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원군 묘비명(完原君墓碑銘)
王子完原君諡昭悼公之墓
旌善郡夫人陽川許氏祔左
● 기묘파보(1999)1권 381쪽
이곳 파주군 동쪽 광탄면 마장리 간좌곤향의 자리는 완원군(完原君) 시호 소도(昭悼), 휘 수(忄+ 遂 마음깊을 수 )의 묘소이다. 공의 자는 득지(得之)요, 조선왕통 제 9대 성종대왕의 제 4왕자로 1480년(성종11) 경자 12월 29일 (갑술)에 탄생하시니, 숙의[내명부 품계 종2품] 남양홍씨의 맏아드님이시다.
공께서 1489년(성종20) 기유에 춘추 10세로 완원군(完原君)에 봉해지고, 1504년(연산군10) 갑자 겨울, 셋째 형님 「안양군(安陽君) 휘 항(忄+ 行 )에 관한 일」을 충간하시와 「충청도 부여로 귀양」가셨다가 1506년 병인 9월, 진성대군 (晋城大君) 휘 역(懌)께서 왕통 제 11대 중종대왕으로 즉위하시면서 먼저 풀어주시어 사저에 계셨다.
문소전 제조(제례총괄 종1, 2품)를 지내시고, 1509년(중종4) 기사 10월 26일(갑인)에 훙서(薨逝:逝去)하시니, 춘추 30세이시다. 주상[중종대왕]께서 부고를 들으시고 대신 조회와 시가를 철폐하시어 부증(賻贈:賻儀를 내리심)함이 남다르시며 시호 「소도(昭悼)」를 내리셨다.
배(配) 면천군부인[외명부 종친처품계 종1품) 완산(전주)최씨[完山(全州)崔氏]께서는 생원 증 좌찬성 휘 하림(河臨)의 따님으로 1녀를 낳으시고 고령 우랑동 신좌(申坐)에 별폄[별도로 묘를 씀]하여 표석이 있으며, 정선군부인 양천허씨(陽川許氏)께서는 증 좌찬성 휘 적(磧)의 따님으로 2남을 낳으시니 큰아드님은 휘 수강(壽剛) 이성군(伊城君)이요 작은 아드님은 휘 수례(壽禮) 이천군(伊川君)으로 숙부 운천군(雲川君) 휘 인(忄+ 寅 )의 뒤를 이었다.
따님은 덕수이씨 원겸(李元謙) 직장과 하양허씨 구(許龜) 참봉에게 출가하셨으며, 손자는 의원군(義原君) 휘 억(億), 의천군(義泉君) 휘 인(仁)이시고, 증손은 운흥정(雲興正) 휘 몽룡(夢龍), 신흥수(莘興守) 휘 몽윤(夢尹), 부흥도정(傅興都正) 휘 몽열(夢說), 순흥군(順興君) 휘 몽우(夢禹), 복흥수 (復興守) 휘 몽은(夢殷), 예흥수(禮興守) 휘 몽문(夢文), 익흥수(益興守) 휘 몽무(夢武)이니, 나머지는 기록하지 아니한다.
완원군께서는 낳으시면서부터 자품이 풍수하시어 아버님[성종대왕]의 총애를 많이 받으시고, 번차를 드시매, 매양 대내[대궐]에 문안함에는 추위와 더위를 가리지 아니하고, 반드시 새벽에 나아가시며, 「하루 저녁이라도 차마 아버님 군상[성종대왕 어용]을 잊을 수 없으니, 어찌 날이 밝기를 기다리겠는가」라고 말씀하시었다. 아버님[성종대왕]께서 승하하심에 이르러 울부짖으며 슬퍼하여 살아나지 않으려 하고 할머님[인수대비 소혜왕후 청주한씨]의 국상을 당하여도 또한 그렇게 하셨다.
아랫사람 다스리기를 너그럽게 하시고, 약주를 즐겨하시와 항상 화기가 넘치었으나, 다만 수명이 길지 못하시어 어머니[숙의 남양홍씨마마]께 슬픔을 끼침으로써 종천의 원한을 삼았으니, 이로서 공의 효우가 천성에서 우러남을 알 수 있겠다.
정선군부인 양천허씨(陽川許氏)께서는 1489년(성종20) 기유 8월 21일 (병오)에 낳으시어 1521년(중종16) 신사 4월 14일(갑신)에 병환으로 돌아가시니, 춘추 33세이시고, 이해 10월 을유에 관에서 장례를 도와 공의 묘좌에 부하고 이봉하였다.
어려서부터 천성이 총민하시니, 1502년(연산군8) 임술 여름[14세]에 공에게 시집오셔서 예로서 부도를 닦으시고, 어버이 섬기기를 정성으로 하시며, 형제간에 우애 있고 근검하여 화려와 사치를 즐기지 아니하시며, 여러 시앗을 후히 대접하여 한집안에서 칭송하였으나 부모님의 임종을 하지 못함을 한하고 돌아가시니, 듣는 이 모두 애석하여 말하기를,「어진 부인이 돌아가셨다.」하였다.
