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심이 |
사릿골 남쪽 골짜기, 일명 개어심(介於心) |
거리마을 |
풀못안 길가에 있는 마을. 신라시대부터 의창군과 통하는 길목으로 사람과 말의 통행이 많았다. |
건넨말 |
대밭골 서쪽 건너편에 있는 마을 |
고지비이 |
거리마을 남쪽에 있는 들 |
곧은골 |
대밭등 북쪽에 있는 곧은 골짜기 |
나부재 |
노당과 육통, 기계면 학야 사이의 높이 400m의 산과 고개, 고개 좌우의 산이 나비 날개처럼 대칭으로 생겼다. 일명 접포현 |
남산 |
마을이 남쪽으로 향한 산 밑에 있다. |
노당리고분군 |
사릿골에 있다. 신라 말기의 서민층 묘로 추정되는데 원형의 작은 석실총으로 일제때 도굴당한 흔적이 있다. 주위에 지석묘 1기가 있다. |
노당리지석묘 |
칠성고개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지석묘. 사릿골에는 여러 개의 지석묘가 있고 큰 은행나무가 있다. 옛날 중국 만리장성을 쌓을 때 여러 나라에서 바위를 가져 오게 했는데 힘이 센 안계동 할머니가 마치 양떼를 몰고 가듯 나무 채찍으로 돌을 후리치며 운반해 가게 되었다. 그러다가 노당재 밑에 오니 돌들이 말을 잘 듣지 않아 할 수 없이 제일 큰 돌을 고개 위에 올려 놓고 사릿골로 내려오니 만리장성을 다 쌓았다는 전갈이 왔다. 할머니가 쓰던 채찍을 세워 둔 것이 은행나무가 되었고 마을에 있는 여러 개의 지석묘는 그 돌이고, 칠성고개에 있는 지석묘는 먼저 옮겨 놓은 돌이라는 전설이 있다. 또한 안계 할머니가 맷돌을 만드려고 돌을 들고 가다 치마가 찢어졌다는 전설도 있다. |
노당재 |
노당 북쪽에서 기계면 성계, 안니골(일명 아인골)로 넘는 고개. 일명 칠성현. |
느릿골 |
사릿골 남쪽 골짜기. 일명 어은곡(於隱谷) |
달대 |
우룃들 동쪽에 있는 들. 일명 달평(達坪) |
달성보 |
노당 북쪽 달성천에 있는 보, 신라때 만들어졌다. |
달성산 |
어래산 동쪽 끝 봉우리 |
달성천 |
기계 골짜기에서 발원하여 기계천, 안강평야를 거쳐 형산강에 합류한다. 기계면, 강동면, 안강읍의 경계를 이룬다. |
대방천만디이 |
남산과 대밭골 사이의 고개 |
대밭골(竹田) |
풀못안 서쪽 마을. 마을 뒷산에 대나무가 많다. |
대밭등 |
대밭골 북쪽, 대나무 밭이 있던 등성이 |
돌골 |
밀밭골 북쪽 골짜기 |
모골(某洞) |
개심이 북쪽에 있는 골짜기 |
못안들 |
우룃들 남쪽에 있는 들 |
밀밭골 |
대밭골 동북쪽, 밀밭이 있던 골짜기 |
뱃마리 |
거리마을 남쪽에 있는 들 |
사릿골(沙里谷) |
약 400년전 김처형(金處衡)이란 선비가 마을을 일으킬 때 모래가 많았다 |
생골재 |
대밭골 서북쪽 고개 |
서리못 |
대밭골 북쪽에 있던 못, 일명 서림제(西林堤) 혹은 시리못 |
소두방재(鼎山) |
노당과 육통, 기계면 성계와 학야에 걸쳐 있는 높이 444m의 산, 일명 정악산(鼎嶽山), |
아릿노당 |
노당리 아랫쪽에 있는 마을 |
아릿말 |
대밭골 아랫쪽에 있는 마을 |
양지각단 |
풀못안의 북쪽, 양지바른 곳에 있는 마을 |
연대밋재 |
풀못안 서북쪽에서 기계 학야로 넘는 고개. 접포현 봉수대가 있었다 한다. |
옻밭구미 |
노당 북쪽. 옻나무가 많았던 골짜기 |
우룃들 |
사릿골 동쪽. 1864년에 우뢰 소리에 작은 산이 무너져 이루어진 들. |
웃노당 |
노당의 위쪽에 있는 마을 |
점골(粘谷) |
신라 때부터 그릇 가마터가 있고 옹기점이 있던 마을. 지금은 노당기와공장이 있다. |
접포현봉수대 |
나붓재에 있는 봉수대의 자리. 일명 나부재봉수. 남으로 고위산봉수, 서쪽으로는 주사산봉수에 응하다, |
정산(鼎山)서당 |
소두방재 아래 사동에 있다. 조선 선조때 홍문관 교리를 지낸 경주인 노암 김종일(金宗一)이 공부하던 곳에 후손이 세운 서당. |
종덕재(鐘德齋) |
풀못안. 창녕조씨(昌寧曺氏) 시조인 태사 조계룡(曺繼龍)의 묘재. 1738년 건립. 반고당, 동재, 서재, 영사문 등이 있으며 정당(正堂)은 문화재자료 91호로 지정되어 있다. |
짠드미 |
대밭골 동북쪽. 잔디가 많았던 들. |
초제큰우물 |
약 300년전 영월신씨 풍천공(豊川公)이 사람을 시켜 이 우물을 파다가 자석을 발견했다는 우물 |
평지 |
풀못안 남쪽 평지에 있는 마을 |
풀못 |
풀못안에 있는 못. 마씨(馬氏)가 못을 팠는데, 말은 풀이 있어야 한다는 뜻에서 풀못이라 했다. 일명 초제지(草堤池) |
풀못안(草堤) |
사릿골 서남쪽 마을. 옛날 창녕조씨(昌寧曺氏) 시조 태사공(太師公)의 묘를 잃었다가 이곳에서 찾았다 한다. 약 200년전 영월신씨(寧越辛氏)와 벽진이씨(碧珍李氏)가 마을을 일으킬 때, 마을 어귀에 있는 연못에 풀이 많아 `풀못안' 또는 `초제'라 한다. |
풍천공부조묘 |
초제리. 영월신씨(寧越辛氏) 종가에 모셔진 풍천부사 신상뢰(辛商賚)의 부조묘. 1645 건립, 묘액은 영모사(永慕祠) |
한박등 |
노당 북쪽에 있는 등성이 |
화좌제(化左堤) |
사릿골에 있는 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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