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 2초 만에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 저자는 순간적인 감정이나 느낌에 의존하는 풍토는 의사결정의 질을 떨어뜨리고 창조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력을 저하시킨다고 주장한다. 세상을 바꾼 창조적 아이디어는 분석과 논리를 통한 생각의 힘에서 비롯되었다. 깊이 있는 생각이 성공을 좌우한다. |
▣ 저자 마이클 르고 : 논평상을 수상한 바 있는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이며, <워싱턴타임스> 칼럼니스트로 활동했다. 현재 캐나다 일간신문 <내셔널포스트>의 논설위원으로 있으며, 북미 전역의 신문, 정기간행물, 잡지 등에 논평과 오피니언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또한 미국의 여러 메이저 기업에서 건강, 안전, 환경 및 품질 분야의 컨설팅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 역자 임옥희 : 경희대학교 영문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영문학을 가르쳤다. 여성문화이론연구소에서 <여/성이론>이라는 저널을 발행하면서 연구원들과 함께 이론화 작업을 하고 있다. 페미니즘과 정신분석학을 연결시키는 대중문화 분석 작업을 수행하면서 저술, 번역, 강의, 이론 실천을 병행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뫼비우스 띠로서 몸』,『여성과 광기』,『보이는 어둠』,『티핑 포인트』 등 다수가 있다.
▣ Short Summary : 블링크가 주장하는 것은 직관의 도움을 받는다면 보다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첫인상이 지닌 힘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된 일종의 신화이다. 그러나 비판적이고 과학적인 추론은 직관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으며, 직관이란 경험과 엄격한 추론으로 얻은 지식에 의한 것이다. 우리가 더 나은 결정을 내리고 업무를 훌륭하게 수행하도록 해주는 것은 감정, 관찰, 직관, 비판적 추론 모두가 포함되고 그것들이 미묘하게 얽혀서 만들어지는 정신적인 과정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근본적인 배경이 되는 것은 단단한 지식의 토대이다.
비판적 사고가 중요한 이유는 성급한 결론으로 건너뛰는 것을 피할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생각이 가장 적절하거나 최상의 결과를 산출하는 행동 지침이 되기 위해서는 이 세계의 복잡성을 분석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사고를 비판적이고 창조적인 사고라고 부른다. 비판적이라는 것은 그것이 정보의 수집과 처리와 평가 과정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또 창조적이라는 것은 궁극적으로 이런 정보를 사용하여 우리의 사고 노력이 없었더라면 일어날 수 없었을 결과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지식을 위한 지식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유용한 해결책에 도달하도록 하는 지식을 평준화 지능이라고 부른다. 평준화 지능은 문제해결과 연역적 추리와 사실적인 지식에 관한 공식적인 방법을 배우는 데 적합하도록 두뇌를 적응시키는 것이 아니라 지식과 교육을 개인의 두뇌에 맞추는 것이다. 평준화 지능의 보급은 사회 전체에 심각한 문제이다. 평준화 지능은 사람들의 수준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낮추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고차원적인 이상을 추구하는 정치적 올바름의 세계는 어떤 사람도 무시되지 않으며, 뒤처지지 않는 곳이다. 하지만 정치적 올바름은 올바른 사고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규칙을 설정하고, 개방적인 토론을 교묘히 금지시킴으로써 무엇이 올바른지를 따져볼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 평준화 지능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정치적 올바름이 의존하고 있는 직관적이고 선량한 사고는 종종 자신이 돕고자 의도했던 바로 그런 사람들의 이해관계를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해칠 수 있다.
어떻게 하면 감정, 이데올로기, 정치적 편의에 의해 운영되는 사회로부터 이성과 논리에 의해서 움직이는 사회로 변화할 수 있을까? 적극적인 부모 노릇, 변화와 위기의 수용, 비판적 사고에 대한 연구 등이 대책에 해당한다. 이런 조처들은 사람들에게 지식의 중요성을 고양하고, 관찰과 데이터에 의해 뒷받침 될 수 있는 추론과 판단기술을 실천할 수 있도록 해 줄 것이다. 하지만 최대의 변화는 철학적인 변화여야 한다. 이를 위해 학문은 문제를 해결하고 결정을 내리고 정책을 결정하는 방법으로서 비판적 사고와 논리를 적용하고 수용함으로써 사회가 원활하게 기능하는 방법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THINK 싱크!
마이클 르고 지음 / 임옥희 옮김
1. 블링크 하지 말고 싱크하라
한 자동차 부품 회사에서 품질 문제가 발생했다. 이 회사가 생산하는 자동차 방풍유리는 유리에 고무 테이프를 두른 뒤 자동차 회사에 납품만 하면 될 정도로 제조공정이 간단해 보였다. 문제는 제조 과정에서 생기는 유리 파손이었다. 파손 비율이 10퍼센트에서 20퍼센트로 치솟았고, 불량으로 인한 손실액이 100만 달러에 이르렀다. 기계도 고쳐보고, 접착제도 바꾸어보고 온갖 조치를 취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결국 전문가를 불렀는데 그는 작업자별 불량 데이터를 요구했다. 작업자가 수시로 기계를 바꾸어가며 일을 했기 때문에 데이터가 없었고 결국 전문가가 데이터를 수집하는 데만 한 달이 걸렸다. 분석결과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작업자별로 불량률의 차이가 너무 컸던 것이다. 특히 여성 작업자의 불량률이 높았고 남성 중에는 두 사람의 불량률이 높았다. 문제를 일으킨 작업자의 공통점은 키가 작다는 것이었다. 결과는 명확했다. 작업대가 지나치게 높아 핀을 제대로 삽입할 수 없었고 이것이 유리의 파손으로 이어진 것이다. 회사는 작업대를 인체 공학적으로 다시 설계하고 핀을 다시 디자인했다. 불량률은 떨어지고 전문가는 찬사를 받았다. 이 사례처럼 날카로운 사고가 전문가의 영역이 되고 있는 추세는 걱정스러운 사태인 동시에 한 가지 질문을 제기하게 한다. 우리는 생각하는 능력을 상실하고 있는 중인가? 사고를 지식의 사용, 그리고 문제를 해결하고 계획하고 좋은 결과를 산출해 낼 수 있는 추론이라고 정의한다면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분명히 ‘예스’이다.
