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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5월 3일, 수요일, Yerevan, Gayane Simonyan 민박
(오늘의 경비 US $52: 숙박료 $10, 점심 2, 버스 0.5, 15, 택시 4, 비자 $30, 환율 US $1 = 아제르바이잔 1.8 lari)
오늘 조지아를 떠나서 아르메니아로 왔다.
아침 8시 반쯤 한 방에 묵었던 일본 청년 Nakamura와 함께 아르메니아 수도 Yerevan으로 가기 위해서 Tbilisi 숙소를 나섰다. Nasi가 잠긴 대문을 열어주면서 언제 돌아오느냐고 묻는다. 이곳 숙소에 묵다가 아르메니아로 가는 여행객들은 다시 이 숙소로 돌아오는 모양이다. 아르메니아 날씨가 좋으면 1주일, 나쁘면 3일 정도 묵고 돌아오겠다고 대답했다. Nasi가 추천하는 Yerevan 민박집 주소를 주어서 보니 Lonely Planet에 나온 내가 묵으려고 하는 곳이다.
94번 미니버스를 타고 Ortachala 버스 정류장에 가서 대기하고 있는 큰 버스에 올랐다. 9시 반 출발하는 버스다. 미니버스도 있는 모양인데 Nasi가 큰 버스를 타라고 해서 큰 버스를 탔는데 미니버스를 탈 것을 잘못한 것 같다. Lonely Planet에는 Yerevan까지 큰 버스는 7시간, 미니버스는 6시간 반이 걸린다고 나와 있고 며칠 전 만난 이탈리아 여자 여행객은 미니버스로 갔는데 5시간 반 걸렸다고 했다. 나는 큰 버스가 미니버스보다 편할 것 같아서 큰 버스를 탔는데 뭐가 잘못되었는지 10시간이나 걸려서 저녁 8시경에 Yerevan에 도착했다. 시간도 한 시간 바뀌어서 아르메니아 시간으로는 저녁 9시였다.
Tbilisi에서 버스가 떠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일본 청년 한 명이 버스에 오른다. 자기는 미니버스로 간다며 잠깐 우리와 얘기를 나누고 먼저 떠났다. 우리보다 나중에 버스 정류장에 나왔는데 미니버스로 우리보다 약 20분 먼저 떠났다. 그 친구는 우리보다 훨씬 먼저 Yerevan에 도착했을 것 같다. 우리도 그때 미니버스로 바꿨어야 했다. 그 일본 청년은 한국어를 유창하게 한다. 연세대학 어학원에서 배웠다고 한다. 근래에는 한국어를 잘하는 일본 사람들은 자주 만나서 기분이 좋다. 우리 두 아들들도 연세대학 어학원에서 1개월씩 공부를 했는데 별로 배운 것이 없는데 이 일본 청년은 한 1년 다녔는지 한국어를 제법 잘한다. 우리 애들도 이 일본 청년만큼 한국어를 잘 할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생각되로 쉽게 되는 것이 아니어서 안타깝기만 하다.
12시 50분에 국경에 도착하여서 수속을 하는데 한 시간 넘어 걸렸다. 큰 버스라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미니버스라면 훨씬 덜 걸렸을 텐데. 국경을 떠나서 고도가 점점 높아진다. 2,000m를 넘어서 2,600m까지 올라간다. 구름에 반쯤 가린 주위 산에 눈이 많이 보인다. 최근에 내린 눈 같다. 고도가 높아서 그런지 버스가 제대로 속력을 못 낸다. 오후 3시경 어느 길가 음식점에 서서 점심을 먹었다. 길가에 큰 화덕을 만들어 놓고 그곳에서 kebab을 구어서 파는데 먹음직스럽다. 이 나라 돈이 없어서 조지아 돈을 주고 하나 사 먹었는데 맛이 좋았다. 무슨 고기냐고 물으니 소고기, 양고기, 돼지고기를 섞은 것이란다. 이슬람교도 사람이 들었다면 깜짝 놀랐을 것이다. 돼지 얘기만 들어도 구역질을 하는 사람도 많다는데.
