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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마의 길’을 읽고
전 영종1)
<제1권>
이 제마는 헌종3년(1837년) 함흥에서 태어나 6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것으로 전해지는 사람이다. 그의 아버지는 진사의 첩지를 받은 이반오였고 어머니는 주막집 딸이었다. 그는 함흥이라는 중앙 정계로부터 소외당한 동북인인데다 서얼이라는 이중의 신분 제약을 안고 태어났다. 그의 출생은 그의 아버지 이반오의 의사와는 전혀 상관이 없이 태어남으로 그와 생모는 아버지와 적모에게 엄청난 냉대와 홀대를 받고 지나던 중 아버지 반오가 죽고 난 후 나무 위에 올라간 이복동생 윤형을 뱀으로부터 구해내려다가 윤형의 한쪽 눈을 불구로 만들고 13세에 집에서 쫓겨나고 만다. 어릴 적 열격을 앓았던 제마는 함흥에서 인제로 향하던 중 다리를 쓰지 못하고 쓰러진 뒤 만리재의 구충서라는 용한 의원이 있다는 이야길 듣고 주막에서 손님의 말을 훔쳐 타고 만리재의 구충서의 집에 도착해 최익준의 침술로 해역이란 병에서 살아난 제마는 그때부터 의술 공부를 시작하게 되고 어려움을 속에 최익준의 도움으로 진부를 잡게 된다. 제마가 진부를 잡으면서부터 의술공부는 본격적으로 시작되는데 그때 최익준이 처음 건네준 책은 동의보감2)이었다. 진부를 잡은 지 4년째 되자 그 역시 의술을 행해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그러던 중 철종4년(1852년) 온 나라에 물난리가 나 역질(疫疾)이 창궐하여 의원들이 부족하자 나라에서 민의(民醫)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자 구충서는 평양고을을 맡기로 하고 성우와 최익준을 데리고 평양으로 향한다. 구충서와 성우, 최익준이 집을 비우고 없는 사이 이수3)가 복통을 일으키고 한사코 거부하는 제마에게 여홍4)은 침술을 강권하고 이수는 다행히 제마의 침술로 장옹(腸癰:급성맹장염)에서 살아난다. 구충서가 돌아오면 그의 외동딸 이수를 살려낸 것을 자랑하리라고 은근히 기대하던 제마에게 불호령을 내리고 제마를 쫓아낸다. 제마는 구차한 변명보다는 스승에 대한 예만 갖추고 집을 나서지만 구충서는 제마의 큰 됨됨이를 보고 고민한다. 다른 사람이라면 죽을죄를 지었으니 한번만 용서해 달라고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았을 텐데……. 버들가지보다 대나무가 쉽게 꺾이는 것은 세상의 이치. 구충서는 제마가 큰 그릇이 되면 권세 있는 자의 힘에 불행해질 거라는 생각을 한 것이다. 제마는 구충서의 병가를 나와 주막집에서 이틀간 소일하다가 술을 마시고 구충서에게 따질 양으로 병가를 찾아 누구 의술이 나은지 내기를 건다. 구충서는 제마의 몸에 침을 십여 군데 놓고 나서 3군데의 금침혈을 제거해야만 살 수 있다고 한다.
<제2권>
제마는 2개의 금침혈을 빼지만 나머지 금침혈을 빼는데 는 실패하고 구충서에게 무릎을 꿇고 만다. 내기에 진 것을 자인한 제마는 구충서에게 하직 인사를 드리고 병가를 떠나려하지만 구충서는 그를 붙든다. 그리고 얼마 뒤 이수는 김기석과 혼례를 치른다.
