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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북 1~2차(이티재 → 서운산 → 엽돈재)
2009년 3월 1일(일요일) 맑음
▶ 개요
-. 2월 28일(토요일)
-. 18:30 울산 고속버스 터미널 출발
-. 22:30 천안 도착
-. 3월 1일(일요일)
-. 06:35 기상
-. 07:20 천안 시외버스 터미널 출발
-. 08:10 안성 터미널 도착
-. 08:25 이티재 도착
-. 08:38 이티재 출발
-. 08:50 무명 순교자 묘지
-. 09:11 석남사 갈림길
-. 09:22 서운산(547.4m)
-. 09:44 청룡사 갈림길
-. 11:07 엽돈재
-. 11:38 청룡사 입구 삼거리
-. 11:56 청룡사
-. 12:35 청룡사 입구 삼거리 버스 출발
-. 13:30 천안 시외버스 터미널 앞 도착
-. 14:30 천안 고속버스 터미널 출발
-. 18:30 울산 도착
*금일 금북정맥 종주 도상 거리 : 7.1km / 현재 금북정맥 종주 도상 누계 거리 : 26.4km
▶산행기
-. 2월 28일(토요일)
-. 18:30 울산 고속버스 터미널 출발
-. 22:30 천안 도착
작년 12월 한남금북을 마치고 연이어 금북정맥의 마루금을 이어가기위해 안성 칠장산을 출발하는 날이, 공교롭게도 제일 춘운 한파가 몰아치는 날이라 체력을 감당하지 못한 나는 이티재에서 이어가기를 그만 둘 수밖에 없었고 범이 형과 진욱이는 엽돈재까지 마친 상태였다.
일행 모두가 추위에 워낙 고생들 하였던지라 춘삼월 꽃이 피면 다시 연결을 하기로 하고 잠시 원행을 접기로 하였다.
그런 중 날씨는 해동이 되었지만 일행들이 여러 사정이 겹쳐서 생기는 바람에 재시작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던 중, 난 소위 말하는 땜빵으로 소 구간을 마쳐놓고 다시 시작할 때면 같은 엽돈재에서 출발을 하려고 혼자 나선다.
간만에 혼자 하는 자유를 만끽하기위해 짧은 소 구간 이지만 천안의 찜질방 사정도 볼 겸 해서 전날 고속버스 막차출발로 여유 있게 일정을 잡았다.
-. 3월 1일(일요일)
-. 06:35 기상
-. 07:20 천안 시외버스 터미널 출발
-. 08:10 안성 터미널 도착
-. 08:25 이티재 도착
늦잠을 잤다. 이왕에 시작 하는 거 일찍 시작하여 일찍 마치고 울산으로 내려갈 작정을 하였지만 혼자 하는 즐거움에 인터넷게임을 한참을 즐기다 잠들다 보니 그랬다.
천안 터미널 구내식당에서 된장국으로 아침 요기를 해결하고 안성행 버스에 오르니 좌석은 그 진 텅 비어있다. 차창 밖 풍경을 구경하다 잠시 졸았는데 기사분의 고함 소리에 정신을 차리니 안성터미널이다.
헐레벌떡 내려서 미리 살펴둔 시내버스를 이용하려다 종점에서 들머리 이티재까지 30여분을 도로를 따라 올라야 하는 시간상 아까움을 핑계로 편하게 택시를 이용한다.
나이 지긋하신 기사 분은 내가 잘 이해가 되지 않나보다. 그리 유명한 산도 아닌데 먼 울산에서 와서 택시를 타고 아침 이른 시간 이티재까지 간다니 말이다.
이런 저런 세상 돌아가는 얘기하다보니 벌써 이티재이다.
-. 08:38 이티재 출발
(아침 햇살이 막 퍼지는 이티재)
('생거진천' 백곡면 입석)
택시가 돌아가자 널따란 고갯마루에 뎅그러이 나그네 혼자 남았다. 다행이 아침 햇살이 밝게 퍼지니 그리 서글퍼진 않다. 혼자지만 간단하게 스트레칭으로 몸좀 풀고 ‘생거진천’이라고 새긴 입석을 뒤로하고 서운산으로 향한다.