오호라! 완원군 소도공의 시대가 이미 4백7십여년이 지나서 대제학 고령신씨용개(申用漑) 지은 묵은 신도비명-병서[1510년 (중종5)경오 2월 일 입석]은 마멸(磨滅)되어 읽을 수 없고 동지중추부사 양천허씨 굉(許硡)이 지은 정선군부인 허씨 묘표[1521년( 중종16)신사 10월 일 입석]의 음기 또한 알아보기 어려움으로 여러 친족이 뜻을 같이하고 장차 새로 새기려함에 나에게 글을 지으라 하니, 금지옥엽은 부귀와 존영한 처지에 있으므로 능히 남의 눈에 띄지 아니하고 명철하게 몸을 보존하는 이 드물었건마는 완원군께서는 몸을 바르게 닦고, 집안을 화하게 다스려서 은총이 가장 높으시니, 옛날 동평왕(東平王)이나 하간왕(河間王)이 어찌 고대(古代)에만 홀로 어질었다 하리오마는 수명을 오래 누리지 못하니, 어찌 천명이 아니겠는가? 지금 자손이 많고 가풍을 이으니 하늘의 보답함이 이에 있는지라. 아아! 장하시다. 명(銘)으로 이으니
옛날 성종대왕께서 자손이 많으시니, 奧若宣陵 螽斯寔繁(오약선릉 종사식번)
어지신 감화를 받아 완원군이 나시도다. 薰蒸仁化 篤降完原(훈증인화 독강완원)
난초의 향기로움과 옥의 굳음 같으시니 如蘭斯馨 如玉之堅(여난사형 여옥지견)
권애가 후하시니 하사품이 많도다. 眷愛之厚 錫賚獨偏(권애지후 석뇌독편)
성종대왕 승하하심에 어찌 할 바 모르니 鼎湖龍飛 弓髥莫攀(정호용비 궁염막반)
사모함과 슬픔으로 밤낮에 쉼이 없도다. 孺慕靡懈 夙夜周還(유모미해 숙야주환)
혼주[연산군]가 음학하여
동기(安陽君 ․ 鳳安君)에 화 미치니, 昏朝淫虐 禍延同氣(혼조음학 화연동기)
정성껏 충간하다 그물에 걸리도다. 引裾折檻 竟罹羅罻(인거절함 경리라위)
마음에 부귀잊고 술만을 즐기시니, 浮雲綺紈 芻豢醇醴(부운기환 추환순례)
겸손하여 복을 받고 기상도 화하도다. 用謙受益 樂易豈弟(용겸수익 낙이개제)
정선군부인 현숙하여 공의 배필 마땅하니 孔嵓繼賢 克媲公德(공암계현 극비공덕)
화사함을 멀리하고 법도에 모두 맞으시다 不屑簪珥 動合繩墨(불설잠이 동합승묵)
착한 이 복을 받고 악한 이 화를 받음은
천리가 뚜렷하니 福善禍淫 天理非輕(복선화음 천리비경)
어머님[숙의 남양홍씨] 살아계셔 두 분
(完原君 ․ 旌善郡夫人陽川許氏) 다 가시나 萱草難老 夢先兩楹(훤초난노 몽선양영)
남은 경사 다함없이 자손은 번창하다. 餘慶未艾 子姓詵詵(여경미애 자성선선)
아름다움 길이 새겨 비석이 우뚝 솟다. 載揚厥美 樂石嶙峋(재양궐미 낙석인순)
1509년(중종4)기사 10월 26일(갑인)에 훙서하신지 472년만인
1980년 경신 4월 일에 이 비를 다시 세우다.
安東 金彰顯 謹撰
17代冑孫 奎珩
完原君派宗事推進委員會 謹立
惟坡州治東廣灘鄕馬場之里. 負艮揖坤而崇四尺者. 完原君諡昭悼公諱 忄+ 遂 衣履攸藏也.
유파주치동광탄향마장지리 부간집곤이숭사척자 완원군시소도공휘 수 의리유장야
公字得之 以宣陵第四子. 生於庚子十二月二十九日甲戌. 淑儀南陽洪氏家嗣也. 己酉公年十歲
공자득지 이선릉제사자 생어경자십이월이십구일갑술 숙의남양홍씨가사야 기유공년십세
封君. 燕山甲子諫安陽君事. 謫扶餘. 歷文昭殿提調. 中宗己巳十月二十六日甲寅卒 壽才三十.
봉군 연산갑자간안양군사 적부여 역문소전제조 중종기사시월이십육일갑인졸 수재삼십
訃聞. 上悼甚輟朝市. 賻贈有加. 贈諡. 明年二月丙午以禮葬之. 配沔川郡夫人完山崔氏. 生員贈
부문 상도심철조시 부증유가 증시 명년이월병오이예장지 배면천군부인완산최씨 생원증
左贊成河臨女. 生一女. 別窆古靈牛浪洞. 有碣. 旌善郡夫人陽川許氏. 贈左贊成磧女. 生二男.
