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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세계사에 아메리카는 아세아와 지리적으로 분리된 신대륙(新大陸)이다. 현재의 지리 상식으로 두 대륙은 마지막 빙하기였던 12000년 전쯤 까지도 중간에 베링해협(Bering Strait)이 육지로 연결되었으나 이후 해수면상승으로 분리되었다. 베링해협의 남쪽에 베링해(Bering Sea)는 수 만년 이전부터 바다였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16세기의 서양지도들에 베링해는 육지로 표현되었으며, 18세기의 서양지도들에도 베링해에는 거대한 반도(半島)가 있었다. 수 만년 이전부터 바다였다는 지역이 18세기에 육지로 표현되었던 것이다. 이는 현재의 신대륙인 미대륙이 아세아와 분리된 신대륙이 아닌 동아세아였음을 명확하게 알 수 있는 부분이다.
현재 신대륙인 미대륙은 아세아와 지리적으로 분리된 별개의 대륙이다. 두 대륙의 사이에는 베링해협(Bering Strait)이 위치하였다. 베링해협의 거리는 공식적으로 85km이며, 실제는 82km에 불과하다. 동북아 코리아(Korea)와 재팬(Japan)의 거리보다도 가까운 거리다. 그러나 세계사에서 미대륙은 1492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의 신대륙발견 이전에는 다른 대륙들과 교류조차도 못했다고 되어 있다. 동아세아의 인민(人民, 국가와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이 미대륙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오랜 후에 서양인들의 지리정보를 통해서라는 것이다. ▲미대륙과 아세아의 중간인 베링해협(Bering Strait)은 82km에 불과하다.
세계사에서 북미 알라스카(Alaska)에 대한 정확한 지리정보가 발생한 것은 1741년으로 러시아가 북부 항로를 개척하기 위하여 실시했던 북부대탐험(Great Northern Expedition, 北部大探險)에 의해서였다. 탐사대의 대장인 비투스 조나선 베링(Vitus Jonassen Bering)의 이름을 따 베링탐사라 불리는 탐사를 통해 사람들이 살지 않는 황무지로 미지의 지역이었던 알래스카가 발견되었다고 세계사는 되어있다. 그러나 그러한 주장들이 진실인지는 베링해협(Bering Strait)의 지형을 보았을 때 의문이 든다. 베링해협의 거리는 82km정도이며, 중간에는 다이오메드 제도(Diomede Islands)가 있다. 다이오메드 제도의 섬들은 동서로 35km ~ 36km의 작은 해협들 사이에 위치하였다. 극동아세아에서 35km 떨어진 다이오메드 제도는 육안으로 보이는 거리이며, 다이오메드 제도에서 미대륙의 알라스카도 육안으로 보이는 가까운 거리다. 그 가까운 거리에 미대륙을 아세아인들은 정말 몰랐을까? ▲베링해협(Bering Strait)은 극동아세아와 북미 알라스카의 사이에 위치하였다. 베링해협은 중간의 다이오메드 제도(Diomede Islands)와 35km 정도의 작은 해협들로 이루어졌다. 베링해는 질 좋은 물고기가 많이 잡히는 지역이다. 베링해협에 위치한 극동아세아와 북미 알라스카지역은 현재 많은 사람들이 어업에 종사하며 살고 있다. 어민들에게 바다는 농장과 같아서 그들은 더 많은 물고기를 잡을 수 있는 곳을 찾아다니곤 한다. 현재의 지형이 수 만년 이전부터 유지됐다고 한다면 동북 아세아 연안의 어민들이 극동아세아에서 육안으로 보이는 베링해협에 다이오메드 제도와 베링해를 오가며 물고기를 잡았을 것은 당연하다.
