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님을 모는 기관사
석이 아빠가 모는 택시가 시내를 벗어나고 있었다. 곧장 뻗은 고속도로를 달리는 석이네 차는 진초록빛 들판을 신나게 가로지른다. 뒷좌석엔 석이와 석이 엄마가 타고 있었다. 방동 유원지로 가는 길이었다.
시내에서보다는 좀 시원했지만 이 곳 역시 해님은 싱그러운 여름 속으로 풍덩 빠져 들어와 불이라도 놓겠다고 야단이다. 이렇듯 해님이 온 세상을 태우려고 끓어오르니 무덥기만 했다.
아빠가 집에서 쉬는 날, 푸른 숲 속을 달려 방동 유원지로 가겠다던 약속이 오늘에야 이루어진 셈이다. 석이는 기분이 좋았다. 유치원에 갈 때보다 훨씬 즐거웠다. 석이는 아빠가 모는 차가 다른 자동차들을 따라잡을 때마다 신이 나서 떠들어 댔다.
석이는 마음이 들떠 있었다.
"야, 우리 아빠 차가 제일 빠르다."
석이는 두 팔까지 들어올리며 야단이었다.
"그럼, 그렇고말고, 아빠의 운전 솜씨가 보통이 아니신데……."
석이 엄마도 기분이 좋은지 빙그레 웃으며 석이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아빠, 그런데……."
석이는 백미러 속의 아빠를 바라보며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말했다.
"너, 석이 무슨 뚱딴지 같은 말을 하려는 거여?"
전에도 툭하면 엉뚱한 짓을 한 석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엄마는 석이가 혹시 운전을 방해나 할까봐 석이의 잔 등을 잡아 앉히려 했다. 그러나 석이는 막무가내였다.
"아빠아-."
대답이 없자 이번에는 목청을 돋구어 아빠를 불렀다.
"응? 뭐?"
석이 아빠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그냥 백밀러 속에서 대답했다.
"아빠 차가 이 세상에서 제일 빨라?"
석이 엄마도 그제야 그 정도의 말은 큰 방해가 되지 않으리라고 안심하고 피식 웃었다.
"그러엄, 자 봐라. 아빠가 모는 우리 차가 다른 차들을 모두 따라잡지 않 니? 이렇게……."
석이 아빠가 백밀러 속에서 빙그레 웃으며 차를 더 빠르게 변속하여 속력을 냈다. 앞서 가던 차가 이내 뒤로 밀려났다. 길가에 늘어선 가로수들이 팽팽 뒤로 달아났다. 잘 닦여진 고속도로 위를 석이네 차는 씽씽 잘도 달렸다.
"아이고, 석이하고 별걸 다 하시네. '오늘도 무사히'를 잊으셨어요?"
석이 엄마가 나무라듯이 참견을 했다. 염려가 되고 조마조마한 모양이었다.
석이 아빠가 새벽에 차를 몰고 나가면 한밤에 돌아올 때까지 마음을 놓지 못하는 석이 엄마였다.
"염려 마시오. 무사고 13년째야."
석이 아빠는 유쾌한 듯이 핸들에서 왼손을 떼어 치켜들며 엄지손가락을 세웠다.
"그럼 아빠가 최고야? 이거야? 이거?"
석이도 아빠를 따라 앙증스러운 엄지손가락을 세웠다. 석이 엄마는 그러는 석이를 바라보며 빙그레 웃었다. 석이 엄마도 아직까지 한 번도 실수가 없었던 아빠의 솜씨를 믿고 있었다.
"아빠, 그렇지이? 일등이지?"
"그럼. 아빠가 일등이지."
석이 아빠는 석이에게 말대꾸를 해주면 다시 버릇처럼 왼손을 번쩍 치켜들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피곤한 아빠께 달겨들어 목마를 태워달라던 석이였다. 그리고 그 때마다 석이의 비위를 꼬박꼬박 맞춰 주던 아빠였다.
"아빠 차가 고속버스보다도 빨라?"
저만큼 앞서가는 고속버스를 가리키며 석이가 또 재재거렸다.
"그러엄. 고속버스보다 빠르지."
아빠는 싱글벙글하면서 석이의 말끝을 흉내 내어 대답했다.
"속력이나 줄이고 말씀하세요."
아무래도 엄마는 불안한 듯이 아빠에게 말했다. 그러나 석이 아빠는 여전히 속력을 줄이지 않았다. 차가 점점 빨라지자 석이는 기분이 좋은지 차창을 스치고 지나가는 풍경들을 바라보며 콧노래를 불렀다. 멀리 보이는 여름은 그저 푸르름뿐이다. 볏논에서는 금방이라도 볏목이 팰 듯이 무성하게 우거져 있었다.
석이는 살그머니 차창을 아래로 내렸다. 벌어진 창틈으로 초록빛 바람이 칼날같이 비집고 들어왔다. 그 때 마침 철로 위에 열차가 지나갔다.
"야, 열차다. 열차가 간다. 아빠, 아빠 차가 저 열차보다도 빠르지?"
석이는 갈바람에 머리칼을 흩날리며 또 조잘댔다.
"그렇고 말고. 일등으로 빠르지."
"그럼 비행기보다 빨라?"
"그러엄, 그렇고 말고. 아빠 차가 이 세상에서 제일 빠르지."
석이 엄마는 이제 숫제 기가 막힌지 피식 웃었다.
"그럼 아빠가 최고네?"
"거러엄, 최고지."