좌찬성하림여 생일녀 별폄고령우랑동 유갈 정선군부인양천허씨 증좌찬성적녀 생이남
長壽剛伊城君. 次壽禮伊川君出繼叔父雲川君 忄+寅後 女適德水李元謙直長. 河陽許龜參奉.孫男義
장수강이성군 차수례이천군출계숙부운천군 인 후 여적덕수이원겸직장 하양허구참봉 손남의
原君億. 義泉君仁. 曾孫雲興正夢龍. 莘興守夢尹. 傅興都正夢說. 順興君夢禹. 復興守夢殷. 禮
원군억 의천군인 증손운흥정몽룡 신흥수몽윤 부흥도정몽열 순흥군몽우 복흥수몽은 예
興守夢文. 益興守夢武. 餘不盡載. 公生而姿稟豊秀. 受宣陵鍾愛甚. 每問寢大內. 不避寒暑. 必
흥수몽문 익흥수몽무 여불진재 공생이자품풍수 수선릉종애심 매문침대내 불피한서 필
趁黎明而曰 一枕未忘. 君上. 容待天明耶. 迨上賓. 攀號痛霣不欲生. 昭惠王后喪亦如之. 御下
진여명이왈 일침미망 군상 용대천명야 태상빈 반호통운불욕생 소혜왕후상역여지 어하
以寬和. 好飮酒. 恒怡怡如也. 惟以享壽不長. 貽慈氏慽爲終天之慟. 斯可見公孝友之天植也. 旌
이관화 호음주 항이이여야 유이향수불장 이자씨척위종천지통 사가견공효우지천식야 정
善郡夫人. 成宗己酉八月二十一日丙午生. 卒以中宗辛巳四月十四日甲申. 壽三十三. 是歲十月
선군부인 성종기유팔월이십일일병오생 졸이중종신사사월십사일갑신 수삼십삼 시세시월
乙酉官庇喪事. 祔公墓左異封. 自幼天性聰敏. 壬戌歸于公. 執婦道以禮. 事親盡誠. 友愛昆弟.
을유관비상사 부공묘좌이봉 자유천성총민 임술귀우공 집부도이례 사친진성 우애곤제
勤儉不喜華侈. 待諸姬甚厚. 一門稱之. 以未能終養. 飮恨而逝. 聞者莫不痛惜曰 賢夫人亡矣.
근검불희화치 대제희심후 일문칭지 이미능종양 음한이서 문자막불통석왈 현부인망의
嗚呼. 公之世己閱四百餘裘葛. 舊銘刓缺不可讀. 許贊成硡所撰旌善陰記. 亦漫泐難辨. 詢謨僉
오호 공지세기열사백여구갈 구명완결불가독 허찬성굉소찬정선음기 역만륵난변 순모첨
同. 將勒而新之. 要不侫文之. 盖金枝玉葉處富貴尊榮之地. 能埋光剷采. 明哲以保其身者. 幾希
동 장륵이신지 요불녕문지 개금지옥엽처부귀존영지지 능매광산채 명철이보기신자 기희
矣. 公乃修己以正. 治家以和. 恩眷最隆東平河間何獨專美於古昔也. 而不永厥年. 其非天乎. 今
의 공내수기이정 치가이화 은권최융동평하간하독전미어고석야 이불영궐년 기비천호 금
焉苗裔振振. 式穀家聲. 碩果之報. 固在斯矣 猗歟盛哉. 系以銘曰
언묘예진진 식곡가성 석과지보 고재사의 의여성재 계이명왈
奧若宣陵 螽斯寔繁(오약선릉 종사식번)
薰蒸仁化 篤降完原(훈증인화 독강완원)
如蘭斯馨 如玉之堅(여난사형 여옥지견)
眷愛之厚 錫賚獨偏(권애지후 석뇌독편)
鼎湖龍飛 弓髥莫攀(정호용비 궁염막반)
孺慕靡懈 夙夜周還(유모미해 숙야주환)
昏朝淫虐 禍延同氣(혼조음학 화연동기)
引裾折檻 竟罹羅罻(인거절함 경리라위)
浮雲綺紈 芻豢醇醴(부운기환 추환순례)
用謙受益 樂易豈弟(용겸수익 낙이개제)
孔嵓繼賢 克媲公德(공암계현 극비공덕)
不屑簪珥 動合繩墨(불설잠이 동합승묵)
福善禍淫 天理非輕(복선화음 천리비경)
萱草難老 夢先兩楹(훤초난노 몽선양영)
餘慶未艾 子姓詵詵(여경미애 자성선선)
載揚厥美 樂石嶙峋(재양궐미 낙석인순)
中宗己巳后四百七十二年 庚申四月上澣
安東 金彰顯 謹撰
十七代冑孫 奎珩 謹書
完原君派宗事推進委員會 謹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