구충서가 순석, 팔봉, 제마와 덕유산 산행을 떠나고 집에 남은 여홍아씨는 최익준과 정을 통하다가 성우에게 들키고, 그즈음 구충서는 덕유산에서 구충서의 동생 효실을 죽인 김헌기를 죽이려다가 실패로 돌아가 덕유산으로 숨어든 손필을 만나 효실의 죽음에 대한 자초지종을 듣고는 한성으로 내닫는다. 마침 김헌기는 귀에 고름이 고여 썩어가는 이발(頤發:화농성 이하선염)을 앓고 있었다. 구충서는 김헌기의 병을 환부를 도려내지 않고도 시술할 수 있음에도 누이 효실을 죽인 범인을 향한 복수의 일념으로 단도를 들고 환부를 도려낸다. 그는 환부를 치료할 목적이 아니라 원수를 갚는 일이 목적이었던 듯. 그러나…, 결국 그는 의술을 시행하는 의원이었다. 그는 결국 김헌기를 죽이지 못하고 그의 환부를 치료하는 것만으로 끝낸다. 그것은 제자와 놀아난 여홍 때문이기도 했다. 성우에게 그 같은 사실을 전해들은 구충서는 그 길로 말없이 집을 떠난다. 결국 몇 해 안 가서 구충서의 식솔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제마도 이곳저곳을 떠돌다가 청나라를 왕래하는 상인들과 4년간 청나라를 떠돌며 돌아오는 길에 몇 권의 의서(醫書)를 구해 돌아온다. 돌아오는 도중 절간에서 중에게 겁간을 당하려는 차희를 구해 한성으로 돌아온 제마는 차희와 혼인을 한다. 그러나 처가에서 독립한 이후 생활고에 찌든 제마는 차희의 출산일이 얼마 남지 않았음에도 약초를 캐러 봉래산으로 간다. 그곳에서 심마니들에게 산삼을 훔쳤다는 누명을 쓰고 옥살이를 하다가 김기석과 이수와 재회를 나눈다. 이수와 김기석에게 노자까지 얻은 제마는 그때까지 소식이 없는 구충서를 영월에서 보았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영월 땅으로 향하다가 두창5)에 시달리는 환자들을 만나 차봉출과 함께 환자들을 치료하느라 영월 땅에 머물다가 해역이 재발한다. 이 때 한 여인이 곧 죽을 것 같아 난감해하는 그에게 영월 인근의 마굿이라는 곳에 또 한 명의 의원이 있다는 말에 차봉출이 달려가 업고 온 이가 그가 그리도 찾으려던 구충서였다. 구충서와 같이 온 자는 덕유산의 손필이었다. 구충서는 제마에게 여인을 수양탕6), 보원탕에 천궁과 계피로 환자를 계속 목욕시키라 한다. 그래도 환자가 차도가 없자 구충서는 제마에게 침을 들어 여자의 무릎 아래 혈(穴)인 태계와 배꼽 아래 관원을 찌르라 한다. 놀랍게도 다 죽어가던 여자는 이틀 뒤부터 의식이 들어왔다. 그리고 제마는 구충서의 최후를 지켜본다. 구충서의 시신을 김기석과 이수에게 옮기려고 하던 중 여자의 남편이 포졸들을 이끌고 와서 자기 부인을 죽인 자들이며 잡아가려는 것을 차봉출이 나서다 칼에 찔려 죽고 손필과 제마는 하옥된다. 제마는 김기석이 와서 풀려나지만 구충서의 시신은 간 곳을 모르게 된 때였다.
제마가 사상의학7) 공부에 눈을 뜰 즈음 대원군과 민씨 일가의 세력싸움에 밀린 민국진이 포졸들에게 쫓기어 죽게 되어 그의 조카 민세환이 제마를 찾는다. 그곳에서 제마는 민국진과 민세환의 죽음을 보게 되고 제마는 민세환이 죽으면서 남긴 서찰을 청주의 민용식대감에게 전하러 유화낭자 일행을 따르지만 그곳에서 사상의학의 기초에 눈을 뜨게 된다.
유화낭자의 몸종인 달래는 청주로 향하기 전 감기에 걸려 민간요법의 하나로 전해지는 꿩고기를 먹은 일이 있는데 양독발반 증세를 보인 것이다. 제마는 달래에게 백호탕8)을 먹였으나 듣지 않았다. 제마는 약재 성분들을 하나하나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멥쌀은 문제될 것이 없지만 석고와 지모9)는 찬(寒)성질이 있는 약재이고 감초는 따뜻한 성질의 약재라는 생각에 이르자 약재 처방에 문제가 있었음을 깨닫는다. 제마는 약재 처방을 바꾸기 위해 이번엔 지모(知母)와 석고10)(石膏)만으로 처방하려 했으나 석고(石膏)와 활석(滑石)밖에 없어 그것으로 약재를 처방하자 달래의 병세는 차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제마는 비로소 약재 처방은 사람의 체질마다 다르게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희열에 차기 시작한다. 달래가 어느 정도 기력을 찾기 시작하자 그는 이번에는 석고를 뺀 활석 달인 물을 달래에게 먹였다. 그러자 이번에는 다시 열이 오르고 온몸에 두드러기가 번져나가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턱을 덜덜 떨고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동풍(動風), 이른바 풍기가 발하는 것이었다. 제마는 그제야 아직 이름도 붙이지 못했지만 이 새로운 의학이 기존 의학 이론의 부족한 부분을 채월줄 수 있는 신의학이란 점을 느끼고 십년 넘게 안개 속에서 실체를 드러내지 않던 새로운 의학 이론 발견에 희열을 느낀다.
