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色)이 있는 거리
순대국밥으로 화려한 부활을 꿈꾼다.
제주의 순대, 특히 보성시장의 순대는 허영만의 만화 ‘식객’에 나올 만큼 유명하다. 순대 속을 잡채 대신 찹쌀과 선지 등을 넣어서 찰지고, 식감이 뛰어나다.
이러한 제주순대를 기본으로 유명한 장소가 있다. 바로 보성시장이다. 학생이었던 90년대 초반, 수업이 끝나면 이 곳으로 보충수업을 하러 오던 시절이 있었다. 이념이든 배든 모든게 배고프던 시절에도, 돈 만원이면 몇 명이서 푸지근하게 먹을 수 있는 곳이었다. 그래서 보성시장 식당 주인아주머니들은 고모, 이모와 같은 친척으로 변하곤 했다.
10여 년이 더 지난 후, 시간이 더디게 가는 금요일 점심시간에 다시 보성시장을 찾았다. 두리번거리다가 옥성식당에 들어갔다.
‘옥성식당’ 이모는 “여기서 장사를 시작한지도 21년이 넘었어요. 이걸로 자식들도 대학까지 다 보냈지요.”하며 이곳에서의 삶을 만족해한다. 요즘 어렵지 않느냐는 질문에도 “옛날처럼 장사가 잘 되는 것은 아니지만, 먹고 사는 데는 지장이 없고 욕심 부리지 않고 살고 있으니 편안하다”라고 한다.
오랜 세월 장사를 하다 보니 단골도 많다. 이 곳을 찾는 손님 가운데는 학생시절부터 와서 50세를 훌쩍 넘긴 손님에서부터, 70세가 넘는 분도 계시다고 한다. 처음 장사를 시작할 때 800원 했던 순대국밥이 지금은 3천5백원인 것처럼, 그 가격의 격차만큼이나 세월의 무상함도 묻어나오는 듯 하다.
순대국밥의 맛은 뭐니뭐니 해도 순대와 육수가 중요하다. 여기 보성시장에선 대부분 순대를 직접 만들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단골손님 중엔 경조사가 있으면 이곳에서 순대를 가져다 쓰는 분들이 꽤 있다고 한다. 육수도 돼지사골로 만들어 진하다.
사실 순대의 맛이야 다른 곳에서도 흉내낼 수 있다지만, 어찌 보면 낡아 보이기까지 한 허름하고 오래된 순대집에서 나오는 내공의 깊은 맛은 여간해선 따라잡기 힘들다. 식당이 잘 된다고 새로 건물을 짓고 이사하면, 모든 것을 그대로 해도 예전 맛이 나지 않는다고 불평하지 않는가.
순대국밥의 또 다른 매력은 골라 먹는 재미가 있다는 것이다. 다른 음식이야 그냥 양념을 추가하거나 빼달라는 것으로 끝이지만 순대국밥은 다르다. 자리에 앉으면 순대를 많이 달라, 머리고기를 더 주라, 내장만 줬으면 한다 등 주문이 가지각색이지만, 싫어하는 내색은 없다. 혹여 주문을 잘못 듣고 순대를 적게 준 경우, 한 웅큼의 순대는 서비스로 추가다.
무엇보다 순대국밥의 미학은 자유로움이다. 우선 그 재료부터 자유롭지 않은가? 순대국밥에는 순대며, 머릿고기, 내장, 선지, 잡채까지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로움이 자리잡고 있다. 추가 양념장도 소금, 고춧가루, 새우젓 등 다양하다. 이러니 먹는 사람이 어찌 자유스럽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러한 넉넉함이 주인에게까지 옮겨가는가 보다. ‘옥성식당’ 이모는 “어렵고 힘든 시절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내가 이 정도라도 살게 된 것은 여기를 찾아준 손님들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든 그 보답을 할 생각입니다”
보성시장 활성화 “보성시장만의 아이템 찾아 활성화 이룰 것”
“시장 활성화 방안을 다각도로 마련하고 있습니다. 보성시장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주세요”
보성시장의 터줏대감으로 35년 역사의 산 증인이자, 제주시장상인연합회 회장을 맡고 있는 문옥권씨.
“지난 90년대 후반 IMF를 겪으면서 150개 점포에서 50여 개 점포가 줄었습니다. 상인들 전부가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주시 광양로터리 북쪽에 자리 잡은 보성시장은 지난 1972년 3층 건물, 150개 점포로 문을 열면서 의욕적인 출발을 했다. 처음에는 일반 시장처럼 갖가지 물품들이 거래됐지만, 20여 년 전부터는 순대국밥집이 하나둘 들어서며 이것으로 더욱 유명해졌다.
그러나 지속적인 경기침체로 시장은 폐업 직전까지 갔고, 활성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시장상인연합회 회원들은 마침 수원시 지동시장이 보성시장과 비슷한 어려움을 겪었고, 자구책 마련을 통해 활발한 특화상품 개발로 돌파구를 찾았다는 소식을 접했다. 이를 벤치마킹 하는 것이 우선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우선, 지금의 건물을 리모델링 해 1층은 아예 순대국밥 시장으로 특화할 생각입니다. 거기다 2층은 보성시장만의 고기 마트가 될 겁니다. 제주산 토종 돼지만 엄선해 관광객들을 위한 쇼핑공간으로 만들어나갈 생각입니다.”
그 밖에도 시장을 둘러가며 들어선 시장은 농․수산물 등으로 품목을 제한해 경쟁력을 높일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순대국밥 시장과 병행해 야시장을 개발할 예정이며, 연계 먹거리 아이템을 구상중이라고도 한다.
문옥권씨는 마지막으로 “시장 상인들의 살아남고자 하는 의지와 동참이 가장 중요하겠지만, 무엇보다도 보성시장을 아끼는 시민들의 마음이 시장을 살릴 수 있다”는 말을 덧붙이며 보성시장에 대한 관심을 부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