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몽인의 ‘어우야담’에서
'남녀 간의 정욕이란'
열락연재 박희용
[해제] 이 글은 태학산문선 106 <나 홀로 가는 길. 태학사. 2004.2>을 저본으로 하여, 조선조 중기의 문장가인 어우 유몽인 (柳夢寅 1559~1623)의 <어우야담> 중 ‘남녀지간 대욕존언’을 역해한 것입니다. 단문이지만 이 글을 통해서 17세기 초 조선 사회에서 원초적인 남녀 간의 정욕이 어떻게 발동하여 파장을 일으키고 결국 어떠한 사회적 통제에 의해 걸러졌는지 알 수 있습니다. ‘국역’을 먼저 제시하여 일반 독자들로 하여금 읽기 편하도록 하였고 ‘원문’과 ‘음독’을 뒤로 하여 한문에 관심 있는 독자들로 하여금 더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함께 생각해 보자는 의미에서 ‘논주’ 마당을 마련해 보았습니다. ‘논주’ 마당에서는 미리 제시된 몇 개의 관점에 따라, 원문을 읽고 난 저마다의 느낌과 생각, 비평 등을 자연스러이 토로, 토론해 보았으면 합니다.
[국역] 남녀 간의 정욕이란
남자와 여자 사이에는 큰 욕정이 있다. 남녀 사이에 분별이 있다는 예법을 성인이 만든 까닭은 마음이 풀어지는 한가한 때를 면밀히 살펴서 실수를 막고자 한 때문이었다. 10세가 되면 남녀가 자리를 함께 하지 아니하고, 길을 함께 가지 아니하며, 밤에는 등불을 밝히어 길을 가고, 등불이 없으면 밤길을 가지 않는다. 비록 형제나 생질처럼 가까운 친척일지라도 서로 대면함에 있어서는 분명함이 있다. 남자는 여자가 있는 방의 문지방을 넘지 말아야 한다거나, 방안에 있는 여자는 방문을 모두 열어놓지 못하고 왼쪽 문짝은 닫아두어야 한다거나, 남녀가 한방에서 대화를 나눌 때는 문을 열어두어야 한다는 것 등이 옛 법도이다. 우리나라는 규방 범절을 중요하게 여겨 사족 가문의 문설주 안은 바깥사람들이 엿보기가 매우 어렵도록 되어있다.
근자에, 어떤 고문성족이 있어 부인이 새로 시집을 왔는데, 자태와 용모가 아주 빼어났다. 한 장사꾼이 바깥 대문 곁에 좌판을 펴고 비단을 팔며 계집종들과 어울려 비싸니 싸니 하면서 한창 흥정을 하고 있었다. 마침 그때 부인이 중문에서 그것을 몰래 엿보고 있었다. 장사꾼이 일부러 흥정을 질질 끌어 값을 정하지 않으면서 도둑눈을 하고는 흘깃 흘깃 그 부인을 훔쳐보니 정말로 절대미색인 것이었다.
이로부터 장사꾼은 침식을 폐하고는 국법을 범하고서라도 자기의 욕심을 이룰 수 있는 온갖 꾀를 생각하게 되었다. 부인에게는 유모가 있었고 그 유모는 인물이 시원치 않은 딸을 키우고 있었다. 장사꾼이 유모에게 능단 몇 단을 주며 딸을 달라고 하니 유모는 그것을 허락하였다. 장사꾼은 후하게 유모에게 사례하고 난 다음, 채색 비단 5,6 필을 부인에게 바치면서 말하기를,
“속언에 계집종의 지아비는 노복과 같다 하오니, 가동으로 여기시어 문단속과 정원 청소 같은 일을 맡겨주시길 청하나이다.” 고 하였다.
주인이 부담스러워서 여러 번 사양하였으나 장사꾼은 억지로 채색 비단 필을 진상하였다. 그 후로 유모에게 뇌물을 계속해서 먹이고 그 딸을 더욱 정성스럽게 대하며 번 돈을 많이 써도 애석해 하지 않았다. 유모가 이를 무척 괴이하게 여겨 그 이유를 꾸짖듯이 물었다.
“내 불초 여식이 장부의 뜻에는 차지 않을진대 이같이 정성이 지극함은 대체 무엇 때문이요?”