-소양지인은 양이 많고 음이 적으며 경맥이 작고 낙맥이 크다. 혈은 가운데 있고 기는 바깥쪽에 있음으로 음을 충실히 하고 양을 사해야 한다.
달래가 소양인이라고 판단한 제마는 그제야 석고를 사용하지 않음으로 해서 動風이 들음을 알고 사상의학의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다.
제마는 유화일행과 헤어져 운형을 찾아 주풍치로부터 운형이 산적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를 듣고 괴로움에 잠기다가 운형의 아들 효석의 눈을 시술하려고 침술을 시도하던 중 돌아온 운형에 의해 내쫓김을 당하여 한성으로 돌아온다.
<제3권>
제마가 유화 일행과 청주 일대를 돌아다니는 동안 작은 아들 용민은 열병으로 죽는다. 한성에 돌아온 제마는 그 충격으로 술에 의지하는 폐인이 되어간다. 그 소식을 들은 이수의 남편 김기석의 도움으로 무위별선군관(武衛別選軍官)이란 무과시험에 급제하여 무위소 군관이 된다. 무위소에 근무하던 중 하루는 직숙(直宿) 근무를 하던 중 무위소(武衛所) 별장(別將)이 열이 나고 온 몸에 땀을 흘리며 고통을 받자 내의원 의관 이충연이 진맥을 하고 처방한 약재는 시호, 황금, 치자, 형개, 방풍 등이다. 그러나 별장(別將)이 소음인이라는 판단을 한 제마는 그 처방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고 이의를 제기한다. 내의원 의관이 지어준 약은 소음인에겐 치명적인 열을 내리고 풍기만 가라앉히는 약재들만 들어있었던 것이다. 결국 그 싸움에서 제마의 의술은 빛을 발하고 제마는 일약 유명한 의원으로 소문이 난다. 그러다가 포도대장의 딸이 상사병에 걸려 시술하던 중환자의 체형을 알려고 시험하던 중 포도대장의 딸을 겁간하려 했다는 오해를 받은 그는 무위소(武衛所) 군관(軍官)직을 쫓겨나고 송보영이 운형이 패거리를 소탕하러 간다는 말에 눈앞이 캄캄해진 제마는 그 길로 청주의 운형을 찾지만 술로 세월을 보낸 운형은 이미 죽을병에 걸려 있다. 제마는 운형의 산채가 함락되는 과정에서 운형을 이끌고 피신을 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유화낭자와 한 몸이 되지만 운형이 사라졌음을 알고 찾아 나서다가 무위소 군인에게 발각되어 싸움도중 유화낭자는 목숨을 잃고 만다.
그로부터 15~6년이 지난 계사년(癸巳年:1893년) 7월 13일에 시작하여 이듬해 4월 13일까지 제마는 의서 동의수세보원(東醫壽世保元)11)을 집필한다. 그의 저서는 많은 의원들이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내고 있었으나 혜암(惠庵) 황도연(黃度淵)12)의 아들 황필수(黃必秀)13)가 찾아와 제마의 이론은 기존의 음양오행론을 역행하는 이론이라며 힐난하자 제마는 우주질서와 순환원리에를 인체에 그대로 적용하는 기존 의학에 반해 의학의 중심을 윤리와 도덕에 기초한 사회, 그 사회 속에서의 인간에 두고 싶었던 것이라 강변한다. 주역에서 말하는 태극(太極)이 양의(兩儀)로, 양의가 사상(四象)으로 다시 사상이 팔괘(八卦)로 분화되어, 결국은 우주만물 변화의 중심은 팔괘라 규정하고 사상은 태극이 분화되는 과정에서 중간자 정도로 인식하는 게 주역의 근본이라는 황필수와 사상을 사(事), 심(心), 신(身), 물(物) 사원적 본체가 우주의 근본이라고 믿는 제마 사이에 기존 의학과 새로운 의학의 벌어진 틈은 좁힐 수 없는 괴리가 있다. 황필수는 독소를 퍼붓고 돌아간다.
