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의 미덕인 효 사상
사실 동양에서는 부모, 이웃, 나라, 스승에 대한 네 가지 고마움을 알면 인간이라 부르고 모르면 짐승이라고 경멸해 오고 있습니다. 그 결과 어리석은 이들을 일깨우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예로부터 종교와 시대를 초월해 부모님에 대한 효 사상과 구체적인 사례에 관해 방대한 글들이 축적되어 왔습니다.
그 가운데 유교에서는 ‘오직 효가 모든 행실의 근원이다.’라든지 ‘자식을 사랑하는 지극한 마음으로 부모님께 효도하라.’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한편 불교에서도 <부모은중경>을 통해 구구절절이 부모님의 고마움과 보답하는 길을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최상의 효도와 불효자 일깨우기
특히 세존께서 부모님의 은혜에 대한 최상의 효도에 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부모님의 은혜를 아무리 갚아도 다 갚지 못한다. 팔 다리를 주물러 드리고, 목욕을 시켜드리고, 대소변을 받아낸다 하더라도 그 은혜는 다 갚지 못한다. 왜냐하면 자식들을 위해 그보다 더 많은 것을 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 갚을 수 있는 최상의 효도가 있다. 믿음이 없는 부모님께 믿음을 심어 드리며, 부도덕한 부모님께 바르게 사시도록 일깨워 드리며, 인색한 부모님께 베풀며 사시도록 일깨워 드리며, 어리석은 부모님께 지혜로운 삶을 사시도록 일깨워 드리는 것이 부모님의 은혜를 진정으로 갚는 것이다.”
또한 세존께서는 불효자를 일깨우기 위한 방편도 제시하고 계십니다. 자식들에게 버림받은, 한 노인께 ‘고마운 지팡이’란 시를 지어드리면서 마을 한 가운데에서 읊게 하셨다고 합니다.
“내가 애지중지 키운 아들들은 나에게서 무언가를 받을 때는
‘아버님’, 아버님’이라고 부르며 존대했네.
하지만 그들은 아들이 아니었네.
사실은 인간의 모습을 한 마귀였네.
지금은 나를 도둑강아지 취급하며 쫓아버리네.
지금, 나의 이 지팡이는 아들보다 소중하네.
왜냐하면 사나운 개가 달려들어도 쫓을 수 있기 때문이네.”
그러자 당시는 사람들이 순박했던 시대라 이 시를 듣고 자식들이 곧 참회하고 아버지를 잘 봉양했다고 합니다.
효는 어떤 계율보다 우선한다
또한 북송 시대의 계숭 선사께서는 ‘효론’에서 출가자도 결코 예외일 수 없다는 견해를 극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되었다고 부모의 부름을 받았을 때 ‘불제자란 핑계로 사양하고 가지 않는다.’고 하면 나는 다음과 같이 일깨워 주었다.
‘불제자라도 정(情)이 옳다고 하면 부모를 잊을 수 없는 것이다.’
사실 이처럼 효는 모든 계율의 근본이기 때문에 불제자로서 효를 잊어버리면 파계(破戒)를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효는 그 어떤 계율보다 우선해 지켜야 하는 것이다.”
세간과 출세간의 효도
또한 명나라 때 운서주굉 선사께서는 저서 <죽창삼필(竹窓三筆)>을 통해 ‘세간(世間)과 출세간(出世間)의 효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견해를 밝히고 계십니다.
“세간의 효도에는 세 가지가 있고, 출세간의 효도는 오직 한 가지뿐입니다. 세간의 효도는, 첫째는 뜻을 맞추고 좋은 의복을 해 드리며, 맛있는 음식으로 그의 부모님을 봉양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과거시험에 합격해 벼슬에 나아가며, 아울러 국가에서 주는 녹봉으로 부모님을 영화롭게 해 드리는 것입니다. 셋째는 덕을 닦고 힘써 행하여 성현이 되는 것으로 부모님의 명성까지도 널리 드러나게 해드리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세 가지가 곧 소위 세간의 효도라고 하는 것입니다.
반면 출세간의 효도는, 부모님께 권하여 계율을 지키고 도를 행하게 하며, 일심으로 칭명염불하여 극락왕생을 염원하시게 하여 영원히 사생(四生)을 벗어나고, 완전히 육도(六道) 윤회에서 벗어나서 연화대에 태어나 아미타부처님을 친근하여 불퇴전을 얻게 해드리는 것이니, 자식이 부모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이 이보다 더 큰 효도는 없는 것입니다.