『블링크』가 주장하는 것은 우리 모두는 직관을 갖고 있고 직관의 도움을 받는다면 보다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첫인상이 지닌 힘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된 일종의 신화이다. 그러나 신화는 과학이 아니다. 예를 들어 『블링크』의 저자 말콤 글래드웰은 첫인상이 특히 남녀관계에서 사람들의 성격과 개성을 이해하는데 유효하다는 믿음을 설파한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첫인상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오늘날 이혼율이 높은 이유는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연쇄살인범이 이웃에 살고 있었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흔히 “그 사람 친절해 보였는데 정말 뜻밖이야.”라고 말하곤 한다. 또 수천 년 동안 지구에 대해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첫인상은, 지구는 평평하다는 것이었다. 결국 글래드웰은 그릇된 이분법적 사고를 바탕으로 직관만이 진실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서 그릇된 이분법은 직관 대 순차적 분석과 비판적 추론이다. 그러나 사실 비판적이고 과학적인 추론은 언제나 직관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으며 또 직관이란 대부분의 경우 경험과 엄격한 추론으로 얻은 지식에 의한 것이다. 우리가 더 나은 결정을 내리고 업무를 훌륭하게 수행하도록 해주는 것은 감정, 관찰, 직관, 비판적 추론 모두가 포함되고 그것들이 미묘하게 얽혀서 만들어지는 정신적인 과정이다. 그리고 이 모든 기술의 근본적인 배경이 되는 것은 단단한 지식의 토대이다.
통계와 분석은 언제나 본능과 추측을 능가한다. 그래서 야구 감독들은 투수와 타자의 경향을 연구하면서 확률을 계산한다. 카드 헤아리는 방법에 능숙한 블랙잭 선수들이 뜨내기들보다 돈을 딸 확률이 높다. 기업들이 문제해결과 생산성 증대의 방안으로 통계분석에 바탕을 둔 식스시그마와 같은 전략을 도입한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의사결정에 있어서 비판적 사고가 우월하다는 것이 이미 입증되었다면 주관성, 감정, 본능 등이 사람들과의 관계나 광범위한 사회생활에서 여전히 득세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이유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 있다. 이 책은 산업사회에서 논리와 추론이 왜 쇠퇴하고 있는지를 분석하고자 한다. 또한 이성과 논리의 약화를 저지하고 그 방향을 되돌릴 수 있는 해결책을 제시할 것이다. 사고(Thinking)가 우리의 삶과 운명과 사회를 형성하는 방법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이 책의 목적은 제도를 변화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제도적인 기능불량을 일으키는 사고 습관을 변화시키려는 것이다.
2. 생각의 힘이 성공을 좌우한다
가훈이 ‘저렴한 유지비’인 내 친구가 집에 있는 풀장을 가동하다가 문제점을 발견했다. 지하실에서 덜컹거리는 소리가 들렸는데 풀장의 펌프를 끄자 소리는 멈추었다. 그래서 친구는 그 소리가 파이프를 통해 순환시키는 풀장의 물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짐작했다. 풀장 관리 회사에서 온 수리공은 파이프가 막혔거나, 풀장을 공사하다가 파이프가 망가졌기 때문일 것이라는 추측을 내 놓았다. 친구는 파이프가 망가졌다는 추측이 직감적으로 타당한 것처럼 들렸다. 몇 달 전 무거운 장비로 파이프가 묻힌 마당을 파헤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망가진 곳을 찾아내느라 땅을 다시 파헤친다면 수천 달러가 들어갈 판이었다. 그러나 무작정 일에 착수하기 전에 친구는 배관공을 불렀다. 그는 펌프실에서 파이프 노선을 따라가다가 천장 한 구석에서 약간 함몰된 곳을 발견하고 스크루드라이버로 눌러 보았다. 그 순간 작은 물줄기가 뿜어져 나왔다. 순간적인 판단에 의한 추측은 그럴 듯 해 보였지만 완전히 잘못된 추측이었던 것이다. 만약 친구가 맹목적으로 추측에 따랐더라면 훨씬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했을 것이다.
위의 사례처럼 비판적인 사고가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성급한 결론으로 건너뛰는 것을 피할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모든 증거가 드러날 때까지 판단의 끈을 단단히 죄는 것이다. 생각이 가장 적절하거나 최상의 결과를 산출하는 행동 지침이 되기 위해서는 이 세계의 복잡성을 분석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이러한 사고를 비판적이고 창조적인 사고라고 부른다. 비판적이라는 것은 그것이 정보의 수집과 처리와 평가 과정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또 창조적이라는 것은 궁극적으로 이런 정보를 사용하여 우리의 사고 노력이 없었더라면 일어날 수 없었을 결과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화학자 케큘레가 꿈속에서 벤젠의 원자구조를 발견한 것처럼 의식적인 추론을 넘는 직관적인 도약의 사례는 많다. 그러나 종종 간과되는 것은 어떤 주제에 관한 오랜 기간에 걸친 연구조사와 비판적인 사고야말로 그런 도약의 기초 작업이라는 것이다.