2,500m 정도의 고개를 넘으니 넓은 초원이 나온다. 초원 너머로는 눈 덮인 산들이 보인다. 내가 상상했던 아르메니아는 이런 경치가 아니었는데 예상외다. 강원도 같이 산이 많은 곳으로 생각했는데 초원이 보통 넓은 것이 아니다. 한국의 전라북도 평야만큼이나 넓어 보인다.
Yerevan 버스 정류장에 도착해서 숙소를 미리 정해 놓은 일본 청년과 헤어져서 택시를 타고 오페라하우스 근처에 있는 숙소로 찾아갔다. 택시 기사가 오페라하우스는 알아들어서 쉽게 찾아갔다. 택시 요금으로 조지아 돈 4 lari를 주었다. 숙소는 어머니와 딸 둘이 사는 작은 아파트인데 거실, 침실 둘, 부엌, 욕실이 모두 작았다. 침실 하나는 독일 여자 여행객 둘이 차지했고 다른 침실에는 프랑스 청년 한 명이 묵고 있다. 나는 프랑스 청년과 함께 같은 방에 들었다. 침대 둘이 간신히 들어가는 작은 방이다. 어머니와 딸은 거실에서 기거한다. 아마 여행 철에만 그러는 것 같고 여행객들이 안 오는 겨울에는 침실을 다시 차지하는 것 같다.
Tbilisi Nasi의 집과 비교가 된다. 공간이 작으니 프라이버시가 부족하다. 그러나 어머니와 딸이 매우 친절하고 딸은 영어를 유창히 해서 편하다. 샤워도 따로 돈을 안 받고 언제나 할 수 있고 부엌도 마음대로 쓸 수 있고 전기도 마음대로 쓸 수 있다. Nasi 집에서는 화장실에 비누 조각 하나 없었고 화장지도 없었는데 이곳은 모든 것이 풍성하다. 숙박료도 Nasi는 매일 받았는데 이곳에서는 나갈 때 한꺼번에 달란다. 훨씬 마음이 좋은 부녀다. 특히 20대 초반의 딸은 그렇게 상냥하고 예의가 밝을 수가 없었다. 아르메니아 사람들에 대해서 아주 좋은 인상을 갖게 한다. .
내일은 독일 여자들이 나간다며 그 방으로 옮기란다. 그 방이 더 좋은 모양이다.
아르메니아 가는 길, 아직도 산에는 눈이 가득하다
산을 넘으니 고도 2,000m 이상인데 넓은 초원이 나온다
아르메니아의 수도 Yerevan 가는 길이 시원스럽다
점심을 먹은 간이 음식점
2006년 5월 4일, 목요일, Yerevan, Gayane Simonyan 민박
(오늘의 경비 US $26: 숙박료 $10, 점심 2,850, 저녁 1,400, 간식 250, 코카콜라 400, 식품 1,750, 버스 200, 인터넷 350, 환율 US $1 = 450 dram)
아르메니아의 자랑거리는 기독교를 국교로 정한 세계 최초의 나라라는 것과 아르메니아 알파벳의 우수성이다 아르메니아는 4세기에 기독교로 개종했는데 옆 나라 조지아보다 불과 25년 차이로 최초의 기독교 나라가 되는 영광을 얻었다. 아르메니아 알파벳은 문자뿐 아니라 숫자도 포함한 특이한 형태라고 한다. 당시는 로마제국 시대였는데 로마 숫자에 비교해서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 등을 훨씬 쉽게 할 수 있는 우수성 때문에 아르메니아 사람들이 상업에 출중해질 수 있었다고 한다. 로마 상인이 15 x 25 계산하는데 3분이 걸렸다면 아르메니아 상인은 30초에 해낼 수 있었던 모양이다.