(참고로) 나는 전에 막 입도入道했을 무렵에 양친께서 돌아가셨으므로 ‘스스로 불효를 애통하는 글[自傷不孝文]’을 지어 슬프고 애통한 마음을 달랜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에 이르러 재가나 출가 두 대중 가운데에, 양친이 모두 살아계신 축복받은 이들을 마주대할 때마다 더욱 비통함이 복받쳐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곤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처럼 후회하지 않으시도록 출세간의 큰 효도로 부모님을 봉양하실 것을 늘) 삼가 머리를 조아려 권해드리곤 합니다."
효도를 하고 남은 힘이 있는 것이 여가
조선 시대 때 ‘책만 읽는 바보’라는 별칭이 있는 실학자 이덕무 선생께서는 ‘효가잡고서(孝暇雜稿序)’라는 글을 통해 우리들로 하여금 다음과 같이 ‘효’와 ‘여가(餘暇)’의 참뜻을 깊이 성찰하게 합니다.
“부모를 잘 섬기는 것을 ‘효(孝)’라 하고, 효도를 하고 남은 힘이 있는 것을 ‘여가(餘暇)’라 하며, 여가에 시를 짓거나 문장을 저술하여 서책(書冊)으로 기재한 것을 바로 ‘잡고(雜稿)’라 한다. 따라서 효란 이와 같은 것이니 어찌 단 하루인들 효도가 없을 수 있겠는가! 문장이란 참으로 효행(孝行)을 하고 난 뒤의 여사(餘事)일 뿐이다.”
사실 조선 시대 당시에 성현(聖賢)의 글을 읽고 문장을 외고 두보(杜甫) 같은 시인의 시를 읊조리며, 시를 짓거나 문장을 저술하여 서책(書冊)으로 내는 일은 선비들이 마땅히 해야 할 전문직 일과(日課)였습니다. 그러나 학덕(學德)이 높았던 이덕무는 맡은 바 본분사(本分事)는 여가(餘暇)에 하는 일이고 이보다 선행(先行)해서 해야 하는 일은 효도(孝道)라는 점을 이 글을 통해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따라서 수행자의 경우도 먼저 정성을 다해 효도를 행하고 여가에 본분사인 수행을 해야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랍비의 어머니 봉양
그런데 효 전통이 동양에만 있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유대인의 ‘지혜의 서’인 <탈무드>에도 다음과 같이 동양 못지않은 효도에 관한 가르침이 있습니다.
“어떤 랍비(유대인의 영적 스승)는 자기의 늙은 어머니께서 침대에 올라갈 때나 내려올 때 힘들어 하시자 침대 밑에 엎드려 어머니께서 자기를 밟고 올라가거나 내려가도록 봉양했습니다. 또한 어느 때 어머니와 함께 길을 걷고 있었는데, 그 길이 돌투성이에다 울퉁불퉁하기까지 하여 어머니께서 걷기가 무척 힘들어하시자 즉시 어머니께서 한 걸음씩 발길을 옮길 때마다 자신의 손을 어머니의 발밑에 받쳐 드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늘 어머니를 대할 때 마다 마치 하느님을 뵙는 것처럼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어머니는 만나는 사람마다 ‘내 아들은 <토라>(히브리어로 ‘가르침’ 또는 ‘법’을 뜻함)에 쓰여 있는 것 보다 더 큰 효도를 저에게 하고 있습니다.’라고 칭찬했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럴 때마다 아들 랍비는 ‘그런 말씀 마십시오. 저는 천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합니다.’라고 하면서 겸손해했다고 합니다.”
묵묵히 지켜보며 격려해 주신 부모님
한편 돌이켜 보니 2대독자로 태어나 어머니의 지극한 보살핌 속에서 형편없는 마마보이로 자란 필자의 경우, 의사이셨던 아버지께서 중3때 절대로 의사는 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남 따라 살지 말고, 네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직업을 택하라!’라고 해주셨던 조언과 제가 1975년 종달 이희익 선사 문하에 입문해 참선수행을 시작하고 6개월이 지난 어느날, 천주교인으로 늘 새벽기도를 하시며 아침을 여셨던 어머니께서 이를 묵묵히 지켜보시고는 “잘은 모르겠지만 너의 변화된 삶의 태도로 보아 참선이 좋은 수행 같으니 꾸준히 지속해라!”고 해주신 격려가 저의 오늘을 있게 한 것 같습니다.