지난 20년간 미국의 경영학계는 미국인들에게 어떻게 하면 보다 일을 잘 할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경영서적을 수천 권 내 놓았다. 많은 회사들이 이런 책들의 조언에 따라 대단히 잘해왔다. 하지만 어떤 회사들은 비틀거렸다. 이처럼 일관된 효과를 가져오지 못한 것은 이러한 책들이 관리자에게 비판적인 사고보다는 과제 지향적인 사고에 기초한 테크닉을 사용하도록 권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일본을 비롯한 외국계 회사들은 미국 기업이 보장해주지 못했던 수많은 일자리를 제공한다는 점 때문에 열렬히 환영받고 있다. 이들 회사의 특징은 관리자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직원들은 역량이 강화되었고 스스로 의사결정을 하도록 훈련받는다. 이제 세계 도처의 회사들은 지식기반을 구축하고 영구적인 학습조직으로 회사를 변모시키라는 열변을 듣는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 모두는 혁신가, 기업가, 관리자가 되어야 한다. 가장 수요가 많은 노동상품은 더 이상 렌치를 비틀어 돌리는 근육노동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비판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두뇌이다.
지식이 최고의 선인 세계에서 비판적 사고기술은 개방된 민주 사회에서 우리가 딛고 서 있는 자유와 책임이라는 두 개의 기둥을 단단히 하는 데에도 필수적이다. 세계를 인식하고 평가하는 우리의 준거틀이 허약해짐에 따라 우리는 인생을 헤쳐 나가는 데 점점 더 이데올로기, 관습적인 지혜, 맹목적인 신앙에 의존하면서 입을 다물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갈등을 해소한 것이 아니라 묻어둔 것일 뿐이다. 억압된 정신적 에너지가 표면으로 뚫고 나오게 되면 격렬하고 난폭한 방식으로 드러나는 경향이 있다. 굼뜬 사람과 날뛰는 사람들의 사회는 지적인 자신감을 상실한 사회이다. 그런 사회의 문화적 척도는 신선한 아이디어의 수혈을 방해하며 모험을 회피하며 협소한 안전지대로 피신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치유하는 방법은 분노의 관리가 아니라 역사나 생물학 강의를 듣고, 토론하며, 피아노 레슨을 받고, 헤밍웨이의 작품을 읽는 것이다.
3. 왜 중대한 결정을 2초 만에 내리려 하는가
나는 지식을 위한 지식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유용한 해결책에 도달하도록 하는 지식을 평준화 지능이라고 부른다. 평준화 지능은 문제해결과 연역적 추리와 사실적인 지식에 관한 공식적인 방법을 배우는 데 적합하도록 두뇌를 적응시키는 것이 아니라 지식과 교육을 개인의 두뇌에 맞추는 것이다. 평준화 지능 연구의 탁월한 사례는 그라운드 제로(세계무역센터 붕괴 현장)에 들어설 건축물(프리덤 타워)의 설계도다. 원래 승인되었던 인상적인 나선형 쐐기꼴 모양의 타워는 안보 논리의 희생양으로 폐품이 되어버렸고, 새로 제시된 디자인은 빌딩을 요새와 같은 모양의 콘크리트 주춧돌 위에 세우는 것이다. 이런 결정은 안보가 이 새로운 타워를 디자인하는데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논리에서 기인한 것이다. 하지만 안보나 재정적인 관점에서 볼 때 최대의 위험은 무엇보다도 새로운 타워를 세우는 일 자체이다. 평준화 지능의 보급은 변호사나 정신과 의사들에게는 반가운 일이겠지만 전체 미국에 있어서는 심각한 문제이다. 평준화 지능은 사람들의 수준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낮추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1980년대 중반 나는 GM에서 일한 적이 있다. 거기에는 변속기를 만드는 복잡한 설비에 대해 오직 한 사람만이 그것을 어떻게 조작하는지 알고 있었다. 흔히 700R4라고 불렀던 그 설비는 당시 회사의 말썽거리였다. 매일 아침 넥타이를 맨 스무 명 남짓한 매니저들은 회의실에 모여서 바둑판 무늬의 셔츠를 입은 데이브(특수과제 전문 시간제 근로자)가 도착하여 고장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설명해주기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700R4만을 산더미처럼 불어나는 GM의 문제를 일으킨 주범으로 볼 수는 없었다. 문제는 700R4를 제조한 GM의 마음가짐에 있었다. 당시 GM은 새로운 기술을 배울 수 없는 무능한 심리 상태였으며, 비판적이고 창조적인 사고의 효과적인 사용과는 거리가 먼 자만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어떤 면에서 GM과 마찬가지로 미국은 그 자신의 성공에 의한 희생양이 되고 있다. GM의 크기와 부가 결과적으로 무능력이라는 부메랑으로 되돌아오게 된 것처럼, 미국 사회는 문제를 수동적이고 냉소적으로 바라보면서 자만하고 있다.