마루금 오른쪽은 경기도 안성시이고, 왼쪽은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이다.
-. 08:50 무명 순교자 묘지
(무명 순교자 묘역)
(안성시에서 마련한 휴식처)
등로는 계단이며 로프 가드레일 하며 잘 정비되어있다. 그리 심하지 않은 오르막이지만 천천히 오르며 호흡을 고른다. 포근한 날씨 덕에 땅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난다. 한 구비 돌고 작은 봉우리를 지나니 왼쪽에 무명 순교자 묘지라며 안성시에서 마련한 잘 생긴 이정표가 알리고 있다.
잠시 내려서니 6인의 오랜 된 무덤들이 가지런히 정렬해 있다. 1975년에 발굴하였으며 조선 말엽에 종교 박해로 쫒기다 이곳에서 돌아가셨는데 그 교우들이 순교한 장소에 안장을 하였기 때문이란 안내문이 있다. 지금은 천주교 성지로 가꾸어 나아가나 보다.
-. 09:11 석남사 갈림길
(석남사 갈림길 이정표)
무명 순교자에게 묵념을 해주고 마저 올라서니 작은 봉우리에 체육공원이다. 벤치하며 운치도 있다.
오른쪽 옆에서 소로가 합류를 하고 석남사 갈림길이라고 이정표가 알린다. 우리 울산에도 석남사란 유명한 사찰이 있다 보니 이름만으로 반갑다.
이후 오른쪽에서 합류하는 소로를 여러 번 만나게 되는데 모두 석남사에서 올라오는 등로이다.
안성 시내 분들이 가벼운 산책으로 자주 찾는 코스로 짐작된다. 등로도 반질반질하고...
서운산 남쪽 기슭에는 청룡사가, 그 너머 동북쪽 기슭에 석남사가 있다. 안성시내에서 마둔저수지 너머 진천방향 313번 지방도로를 타고 호젓한 계곡길로 접어들어 10여 분 올라가면 세월의 무게와 역사의 기품을 간직한 천년고찰 석남사가 푸근하고도 웅장한 자태를 드러낸다.
*석남사 :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수도승들이 유난히 많았던 석남사인지라 스님들의 손길이 곱게 묻어나는것만 같다. 고려 광종이 아들 혜거국사가 크게 중건하는 등 이름 높은 스님들이 석남사를 거쳐갔다. 석남사는 당시 수백인의 참선승이 머물렀던 수행도량으로 이름이 높았던 것. 정면 3칸, 측면 3칸의 대웅전은 겹처마 맞배지붕으로 단촐하면서도 당당해 보인다.
신라 문무왕 20년에 고승 담화덕사가 창건했으며 이후 고려시대 혜거국사가 크게 중수했다. 경내에는 16나한이 모셔진 영산전을 비롯해 대웅전, 마애석불 등의 도지정문화재와 석탑, 부도 등 향토유적이 있다
- 안성 시청 관광 사이트에서 퍼옴 -
-. 09:22 서운산(547.4m)
(서운산 전위봉의 무인 구조물)
(정상 직전의 이동 매점)
(서운산 정상에서 : 여기까지는 좋았는데)
(정상의 서운산성 알림판)
(나를 시련에 빠지게 한 바위)
(바위 위에서 내려다 본 안성시내)
앞에서 인기척이 난다. 내가 일등으로 오르나 했는데 페트병 하나 달랑 들고 젊은 아저씨가 나타난다. 정상을 벌써 다녀오나 보다 마라톤 마니아?
급한 경사로도 없고 산책삼아 오르기에는 나름대로 멋진 코스 갔다. 홀로 하는 산행이지만 기분만큼은 최상이다. 지난겨울을 추위라는 핑계로 몸을 움쳐렸다가 꽃도 화사하게 핀 계절에 자유를 즐기다 보니 그러나 보다.