-제마는 모친 위독 소식을 듣고 함흥으로 달려간다. 도중에 그는 주막에서 폐병으로 죽어 가는 여홍아씨를 만나고 정평에 있다는 최익준까지 만나게 된다. 익준은 차일봉 산 속 깊은 곳에 안혼당(安魂堂)이라는 집을 지어놓고 정신병 환자들을 돌보고 있었는데 놀랍게도 익준 역시 정신병환자라는 것이었다. 익준과 헤어진 제마가 고향집에 도착했을 때 이미 그의 모친은 십여 년 전에 세상을 뜨고 대신 적모 김씨가 병석에 누워있었다. 제마는 그제야 운형이 모친위독 소식을 알림으로써 화해의 몸짓을 시도하고 있음을 안다. 살아있는 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이승에서 맺은 악연의 고리를 풀고 죽은 자의 앞길에 형극을 걷어버려, 그리하여 새 세상에서 또 다른 인연으로 만날 수 있길 바라는 것. 그것만이 산 자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아니겠는가! 제마는 적모 김씨의 장례를 운형을 대신해 치러주고 여막(廬幕)을 지어놓고 삼 년간의 시묘(侍墓)까지 지내던 중 마을 김진사는 최문한이 갑오년 개혁에 반대하여 난을 일으켜 관아의 군기까지 탈취한 사실을 들어 징벌해 줄 것을 요청하고 제마는 하는 수 없이 그들의 요구에 응하게 되어 최문한을 치는 일에 선봉에 나서 최문한을 사로잡고 제마는 그 공으로 북로선유위원(北路宣諭委員:장3품)에 제수된다. 그 후 제마는 한성 땅의 식솔들을 함흥으로 불러들인다. 그 후 최문한이 탈옥하고 남은 죄인을 취조하던 중 이제마를 가리켜 일본 놈의 앞잡이라 하는 말에 제마는 절망감을 느끼고 괴로워하기 시작한다. 그 사내는 다음날 죽었다는 이야길 듣는다. 고원군수로 있는 동안 제마는 사내의 말을 듣고 정신을 잃은 사람처럼 괴로워하던 도중 주풍치에 의해 유화가 안혼당에 있다는 이야길 듣고 가서 보니 유화는 정신이 이상해져서 곧 죽을 몸이었다. 유화가 정신이 이상해진 것은 2년 전 죽은 아들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아들이 얼마 전 최문한을 구하러 온 자들 중 유일하게 잡혀서 취조를 받다가 죽은 이가 유화의 아들, 곧 제마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고 제마는 충격을 받는다. 유화가 죽고 나서도 제마는 유화와 죽은 아들에 대한 괴로움으로 유화가 누워있던 자리의 여자를 극진히 간호하는 둥 안혼당을 떠나지 못하고 괴로워 하지만 최익준과 그의 아내 김씨는 동의수세보원 개초를 서두를 것을 종용한다. 마침내 함흥으로 돌아와 保元局을 개원한 제마는 동의수세보원 개초에 박차를 가하고 음벽(音壁:위암)에 걸려 한성에서 찾아온 이충연과 해역에 걸린 거렁뱅이를 극진히 간호한다. 이충연이 얼마의 차도를 보이자 한성으로 돌려보내고 동의수세보원 개초가 완성되어갈 무렵 물난리가 난다. 거렁뱅이의 해역이 덜 나은 상태라 부인 김씨와 아들 용해를 미리 안혼당으로 피신시킨 제마는 피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거렁뱅이를 업고 동의수세보원개초를 물에 젖지 않게 가슴에 두르고 보원국(保元局)을 떠난 안혼당으로 향한다. 안혼당 근처에 이르러 거렁뱅이를 내려놓고 잠시 쉬던 제마에게 안혼당에서 유화 자리에 누워있던 여자 환자가 물에 빠져 죽으려는 장면이 목격된다. 제마는 그 여자를 살리려고 안간힘을 쓰던 중 가슴에 매단 동의수세보원 개초 원고가 물살에 떠내려간다. 한쪽은 물살에 휩쓸려 죽어가는 사람, 다른 한쪽은 그가 평생을 기울여 쓴 동의수세보원 개초, 그는 양쪽을 보면서 고민에 빠지다가 이윽고 여자 쪽으로 뛰어들며 중얼거린다. ‘ 그렇다. 환자를 벗어난 의술은 존재할 수 없는 일. 잠시나마 갈등한 자신을 부끄러워하면서.’