장사꾼은 겸손한 척 하며 다른 말로 얼버무리더니 한참 지난 다음에 좌우 사람들을 피하여 물리치고는 유모의 귀에다 대고 말하였다.
“지난번에 바깥문에서 비단을 팔 적에 중문 안에 한 여자가 있는 것을 얼핏 보았는데 정말 절대가인이었습니다. 어느 곳에 거처하는 누구인지는 모르나 그로부터 정신이 불에 탄듯하고 마음이 애절하여져서 잠시잠깐이라도 그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습니다. 이 마음을 이루지 못한다면 종낸 저자에서 말라죽고 말 신세를 면하지 못하기에 이와 같이 혼례를 치르게 된 것입니다.”
유모는 몹시 놀라 장사꾼의 입을 막으며 말하였다.
“망령된 말 함부로 하지 말게나. 그분은 우리 집의 안주인일세.”
장사꾼은 거짓으로 놀란 체 하며 말했다.
“내 잘못이오. 내 잘못이오. 원컨대 유모는 입을 막고 누설하지 마시오.”
그 이후로도 부인에게 진상하는 비단이 더욱 많아졌으며 유모에게 먹이는 뇌물도 더욱 두터웠다. 유모는 그 뇌물을 거절하고자 했으나 이미 물욕이 깊어져 재물이 아까워 거절하지 못하겠고 장사꾼이 더욱 은밀히 일을 도모하는지라 마침내 유모는 머리를 끄덕거리며 승낙하게 되었다.
한 달이 지나지 않아 부인의 지아비가 독서를 위해 산사로 가자, 부인이 유모와 함께 자게 되고 여러 계집종들은 밖에서 자게 되었다. 유모는 짐짓 거짓으로 취한 체 하며 머리에 커다란 수건을 둘러 모자를 만들어 이고는 옷을 벗고 부인의 이불 안으로 들어와 부인을 껴안으며 말하였다.
“정말 어여쁘기도 하구나 우리 딸, 이렇게 예쁘니 서방님께서 사랑하시는 게 당연하지,”
이러고는 남녀 사이에서 하는 행동을 장난스러이 하면서 부인의 정욕을 슬슬 이끌어 돋우었다. 이렇듯 희롱하는 시간이 좀 지나자 부인이 말했다.
“ 웃기는구려. 늙은 유모가 어찌 이처럼 미친 짓을 한단 말이요. 이 어찌 노망이 들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단 말이오?”
하며 두세 번 밀쳐냈지만 희롱이 길어질수록 부인에게 요구하는 것이 더욱 깊어졌다. 잠시 후 유모가 이불에서 몸을 빼어 나가면서 말하였다.
“소변 보고 다시 오리라.”
유모는 이미 은밀히 장사꾼에게 밖에서 기다리게 하였던 바, 장사꾼은 알몸에 둥근 모자를 머리에 쓰고 유모인 것처럼 꾸며선 방으로 들어오더니 곧바로 이불 속으로 들어가 유모가 하던 것처럼 부인을 껴안았다. 부인은 그것도 모르고 유모인줄로만 여기고 그가 희롱하는 대로 몸을 맡겼다. 장사꾼은 지 마음대로 부인을 간음하였다.
일이 이렇게 된 이후, 밤에 들어와 새벽에 나가면서 둘이는 서로 교접을 하게 되었다. 집안사람 가운데 그것을 눈치 챈 자가 있어서 가만히 그 사실을 부인의 시아버지에게 귀띔하였다. 시아버지는 관인이었다. 그 말을 듣고 크게 놀라서 가만히 숨어서 살피니 장사꾼이 밤에 북쪽 담장을 뛰어넘어 들어오는 것이었다. 다음 날, 가노 4,5명을 불러 엄하게 말하였다.
“오늘 밤 소도둑 한 놈이 북쪽 담을 넘어 들어 올 것이니 너희들은 담장 밑에 미리 큰 구덩이를 파놓고 큰 몽둥이를 들고 살피다가 그 도적을 쳐서는 구덩이에 던져 묻어라. 그러고 난 다음 5고를 기다려 먼 산에 갖다 묻어라. 이 말이 세면, 너희들이 대신 죽을 줄 알아라.”