석이 아빠는 여전히 핸들을 꽉 잡은 채로 백밀러 속에서 석이 엄마를 향해 눈을 찡긋했다.
"고속버스 운전사보다도 최고겠네?"
"그럼, 최고고 말고."
"그러엄 기차를 모는 기관사보다도 최고야?"
"아무렴, 저 지네같이 꿈틀거리는 열차를 모는 기관사보다야 훨씬 멋있지. 안 그래? 석이야."
"야! 그럼 비행기를 모는 조종사보다도?"
"아무렴. 최고로 훌륭하지."
석이 아빠는 눈도 깜박이지 않고 말했다. 그러나 석이는 이번 대답에만은 고개를 갸웃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땅 위를 달리는 택시를 모는 운전사보다도 비행기를 모는 조종사가 최고일 것 같았다. 석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비행기였다.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모는 비행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그것은 석이의 엄마도 잘 알고 있었다. 유치원에서 그림을 그릴 때도 비행기를 제일 크게 그렸다. 배나 열차보다 세 배는 크게 그렸다.
"그럼 아빠가 해님을 모는 기관사보다도 최고야?"
"해님을 모는 기관사?"
"응, 나는 이 다음에 비행기를 몰고 해님에게까지 가서 해님을 모는 기관 사님을 만나고 올 거야."
석이 아빠는 석이의 말에 놀랐다. 석이 엄마도 놀랐다.
"오라! 그래서 네가 조종사가 되겠다고 했었구나."
"응."
엄마의 말에 석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해님을 모는 기관사가 누군데?"
석이 아빠는 정색을 하며 물었다. 그러면서 서서히 속력을 늦추었다. 백미러 속의 석이 엄마와 아빠의 얼굴에서 웃음이 살짝 걷히고 있었다. 그러나 석이는 대답은 하지 않고 더욱 의기양양해 했다. 이제는 아주 뻐기듯이 몸까지 곧추 세웠다.
"그리고 아빠가 모는 차가 해님보다 빨라?"
석이의 물음이 계속 쏟아졌다.
"그야 뭐 아빠가 모는 이 택시가 해님보다야 빠르지만……."
아빠의 대답에 석이는 깜짝 놀라 긴장하며 대들었다.
"정말? 정말이야?"
"그럼, 해님이야 하루 종일 가도 식장산에서 구봉산까지 밖에 못 가잖아? 그렇지만 아빠 차는 아마 하루에 식장산에서 구봉산까지 열 번은 왕복할 게다. 그러니 스무 배는 빠른 셈이지."
석이는 아빠의 말을 들으니 그런 것도 같았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면 그 때야 해님은 저 동쪽 식장산 너머에서 자다가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는 것을 석이는 여러 번 보았다. 석이는 눈을 깜박이며 생각했다.
아빠 말을 듣고 보니, 해님은 하루 종일 가야 겨우 서쪽 밤나무 숲이 우거진 구봉산으로 넘어가는 것이 확실했다. 석이는 다시 고개를 갸웃했다.
'헌데 순이랑 윤이랑 하나랑 모두 그렇지 않다고 했는데……?'
석이는 갑자기 시무룩해졌다.
"그럼 해님을 모는 기관사는 누구라던?"
"누군 누구야? 엄마는 여태껏 그것도 몰라요? 나도 아는데."
석이는 호통을 치듯이 눈을 크게 떴다.
"누군지 모르겠는데……?"
석이 엄마는 조금 전의 석이처럼 고개를 갸웃했다.
"해님을 모는 기관사님은 천 년, 아니 만 년동안이라도 무사관야."
"무사고? 무사고가 기관사님이야?"
"그럼, 그 솜씨가 얼마나 기막히신데."
"그래?!"
"아빠는 겨우 13년 동안 무사고라고 했잖아."
"아하, 하하하! 우리 석이가 아빠에게 한 방 먹이는데. 하하하!"
석이 아빠는 13년 무사고라고 뽐내며 엄지손가락을 폈던 자신의 말에 한 방 먹이는 석이가 밉지 않았다.
"그뿐인 줄 알아요? 그 분은 밤이면 달님과 별님까지 몰고 다니시느라 한 잠도 못 주무신다던데."
"그래? 그럼 낮에는 해님, 밤에는 달님, 별님을 모느라 바쁘시겠다."
"그뿐이겠냐? 교통순경 아저씨도 없는 복잡한 하늘에서 얼마나 어려우시 겠니?"
"그럼. 너무 피곤하실 거야. 아빠보다도 열 배는 어려우실 거야."
아빠 차는 어느새 고속도로를 벗어나 사잇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넓고 푸르른 방동 저수지를 향해 길은 곧게 나 있었다.
석이 아빠는 아주 천천히 차를 몰며 석이 쪽을 향해 입을 열었다.
"석이야, 해님을 모는 기관사님에게 기도를 해주렴."
그 말에 석이는 기대어 앉았던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
"그래, 아빠도 해님을 모는 기관사처럼 절대로 사고가 나지 않고 오래오래 무사고로 운전하시도록 보호해 달라고 기도하자."
석이 엄마도 석이처럼 눈을 감았다.
"스르르르르르륵-."
기도하는 석이와 엄마를 백미러로 바라보면서 석이 아빠가 모는 택시는 언덕배기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소나무가 듬성듬성 서 있는 숲 사이로 8월의 해님은 은혜로운 햇살을 쏟아 부었다. 쏟아지는 햇살은 멀리 보이는 방동 저수지의 물에도 되비치어 눈부시게 반짝거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