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양지와 육맥신검의 관계에 관하여
한 2~3년 전에 논검을 한 적이 있었다. 게시판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서로의 주장을 쓰다쓰다 못해 토해내면서 집어던지기 까지 하는 난잡한 논검이 아니라, 마치 바둑을 두 듯 말 한마디에 신경을 쓰면서 서로의 주장에 대해서는 칭찬하면서도 자신의 주장에 대한 소신은 굽히지 않는, 근거는 양쪽이 모두 철저하면서도 서로 수긍할 수 있는, 토론이 끝날 때까지 조용하면서도 절도가 있었던, 꽤나 멋진 분과의 멋진 토론이었다. 그 토론의 주제가 일양지와 육맥신검의 관계였다. 대리국의 대표 무공이라고 할 수 있는 일양지와, 천룡팔부에서 단예가 배우게 되어 유명해진 육맥신검. 두 가지 무공은 서로 엃혀 있으면서도 독립적인 무공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컬럼에서는 이 두 무공간의 관계를 한번 짚어보려고 한다.
사조삼부곡의 일양지, 천룡팔부의 일양지. 그리고 품계
일양지가 걸어온 고난의 가시밭길에 대해서는 이제 모르는 사람이 없으리라 본다. 초기에는 전진교의 무공이었다가 개정을 거치면서 대리국의 무공으로 굳어졌는데, 이는 천룡팔부에서 난데없이 일양지를 대리국의 무공으로 끌어다가 썼기 때문이다. 아마도 많은 독자들이 놀랬을 것이고 궁금해했을 것이다. 사조삼부곡에서는 전진교의 무공이 아니었던가? 일등대사가 왕중양에게 배우는 무공을 어떻게 이전에 살던 사람이 알게 됐을까? 방법은 없다. 선천공이 대리국의 무공이 되어버리면 일양지에서 출발한 육맥신검마저 다른 무공으로 바뀌어야 한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겠지만 그렇게 일양지는 대리국의 무공이 되었다. 좋든 싫든 간에. 하지만 그것으로 끝난게 아니었다. 단지 출신 배경 말고도 사조삼부곡의 일양지와 천룡팔부의 일양지는 다른 점이 있었다. 바로 품계. 원조 일양지라고 할 수 있는 사조삼부곡의 일양지는 그 품계의 구분이 없었다. 일등대사는 그저 일양지를 익혔을 뿐이고, 약간 특이한 점을 꼽으라면 선천공과 융합해서 쓸 수도 있다는 점이랄까. 하지만 천룡팔부의 경우는 그 품계가 정해져 있어 드러난 품계는 최고가 4품 정도였다. 품계란 연속적인 것이 아니라서, 마치 계단을 오르듯 한 단계 한 단계가 눈에 보일만큼의 차이가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이런 품계의 차이는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분명한 것은, 이것은 절대로 내공의 수준으로 인해서 만들어진 격차는 아니라는 것이다. 내공이란 계단처럼 불연속적으로 쌓이는 수치가 아니라 시간이 지날수록 천천히 쌓여가는 연속적인 모습이 일반적이다. 물론 혈맥이 타통되어 순식간에 내공이 증진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건 내공의 증가이지 무공의 연성이라고 보긴 어렵다. 게다가 그것이 일양지에만 적용되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생각해볼 수있는 것이 초식의 변화라던가 기공의 정순함 등을 생각해볼 수 있는데, 초식은 아무리 어려워도 몇년 안에 배울 수 있는 것으로 본다면 품계라는 설정은 좀 더 기공쪽에 연관이 있지 않을까 한다. 소설 안에서 드러난 일양지는 강맹한 공격에 맞서는 모습을 보여주어 금강지 같은 무공이라 생각하기 쉬우나, 기공의 수련을 통해서 외문을 단련하는 금강지 계열과는 달리 일양지는 내가 수련을 토대로 발전해가는 내문무공이다. 외문 무공은 외적인 충격정도를 보기 때문에 벽돌에 구멍을 뚫는다던지 손가락 자국을 낸다던지 하여 그 정도는 보여줄 수 있는데, 내문 무공은 내력의 울림을 보기 때문에 내식을 조절한다던가 기공을 와해시킨다던가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사조삼부곡과 천룡팔부에서 일양지를 통한 치료가 등장하는데 이것은 일양지가 내문 무공이라는 것을 비교적 자세히 보여준 예라고 할 수 있다. 품계라는 것도 내문 무공의 정도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이렇게 길게 적었지만 품계는 예광 선생이 멋대로 만든 것이라고 생각함.)