4. 즉흥적 사고는 독이 될 수 있다
1980년 개최된 미국정신의학회의에서 ADD(주의력결핍활동과잉장애)가 최초로 규정되고 정신장애로 법제화되었다. ADD를 정신적인 장애로 공식화하고 이것을 치료하기 위해 리탈린(항정신제)을 처방함으로써 미국 교육 시스템은 거대한 실제적, 철학적 변화를 겪게 되었다. 오늘날 440만 미국아동들이 ADD 진단을 받은 것으로 추정되며, 진단을 받은 아동의 56%가 이런 저런 이유로 한두 번씩 리탈린을 사용했다. 조사에 따르면 1990년대 전 세계에서 제조되고 있는 거의 모든 리탈린이 미국에서 팔리고 있다. 이러한 정신장애는 어떤 방식으로 DSM(정신장애에 대한 진단 매뉴얼)에 실리게 될까? 몇 년에 걸친 과학적인 연구조사 정도는 당연히 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DSM 회의에 참가했던 한 심리학자에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레스토랑에서 선택할 때 사용하는 수준의 진단을 시행했고, 결정은 다수결에 의해서 내려졌다.” 정신장애를 인정하는 미국 정신의학회의 판단 기준의 정당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ADD 진단과 리탈린 사용의 폭증이라는 현상 속으로 파고 들어갈수록, 특정 집단이 주도하는 건전하지 못한 정책을 암시하는 향기가 강하게 풍긴다. ADD와 총체적 학습장애 산업을 비판하는 많은 사람들은 정신과 의사들이 전문성과 수입의 측면에서 전통적인 의학과 동일한 발판을 구축하려고 향정신성 약물에 기초한 치료를 이용해 왔다고 주장한다. 점차 증가하는 정신적, 심리적 장애를 치료하는데 이용되는 제약학이 수백 억 달러 산업의 기초가 되고 있다. ADD로 치료 받아야 하는 것으로 진단 내려진 학생들의 폭발적인 증가는 근본적으로 교육의 역할이 독해, 작문, 문제 해결 방법을 가르치는 것에서 학급의 사회적인 역동성을 관리하고 행동, 태도, 가치, 신념 등을 수정하는 것으로 변경하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 학생들이 전문적이고 학문적인 성공에 필요한 학습 기술의 핵심적인 분야에서 세계의 다른 나라들에게 뒤처지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다양한 학습장애의 엄청난 폭발은 미국의 자기존중 문화가 의존의 문화로 변질된 것과 일맥상통한다. 어떤 사람의 결함을 성격이나 창의력 결핍의 결과로 받아들이는 대신 장애의 산물이라고 책임을 돌려버리는 것이다. 이런 현상이 탐욕스런 정신과 의사나 게으른 교사들이 날조한 음모만은 아니다. 미국인들은 자신과 자녀들의 실패로부터 무죄 방면되기를 원하고 있다. 근본적으로 우리 스스로 치료문화와 학습장애 산업의 폭발적 증가를 초래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미국 사회에서 비판적, 창조적 사고에 대한 전망을 어둡게 만든다. 교육체계는 현상 유지라는 정치적 목적에 초점을 맞춘다. 예를 들어 어떤 아이가 ADD 진행성 장애로 나오게 되면 교사는 대안적인 학습 전략을 이용한다. 또한 경쟁과 우등생 명단 같은 것을 제거함으로써 학습장애 학생들에게 위협적이지 않은 환경을 창조한다. 여기에 향정신성 약물의 투여는 약물에 의존한 교실의 안정을 보장해준다. 상황이 이렇다면 탁월하고 고무적인 교육을 기대하는 것이 과연 가능하겠는가?
이런 상태에서 빨리 벗어나는 방법은 우리 모두 이런 저런 형태의 학습장애를 갖고 있고 낮은 자존감으로 가득 찬 존재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위대한 사상가 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심각한 학습 장애나 심리적인 불안정으로 고통을 받았다. 아인슈타인은 어렸을 때 난독증이 있었고 영화 <뷰티풀 마인드>의 수학자 존 내시도 정신분열증을 극복하고 노벨상을 탔다. 비판적으로 추론할 수 있는 인간의 정신적 능력은 근본적으로 자립적이며 궁극적으로 자유로운 것이다. 만약 우리가 자기만족이라는 괴물을 배불리 먹여준다면, 그 괴물은 득의만만하게 우리 인생 전부를 삼키게 될 것이다.
5. 정치적 올바름이 이성을 마비시킨다
몇 년 전 나는 미시건 주에 있는 헨리 포드 박물관으로 가이드 동반 여행을 한 적이 있었다. 가이드는 30대 초반의 남자였는데 그는 헨리 포드의 일하는 습관, 발명, 동료, 가족 관계를 포함하여 다채로운 이야기를 제공해 주었다. 한 지점에 이르자 그는 “포드가 아내의 바가지를 피해 몸을 숨긴 장소”라고 농담을 하면서 방을 하나 보여주었다. 투어가 끝나고 계단을 내려오는데 가이드가 모든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두 명의 여성으로부터 ‘그의 부적절한’ 발언에 관해 혼쭐이 나는 모습을 보았다. 그들은 학계에 몸담고 있는 여성들 같았다. 그 남자는 돌처럼 굳어져 망연자실한 것처럼 보였다.
가이드의 얼굴을 보면서 정치적 올바름이 우리 시대의 테러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고차원적인 이상을 추구하는 정치적 올바름의 세계는 어떤 사람도 무시되지 않으며, 뒤처지지 않는 곳이다. 하지만 정치적 올바름은 올바른 사고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규칙을 설정하고, 개방적인 토론을 교묘히 금지시킴으로써 무엇이 올바른 것인지를 따져볼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 예를 들어 페미니스트들은 줄곧 수학과 과학 분야에서 남녀 격차의 문제를 ‘고유한 적성의 차이’가 아니라 ‘자신감의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식으로 접근해왔다. 그러나 진화심리학자들은 인간 진화에서 공통점을 넘어서는 중요한 차이가 성별영역에 있다는 점을 사실상 인정했다. 우리의 두뇌는 수백만 년의 자연도태를 거쳐 형성된 것이기 때문에 그런 진화과정을 거스른다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레너스 색스는 “젠더를 무시한 접근은 과학과 수학 분야에서 여학생들을 좌절시킬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정치적 올바름은 평준화 지능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집단적 의식을 강조한다. 이때 집단적 의식이란 윤리적 의식을 의미한다. 독창적이지 못하고 간접적인 사고가 정치적으로 올바른 사고의 특징이다. USA 투데이는 ‘지구는 따뜻해지고 있다.’라는 기사에서, IPCC(유엔 기후변화국제위원단)의 보고에 의하면 지구의 기온은 2100년까지 2-10도 정도 상승할 것이며 남극대륙의 얼음 조각들이 녹을 것이라고 쓰고 있다. 그러나 이야기를 단순화하기 위해 기자는 현재 전체 온난화 정도가 1도 미만이며, 대부분의 온도 상승이 1970년대 이전에 발생했고,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비중이 2%에 불과하며, 지구가 수 백 만년을 주기로 식었다가 뜨거워지는 패턴을 반복해 왔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을 빠뜨렸다. 미디어가 고의적으로 이런 형태의 정보를 걸러내는 데에는 그것이 정치적으로 올바른 것으로 인정받고 있기 때문이다.