아르메니아는 이런 자랑거리보다는 매우 슬픈 역사를 가진 나라로 세계에 알려져 있다. 수천 년의 아르메니아 역사 동안 독립국가로 있은 적이 별로 없었다. 항상 페르시아, 로마 제국, 몽골, 오토만 제국, 러시아 등의 지배를 받아왔고 특히 핍박이 심했던 오토만 제국의 지배 동안에는 유태인들처럼 세계 도처로 흩어져 살수밖에 없었다. 현재도 아르메니아 인구는 약 3백만인데 해외 동포는 천만이란다. 미국, 러시아, 유럽, 남미, 인도 등 세계 안 사는 곳이 없다. 아르메니아 사람들은 유태인들처럼 세계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이 많은 모양인데 내가 알고 있는 아르메니아 계 미국인들만 해도 억만장자 Kerkorian, 연예인으로 가수 겸 배우로 날렸던 Sher와 Khadashian 자매들,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지낸 Dukmejian, 유명한 대학 농구코치 Tarkanian, 세계적인 테니스 선수 Agassi 등이다.
아르메니아 사람들이 이렇게 자기 나라를 가지지 못하고 살아야했던 제일 큰 이유는 아르메니아의 위치 때문이란다. 임진왜란 때 일본이 한국을 정복하기 위한 구실로 중국을 치겠으니 길을 빌리라고 했듯이 아르메니아는 동서남북으로 침략의 길목에 위치해있어서 항상 피해를 받아왔던 모양이다. 동쪽에서는 페르시아, 티무르 제국, 몽골 군대, 서쪽에서는 알렉산더 대왕, 로마 제국, 오토만 제국의 군대, 북쪽에서는 러시아 군대, 남쪽에서는 아랍의 군대들이 지나다녔으니 정말 바람 잘 날이 없었을 것이다. 정말 나라 위치를 잘못 잡은 것은 것인데 그것도 국가의 운명인 것 같다. 나라 위치를 잘 잡은 호주, 뉴질랜드, 노르웨이, 스웨덴 같은 나라는 정말 운이 좋은 나라들이다.
아르메니아 사람들의 슬픈 역사는 1915-1922년에 일어난 아르메니아 대학살로 (genocide) 그 정점에 이른다. 오토만 제국과 오토만 제국의 뒤를 이은 신생 터키에 의해서 백 5십만의 아르메니아 사람들이 학살당했던 것이다. 일본이 남경 학살을 부인하는 식으로 터키도 아르메니아 학살을 부인한다. 거기에 비해서 독일은 유태인 학살을 인정하고 사과를 했다.
세상이 다 알고 있는 아르메니아 학살을 터키는 왜 부인을 하는가 하고 생각해 보았다. 단 한 가지 결론은 그 문제에 대해서 얘기를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인정을 한다면 구차한 변명을 해야 되고 사죄를 해야 되는데 그런 것을 하고 싶지 않은 것 같다. 학살 자체를 부인하면 거기에서 얘기가 끝나기 때문이다. 일본이 남경 학살을 부정하는 것도 그 이유 때문일 것이다. 오늘 아침에 숙소 부녀에게 왜 아르메니아 학살사건이 일어났는가 하고 물어보았다. 딸 대답이 영토 때문이라 한다. 현재 아르메니아 사람들이 West Armenia라고 부르는 약 35만 평방킬로미터의 땅이 터키에 속해있다. 터키는 이 땅에 살던 아르메니아 사람들을 완전히 없애버리려고 했던 모양이다. 정말 땅에 대한 욕심 때문에 그런 참혹한 일이 벌어졌을까. 터키 주위에 아르메니아 외에도 다른 나라들도 많은데 왜 하필 아르메니아만 당했을까. 딸의 대답에 만족이 안 된다. 좀 더 연구를 해봐야겠다. 터키에 가면 터키 사람들의 얘기도 들어봐야겠다. 그러나 나치 독일의 유태인 학살처럼 쉽게 이해가 되는 문제가 아닐 것 같다.
