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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성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행18:1~11) | ||||||||||||||||||
이상열 목사(창원 서머나교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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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 구원’ 늦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복음 접하지 못한 백성에 주님의 은혜 전해야 사도 바울은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왔을 때에는 매우 착잡한 심정이었습니다.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다”(고전2:3)고 하였습니다. 5-6절을 보면 바울이 고린도에 있는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선포해 핍박을 받고 그 곳을 떠나 유스도의 집으로 피하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곳에서도 잊지 않고 복음을 선포했습니다. 그 결과 회장당 그리스보의 가정과 많은 고린도 사람들이 믿고 세례를 받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바로 그날 밤에 하나님은 바울에게 환상을 보여주셨습니다. 9절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희와 함께 있으매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고 하셨습니다. 1.바울이 고린도에서 왜 두려워했습니까? 첫째, 아덴에서의 전도 결과가 좋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행17:18을 보면, 바울이 아덴에서 전도할 때에 자기가 배운 학문과 철학을 동원해서 복음을 전하고 철학적으로 변증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좋지 못하였습니다. 바울이 전도한 지역 중 가장 성과가 없었던 곳이 바로 이 아덴(아테네)이었습니다. 이 실패 때문에 바울은 낙심과 좌절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곳 고린도에서도 동일한 일이 일어날 것을 두려워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고린도는 아시아와 유럽의 접경에 위치한 교통의 중심지로 여러나라 사람들이 모여 살았습니다. 그리고 항구도시입니다. 자연히 유행과 사치와 환락의 도시이며 우상숭배가 심한 도시였습니다. 둘째, 바울의 형편이 너무 곤고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그의 동역자 실라와 디모데를 베뢰아에 남겨두고 아덴으로 와서 홀로 외롭게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리고 고린도로 왔습니다. 그는 실라와 디모데가 보고 싶고 그리웠습니다. 그래서 본문 5절을 보면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부터 고린도로 돌아옵니다. 그동안 바울은 너무나 외로웠으며 고독하였던 것입니다. 사람이 언제 고독합니까? 배신을 당하여 모두 자기 곁을 떠났을 때입니다. 그리고 홀로 남았을 때입니다. 2.하나님의 위로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곤고한 바울에게 하나님께서는 큰 위로를 주셨습니다. 첫째, 동역자를 만나게 하셨습니다. 로마의 글라우디오 황제가 로마에서 유대인들을 추방할 때에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가 추방되어 고린도에 왔습니다. 바울의 직업이 텐트를 만들어 파는 직업인데 이들 부부 역시 같은 직업을 가졌던 것입니다. 이들 부부는 바울이 가는 곳마다 같이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후일 바울은 로마교회에 편지를 보내면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에 대하여 소개하기를 “저희는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 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저희에게 감사하느니라”(롬16:4)고 했습니다. 낙심하고 좌절하고 두려움에 있던 바울에게 하나님은 신실한 동역자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붙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동일하게 역사하십니다. 둘째, 위대한 사역을 맡기셨습니다. 9절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 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환상은 바울에게 아주 귀한 응답이었습니다. 이 성 중의 많은 백성은 모두 바울의 전도의 대상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에서 1년 6개월을 머물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습니다(11절). 120여년 전에 복음이 들어오고, 1907년 평양대부흥 100주년을 맞이한 지금 한국교회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교인수가 감소되었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우리로 하여금 고린도에서의 바울과 같이 열등감과 두려움에 빠지게 만들 수 있습니다. 타종교에 비해 유독 기독교인수가 감소되었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참으로 중요한 것은 아직 국민의 80%는 비 기독교인이라는 사실입니다. 이들은 모두 우리들의 전도대상입니다. 이 가운데 하나님의 백성이 많을 줄 믿습니다. 늦지 않았습니다. 지금부터입니다. 니느웨성에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자가 12만명이나 있다고 선지자 요나에게 말씀하셨던 하나님은 지금 한국교회에 말씀하십니다. “이 성 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아흔아홉 마리의 양보다 길 잃은 한 마리 양을 더 소중히 여겼던 목자이신 주님의 비전을 가집시다. 낙심하지 맙시다. 좌절하지 맙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바울에게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붙여주셨고, 낙심하였던 엘리야에게 하사엘 왕과 엘리사를 붙여주셨고,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는 7000명을 붙여주신 것처럼, 우리들이 일할 수 있도록 신실한 일군들을 보내주시고 붙여 주실 줄 믿습니다. 한국의 4800만의 영혼들과 북녘의 2300만의 영혼들이 한국교회에 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교회는 이 민족과 열방을 구원할 마지막 선지자이며 유일한 소망이 된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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