밤이 깊어지자 과연 북쪽 담장을 뛰어넘는 도적이 있었는데 함정 구덩이에 빠지자말자 노복들이 달려들어 때려죽인 다음 묻어 버렸다. 5고를 기다려 먼 산에 갖다 묻어버렸다. 아울러 유모와 그 딸도 들판에서 때려 죽였다. 바깥 사람 가운데 이를 아는 이는 하나도 없었다. 서생 부부도 아무 일 없이 예전처럼 지냈는데 끝내 그 사실을 알지 못하였다.
남녀 간의 욕정이란 정말로 두려운 것이다. 얼핏 눈 깜짝할 사이에 한 번 그 얼굴을 보고서 종내 그 마음을 제어하지 못하여선 유모로 하여금 상전인 부인을 팔도록 하여 장사꾼의 음모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였다. 그 원인은 다른 데 있는 게 아니라, 여자가 몸가짐을 엄밀히 하지 않고 한가한 때의 풀어진 마음 방비의 법도를 잃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남자로 하여금 의외의 음모를 꾸미도록 하였으니 이 어찌 부인된 자로써 지녀야할 계율이 아니겠는가.
[원문] 男女之間 情慾
男女之間 大慾存焉 聖人制禮 內外有別 所以防閑之者周矣 自十歲 坐不同席 行不同途 夜行以燭 無燭則止 雖至親如兄弟甥姪 猶相待有截 或不踰閾 或掩其左闔 或闢門而與之語 古之制也 我國重閨範 士族家門楣之內 外人所難覰
近者 有高門盛族 婦女新嫁 姿容絶美 有賈人賣綾段傍外門 與群婢高下其價 婦女在中門密覘之 賈人故爲遲留不決 偸眼潛睇 眞絶代色也 自此 賈人廢寢食 出百計思犯邦憲 婦人有乳嬭畜少女 薄有容色 賈人賚綾段數端 納于嬭 求其女 嬭許之 賈人厚遺嬭 仍進綵錦五六匹 俾獻其少君曰 諺稱婢夫如僕 請備門庭灑掃之役 如家僮焉 主家愧謝再三辭 而强進之 厥後 復饋嬭及女尤款 傾市貨不惜 嬭甚怪之 詰基由曰 不肖女 不足以稱丈夫之意 而若是款甚 何耶 賈人遜之 塞以他辭 良久辟左右 附耳謂嬭曰 曩者賣錦于外門 乍見中門內有女 覘之 眞絶代佳妹 未知何許人 自此焦神殄心 不須臾舍于懷 不遂此心 終不免肆上之枯 是以有此禮也 嬭憮然掩其口 曰 無妄言 是我家少君也 賈人陽驚曰 吾過也 吾過也 願嬭杜口勿洩 他日 所進綾段滋多 饋遺益厚 嬭欲却之 惜其貨 賈人密圖益固 嬭遂頷之
不閱月 婦人之壻出山寺讀書 婦人與嬭共宿 諸侍婢宿于外 嬭陽醉 頭戴大圓帽 脫衣裳 入婦人衾枕 抱持婦人曰 可愛吾女兒 宜夫書生之愛之也 戱作男女之牀 挑其心 如此者良久 婦人曰 可笑 老嬭何狂誕若是 豈非病風而然乎 再三推之 戱久而要女愈苦 俄而 脫身而出曰 小便復來 嬭已密使賈人俟外 赤身戴大圓帽假嬭狀而入 直開衾抱持猶前 婦人不之覺 以爲嬭也 任其戱之也 遂恣意奸之
自是之後 晨往夜入 內外交應 家人或知之 密告婦之翁 翁官人也 聞之大驚 潛伺之 賈人夜超園墻北而入 翌日 戒家奴四五人曰 今夜有牛馬之賊 踰北墻而入 爾等豫掘大坑于園墻之下 持巨捧潛伺焉 擊其賊 投諸大坑而埋之 待五鼓 瘞之遠山 語洩若屬代其死 夜深果有賊超園北墻 陷大坑中 格殺而埋之 待五鼓 瘞之遠山 幷殺嬭及少女于野 外人莫有知者 書生夫婦如故 而終不悟也
男女之慾 甚可畏哉 瞥眼之間 一見其面 終不制其心 能使嬭婦賣之 而通其計 無他 女子藏身不密 防閑失儀 以致男子意外之圖 豈非婦人者所可戒也哉
* 본문 중 3행 ‘或闢門而與之語’에서 원문은 ‘闢’이 아니라 ‘門 +爲’이고, 말미 2행 ‘而通其計’에서 원문은 ‘通’이 아니라 ‘책받침 +呈’입니다. 워드 한자에 없어서 뜻이 같은 다른 한자를 차용했습니다.