다이오메드 제도(Diomede Islands)는 춥고 척박한 섬이지만 주위로 천혜의 어장들이 몰려있어 사람들이 충분히 살아갈 수 있는 땅이다. 다이오메드 제도에 사는 사람들이 미대륙 알라스카를 아는 것은 대단한 탐사대를 꾸릴 필요도 없다. 맑은 날 눈을 들어 동쪽을 보면 바다너머에 알라스카가 보이기 때문이다. 3. 베링육교는 수심 -50m지역과 일치 세계사에서 인류는 130,000년 전 아프리카에서 발생하였다. 인류가 어떻게 남아메리카까지 퍼지게 되었는지를 연구한 학설들 중에 가장 지지를 받는 이론은 베링해협 이주설이다. 아프리카의 인류가 동쪽으로 아세아를 거쳐 육지였던 베링해협(Bering Strait)을 통해 미대륙으로 이주했다는 것이다. 육지였던 베링해협은 베링 육교(Beringia Land Bridge)라 불린다. 베링육교는 마지막 빙하기까지도 존재하였으나, 빙하기 이후 해수면상승으로 바다에 잠기어 현재의 베링해협이 되었다고 한다. 베링육교이론은 현재 널리 알려져 상식이 되었다. ▲Map of human migration out of Africa(From digitaljournal May 30, 2015) 세계사에서 현생인류는 130,000년 전 아프리카에서 발생하였다. 미대륙의 원주민들은 아프리카의 인류가 점차 동쪽으로 이동하여 Beringia(베링육교)를 통해 미대륙으로 이주한 인류의 후손들로 되어 있다. 겨우 13,000년 전에야 남미에 사람이 살기 시작했다니 세계사대로라면 미대륙은 정말 신대륙인 것이다. 세계사대로라면 인디안이라 불리던 미대륙 원주민들은 아프리카에서 이동한 선주민들의 후손들로 원래의 땅주인도 아니니 유럽세력이 차지한다 해도 무슨 문제겠는가? 미대륙이 신대륙이라는 세계사가 진실인지는 아세아와 미대륙의 중간지역의 지형을 보았을 때 의문이 든다. 베링 육교(Beringia Land Bridge)가 있었던 지역인 베링해협(Bering Strait)은 조류가 매우 강한 지역이다. 그런데 베링해협의 중간수심은 -50m정도에 불과하다. ▲좌: 21.000년 전에 Beringia(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우: : Costline Modern(현재의 해안선)빙하기 이후 아세아와 미대륙 중간에 있었다던 Beringia(베링육교)는 수심 -50m이내의 지역과 일치한다. 4. 최초의 베링해협은 다이오메드의 동쪽 베링해협의 중간에 다이오메드 제도(Diomede Islands)의 수심을 보면 서쪽은 수심이 -25m정도로 매우 얕다. 비해서 동쪽은 -50m정도로 깊다. 그러니 최초의 베링해협은 다이오메드 제도의 동쪽이었을 것이다. 베링해협에는 과거에 지구의 수심이 얕았을 시기에 바닷물이 흘렀을 수심이 깊은 지역이 있다. 그러나 그곳도 -50m정도에 불과하다. ▲Courtesy of U.S. Geologic Survey지도에 표기한 베링해협 수심 베링해협은 수심이 깊은 중간지역을 제외하면 대부분 -30m에도 미치지 못한다. 베링해 수심이 30m가 낮아지면 조류는 1번지역의 한정된 통로로 흘러 2번을 지나 3번인 다이오메드 제도(Diomede Islands)의 동쪽으로만 흐르게 된다. 이후 4번지역을 지나 5번지역으로 흘러갈 것이다. 최초의 베링해협은 4번과 5번의 중간에 수심이 얕은 좁은 지역으로 흘렀을 수밖에 없다. 그 흔적의 폭은 매우 좁아서 수km에 불과하다.