따라서 우리 모두 이번 설날명절을 계기로 자식들을 위해 일생을 헌신하셨던 부모님의 고마움을 늘 가슴 깊이 새기는 동시에, 부모님이 생존해 계신 분들의 경우 ‘어떻게 하면 부모님께서 남은여생을 편히 보람 있게 보내실 수 있을까?’라고 자문자답하면서 하루하루를 성실히 살아간다면, 효심이 있는 그대로 삶속에 배어나게 될 것입니다. 사실 만일 이렇게만 된다면 바로 이 효심이 바탕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비록 친부모님은 아니지만 주위의 소외된 어르신들을 역시 친부모님처럼 존대하면서 함께 더불어 나눔 실천적 삶도 저절로 살게 할 것입니다!
끝으로 지난 연말 ‘연말정산 환급금’에 대해 온 나라가 떠들썩했었습니다. 그런데 발상의 전환을 통해 적게 돌아오면 적은 대로, 많이 돌아오면 많은 대로 이 환급금을 부모님에 대한 효도를 포함해 어려운 이웃을 돕는데 쓸 기금이라고 마음먹는다면 어떨까 합니다. 사실 몇 해 전입니다만 미국의 중산층들이 일 년에 140만 원 정도 기부를 한다고 들었습니다. 한국의 국력도 이제 세계 10위안에 진입하고 있는 오늘날, 이에 걸 맞는 기부 문화가 국민 다수 속에 정착될 때라고 느끼신다면 그 좋은 방안의 하나가 탈세가 아닌 절세를 통해 연말에 가능한 많이 환급을 받아 제도권 밖에서 어려움을 격고 계신 분들을 위해 이를 지혜롭게 활용하는 것이라 판단됩니다.
군더더기 : 돌이켜 보면 부모님들께서는 한결같이 간절한 마음으로 우리들을 낳으시고, 기르시고 다 커서 어엿한 사회의 일군이 되었는데도 사시는 동안, 늘 하루하루를 무사히 보내기를 바라시면서 살고 계십니다. 그런데 배우자와 자식들만 챙기고 어찌 이런 부모님들을 소홀히 대한다면 그 자녀들이 무엇을 보고 배우겠습니까! 훗날 제대로 보고 배우지 못한 그 자녀들로부터 그대로 홀대를 받을 것이라는 것은 너무도 뻔한 일일 겁니다. 그런데 더 한심한 것은 죽은 조상을 위해서는 제사상을 요란하게 차리면서도 산 조상(살아계신 부모님)은 구박하는 주위 분들을 보면 그저 안타까울 뿐입니다.
관련 자료들:
금강신문 기사 원문:
http://ggbn.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264
부모님이 웃으실 때 내 삶이 가장 행복할 것이다/ 2010학번 수강생
http://www.seondohoe.org/72641
어머니를 떠올리면 눈물을 흘리는 이유/ 2012학번 참선 수강생
http://www.seondohoe.org/65776
효도를 하고 남은 힘이 있는 것이 여가餘暇
http://www.seondohoe.org/21192
노인학대 3년새 45% 늘어… 절반은 아들이 가해자
http://news.donga.com/Society/3/03/20121004/49832358/1
박영재 교수는 서강대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3년 3월부터 6년 반 동안 강원대 물리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1989년 9월부터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서강대 물리학과장, 교무처장, 자연과학부 학장을 역임했다.
1975년 10월 선도회 종달 이희익 노사 문하로 입문한 박 교수는 1987년 9월 노사의 간화선 입실점검 과정을 모두 마쳤다. 1991년 8월과 1997년 1월 화계사에서 숭산 선사로부터 두차례 입실 점검을 받았다. 1990년 6월 종달 노사 입적 후 지금까지 선도회 지도법사를 맡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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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정말 감사합니다. 부모님 생각 가슴 속 응어리 풀지 못하고 이제 저승 갈 날이 점점 다가오는 이 마음
어디에도 속 시원히 말해보지 못하고 내 가슴속은 검은 연탄 처럼 되어 버렸네요.
언제가 인연이 되어 만날 기회가 주어진다면 속 시원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습니다.매론>을 독송해 보시기 바랍니다. 매론이 당장 없으시면 <수지독송> 게시판에 있으니 열어 보세요. 감사합니다. _()_ _(())_
가슴에만 혼자 품으시면 응어리만 커질 텐데 하는 염려가 없지 않습니다.
누군들 말 못 할 사연이 없을까 싶습니다. 이럴 때 <보왕
보왕
감사합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