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국 내몽골에서 열린 활 세미나에서 저는
우리나라의 <편사>를 소개한 바 있습니다. <조선의 궁술> (1929 간행)에 그 내용이 자세하게 나오고 있어, 편사의
준비와 진행 절차에 대해서는 이미 알려진 내용을 정리하여 소개한 정도에 불과하였지요. 그러나 발표 준비를 하면서 몇 주 동안
<편사>를 곰씹어 볼 기회가 있었던 것은 저 나름대로는 큰 보람이었습니다.
엊그제 우연히 장안편사 무형문화재 ‘지정 해제 위기’
운운의 기사를 보았습니다. 이런 사태가 발생한 것은 어찌보면 우리들이 편사의 의미를 그동안 간과했던 결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주제 넘은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용기를 내어 발표 내용의 일부를 추려서 <편사> 의 의미를 여러분들과 함께 되새겨
보고자 합니다.
1. 우리나라 조선시대의 활쏘기는 보사(步射)를
중심으로 할 때 크게 세 종류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사냥, 전투, 무과 시험에서 사용하던 ‘무예 활쏘기‘(무사 武射), 대사례 향사례 등
의식용으로 활용하던 ’의례 활쏘기‘ (예사 禮射), 그리고 한량들의 겨루기 놀이라고 부를 수 있는 ‘놀이 활쏘기’(희사戱射) 가 그것이지요.
오늘의 주제인 <편사>는 바로 ‘놀이 활쏘기’의 하나였습니다.
2. 이 편사는 조선시대 민간사정에서 습사를 하던 사원
(주로 한량)들이 상호 기량을 견주어 보기 위하여 편을 짜서 시합을 한 것에서 유래하였습니다. 그 편사의 종류에는 정식 편사의 범주에 드는
것으로 사정 간의 ‘터편사’와 서울 지역간의 ‘장안편사’, 마을 간의 ‘동편사‘가 있었습니다. 그 외에 비공식적인 편사나 아동 편사등 특별한
형태의 편사들이 더 있었다고 합니다.
3. 그러면 이 편사는 우리나라 활의 역사에서 어떤
의미를 갖고 있을까요. 저는 편사가 우리나라에서 “자생한 문화”native culture 라는 점을 첫번째의 특징으로 생각합니다. 활쏘기는
일반적으로 세계 어느 지역에나 다 있었지만, 활쏘기와 관련된 제도나 문화 등에는 자생한 것도 있고, 수입된 것도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무과시험은 중국의 제도를 수입, 토착화 시킨 것이었고, 대사례 등 예사 역시 중국 활문화의 흔적이 역력한 수입 문화였습니다. 그러나 편사만은
우리나라 조선시대 후기에 자연스럽게 발생한 고유 활쏘기 문화였습니다.
4. 편사는 우리가 잘 알다시피 편사원 간의 활쏘기
<경기>만이 아니었습니다. 노래와 연주로 구성된 창악(唱樂)이 어울러져 있었습니다. 창악이라는 <오락>적인 요소가 순수
겨루기로 볼 수 있는 <경기>와 상호 융합된 형태였습니다. 편사는 바로 이 오락적인 요소 때문에 ‘놀이 활쏘기’ 즉 희사戱射
recreational archery로 분류된 것이지요.
5. 이런 편사가 소위 <근대>화 되면서,
창악 부분은 점차 빠지고 순수 경기 형태만이 남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변화는 일제 강점기 시절에 서서히 이루어 졌습니다. 그 때 표준화되었던
경기 방식이 약간의 변화를 거치면서 현재의 한국 궁도에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편사는 현대 한국 활쏘기 경기의
<원형> prototype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편사가 갖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의미인 셈이지요.
6. 지금은 편사는 거의 ‘사라진 전통’이
되었습니다. 다만, 아직도 두 종류의 형태로 전승되고 있어 다행히도 그 편린을 더듬어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1)그 하나가 인천 편사입니다.
이는 인천과 그 일대의 사정(射亭) 간에 이루어지던 터편사였습니다. 지금도 2-3년에 한번씩 개최되고 있습니다. 시대에 따른 변화는 겪었지만,
경기 지역 편사의 풍습이 비교적 온전한 형태로 전승되고 있습니다. (2) 다른 전승 형태는 장안편사입니다. 장안편사는 원래 도성과 도성
주변을 세 지역으로 나누고, 각 지역 대표들간에 행해지던 지역 편사였습니다. 사라졌다가 1994년에 복원되었고, 2000년에 서울시 무형문화재로
등록되었습니다.
이렇듯 우리나라에서 자생한 활문화요, 현대 궁도 경기의
원형이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역사적 의의를 지닌 활쏘기가 바로 편사였습니다. 그 편사는 음악이 스포츠와 어울려졌었다는 점에서 일종의 문화
융합이기도 하였지요. 융합의 시대인 오늘날 편사가 가졌던 음악과 활쏘기의 어울림은 다시한 번 더 조명을 받아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것만이
아닙니다. 편사는 보고 들을꺼리를 풍성하게 제공하고 있어 문화관광자원으로서도 훌륭한 잠재적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활대회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는 과거의 전설은 그 주역이 편사였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라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 유산은 없어진 것이 아닙니다. 아직도
잠자고 있을 따릅입니다.
우리 궁도인들이 충분히 그 의의와 가치를 인식하지 못한
가운데, 현재 전승되고 있는 편사는 소수의 헌신적인 궁도인들에 의하여 겨우 명맥을 유지해 오고 있습니다. 그 중에 최근 ‘지정 해제의 위기’라고
기사화된 장안편사는 “편사의 꽃”이라고 불리워 질 정도로 장대하게 시행되었던 놀이 활쏘기의 백미였다고 합니다. 무형문화재로 복원된 이 장안편사
전통의 보호와 유지는 특정 보존회만의 몫이 아닙니다. 적게는 서울 시내의 모든 사정, 그리고 넓게는 전국 모든 사정의 궁도인들이 관심을 가지고
가꾸어 나가야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장안편사를 둘러 싸고 관련 궁도인들 간의 오래된 시비와
깊은 갈등이 있다 들었습니다. 갈등 해소를 위한 조정에 우리 궁도인들이 나서야 합니다. 우리 궁도계 내부의 문제를 우리들이 해결하지 못한다면
외부의 칼질을 자초하는 일이 될까 우려해서입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도와준다는 말이 새삼 크게 울립니다. 우리 궁도인들이 외면하고 스스로
지키지 못하는 전통 활문화를 어찌 일반 국민들이 이해해 주고 도와주기를 바라겠습니까.
2017년 10월
17일
김기훈(서울 화랑정 사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