만약 최초의 베링해협이 다이오메드제도의 서쪽에 있었다면 다이오메드 남쪽 해저의 파임은 더 서쪽으로 이동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최초의 베링해협은 다이오메드제도의 동쪽에 있었으며 수심이 얕은 서쪽은 수위가 상승하며 해협이 되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베링해협 다이오메드 제도의 동쪽인 알래스카 웨일즈(Wales)의 토질은 모래로 현재도 베링해협 동쪽에는 모래사장들이 많다. 베링육교가 실제 있었고 북극해의 강력한 물살이 만수천년 전부터 흘렀다면 베링해협의 수심은 수백m에 달해야 정상일 것이다. 베링해협의 대부분 지역의 수심이 -30m에 불과한 것은 그리 오래지 않은 시기에 현재의 모습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되는 부분이다. 만약 해수면이 10m만 낮아져도 베링해협 주위로 매우 넓은 지역이 육지로 변할 것이며, 해수면이 30m 정도가 낮아진다면 미대륙과 아세아는 매우 좁은 해협을 사이로 마주보거나 하나로 연결될 것이다. 5. 16세기 서양지도에 미대륙과 아세아는 하나의 대륙 세계사에서 미대륙을 처음 발견한 것은 이탈리아의 탐험가였던 크리스토퍼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 1450~1506)다. 그는 스페인여왕 이사벨라(Isabella)의 후원으로 1492년 스페인에서 아세아의 인도로 가는 신항로를 개척하였다. 콜럼버스는 죽을 때까지도 자신이 동아세아로 가는 신항로를 개척했다고 생각했다. 미대륙이 신대륙으로 알려진 것을 동시기의 이탈리아 탐험가인 아메리고 베스푸치(Amerigo Vespucci, 1454~1512)에 의해서로 되어 있다. 아메리고는 1497년에 신대륙을 발견했다고 주장했고 그의 주장이 공인되어 신대륙의 명칭이 아메리카(America)가 되었다는 것이다. ▲1590 기아코모 프랑코(Giacomo Franco) 1: 몽골(蒙古, Mongal), 2: 그린란드(Gronelant), 3: 플로리다(Terra Florida), 4: 쿠바(Cuba), 5: 유카탄(Pucatans), 6: 메시고(Messigo), 7: 캘리포니아(Gelolo uel Siloli), 8: 탕구트(Tangut), 9: 북중국 거란(北中國 契丹, Catay), 10: 남중국 만자(南中國 蠻子, Manji), 11: 지팡구(日本, Zipanga) 신대륙발견에서 백년이나 흐른 1590년의 지도인데도 미대륙은 아세아와 하나의 대륙으로 표현되었다. 현재 동아세아의 중요지명들의 다수는 미대륙에 표기되었다.
6. 동아세아인 미대륙은 신대륙으로 조작되었다. 유럽인들은 미대륙이 신대륙임을 알았다는 시기 이후로도 한 세기가 흐르도록 미대륙을 아세아(Asia)로 표현한 지도들은 제작되었다. 또한 세계사처럼 미대륙을 신대륙으로 표현한 지도들도 제작되었다고 한다. ▲상: 1531년 오론테우스 피네우스(Orontius Fineus, 1494~1555), 하: 1538년 게라르두스 메르카토르(Gerardus Mercator, 1512~1594) 위의 지도들의 동시기에 제작됐다는 지도들로 외형은 비슷하다. 그러나 내용은 완전히 다르다. 오론테우스(Orontius)는 미대륙를 아세아와 하나의 대륙으로 연결하여 표현했다. 반면 메르카토르(Mercator)는 미대륙을 아세아와 분리하여 중간을 커다란 바다로 표현했다. 위의 두 지도들은 동시기에 제작됐다는 지도들로 외형은 비슷하다. 그러나 내용은 완전히 다르다. 어째서 동시기의 지도들인데 이렇게 다를까? 오론테우스 피네우스(Orontius Fineus)가 제작했다는 수많은 지도들은 분명하게 미대륙을 아세아로 표현했다. 그러나 동시기에 저명한 제작자인 게라르두스 메르카토르(Gerardus Mercator)는 전혀 다르게 미대륙을 아세아와 분리된 신대륙 아메리카(America)로 표현했다. 