<총평>
오랜만에 책다운 책을 읽었다. 이 책은 전문의서에 견줄 수 있을 정도의 전문적인 식견과 소설로서의 치밀한 구성과 흥미를 잃지 않으려고 노력한 점에서 오랜만에 역작을 읽은 뒤의 뿌듯함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한 가지 흠이라면 이제마의 전기소설인 이 책이 이제마의 일대기가 그리 알려지지 않아 대부분이 작가의 상상력에 의존됐을 거라는 허전함이 남지만 시대적 상황이 일개 의원이었던 제마의 일대기에 그리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음은 당연한 일이고, 또한 제마의 의학 이론이 당시 기존 의학을 일거에 뒤흔드는 혁신적인 이론이었기에 반대론자가 많아 제마의 이론이 그늘에 묻혔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 그런대로 작은 위안이 된다. 또 한 가지 제마의 전기소설을 읽으며 제마가 연구한 사상의학 이론에 대한 부푼 기대를 가졌지만 작가 전영종은 이 소설을 영웅소설이 아닌 한 인간의 진실한 삶을 엮어내려 했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그런대로 당위성을 담고 있지만 역시 소설은 fiction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흥미 위주의 상황전개가 있어야 하지만 그 점에서 조금은 진부한 글이었다는 흠을 남기고 싶다.
1999년 11월 20일 완독 하다.
1) 1960년 대구 출생. 1987년 대구한의과대학(현 경산대학교 한의학대학) 졸업. 현 샘터한의원 원장
2) 선조의 명에 의해 태의(太醫) 양예수, 유의(有醫) 정작․김응택․이명원․정예남 등과 국(局)을 설치하고 선집하여 거의 성취될 무렵 정유재란을 당하여 중단되었다가 다시 내장방서(內藏方書) 500권을 근거로 집필이 재개되니 광해군 2년에 이르러 완성을 본 책이다. 이 서(書)는 후세에 와서 정조 때 강명길(康命吉)에 의해 저술된 의종손익(醫宗損益)과 방약합편(方藥合編) 등의 의서 출현에 결정적 모태가 된다. 동의보감(東醫寶鑑)은 내경편(內景篇), 외형편(外形篇), 잡병편(雜病篇), 탕액편(湯液篇), 침구편(鍼灸篇)으로 나뉘어져 있음.
3) 구충서의 외동딸
4) 구충서의 처첩
5) 끊임없이 우리 민족을 괴롭혀온 두창에 대한 근대적 예방법인 ‘인두법’은 18세기에 이미 도입되어 1800년 최초의 인두 접종이 시행되었으며, 1835년에는 최초로 우두 접종이 시행되었다. 그러나 그 접종 결과를 모르는 사람들로 인하여 1900년 초까지 백성들에게 불신을 받았음은 두 말할 나위가 없었음은 물론이다. 심지어는 일본으로부터 종두법을 들여온 지석영이 왜구로부터 종두의 마귀를 심는다는 이유로 갖은 고초를 겪는데, 1887년에 서행보라는 자가 올린 상소문에서 ‘지석영은 영교의 암행이라, 교(敎)를 조(助)하여 학(虐)을 일으키고 생령(生靈)을 독류(毒流)한 자’ 라 하여 전라도 감진현 신지도에 유배되기까지 했다.
6) 수양 버들잎을 따서 찧은 후 장류수(長流水)에 예닐곱 차례 달여 찌꺼기는 버리고 그 물을 통해 부어 씻는 것
7) 사상의학이란 ?―<황제내경(皇帝內徑)> 영추(靈樞)의 통천(通天)편에서
개유태음지인(蓋有太陰之人) 소음지인(少陰之人), 태양지인(太陽之人) 소양지인(少陽之人) 음양화평지인(陰陽和平之人) 범오인자(凡五人者) 기태부동(其態不同) 기근골기혈각부등(其筋骨氣血各不等)
-대저 태음인. 소음인, 태양인 소양인과 음양화평인은 그 상태가 같지 않으니 근골기혈도 같지 않다
태음지인(太陰之人) 탐이불인(貪而不仁) 하제잠잠(下劑潛潛) 호내이오출(好內而惡出) 심화이불발(心和而不發) 불무어시(不務於時) 동이후지(動而後之) 차태음지인야(此太陰之人也)
-태음인은 탐욕스럽고 어질지 못하나 겉으로는 겸허하고, 사람을 대하는데 치밀하나 내심은 음흉하여 얻는 것을 좋아하고 잃는 것을 싫어하며, 선한 일에 힘쓰지 않고 타인의 행동을 살펴본 후에 자신의 행동을 결정하니 이러한 자가 태음인이다.