상쾌한 기분에 콧노래도 흥얼거리며 마저 올라서니 삼각점과 스피커가 달리 철 구조물이 있는 전위 봉이다.
오른쪽으로 돌아가니 등로 왼쪽의 이동매점에서는 벌써 장사를 시작했다. 서너 명의 산님들이 담소를 즐기고 있다. 마저 진행을 하여 나아가니 정상이다.
입석의 정상석과 이정표가 있고 서운산성을 알리는 입간판도 있다. 부부가 과일을 먹으며 권하지만 크게 생각이 없어서 사양을 하고 사진을 부탁을 하여 흔적을 간직한다.
조금 옆에 있는 전망대 바위로 향한다.
내 키보다 조금 높은 바위위에 서면 안성 시내가 시원하게 보일 것 같다. 사진기를 손목에 걸고 양손으로 바위를 잡고 두 번째 발을 올리려는 순간 등산화 바닥에 묻었던 진흙으로 인해 미끄러지며 작은 바위틈에 발목에 꼭 끼인 채로 뒤로 발라당 뒹굴게 되고, 귀로 덜리는 오른쪽 무릎이 “우지직”아작 나는 듯 한 소리...
방금 전 부부가 달려 와 걱정을 해주지만 창피하고 부끄러워 대수롭지 않은 양 훌훌 털고 벌떡 일어난다.
다리를 조금 절며 다시 바위에 올라 시내를 조망을 하며 사진을 촬영하고 내려서 이동매점으로 가 커피를 한잔 사서 마시며 잠시 상태를 점검하니 다행히 뼈에는 이상이 없는지 통증은 있지만 움직여진다.
혼자 하는 서러움이 여기서 나타난다. 혹 119를 불러 헬기라도 불러 올려야 하는 지경이 되었다면 무신 챙피고? 이런 저런 상념에 숨을 고른 후 그나마 이렇게 혼자서라도 움직일 수 있으니 불행 중 다행으로 여기며 절뚝절뚝 다리를 절며 하산 길에 나선다.
-. 09:44 청룡사 갈림길
(청룡사, 엽돈재 갈림길 이정표)
정상에서 청룡사 방향으로 내려간다. 오른쪽 등로로는 정자라고 이정표가 알린다. 급한 경사로는 아니지만 낙엽이 말라있어 미끄럽다. 무릎이 불편하여 보폭을 최대한 조금씩 내려가다 보니 진행이 더디다. 살짝만 뒤틀면 통증이 심하게 온다.
간간히 가족들이 모여 올라온다. 그들은 밝은 소리에 내 자신도 밝은 마음을 가지려 애쓴다.
다행히 등로는 큰 요동이 없다. 삼거리 갈림길이다. 대로인 오른쪽으로 비켜 내려가면 청룡사이고 직진인 희미한 소로 쪽으로 마루금을 연결해 간다.
작은 봉우리에 올라서니 벤치도 있고 휴식처로 만들어 놓았다. 과일을 한입물고 한참을 쉬다간다.
-. 11:07 엽돈재 (금일 금북정맥 종주 도상 거리 : 7.1km)
(산악 자전거 정맥팀)
(엽돈재)
작은 봉우리들을 오르내리며 솔 밭길 오솔길을 내려간다. 등로는 매우 좋다. 아픈 무릎으로 인해 땅을 내려다보며 걷다보니 간간히 등로에 자전가 타이어 자국 흔적이 보인다. 웬 산길에 자전거?
등로는 편안하나 마음이 불편하다보니 작은 봉우리들을 오르내리지만 지루함이 느껴진다. 한참을 내려온 듯 한데도 날머리가 나타나지 않는다.
차량의 질주소리가 가까이서 덜려온다. 이 지루하고 먼 길을 지난 그 추위에 범이형 일행은 두 시간도 안 결려서 내려갔나?