만약 메르카토르 지도만 본다면 오류를 바로잡고 미대륙을 신대륙으로 표현했으나, 지리정보가 부족하여 지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다고 이해될 것이다. ▲좌: 1531년 오론테우스 피네우스(Orontius Fineus, 1494~1555), 우: 1538년 게라르두스 메르카토르(Gerardus Mercator, 1512~1594) 1: 그린란드(Gronelant), 2: 바카리얼 왕국(Baccalear Regio), 3: 허드슨 만(Hudson bay), 4: 플로리다(Florida), 5: 쿠바(Cuba), 6: 유카탄(Pucatans), 7: 메씨고(Messigo), 8: 파리아스(Parias), 9: 탕구트(Tangut), 10: 북중국 거란(北中國 契丹, Catay), 11: 남중국 만자(南中國 蠻子, Manji) 위의 두 지도는 동시기 유럽의 제작자들에 제작했으나 양립할 수 없는 차이가 있다. 오론테우스 지도들은 일관되게 미대륙에 아세아의 지명들을 표기했으며, 현재와 동일하거나 유사한 수십 개의 지명들을 표기했다. 반대로 메르카토르 지도들은 미대륙을 신대륙인 아메리카(America)로 표기하면서 오론테우스에 미대륙에 있던 동아세아 지명들을 현 동아세아에 표기하였다. 메르카토르에 미대륙은 지리정보가 부족하다는 듯 모호하게 표현되었다. 지금까지 미대륙을 신대륙으로 표현한 지도들은 신대륙발견 이후 세월이 가면서 지리정보가 축적되어 오류를 바로잡은 지도들로 알려졌다. 그러나 두 부류의 지도들을 비교해 보면 동아세아였던 미대륙을 신대륙으로 표현했다는 것 외에 새로운 지리정보의 반영은 보이지 않는다. 그저 미대륙을 신대륙으로 표현한 지도들이 동아세아로 표현한 지도들 보다 수십 배로 많을 뿐이다. 지도를 더 많이 제작하는 것이 지리정보의 반영은 아니지 않은가? 이상하게도 이런 차이는 16세기지도들에서 보편적으로 발견된다. ▲A: 1532년 오론테우스 피네우스(Orontius Fineus), B: 1550년 살라만카 안토니오(Salamanca Antonio), C: 1565년 파올로 폴라니(Paolo Forlani), D: 1553년 피터 아피안(Peter Apian), E: 1575년 안토니오 래프리(Antoine Lafréry), F: 1569년 에이디 시그넘 피라미디스(Ad signum Pyramidis), G: 1590년 기아코모 프랑코(Giacomo Franco), H: 1593년 코르넬리스 디 요드(Cornelis De Jode), 1: 플로리다(Florida), 2: 캘리포니아(California), 3: 몽골(蒙古, Mongal)과 베얼사막(Belor Desert), 4: 일본(日本, Giapan) 16세기의 서양지도들은 미대륙과 아세아의 중간을 육지로 표현했느냐의 여부로 나뉜다. 좌측지도들은 미대륙을 아세아와 하나의 대륙으로 정교하게 표현했다. 비해서 우측 지도들은 두 대륙을 현재보다 수십 배로 띄우고 지형을 엉터리로 표현하였다. 미대륙을 아세아와 하나의 대륙으로 표현한 지도들은 정교하며 내용에 일관성이 보인다. 비해서 두 대륙을 세계사처럼 분리한 지도들은 베링해협을 현재보다 수십 배로 키우고 지형조차 엉터리로 일관성 없이 표현하였다. 현 세계사를 신뢰하는 학자들은 미대륙을 아세아와 하나의 대륙으로 표현한 지도들은 지리정보가 부정확해서 발생한 오류의 산물이라고 하지만 실제는 반대였던 것이다. 두 부류의 지도들 중 어떤 지도들이 더 신뢰할 만한가? 일관성 있고 상세하게 미대륙을 동아세아로 표현한 지도들인가? 일관성 없고 지형조차 엉터리로 표현하며 미대륙을 신대륙으로 표현한 지도들인가? 독자들은 우선 ‘미대륙은 신대륙’이라는 선입견을 놓고 두 부류의 지도들을 보면서 판단을 내려 보길 바란다. [다음으로 이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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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역사의 연결고리 중 핵심인<베링육교와 베링해협>
소상히 밝히신 내용들을 잘 보았습니다. 시원합니다. ^^*
응원합니다 요수님
좌측과 우측의 지도에 그들에 생각이 확연히 다른게 보입니다. 우측의 지도는 정말 억측스럽네요... 거짓의 증거니...
참 진실을 밝히는 요수님 홧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