소음지인(少陰之人) 소탐이적심(小貪而賊心) 견인유망(見人有亡) 상약부득(常藥不得) 호상호해(好喪好害) 견인유영(見人有榮) 내반온노(乃反溫努) 심질이무은(心疾而無恩) 차소음지인야(此少陰之人也)
-소음인은 작은 이익을 탐하고 적개심을 품으며, 남의 불행을 보면 항상 무엇을 얻은 듯 기뻐하고, 남을 해치길 좋아하며 남의 광영을 보면 도리어 화내고 질투심이 많으며 남에게 은혜를 베풀지 않으니 이러한 자가 소음인이다.
태양지인(太陽之人) 거처어어(居處於於) 호언대사(好言大事) 무능이허설(無能而虛說) 지발호사야(志發乎四野) 거조불고시비(擧措不顧是非) 위사여상자용(爲事如常自用) 사수패이상무회(事雖敗而常無悔) 차태양지인야(此太陽之人也)
-태양인은 매사에 만족하고 대사를 논하기를 즐기고, 무능하면서도 빈말을 잘하고 비현실적인 것을 추구하며, 일 처리에 있어서 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고 항상 감정적으로 처리하며, 도모하던 일이 비록 실패하더라도 후회하지 않으니 이러한 자가 태양인이니라.
소양지인(少陽之人) 시체호자책(諟諦好自責) 유소소관(有小小官) 즉고자선(則高自宣) 호위외교이불내부(好爲外交而不內附) 차소양지인야(此小陽之人也)
-소양인은 세밀하여 빈틈이 없고, 자존심이 강하여 작은 관직에 있더라도 뽐내며 자신을 드러내길 좋아하고, 외교적인 일에 능하며 내부적인 일에 마음 붙이지 못하니 이러한 자가 소양인이니라.
음양화평지인(陰陽和平之人) 거처안정(居處安靜) 무위흔흔(無爲欣欣) 완연종물(完然從物) 혹여불쟁(或與不爭) 여시변화(與時變化) 존즉겸겸(尊則謙謙) 담이불치(譚而不治) 시위지치(是爲之治)
-음양화평인은 조용한 곳에 기거하기를 좋아하고 마음이 편하여 두려움과 욕심도 없고, 지나친 즐거움을 추구하지 않으며 사물의 변화에 순응하고 서고 다투지 않으며 변화에 잘 적응하고, 지위가 높아져도 항상 겸손하며 말로써 사람을 감복시키며 힘으로 굴복시키지 않는데 이는 지극한 다스림이다
태음지인(太陰之人) 다음이무양(多陰而無陽) 기음혈탁(其陰血濁) 기위기삽(其爲其澀) 음양불화(陰陽不和) 완근이후피(緩筋而厚皮) 부지질사(不之疾瀉) 불능이지(不能移之)
-태음인은 음이 많고 양이 없다. 음혈이 탁하고 위기의 흐름이 원활하지 못하고, 음양이 조화롭지 못하여 근이 이완하고 피부가 두꺼운데 신속하게 사하지 않으면 병이 제거되지 못한다.
소음지인(少陰之人) 다음소양(多陰小陽) 소위이대장(小胃而大腸) 육부부조(六腑不調) 기양명맥소이태양맥대(其陽明脈小而太陽脈大) 필심조지(必審調之) 기혈이탈(其血易脫) 기기이패야(其氣而敗也)
-소음인은 음이 많고 양이 적다. 위가 작고 장이 커서 육부의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양명의 맥기가 작고 태양의 맥기가 크다 음양의 성쇠를 잘 살펴야 한다. 혈이 쉽게 빠져나가고 기도 쉽게 손상된다.
