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주말을 이용해 가족과 함께 올레길·둘레길 걷기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한 예로 북한산 둘레길은 올 8월 말 개방된 이후 두 달간 100만 명이 넘는 탐방객이 찾았다.
이렇다보니 답답한 도심을 벗어나고자 찾은 도보여행이지만 자연보다 우글거리는 사람들 속에서 부대끼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도보여행이 싫다면 신라 천년의 역사를 배우며 걷는 경주 서남산 나정-포석정 트레킹 코스로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 트레킹 코스가 시작되는 길 멀리 한옥으로 된 양산재가 보인다.
지붕없는 박물관이라 불리는 남산 중 서남산 트레킹 코스는 신라의 태동을 알리는 나정부터 신라의 종말의 공간인 포석정까지 걸으며 역사까지 배우는 코스다.
트레킹 코스가 시작하는 나정은 박혁거세 탄생 신화를 간직한 곳이다. 표주박 같은 알에서 태어나 성을 박(朴)이라 하고 세상을 밝게 다스린다 하여 혁거세(赫居世)라 하였다. 박혁거세의 나이가 13세 되던 해 진한의 육부 촌장들이 모여 여섯 촌을 합하여 나라를 세우고 박혁거세를 왕으로 추대했다. 나라 이름은 서라벌. 아침해가 가장 먼저 비치는 성스러운 땅이라는 뜻이다.
문이 활짝 열린 채 안내판이 서 있는 나정은 높은 소나무들이 주위를 두르고 있어 마치 성곽 같은 모습이다. 넓은 들판을 가로지르면 박혁거세를 기리는 유허비도 볼 수 있다.
나정을 나와 다시 걷다보면 육촌의 시조를 모셔 놓은 양산재가 있다. 별다른 유적은 없지만 양산재 언덕에서 보는 풍경이 장관이다. 지대가 높아 양지바르고 농사짓기 편하여 사람이 모여 살기 적합한 곳이다. 실제로 양산재에서 장창골로 이어지는 부근에서 신석기 유물이 가장 많이 발견되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 갈림길 마다 상세한 표지판이 세워져 있어 길 찾기도 쉽다.
양산재를 조금 벗어나 오른쪽 농로를 걷다보면 남간사터 당간지주를 만난다. 당간은 사찰에서 기도나 법회 등 불교의식(佛敎儀式)이 열릴 때 당(幢)을 달아 두는 기둥으로 이 당간을 지탱하기 위해 세운 두 개의 받침대를 당간지주라고 한다.
이 당간지주는 남산지역에서 볼 수 있는 유일한 것이고 꼭대기의 '+'자형 간구는 어느 당간지주에서도 볼 수 없는 특이한 것이어서 눈여겨볼 만하다.
▲ 경주 남간사지 당간지주는 전국에서 보기 힘든 십자형 간구가 특징이다.
당간지주에서 좁은 농로를 따라 조금 걷다보면 만나는 창림사터. 왼쪽 산언덕 소나무 밭에 찾는 이를 숨죽이며 기다리고 있어 유심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 쉽다. 때문에 처음 경주 트레킹 코스를 찾는다면 꼭 문화해설사와 동행하는 것을 권한다.
창림사터는 박혁거세가 신라 최초로 궁궐을 세운 곳이라 전하지만 지금은 그런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삼층석탑은 남산일대에서는 가장 크고 우람해 볼 만하다.
당간지주와 창림사터, 나정, 양산재 모두 눈으로 보기에 화려한 것은 없다. 다만 이것들은 이곳을 지나는 우리와 인연이 되고 또 우리 땅, 우리 논길을 걷는 일에 의미와 즐거움을 더하고 있다.
▲ 경주 남산일대에 가장 웅장한 창림사지 3층석탑.
창림사터를 지나 탱자 길을 걸으면 수학여행 때 빠지지 않고 들르는 포석정이 나온다. 포석정은 우리의 머릿속에는 단지 왕실의 놀이터로 경애왕이 후백제군이 쳐들어오는 줄도 모르고 유흥을 즐기다 자결한 암울한 곳으로 남아있다.
그러나 포석정은 단순히 유흥을 즐기는 놀이터가 아니라 신라시대 가장 아름다운 이궁지였고 남산신에게 제사를 지낸 국가적으로 주요한 장소였다.
포석정은 원래 중국의 명필 왕희지가 친구들과 함께 물 위에 술잔을 띄워 술잔이 자기 앞에 오는 동안 시를 읊어야 하며 시를 짓지 못하면 벌로 술 3잔을 마시는 잔치인 유상곡수연(流觴曲水宴)을 본 따서 만들었다 한다.
▲ 포석정의 전복모양의 유상곡수연의 모습.
지금의 포석정은 화려하거나 아름다움을 찾아보기 어렵지만 중국에서 조차 보기 힘든 유상곡수연의 문화재로서 가치와 드넓게 펼쳐진 소나무숲길을 걷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할 수 있다.
신라문화원 박택선 문화해설사는 "경주 서남산 트레킹 코스는 3시간 정도의 거리로 아이부터 어르신까지 편안하게 답사할 수 있는 코스입니다. 신라 천년의 역사가 담긴 유적지를 답사하고 배우며, 산책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1석 3조의 도보여행입니다"라고 말했다.
신라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장소인 경주 서남산 트레킹 코스는 안내 및 유적지 설명을 위해 문화해설사가 상시 대기 중이며, 동행을 원한다면 신라문화원(054-774-1950)으로 연락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