아르메니아의 수도 Yerevan은 아름다운 도시이다. 인구 100만의 이 도시는 고도가 1,600m 정도라 여름에도 별로 덥지 않단다. 거리는 수목이 우거지고 남쪽으로는 Mt. Ararat 산이 손에 잡힐 듯이 환하게 보인다. 이 산은 성경에 나오는 Noah의 방주가 상륙했다는 산인데 Yerevan에서 불과 40km 거리지만 터키 영토 안에 있다.
오늘은 날씨가 너무나 좋다. 티셔츠만 입고 다녀도 될 만한 초여름 날씨다. 어제 조지아의 Tbilisi에서는 비가 왔는데 어쩌면 이렇게 날씨가 다를까, 정말 신기하기도 하다. 어제 Tblisi를 떠난 것이 너무나 잘 한 일이다. 아침에 이곳 숙소 딸이 창밖으로 Mt. Ararat 산을 보란다. 흡사 서울의 북한산처럼 가까이 보이는데 아르메니아가 아니고 터키 땅에 있다니 믿기 힘들다.
우선 걸어서 서울로 말하면 시청 앞 광장에 해당하는 Republic Square로 걸어갔다. 그곳에 있는 은행에서 이 나라 돈을 찾기 위해서다. 숙소에서 한 20분 거리인데 광장에 도착하니 광장주위가 너무나 아름답다. 이렇게 아름다운 광장은 광장 문화가 발달한 남미에서도 보기 힘들 정도로 아름답다. 광장에 있는 HSBC 은행 ATM에서 1주일 정도 쓸 돈을 찾았다. ATM에서 나오는 돈이 전부 50,000 dram 짜리다. 한국 돈으로는 약 10만원에 해당하는 돈인데 이렇게 큰돈은 쓰기가 힘들다. 은행 창구에 가서 1,000, 5,000, 10,000 dram 짜리들로 바꿨다.
벌써 점심때가 되어서 Lonely Planet에 나오는 음식점을 찾아서 점심을 먹었다. 아마 외국 여행자들이 많이 오는 음식점인 모양으로 금연 구역도 있다. 금연 구역이 있는 음식점은 이번 여행을 시작한 후로 처음이다. 그 동안 음식점에서 항상 담배연기 때문에 애를 먹었는데 이 음식점은 금연 구역이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영어로 얘기하는 소리도 들리고 웨이터도 영어가 유창하다. 그러나 음식은 비싸고 맛도 없었다. 거기다 양까지 적어서 점심을 먹은 것 같지도 않아서 나와서 조금 걷다가 어느 수퍼마켓에 들어가서 샌드위치 비슷한 것을 하나 사서 배를 채웠다. 이곳은 못사는 나라라는데 배낭 여행자가 여행하기에는 물가가 만만치 않다. 그래도 음식점은 싼 곳을 찾기가 어렵지 않은데 호텔은 싼 곳이 없다. 카자흐스탄,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 모두 마찬가지다. 이 나라들보다 더 잘 사는 남미 나라들에는 외국 배낭 여행자들을 위한 싸고 좋은 숙소들이 많은데 이 나라들은 그렇지 않다. 아마 그 이유는 외국 배낭 여행자들이 많이 안 오기 때문인 것 같다.
어제 버스 타고 올 때 승객 한 친구가 담배를 피면서 한국 담배라고 해서 보여주니 ESSE라는 한국 담배였다. 오늘 Yerevan 길거리를 걷다가 보니 ESSE라는 이름이 쓰인 조그만 담배 재떨이 통을 보았다. 이런 곳까지 한국 담배가 들어와서 팔리다니, 한국 회사들은 보통 극성이 아니다. 아르메니아 사람들은 조지아 사람들보다는 담배를 덜 피는 것 같다. 어쩌면 구미에서 오고 있다는 역이민 영향인지도 모른다. 아르메니아에는 본토박이 아르메니아 사람들과 근래에 외국으로부터 선조의 고향을 찾아서 이민 온 서구화된 아르메니아 사람들 사이에 문화적인 차이 때문에 알력이 있는 모양이다. 그 중에 하나가 외국에서 이민 온 아르메니아 사람들이 본토박이 아르메니아 사람들보고 싸구려 담배를 많이 피우는 사람들이라고 얕보는 것이란다.