선량한 입장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한다고 해서 그런 의견들이 우리를 보다 나은 세상으로 이끄는 것은 아니다. 이산화탄소로 파생된 지구 온난화 현상에 대해 제시된 해결책, 즉 어떤 과학적인 증거로도 확인 받지 못했던 그 이론은 에너지를 규제하고 세금을 거두는 정부의 권력을 확장시켰다. 그 돈들은 보다 더 절박한 문제(교육분야나 개도국의 물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데 이용될 수도 있었다. 정치적 올바름에 고무된 입장과 법이 주로 의존하고 있는 직관적이고 선량한 사고는 종종 자신이 돕고자 의도했던 바로 그런 사람들의 이해관계를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해칠 수 있다. 존 맥호터는 대학 입학이나 회사에서의 승진 심사에서 우대을 받음으로 인해 소수자들의 성취가 불신 받고 있으며, 소수자들의 성취도를 낮은 기준으로 묶어둠으로써 낮은 학업성취도가 지속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것은 격심한 경쟁을 피할 수 있는 일종의 자격증이라는 느낌을 주어 최선을 다하지 않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그의 주장은 일리가 있다. 거의 30년 동안 미국의 정부, 대학, 재계는 차별 철폐 정책을 실시해왔지만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은 많은 성취도 측정 테스트에서 여전히 뒤쳐지고 있다.
6. 미디어는 어떻게 우리를 바보로 만드는가?
래펌은 TV가 요구하는 글쓰기는 “선언적인 문장이고, 아이러니가 없어야 하고, 수사적인 장치를 전부 없애야 한다.”고 하면서 “TV라는 매체는 생각을 좋아하지 않으며 생각을 참아낼 수 있는 인내심이 없다.”고 평가했다. 이런 평가로 보자면 교육적인 TV에 대한 희망은 거의 없다. 조지 거브너는 TV 시청시간이 많은 사람일수록 의견, 신념, 사고가 경직되면서 획일화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TV가 가변적이고 복잡한 실생활에 사람들이 점점 더 적응하지 못하게 만들고, 개별성, 자발성, 창조성이 줄어들도록 만든다고 주장했다. TV는 평준화 지능의 확산에도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독서보다 TV를 보는 시간이 다섯 배나 높은 사회에서 더 많은 대중들의 생각과 입장은 필연적으로 상투어, 즉 정치적으로 올바르고, 교조적인 입장 위주로 형성되게 될 것이다. 또한 TV는 획일성과 순응주의를 조장하며 존재의 감각만을 관조하는 것으로 라이프스타일을 향하게 할 것이다.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들은 여가 활용을 위한 다른 육체적 활동을 하는 시간보다 아홉 배나 많은 시간을 TV를 시청하면서 보낸다. 명목적인 가치로 볼 때 그 결과는 운동을 TV 보는 것으로 대신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비만이 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TV를 시청함으로써 독서와 대화, 그리고 훌륭한 비판적, 창조적 사고기술을 개발하는 데 필요한 다른 활동의 추구 또한 대체해 버리게 된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일수록 과체중이 되는 경향이 적다. 지식에 대한 욕구는 호기심, 관심, 참여를 유도하고 활동을 생산하기 때문이다. TV앞에 몸을 부려놓고 날마다 짧은 시간 동안이나마 아무 생각 없이 있노라면 말 그대로 우리의 마음은 정말로 아무 생각도 없어지게 될 것이고 결과적으로 우리 마음을 망치게 될 것이다.
7. 스트레스와 정보과잉이 생각에 미치는 영향
오늘날 스트레스가 부상하게 된 이유는 사람들이 보다 힘든 상황에 대처하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그런 상황에 대처하지 못하는 현저한 무능의 신호이며, 궁극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자기 인생에 대해 책임지지 못하고 있다는 신호이다. 스트레스는 두 가지 부정적인 상황을 초래한다. 첫째, 스트레스라는 포괄적인 어구의 남용으로 인해 자기 상황을 정확히 평가하는 것을 방해받는다. “사장이 나더러 자기 고객을 애처럼 보살펴 달라고 한다.”라는 분석은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건설적인 행동계획을 수립하도록 만들어주지만, “오늘 사장이 날 스트레스 쌓이게 만들었어.”라고 말하는 것은 상황을 정확하게 분석하지 못하게 만든다. 스트레스라는 단어와 개념은 문제를 정확히 짚어내고 분석하는 대신에 요란스럽게 분노한 후 그것을 그냥 떠내려 보낸다. 둘째, 이 사회는 온통 스트레스라는 개념이 폭넓게 수용됨으로써 인생에 대한 우울증적인 체념을 낳는다. 이러한 상황은 우리 인생은 사람이 아니라 사건이 주도한다는 믿음을 강화시킨다.
우리는 여러 가지 문제점과 힘든 상황 때문에 분명히 스트레스를 느낄 수 있다. 그것은 살면서 경험하는 확실한 사실 중 하나이다. 하지만 우리는 자아가 너무 허약해지고 지나치게 민감해지도록 다소 방치해 둔 것도 사실이다. 사소한 사건으로 인해 분노, 좌절, 신랄함을 드러내는 태도는 많은 사람들의 삶으로부터 지적이고 창조적인 활력을 약화시키는 정신적인 패배의 한 형태이다. 이와 같은 엄청난 최면 상태로부터 우리 자신을 해방시키고 우리의 호기심을 복원하며 지식에 대한 갈망을 추구하는 것은 순전히 감정에 의존하는 것과는 상반되는 것으로 일종의 도전이다. 그것은 우리의 비판적인 사고의 완전한 힘을 복원하는 것이며 그것이야말로 최선의 스트레스 해소가 된다.