갑자기 등로가 환해지며 급하게 내려간다. 앞에서는 많은 인기척이 들려온다. 마주해서 보니 산악자전거 팀이다. 그들도 자전거로 마루금 잇기를 하나보다.
반갑게 인사 나누고 마저 내려서니 엽돈재 공터이다. 34번 국도가 지나가는 이곳은 충청남도, 북도. 경기도 삼개 도가 만나는 경계이다 보니 많은 조형물들이 있다.
왼쪽으로 조금 더 올라가야 고개의 마루이지만 다음 연결 시에 만날 것이고 오늘은 먼발치서 바라만 보고 불편한 다리 때문에 오른쪽으로 그냥 내려간다.
-. 11:38 청룡사 입구 삼거리
-. 11:56 청룡사
(청룡 저수지)
(청룡사 입구 삼거리)
(청룡마을에 있는 청룡사 사적비)
(청룡사 정문)
(대웅전과 도량)
(청룡사 대문을 나서면서)
꾸불꾸불 내리막 포장도로를 씽씽 잘도 달린다. 손을 덜어 히치를 시도해 보지만 반응이 없다. 오늘은 일진에 운이 닫지를 않는지 절뚝거리며 시음 시음 몇 구비를 돌도록 세워주는 차가 없다. 이제 포기를 한다.
수면위에는 수상 놀이터가 요란한 저수지가 오른쪽에 나타난다. 청룡 저수지이다. 마저 내려서니 왼쪽으로 식당과 주유소가 있고 오른쪽 저수지 물꼬위로 다리다. 청룡사 입구이다.
안성에서 다니는 시내버스와 천안 입장에서 다니는 시내버스가 있는데 여기 삼거리에서는 찬안 입장 행 종점이다. 작은 구멍가게 입구에 붙어있는 시간표를 보니 40여분 여유가 있어 생각해 두었던 청룡사로 향한다.
휴일을 맞아 많은 차량이 지나 다니지만 가족 등 일행들이 탑승을 하여 움직이는 차량이라 아예 히치를 포기하고 절룩거리지만 반 뛰다시피 하여 급하게 걸어본다.
절 입구 마을주변에는 주차된 차량들로 매우 혼잡하다.
일주문이 여느 여염집 문간방이 있는 대문처럼 생겼다. 일주문을 통해서 도량으로 덜어서니 생각했던 것 보다 규모는 작지만 아담한 사찰이다.
청룡사는 남사당의 본산으로 임꺽정과 장길산 이란 소설을 통해서 간접 경험을 했던 곳이다.
경내를 둘러보고 조금 떨어져 있는 바우덕이의 묘지와 사당을 보고 싶었지만 여유 시간이 없다. 안내 간판만 둘러보고 돌아 나오는데 다행이 젊은 한 쌍이 막 차량을 출발 시킨다. 사정을 이야기 하고 동승을 허락받아 아까 입구 쪽 시내버스 정류소에 내리서 양갱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 있는데 시내버스가 들어온다.
*청룡사 : 1265년(고려 원종 6) 서운산 기슭에 명본국사(明本國師)가 창건한 절로, 창건 당시에는 대장암(大藏庵)이라 하였으나 1364년(공민왕 13) 나옹화상이 크게 중창하고 청룡사로 고쳐 불렀다. 청룡사라는 이름은 나옹화상이 불도를 일으킬 절터를 찾아다니다가 이곳에서 구름을 타고 내려오는 청룡을 보았다는 데서 유래했다.
절 안에는 대웅전(보물 824), 관음전, 관음청향각, 명부전 등이 있고, 대웅전 앞에는 명본국사가 세웠다는 삼층석탑 등이 보존되어 있으며, 대웅전은 다포계의 팔작집으로 고려말 공민왕 때에 크게 중창하여 고려시대 건축의 원형을 보여 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법당 안에는 1674년(조선 현종 15)에 만든 5톤 청동종이 있고, 큰 괘불이 있어 대웅전 앞에 괘불을 걸 돌지주까지 마련해 놓았다. 구불구불한 아름드리 나무를 껍질만 벗긴 채 본래의 나무결 그대로 살려 기둥으로 세웠다.
