동영 고문> 조계종 봉은사 주지수님으로 있었던 명진스님. 크고 작은 인연으로 만나게 된 두분은 인연의 소중함을 잘 안다. 제천시의 어느 산골짜기 작은 암자에 칩거 아닌 칩거중인 명진스님을 찾은 정 고문. 그는 어떤 소원을 부처님께 빌었을까?
<반값 등록금 집회에 참석한 정동영 고문과 손학규 전 고문>
얼마전 정 고문은 팽목항을 다녀 오는 길에 배한상자를 사들고 강진에 칩거중인 손학규 전 고문을 찾았다. 미리 연락을 하지 않고 방문하다보니 얼굴을 보지는 못 했다. 그럼에도 입방아 ?기 좋아 하는 사람들은 손학규 전 고문이 정 고문을 일부러 피했다는둥 여러가지 억측들이 난무했었다. 지금도 정 고문은 손 학규 전 고문에게 깍듯하게 정치선배로서 인생선배로서의 예우를 하고 있다.
<구룡마을을 찾은 정동영 고문> 강남구에 있는 구룡마을은 정 고문이 강남을에 출마하기 이전부터 끈끈한 인연이 있는 곳이다. 부자동네인 강남구에 서민들이 옹기종기 모여사는 구룡마을은 우리의 이웃 그 자체다. 크고 작은 대소사를 챙기는 정 고문은 구룡마을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매년 정통들은 연탄배달행사를 해오고 있다.
<진주의료원을 찾아 노조원들을 격려하는 정동영 고문> 의료민영화를 적극 반대하는 정 고문은 경상도를 방문하게 되면 진주의료원을 꼭 방문 한다. 의료민영화는 돈 없는 서민들은 제대로 된 치료조차 받지 못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정 고문은 이들을 찾아 격려하고 힘을 보탠다.
<경남지역을 방문해 정치현안과 민생현안에 대한 의견을 청취중인 정동영 고문> 현역 지방 의회의원들과 전 현직 정치인들 그리고 사회단체대표들로 이루어진 모임에 참석해 다양한 의견들을 듣는 정 고문 때로는 무거운 이야기도 때로는 가벼운 이야기도 흘려 듣지 않는 정 고문이다.
<언론관련단체 초청 강연회에 참석한 정동영 고문> 5개언론단체 초청으로 현 정치권에 대한 의견을 나누는 자리에 참석한 정 고문.
<대한노인회 중앙회 초청행사에 참석한 정동영 고문>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은 정동영 고문을 향해 (정동영은 노인들은 투표하지말고 집에 가서 쉬라고 했다)고 말한다. 내용인즉은 "자신의 미래를 위해 젊은 유권자들이 투표를 적극 해야한다 어르신들이 젊은 사람들의 미래를 결정 짓는 것 보다는 스스로 미래를 결정하는 것이 좋은데 바로 투표가 그런 방법중에 하나다"라고 말한 것이다. 이를 앞뒤 다 자르고 부정적인 시각에서만 보는 사람들은 노인폄하니 뭐니 하면서 정동영을 비난 하는 것은 옳지 않다.
<밀양 송전탑 피해주민들의 의견을 듣는 정동영 고문> 전기는 우리 생활에서 꼭 필요하다. 그러나 전자파등 고압선로에서 나오는 유해물질로 인해 발암이나 인체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밀양주민들이 정 고문에게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에서 이와 관련하여 해결방안을 찾아 달라며 호소하고 있다.
<언론의 관심도 시들해지고 정치권에서도 관심을 보이지 않아도 정 고문은 수시로 팽목항을 찾았다> 정 고문에게 유가족들은 '잊혀지는 것이 두렵다"라고 말한다. 많은 사상자를 냈음에도 제1야당은 새누리당에게 끌려 다니고 심지어 박근혜 대통령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협상을 하는 상황까지 가고 말았다.
나는 그동안 정 고문과 함께 현장에서 직접 보고 들은 상황을 글로 옮기면서 소위 유명(유력)정치인이라는 문재인,한명숙,이해찬,문희상,박지원,정세균,김부겸(존칭생략)과 운동권출신 486 이인영,최재성,노영민등 현역 국회의원들을 현장에서 거의 본 적이 없다. 과연 그들이 국민들을 위한 현실정치와 민생을 걱정한다라는 말을 할 수 있을까?
정 고문은 말한다. 세월호정국을 정점으로 우리나라 정당사는 바뀌어야 한다. 그리고 대안정당 힘있는 야당의 필요성을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 졌다고 한다. 힘없고 돈없는 서민을 대변하고 중.소기업을 위해 대변할 수 있는 정당. 국민의 가려운 곳을 긁어 주고 아픈 곳을 어루 만져 주는 정당. 국민의 눈물을 제대로 닦아 줄 수 있는 정당. 그런 염원들이 정 고문에게 모두 모아지고 있는 것은 아닐런지...
아직까지 정 고문은 신당참여에 대하여 정확한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조금 더 심사숙고해서 결정하겠다고 답을 유보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신당에 참여하는 것처럼 말하는데 이는 사실과 다름을 밝혀 둔다.
끝으로 언론사에 바란다. 정 고문의 측근들은 언론에 말을 하지 않는다. 기사내용에 측근의 말에 의하면(따르면)이라고 표현하지 않았으면 한다.
글/사진 양 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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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양승관기자의 사랑방 원문보기 글쓴이: 양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