오늘날 우리는 정보과잉 시대에 살고 있다. 지식과 사고의 측면에서 이런 현상이 내포한 가장 큰 문제는 많은 정보들이 조악하게 제시되어 있다는 점이다. 정보의 양은 기하급수적으로 치솟고 있는 반면 유용하고 질적인 정보의 양은 느리게 상승하고 있다. 정보과부하가 초래한 또 다른 부정적인 결과는 질적인 희석과 관련이 있는 정보의 혼란이다. 널리 유포되고 있지만 세계를 해석하는데 단순화된 이야기만을 제공하는 정보가 그런 것이다. 정보폭발은 우리를 보다 나은 비판적 사고로 이끌어주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편견과 잘못된 사고를 확신하고 발아시키는 데 사용된다. 정보 과부하가 비판적인 사고에 불리하게 작용하는 방식은 집중하는 시간이 짧아지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멜린다 데이비스는 “세계는 지속적인 자극과 산만함으로 우리를 공격하며, 한 무리의 마법사들이라야만 마무리 할 수 있을 정도의 과제를 안기면서 우리를 멀티태스킹 인간으로 만든다.”고 말했다.
8. 위대한 사상가들에게 배우는 생각의 기술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은 시간과 공간은 우주의 방대한 거리를 가로질러 미묘하게 상호교직된다고 제안한다. 이 시공간의 연속성은 중력에 의해서 휘어지고, 이 휘어진 공간은 물체의 운동을 결정한다. 몇 년이 지나 과학자들은 일식을 관찰하면서 태양을 지나가면서 별빛이 휘어진다는 사실을 측정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의 완고한 자제력, 엄격한 교육적인 훈련과 천재성을 통해 아인슈타인은 우리들에게 비판적 추론이 이 세계에 대한 직관적이고 순간적인 판단을 확인하거나 반박하는데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를 가장 잘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코페르니쿠스는 『천체의 회전에 관해서』라는 저서에서 그의 과학적인 원칙에 의해 프롤레마이오스의 지구 중심 우주관을 명료하게 반박했다. “행성들이 지구로부터 다양한 거리에서 관측되고 있으므로 지구는 분명히 이 궤도의 중심일 리가 없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의 작업은 인류를 어둠에서 벗어나도록 해준 과학 르네상스를 출범시키게 되었다. 그가 죽은 뒤 독일 천문학자인 케플러는 원형궤도를 타원형 궤도로 수정했고, 그로 인해 수만 년 동안 신비로운 경이를 응시할 수밖에 없던 인간들에게 마침내 정확한 지식이 제공되었다.
발명가로서 에디슨의 불굴의 의지를 입증했던 것은 실용적인 백열전구를 최초로 발명했을 때였다. 몇 달간의 실험으로 전구 생산에는 성공했지만 이를 산업화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는 전체 발전 산업을 근본에서부터 태동시켜야 했다. 즉, 상업적으로 경제성이 있는 절연전선, 안전장치, 전류를 보내는 다이나모, 전기 소비를 계측하는 계량기 등을 전부 만들어내야 했던 것이다. 마침내 1882년 9월 3일 106개의 램프가 맨해튼 지역에 불을 밝혔다. 이것은 세계를 변화시킬 일대 사건이었으며 단 한 사람의 에너지와 명료한 생각이 결실을 맺게 된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에디슨은 세계 최초의 지식노동자였다. 그는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새롭고 시험되지 않은 테크놀로지에 비판적이고 창조적인 사고를 적용하여 새로운 제품과 시장을 창출했다.
미생물분야의 권위자인 마굴리스는 세포진화의 공생이론을 수용하고 발전시키는 도구 역할을 해 왔다. 공생이론은, 핵과 더불어 막으로 둘러싸인 세포의 근본적인 구성 성분은 한때 자유롭게 살아가던 박테리아였는데 이것이 세포가 형성되면서 통합되었다는 가설이다. 이 이론은 지구상에서 생명이 진화하는 방식에 관한 생물학자들의 표준적인 해석에 엄청난 파급효과를 불러일으켰다. 마굴리스의 사고는 학부생 시절 들었던 ‘위대한 고전’이라는 교과과정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이 교과과정은 교과서에 드러난 절반의 지식을 이용하기보다는 오히려 어떤 아이디어들이 어떻게 전개되고 발전되어나가는지를 이해하고 추적하기 위해 원서 읽기를 강조했다. 그녀는 이런 접근법을 이용했고 아직도 그것을 옹호하고 있다. 누구든지 모반을 할 수 있다. 마굴리스는 원인과 그 원인을 뒷받침할 수 있는 이성을 가지고 반란을 꿈꾼다.
9. 생각의 힘은 아이 때부터 길러야 한다
자녀들의 사랑과 존경을 잃을지 모른다는 공포를 피하기 위한 가장 편리한 방법은 부모들로 하여금 자녀들의 안내자와 스승이 되기보다 친구가 되기를 선택하고 유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들에게는 건강한 사회적, 윤리적, 지적인 발전을 위한 기준과 규칙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아이들 역시 그런 규칙과 기준을 갈망한다는 것이 널리 인정되고 있다. 자녀들에게 어떤 것도 자동적이고 쉽게 획득할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것은 대단히 소중하고 현실적인 교육이다. 한 가지라도 능숙하게 하려면 상상 이상으로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가르쳐야 한다.