아르메니아 학살에 관한 사적을 전시하는 대학살 박물관을 찾아갔다. 그러나 닫혔다. 아침에 숙소 부녀에게도 닫혔다는 말을 못 들었는데 이상하다. 한참 기다리다 지나가는 사람이 한 사람이 있어서 닫혔느냐고 물어보니 닫혔단다. 아마 근래에 다른 곳으로 옮겼나 보다 하고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나중에 길가에서 만난 영국 여행객으로부터 내가 본 빌딩이 대학살 박물관이 아니고 스타디움이고 박물관은 스타디움 뒤쪽에 있다는 것이다. 표지판 하나 제대로 없고 Lonely Planet에도 아무런 언급이 없다. 처음 찾아가는 나 같은 외국 여행자는 잘 찾지 못하도록 숨겨져 있다. 내일 다시 갈 수밖에 없다.
돌아오는 길에 대사관들이 많은 대사관 거리를 걸어서 왔다. 정말 신록이 우거지고 풀 냄새가 싱그럽다. 오랜만에 햇빛을 대하니 기분이 좋아진다. 선글라스를 쓰는 것도 오랜만이다. 갑자기 태극기가 눈에 들어와서 보니 한국 대사관이다. 이런 조그만 나라까지 한국 대사관이 있다니 반갑다. 들어가서 대사관 한국사람 직원을 만나보고 싶은 생각이 났지만 적절한 행동이 아닌 것 같아서 그만 두었다.
인터넷을 잠깐 했는데 너무나 느리다. Tblisi처럼 이 도시에도 빠른 인터넷 카페가 있을 텐데 찾을 길이 없다. Tbilisi에서 이곳을 여행한 사람들 여러 명을 만나서 물어보았지만 아무도 몰랐다. 숙소로 돌아오기 전에 야외 카페에서 코카콜라 한 잔을 시켜서 마시면서 길거리 구경을 했다. 길거리 소음은 좀 있지만 날씨도 좋고 공기도 맑고 카페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 구경하기 좋은 날이다.
숙소 위치는 지금까지 묵은 도시 중 최고다. Yerevan 오페라하우스 바로 길 건너이다. 숙소에 돌아오니 Tbilisi 숙소에서 한 방에서 묵었던 네덜란드 친구가 들어와 있었다. Tbilisi에서 아침 9시에 떠나는 미니버스를 탔는데 5시간 반 걸려서 오후 2시 반에 Yerevan에 도착했단다. 나는 바보같이 큰 버스 타고 10시간 동안 고생하면서 왔는데, Tbilisi로 돌아갈 때는 꼭 미니버스를 타야겠다. 어제 쓸데없이 고생한 것이 은근히 화가 난다. Tbilisi 숙소 주인 Nasi가 큰 버스를 타고 가라는 말만 안 했으면 아마 미니버스로 왔을 것이다.
오랜만에 햇빛을 보는 Yerevan의 아침
Yerevan의 중앙광장 Republic Square는 아름답기 짝이 없는 곳이다
Tbilisi에서와 마찬가지로 Yerevan에서도 Marriott Hotel 건물이 인상적이다
한국 담배 광고
소련식 아파트 건물들이 밀집한 Yerevan 교외
녹음이 우거진 거리 풍경
널찍한 거리가 부럽다
대사관 거리를 걷다가 우연히 발견한 한국 대사관
구소련의 아르메니아공화국의 건국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서 지었다는 Cascade
길거리 카페, Yerevan에는 이런 카페들이 많다
카페들은 다양한 시설과 장식으로 손님을 유치한다
오페라하우스 광장, 나무숲 너머로 보이는 건물이 내가 묵었던 숙소다
내가 묵었던 아파트 건물, 아주 편리한 위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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