[음독] 남녀 간의 정욕이란
남녀지간 대욕존언 성인제례 내외유별 소이방한지자주의 자십세 좌불동석 행불동도 야행이촉 무촉즉지 수지친여형제생질 유상대유절 혹불유역 혹엄기좌합 혹벽문이여지어 고지제야 아국중규범 사족가문미지내 외인소난처
근자 유고문성족 부녀신가 자용절미 유고인매능단방외문 여군비고하기가 부녀재중문밀점지 고인고위지류불결 투안잠제 진절대색야 자차 매인폐침식 출백계사범방헌 부인유유내축소녀 박유용색 고인뢰능단수단 납우내 구기녀 내허지 고인후유내 잉진채금오육필 비헌기소군왈 언칭비부여복 청비문정쇄소지역 여가동언 주가괴사재삼사 이강진지 궐후 복궤내급녀우관 경시화불석 내심괴지 힐기유왈 불초녀 부족이칭장부지의 이약시관심 하야 매인손지 색이타사 양구벽좌우 부이위내왈 낭자매금우외문 사견중문내유녀 점지 진절대가매 미지하허인 자차초신진심 불수유사우회 불수차심 종불면사상지고 시이유차례야 내무연엄기구 왈 무망언 시아가소군야 고인양경왈 오과야 오과야 원내두구물설 타일 소진능단자다 궤유익후 내욕각지 석기화 고인밀도익고 내수함지
불열월 부인지서출산사독서 부인여내공숙 제시비숙우외 내양취 두 대대원모 탈의상 입부인금침 포지부인왈 가애오녀아 의부서생지애지야 희작남녀지상 도기심 여차자양구 부인왈 가소 노내하광탄약시 기비병풍이연호 재삼추지 희구이요녀유고 아이 탈신이출왈 소변복래 내이밀사고인사외 적신대대원모가내상이입 직개금포지유전 부인불지각 이위내야 임기희지야 수자의간지
자시지후 신왕야입 내외교응 가인혹지지 밀고부지옹 옹관인야 문지대경 잠사지 고인야초원장북이입 익일 계가노사오인왈 금야유우마지적 유북장이입 이등예굴대갱우원장지하 지거봉잠사언 격기적 투제대갱이매지 대오고 예지원산 어설약속대기사 야심과유적초원북장 함대갱중 격살이매지 대오고 예지원산 병살내급소녀우야 외인막유지자 서생부부여고 이종불오야
남녀지욕 심가외재 별안지간 일견기면 종불제기심 능사내부매지 이정기계 무타 여자장신불밀 방한실의 이치남자의외지도 기비부인자소가계야재
[논주] 이 야담에 나타난 인간상과 사회상에 대하여 생각해보도록 합시다.
(1) 등장인물들 각자의 입장과 처신에서 역지사지 해 봅시다.
(2) 이 사건이 발생한 근본 원인은 무엇인가요? 무료한 시간에 생긴 여인의 작은 호 기심 하나가 빚은 세 명 살해 사건이란 엄청난 결과. 理와 氣의 관계, 사단과 칠정의 관계, 본질과 현상의 관계에 대하여 생각해 봅시다.
(3) 남녀 간의 정욕이 개인과 가정,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하여 생각해 봅 시다.
(4) 부인의 잘못은 무엇인가요?
(5) 물론 장사꾼이 정욕 도적이지만, 정말로 심신을 불태울만한 사람이 나타 났다면 나의 마음과 처신은?
(6) 17세기 조선 중기의 사회적 제도와 생활모습을 생각해 봅시다.
(7) 제어되지 못한 정욕과 물욕이 인간 정신과 사회에 끼치는 영향은?
(8) 가인의 밀고를 듣고 내가 시아버지라면 어떻게 처리하였을까?
(9) 부인은 이미 장사꾼으로부터 많은 비단을 진상 받았고, 유모가 아닌 줄 알았으면 마땅히 내쳐야 했고, 관계를 지속해선 안 되지 않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