태양지인(太陽之人) 다양이소음(多陽而小陰) 필근조지(必筋調之) 무탈기음(無脫基陰) 이사기양(而瀉基陽) 양중탈자이광(陽重脫者易狂) 陰陽皆脫者) 폭사(暴死) 不知人也)
-태양인은 양이 많고 음이 적으니 반드시 신중히 치료해야 한다. 음이 소모되지 않도록 하고 남는 양을 사해야 한다. 만약 양기가 지나치게 탈진되면 쉽게 발광하며, 음양이 모두 빠져나가면 갑자기 죽거나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게 된다.
소양지인(少陽之人) 다양소음(多陽小陰) 경소이낙대(輕小而洛大) 혈재중이기외(血在中而氣外) 실음이허양(實陰而虛陽) 독사기낙맥(獨瀉基洛脈) 즉강기탈이질(則强氣脫而疾) 중기부족(中氣不足) 병불기야(病不起也)
-소양인은 양이 많고 음이 적으며 경맥이 작고 낙맥이 크다 혈은 가운데 있고 기는 바깥에 있으므로 음을 충실히 하고 양을 사해야 한다. 그러나 낙맥만 사하면 기가 급속히 빠지는 것을 재촉하여 중기가 부족해져 병이 잘 낫지 않는다.
음양화평지인(陰陽和平之人) 기음양지기화(基陰陽之氣和) 혈맥조(血脈調) 근진기음양(謹診基陰陽) 시기사정(視基邪正) 안용의(安容儀) 심유여부족(審有餘不足) 성즉사지(盛則瀉之) 허즉보지(虛則補之) 불성불허(不盛不虛) 이경취지(以經取之) 차소이조음양(此所以調陰陽) 별오태지인자야(別五態之人者也)
-음양화평인은 음양의 기가 조화롭고 혈맥이 순조롭게 운행되어 마땅히 음양을 잘 살펴야 한다. 사기와 정기를 살피고 용의를 파악하여 유여와 부족을 살펴야 하는데 사기가 성하면 사하고, 정기가 허하면 보하며, 성하지도 허하지도 않으면 본경을 취해 치료해야 한다.
이것은 음양을 조화롭게 하고 오태인을 구별하는 것이다
8) 석고, 지모, 감초, 멥쌀을 처방한 약
9) 지모(知母):나리과 지모의 줄기
10) 번토층이나 온천 주변에서 생산되는 돌가루로 찬 성질이 강해 많이 쓰면 위험
11) 동의수세보원(東醫壽世保元)
■ 사람의 타고난 장부의 이치가 같지 않는 것이 네 가지가 있는데, 폐가 크고 간이 작은 사람을 태양인이라 하고, 간이 크고 폐가 작은 사람을 태음인이라 하고, 비가 크고 신이 작은 사람을 소양인이라 하고, 신이 크고 비가 작은 사람을 소음인이라 이른다.
人 臟理有四不同 肺大而肝小者 名曰 太陽人 肝大而肺小者 名曰太陰人 脾大而腎小者 名曰少陽人 腎大而脾小者 名曰少陰人
■ 나는 의약 경험이 생긴 지 오륙천 년 후에 태어나, 선인들의 저서를 통하여 우연히 사상인의 장부 성리를 발견하게 되었다. 이에 한 권의 의서를 저술하기에 이르니 ‘수세보원’이라 부른다. 원서 중에 장중경이 논한 바, 태양병․소양병․양명병․태음병․소음병․궐음병이라 함은 병증을 말함이요. 내가 태양인․소양인․태음인․소음인이라 함은 인물을 지목함이니 이 두 가지를 혼돈해서는 안 될 것이다. 또한 번잡한 생각을 버린 후에 뿌리와 줄기를 찾고 가지와 잎을 취해야 할 것이다.
余 生於醫藥經驗五六千載後 因前人之術 偶得四象人臟腑性理 著得一書名曰壽世保元 原中書 張仲景所論太陽病 少陽病 陽明病 太陰病 少陰病 厥陰病 以病證名曰而論之也 余所論太陽人 少陽人 太陰人 少陰人 以人物名曰而論之也 二者 不可混看 又不可수연然後 可以探其根株而 採其枝葉也
■ 태소음양인을 현재 눈짐작으로 한 고을의 사람 수를 대략 만 명으로 잡아 계산하면, 태음인이 오천 명이요, 소양인이 삼천 명이요, 소음인이 이천 명이요, 태양인의 수는 극히 적어 한 고을에서 서넛 내지는 십여 명에 불과하다.