인평대군(麟平大君)의 원찰(願刹)이었다는 청룡사는 1900년대부터 남사당패는 불당골에 살면서 겨울을 뺀 세 계절동안 전국을 돌다가 겨울에는 돌아와 기예공부를 익히기도 하였다.
*바우덕이 : 바우덕이는 조선시대 유일의 남사당패 여성 꼭두쇠로 본명은 김암덕(金岩德)이다.
조선시대 안성에서 가난한 소작농의 딸로 출생했으며, 5세때 안성 청룡사 안성남사당에 입단했다. 15세때 안성남사당 꼭두쇠로 추대되어 조선시대 유일의 남사당패 여성 꼭두쇠가 되었다.
남사당이란 조선 후기 장터와 마을을 다니며 춤과 노래, 곡예를 공연했던 단체로서 전문 공연예술가들로 결성된 우리나라 최초의 대중연예집단이라 할 수 있다. 남사당은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40∼50여명으로 조직되었고 이 단체를 이끌어 나간 대표를 '꼭두쇠'라고 불렀다. 그 밑에는 곰뱅이쇠, 뜬쇠, 가열, 삐리, 저승패, 등짐꾼 등으로 직책을 나누었다.
이들은 꼭두쇠를 중심으로 공연계획을 수립하여 기량을 연마하였고 전국 장터를 다니면서 풍물놀이는 물론이고 줄타기, 탈놀이, 창(노래), 인형극, 곡예(서커스)를 공연하였다.
바우덕이는 1865년 고종 2년 경복궁 중건 현장에 안성남사당패를 이끌고 출연하여 뛰어난 기예(技藝)를 선보였으며, 이에 대원군으로부터 당상관 정삼품의 벼슬과 옥관자를 하사받은 것으로 유명하다.
이 때부터 바우덕이가 이끌던 안성남사당패는 ""바우덕이""라는 인물명칭으로 불리게 되었으며, 전국을 다니며 공연활동을 펼쳤다. 바우덕이는 1870년 폐병에 걸려 2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네이버 백과사전에서 -
-. 12:35 청룡사 입구 삼거리 버스 출발
-. 13:30 천안 시외버스 터미널 앞 도착
-. 14:30 천안 고속버스 터미널 출발
-. 18:30 울산 도착
시내버스의 승객은 혼자뿐이다. 34번 국도를 잠시 달리자 입장 읍이다. 하차를 하여 천안행으로 갈아타고 아침에 출발했던 터미널 앞에 도착하니 시장기가 돈다. 지난번 일행과 함께했던 골목으로 찾아가 반주를 곁들인 해장국으로 늦은 점심을 해결한다.
무릎의 통증도 가슴 한쪽에 남았던 숙제를 해결하고 난 즐거움과 한 낮 이지만 반주로 마신 소주의 기분이 옴 몸으로 풀리자 조금은 가시 는 것 같다.
월요일 퇴근을 하면서 한의원에서 침으로 시술을 받고 집으로 돌아 가던 중 무언가 마음이 찜찜하여 엑스레이 사진이라도 찍어 보고자 정형외가로 찾아간다.
무릎 내측인대 파열! 치료기간 약 4내지 6개월! 수술까지는 아니지만 통깁스를 하잔다. 생각했던 것보다 심각하다. 출퇴근을 해야만 함으로 반깁스로 하고 상태의 경과를 보기로 한다.
날씨도 확 풀렸고 정맥을 타야하는데 인자 우짜노?
범이형 등살에 난 죽었다!
*금일 금북정맥 종주 도상 거리 : 7.1km / 현재 금북정맥 종주 도상 누계 거리 : 26.4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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