마이클 조단이 나왔던 나이키 광고의 ‘과감히 시도하라(just do it)’는 모토는 오늘날의 부모들에게도 적용되어야 한다. 과감히 자녀들이 실패하도록 내버려 두라. 잘못을 저지르면 과감히 벌하라. 과감히 TV를 꺼라. 과감히 자녀들에게 허드레 일을 시켜라. 아이들의 자긍심을 키워주기 위해 끝없이 격려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임무 태만 행위이다. 성장하면서 차차 주변 세상과 관계하다 보면 조만간 아이들은 자신들이 굼뜨거나 재능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부모가 현실적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성적이 나쁘다는 것은 가슴이 미어지는 이야기가 아니라 분석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자기 시간을 자기 마음대로 쓸 수 있도록 허용한다는 것은 아이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고 책임감을 갖도록 해 주는 효과적인 현대식 비법이 아니다. 그것은 아이에 대한 무관심이다.
90년대 시트콤인 <코스비 쇼>에서 헉스터블(코스비)은 성적이 나쁜 아들과 대결한다. 아들은 아버지에게 자신을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여 달라고 간청한다. 그러나 헉스터블은 용납하지 않는다. “넌 앞으로 공부를 열심히 하게 될 거다. 왜냐하면 내가 그렇게 명령할 거니까.” 일단 부모가 자녀에게 높은 기대치를 요구할 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하면 즉각적이고 새로운 질서가 확립된다. 대체로 사람들은 분명한 근거를 가진 규칙과 간접적인 간청이 아니라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기대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반응하는 법이다. 또한 부모는 가정이 평생 지속되는 배움을 위한 환경이 되도록 해야 한다. 자녀들의 성장에 영향을 미치고 자녀들의 지식, 추리력, 비판적인 사고 기술을 고양시켜줄 수 있는 방법은 무수히 많다. 각각의 아이들은 각기 다른 장단점과 개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10. 위기를 포용하면 생각의 폭이 넓어진다
위기는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다. 사자가 자기 집 주변에 출몰한다는 뉴스에 집에 갇혀 사는 사람을 생각해 보자. 사자에 물려죽을 확률은 복권에 당첨될 확률과 비슷하다고 한다. 확률은 마찬가지지만 복권당첨은 사람들의 결정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이에 반해 사자의 위협은 어떤 사람의 라이프스타일을 엄청나게 바꿀 정도가 된다. 이에 대한 설명은 복권의 경우 손해 보는 것이 없는 반면, 사자의 경우 목숨을 잃는 것보다 집안에 갇혀 지내는 것이 훨씬 손실이 적다고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두 가지 경우 모두 손해 보는 측면을 과소평가한 것이다. 복권에 당첨될 낮은 확률을 무시함으로써 사람들은 연간 몇 백 달러씩을 날려버린다. 그 돈을 직업적인 커리어에 사용했더라면 수십만 달러를 벌수도 있었을 것이다. 반면 사자에게 공격받을지 모른다는 극히 희박한 가능성에서 벗어나기 위해 걱정, 의심, 혼란의 감옥에서 자발적으로 굴복하며 육체적, 지적인 에너지가 빠져나가게 만드는 것은 자기 인생의 일부를 희생시키는 것이다.
2005년 뉴올리온즈를 강타한 카트리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잠재되어 있던 커다란 공포를 확인시켜준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카트리나로 인한 피해는 단지 자연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결정에 의해 증폭된 것이다. 2001년 논문은 카트리나 같은 4등급 폭풍이 오면 33시간 안에 도시가 7미터 물 속에 잠길 것이라고 보고하고 있다. 실제로 그런 일이 발생한 것일 뿐이다. 위기의 수준은 완전히 이해되었으나 위기가 관리되지 않았던 것이다. 해수면보다 낮은 위치에 있는 한 도시의 폭풍 방어책은 최악의 시나리오 수준에서 관리되어야만 했다. 그것은 최대 하중에도 견딜 수 있는 공법으로 다리를 건설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는 다리 위를 운전하면서 걱정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뉴올리언스에서 일어났던 사태를 제대로 이해한다면 위기와 위험에 관해 덜 두려워하게 될 것이다. 아무 설명이 없으면 공포는 정당화된다. 마음속에서 두려움을 제거할 수 있는 이유는 인간이 비판적 사고와 함께 대부분의 위기를 예견하여 그것을 감소시키고 제거할 수 있는 능력을 사용하는데 숙련되어왔기 때문이다.
11. 객관성을 포용하고 비판적으로 생각하기
역사와 일상적인 경험 모두에서 비판적인 사고는 직관적이고 임의적인 접근 방법보다 문제를 해결하는데 엄청나게 우월하다는 점은 거듭 확인되었다. 비판적인 사고에는 경험적인 증거, 논리적인 추론, 회의적인 태도 등의 세 가지가 이용된다.
경험적인 증거는 비판적 사고와 신빙성 있는 지식에 본질적인 것이다. 어떤 것에 관한 결론에 도달하기 전에 우리는 사실을 수집할 필요가 있다. 경험적인 증거는 오감으로 알 수 있는 것도 있지만 권위 있는 문서, 연구 보고서, 통계, 증언 등 다른 정보(2차 정보)로부터 획득할 수도 있다. 2차 정보의 사실 여부를 검토할 수 있는 시간의 양은 분명히 한정되어 있다. 하지만 그런 정보가 중요한 결정에 강력한 영향을 미칠 때마다 우리는 증거가 신뢰할 만한 것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경우에 당신을 위해 이 일을 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바로 당신 자신이다.
비판적인 사고, 세밀한 분석의 활용, 확실한 판단에 이를 수 있는 평가는 논리적인 추론에 의존한다. 논리는 추론에 의존한다. 추론은 증거와 주장 사이를 연결하기 위해 채택하게 되는 암시적이며 명시적인 단계이다. 인간의 두뇌는 논리적인 추론을 이용하는 내재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런 논리적 추론은 연습하고 배워야 하는 기술이기도 하다. 우리는 논리적인 추론을 통해 어떤 일에 보다 능숙해지게 된다. 논리적 추론 역시 요리와 마찬가지로 방법이 있으며 그것이 가진 두 가지 본질적인 요소는 지식과 객관성이다.