太少陰陽人 以今時目見一縣萬人數大略論之則太陰人五千人也少陽人三千也少陰人二千也太陽人數絶少一縣中惑三四人十餘人而己
■ 태양인의 체형과 기상은 목덜미의 기세가 두텁고 허리둘레의 서있는 자세가 약하다. 소양인의 체형과 기상은 가슴둘레가 두텁고 궁둥이의 앉은 자세가 약하다. 태음인의 체형과 기상은 궁둥이의 앉은 자세가 두텁고 가슴둘레가 약하다.
太陽人體形氣像腦趨之起勢盛壯而腰圍之立勢孤弱少陽人體形氣像胸襟之包勢盛壯而膀胱之坐勢 孤弱 太陰人體形氣像腰圍之立勢盛壯而腦趨之起勢孤弱少陰人體形氣像膀胱之坐勢盛壯而胸襟之包勢孤弱
■ 태양인은 소변 양이 많고 잘 나오면 병 없이 건강한 것이고, 태음인은 땀이 잘 나면 병 없이 건강한 것이고, 소양인은 대변이 잘 통하면 병 없이 건강한 것이고, 소음인은 음식 소화를 잘 시키면 병 없이 건강한 것이다.
太陽人 小便旺多則完實而無病 太陰人 汗液 通腸則完實而無病 少陽人 大便 善通則完實無而病 少陰人 飮食 善化則無而病
■ 소음인 병에 두 가지 위급한 증세가 있으니 열이 나면서 땀을 많이 흘리는 것이 하나요, 설사를 하되 맑은 물을 쏟는 것이 또 하나다.
少陰人病 有二急證 發熱汗多 一急證也 下利淸水 一急證也
■ 소양인 중풍에 반신불수와 한쪽 팔을 못 쓴 것은 어쩔 도리가 없다. 중한 자는 죽고 경한 자는 살 수도 있지만, 간간이 약을 쓰며 마음을 편히 가지며 스스로 병이 낫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반드시 치료해서 낫는다고 장담하기 어렵다.
少陽人中風半身不遂一臂不遂末如何之疾也 重者必死輕者猶生間以服藥安而復之 待基自愈而不可期必治法之疾也
■ 태음인의 땀은 이마와 눈썹, 뺨의 어디에서 나오든지 기장 알같이 굵어야하며, 열이 약간 오래 있다가 멈추면 정기가 강하고 사기가 약한 것이니 상쾌한 땀이지만, 땀방울이 적거나 또 방울 없이 잠시 후에 들어가면 정기가 약하고 사기가 강한 것이니 상쾌하지 못한 땀이다.
太陰人汗無論額上眉稜上 上汗出如黍粒 發熱稍久而環入者 正强邪弱快汗也 汗出如微粒 惑淋 無粒 作時而環入者 正弱邪强 非快汗也
■ 태양인의 대변은 첫째 매끄럽게 나와야 하고, 둘째 덩어리가 커야 하며 양이 많아야 한다. 소변은 첫째 양이 많아야 하고, 둘째 자주 보아야 한다. 얼굴빛은 하예야 하고 검어서는 안 되며 살은 말라야하고 찌면 안 되며, 명치 밑에 단단한 덩어리가 있어도 안 된다. 덩어리가 작으면 병이 가볍고 곧 풀릴 것이요, 덩어리가 크면 병이 중하고 풀어지기 어렵다.
太陽人大便一則宜滑也二則宜體大二多也 小便一則宜數也二則宜數也 面色 宜白不宜黑 肌肉 宜瘦不宜肥 鳩尾下 不宜有塊 塊小則病輕而其塊 易消 塊大則病重而其塊 難消
12) 무교동 인근에서 의원을 열어 한성 땅에서 명성을 떨치며 동의보감의 주요처방과 자신의 經驗方들을 모아 編述한 의종손익(醫宗損益)12권, 이어 만병회춘(萬病回春)에 실린 약성가(藥性歌)를 우리의 속명(俗名)을 첨하여 편술한 의종손익부여(醫宗損益附餘)1권, 임상(臨床)에 잎수적 처방을 ‘상․중․하’의 삼통(三通)이라 분류한 의방활투(醫方活套)1권 등을 編述하였다.
13) 손익본초(損益本草)와 용약강령(用藥綱領)과 구급금기(救急禁忌) 등을 첨하여 선친의 유지를 받들어 저술한 방약합편(方藥合編)은 후세 의가들에게 늘 곁에 두고 볼 만큼 중요한 한의학의 필독서로 지금까지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