육맥신검은 대체?
그렇다면 육맥신검은 어떤가? 육맥신검에는 아이러니컬하게도 품계가 없다. 일양지에서 나온 무공이 일양지의 수순을 밟고 있지는 않은 것이다. 육맥신검은 일양지에서 출발하게 되는데, 그 발출 원리가 일양지와 거의 동일하게 설명되어 있다. 일양지를 익힌 보정제는 관충검에 대한 설명을 듣고는 무리없이 한가닥의 검기를 뽑아냈다. 다만 일양지의 경우는 식지를 지나는 경맥인 수양명대장경을 주로 사용하는 반면, 육맥신검은 손을 지나는 여섯개의 혈맥을 모두 사용하는 것이 다르다. 품계가 없는 이유는 출발은 비슷했지만 서로 다른 길을 걷기 때문으로 생각할 수 있다. 우선은 쓰는 혈맥이다. 설명했다시피 두 무공은 쓰는 혈맥이 다른데, 일양지가 한가지 혈맥을 통해서 그 위력을 단계별로 증진시키는 반면 육맥신검은 일단 혈맥으로 기공이 발출 가능하다면 되도록이면 많은 내력을 사용하여 많은 혈맥을 통해, 마치 제트워터를 뽑아내듯 검기로 형상화 시키는 길을 걷고 있다. 그런데 쓰는 혈맥이 여러 개이기 때문에 그것을 지탱해줄 내력이 반드시 필요하고, 자유롭게 쓰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내공이 필요하다. 즉, 육맥신검은 여러 가닥의 운용을 모두 충족시켜야 하기 때문에 내력이 가장 큰 요인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연속적인 내력의 정도로 위력을 가늠할 수 있는 바, 품계가 정해지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소설 내의 육맥신검은 인간이 도달할 수 없는 경지로 표현되는데, 이는 그만한 내력을 쌓은 사람이 드물었기 때문이다. 조금만 생각해본다면 육맥신검을 배우기는 비교적 쉬워서, 맥시멈 4품 정도의 일양지 수준과 적당한 내공을 가지고 있다면 쉽게 익힐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 위력의 정도는 내력의 깊이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렇다면 두 무공은?
여기까지 진행된다면 피할 수 없는 것이 어떤 무공이 더 우위에 있는가 하는 것이다. 결론부터 적자면 필자는 두 무공을 비교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같은 것에서 시작했지만 서로 다른 길을 걷는 무공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쓰는 혈맥이 수태음폐경이든 수궐음심포경이든, 그것 자체는 그다지 중요한 것 같지 않다. 웅덩이의 물을 바가지 한개로 퍼내든지 두개로 퍼내든지 여섯개로 퍼내든지, 바가지 갯수로 웅덩이의 물이 많아지고 적어지진 않기 때문이다. 즉, 일양지와 육맥신검이란 무공 만으로 내력의 수위까지 결정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최소치는 만족시킬 수 있다고 할 수는 있지만 말이다. 같은 내력을 가진 사람이 일양지와 육맥신검을 같이 쓴다고 했을 시, 육맥신검이 더 유리하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같은 내력을 한 줄기로 쓰든 여섯줄기로 나누어 쓰든, 그것은 스타일 차이일 뿐이라고 보기 때문에. 강룡장처럼, 많은 초식보다는 한 초식으로써 승부를 이끄는 무공도 존재하는 바. 검기냐 보통 기공이냐도 그리 큰 문제라고 할 수 없다. 장법 고수가 검법 고수에게 반드시 패하지 않는 것처럼. 더군다나 검기 역시 그저 '검의 형태를 한 기공'일뿐, 정말 검이 날아다니지는 않는다. 기공의 강약으로 막을 수도 있고 되쳐낼 수도 있는 것이다.
같은 출발선상에서 출발했지만 서로 다른 길을 걷는 무공이다. 필자는 단순히 육맥신검은 일양지에서 뻗어나온 가지에 불과하다고 본다. 아직 갈 길이 많았던 천룡사 승려들이 육맥신검을 익혔던 것처럼. 더 뻗을 높이가 있는데도 다 자라기 전에 가지를 뻗는 나무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