훌륭한 예술의 척도가 불신을 의도적으로 중지하는 것이라면 훌륭한 학문의 척도는 확신을 의도적으로 중단하는 것이다. 회의주의는 단순히 증거를 필요로 하는 것에 대해 의심하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다. 이와 같은 회의주의는 비판적 사고의 핵심이며 비판적 사고와 사촌지간인 과학적 방법의 핵심이다. 오늘날 우리는 여러 가지 사정으로 회의주의적인 시대에 살고 있지 않는 것 같다. 액면가치를 받아들이는 것이 관행이 되었으며 사람들은 바쁘다는 핑계로 표면 아래에 있는 것을 탐사할 시간이 없다고 한다. 이러한 추세는 이산화탄소가 초래하는 지구 온난화를 검증 없이 사실로 받아들이는 현상에서 그리고 사이비과학으로 진화 현상을 폭로하려는 시도에서 잘 드러난다.
비판적 사고가 방법으로서 실패했다면 이것은 잘못된 관찰, 틀린 기억, 잘못된 추론과 같은 것들 때문이다. 추론에서의 결함은 대체로 특정한 형태의 감정에 호소한 탓이기 때문에 거슬러 올라가면 논리적인 엄밀성이 결여되어 있는 곳을 찾아낼 수 있다. 비판적인 사고에서 보여주는 오류(예: 잘못된 원인, 무차별적인 일반화, 잘못된 비교)들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이것은 어떻게 하면 사고를 잘 할 수 있을지를 배우는 시행착오 과정에서 따르는 필수적인 부분이기 때문이다. 세계는 저절로 드러내지 않는 침묵하는 지식으로 가득하지만 이런 지식들은 호기심 많고 적극적인 두뇌를 사용하여 조율하고 증폭시킬 수 있다. 비판적 사고는 배경의 소음으로부터 이런 지식을 여과시키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며, 그것을 이용하여 취사선택하는 인간의 최고 능력인 가치관과 분별력을 키워 준다.
#. 사례: 무차별적인 일반화
이것은 얼마 되지 않은 사례에 기초하여 결론을 내리거나 비전형적인 사례를 가지고 일반화 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내 GM 자동차는 엔진이 고장났어. GM은 품질이 떨어지는 자동차를 만들고 있는 거야.” 라는 주장은 그럴 듯 하지만 JD 파워(최고 권위의 자동차 품질 측정 회사)의 조사결과 최근 들어 GM은 시장에서 최고 품질의 자동차를 생산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12. 삐걱거리는 세상을 구할 생각의 힘
우리의 시장 문화는 주관성을 장려할 뿐 아니라 그렇게 하도록 직접적으로 지시한다. 마케팅 담당자들은 우리 모두 특별한 개인임과 동시에 어느 누구도 다르지 않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영화와 텔레비전 쇼 제작자들은 여자는 강인하고 모험적이며 남자는 예민하고 수동적인 그야말로 양성적인 사회와 완벽하게 평등주의적인 사회를 묘사하려고 한다. 10대 골프 선수 미셸 위는 과거 3년 동안 잭 니클라우스가 평생에 걸쳐 주목받은 것보다 더 많은 집중조명을 받았다. 왜냐고? 남자 골퍼들과 여러 차례 성대결을 펼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보다 훨씬 훌륭한 젊은 남자 골프 선수들은 무수히 많지만 그들 중 어느 누구도 <USA 투데이>에 단 한 줄의 기사로도 보도되지 않았다. 주관성의 부상과 그것이 미국인들의 생활에 부과한 파편화의 패턴은 다양한 정치적, 사회적 추세를 설명해 준다. 이런 추세는 비판적인 사고와 이성이 점차 주변화 됨과 동시에 보람 있거나 혹은 성공적인 생활을 위한 표준으로서 이미지와 물질주의의 부상을 설명해 준다.
과거 200년 동안 미국에서 일어난 가장 중대한 변화는 정치적인 것도, 경제적인 것도, 철학적인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심리적인 변화였다. 삶, 법, 행복의 추구에 관한 국가 전망의 토대가 되는 경험적인 증거, 추론, 회의주의를 주관성과 감정이 대체해버렸다. 이것은 지적인 일탈이라는 전염병이 초래한 현상이다. ‘그’ 세계가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을 수도 있는데 그런 세계 속에서 진행되는 일에 내가 호기심을 가질 이유가 있겠는가? 하지만 그런 전망이 단지 가치와 신념만을 상대성으로 이끄는 것만은 아니다. 문제는 그런 추세가 사람들의 판단을 상대적으로 만들고, 건전한 결정을 내리지 못하게 만들며, 상상력과 창조력의 결핍과 의지의 상실로 이끈다는 점이다.
어떻게 하면 감정, 이데올로기, 정치적 편의에 의해 운영되는 사회로부터 이성과 논리에 의해서 움직이는 사회로 변화할 수 있을까? 이 책의 앞부분에서 나는 이러한 특수한 대책을 논의한 바 있다. 적극적인 부모 노릇으로 되돌아가기, 변화와 위기의 수용, 비판적 사고에 대한 연구 등이 그런 대책에 해당한다. 이런 조치들은 사람들에게 지식의 중요성을 고양하고, 관찰과 데이터에 의해 뒷받침 될 수 있는 추론과 판단기술을 실천할 수 있도록 해 줄 것이다. 하지만 최대의 변화는 철학적인 변화여야 한다. 어떤 사람에게 독서를 하라고 하는 것과 그런 독서가 본질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환경을 만드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이다. 그러게 하려면 학문은 문제를 해결하고 결정을 내리고 정책을 결정하는 방법으로서 비판적 사고와 논리를 적용하고 수용하면서 사회가 원활하게 기능하는 방법으로 간주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