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화가(書畵家)로 유명한 선조(先祖)-2
3. 안침(安琛)-죽창(竹窓 1444~1515)
자(字)는 자진(子珍), 호(號)는 죽창(竹窓), 죽계(竹溪)이며 부(父)는 안지귀(安知歸), 조부(祖父)는 안구(安玖)이며 증조부(曾祖父)는 안종약(安從約), 외조부(外祖父)는 박이창(朴以昌), 처부(妻父)는 이수철(李守哲),손(孫)은 안수(安璲)이다.
1462년(세조 8년) 생원, 진사에 합격하고, 1466년 고성별시문과(高城別試文科)에 급제하여 정자(正字) ·사록(司錄) ·감찰(監察)을 지냈다.
1471년(성종 2년) 신설된 예문관(藝文館)에 등용되었고 부수찬(副修撰) ·정언(正言) ·예문관교리(藝文館校理) 등을 거쳐, 응교(應敎) 때 임사홍(任士洪)을 비난하여 파면되었으나 임사홍이 물러나자 복직, 다시 장령(掌令) ·사성(司成)이 되었다.
1484년 부제학(副提學)을 거쳐 우승지, 1493년 예조참의 ·부제학 ·이조참의를 역임한 뒤, 중추부지사(中樞府知事)로서 천추사(千秋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이조참판으로 부총관을 겸하고, 춘추관동지사(春秋館同知事)로 있을 때 《성종실록》 편찬에 참여하였고, 1498년(연산군 4년) 무오사화(戊午士禍)에 관련되어 좌천되었다.
뒤에 전라도관찰사 ·한성부우윤(漢城府右尹)을 지내고 1500년 경상도병마절도사, 1506년 평안도관찰사, 1514년(중종 9년) 공조판서에 특채되었으나 곧 병사하였으며, 시호는 공평(恭平) 이다.
공(公)께서는 송설체(松雪體 : 일명 조맹부체 趙孟頫體)를 잘 쓰셨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당시 어찌나 명필로 소문이 났던지 글씨를 얻으려는 사람으로 문전성시를 이뤘다고<해동명신록(海東名臣錄)>에 기록돼 나온다. 또한 성종 임금께서는 수차례나 내지(內紙 : 대궐에서 쓰는 고급종이)를 하사하여 그 종이로 글씨를 써 올리도록 명하곤 했었다 한다.
해서체(楷書體)에 뛰어나서 광주군의 밀성군 침비(密城君琛碑),
성남시 율동의 문정공 한계희신도비(文靖公 韓繼禧神道碑) ,
시흥시의 월성군 이철견비(月城君李鐵堅碑) ,
고양시 덕양구 지축동의 호안공 황치신신도비(胡安公黃致身神道碑) ,
파주시 문산읍 내포리의 (성임신도비) ,
탄현면 금승리의 황희신도비문(黃喜神道碑文)의 글씨를 쓰셨다.
안침(安琛 12세) 선조와 아드님이신 안처성(安處誠 13세) 선조와 손자 되시는 안정(安珽 14세) 선조께서도 내리 3대에 걸쳐 서화가로 이름을 빛내셨던 점이 또한 특이하다.
4. 안한(安翰) : 죽계(竹溪 1513-1596년)
자(字)는 계형(癸亨)이고 호(號)는 죽계(竹溪) 또는 경력(經歷)이라 하였으며 1546년 병오에 진사(進士)하였다. 안침(安琛) 선조 공평공(恭平公 1파 12세)과 똑같은 죽계(竹溪)라는 아호를 쓰신 점이 특이하다.
대사헌공인 휘 숭효(諱 崇孝)는 증조부(曾祖父)이시다.
글씨체가 촉체(蜀體)로 명필(名筆)로 이름 높고 내직(內職)으로 충훈경력(忠勳經歷)과 군기판관첨정(軍器判官僉正)이며 외직(外職)으로 의성현령(義城縣令)하고 노직(老職)으로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하여 사왕조(四王朝)를 섬김에 사리(事理)에 통달(通達)하다.
1596년 선조(29년) 병신(丙申) 10월 20일에 졸(卒)하니 향년(享年) 84세이다.
83세에 쓴 적벽부(赤壁賦)가 가보(家寶)로 전해오며 정숙옹주의 남편인 동양위(東陽尉)인 신익성(申翊聖)과 유대장(柳大將)인 혁연(赫然)이 촉체(蜀體 : 중국 촉나라 조맹부의 글씨체)로 유명했는데 일찌기 공(公)의 이 글씨를 보고 나로서는 도저히 따르지 못하겠다며 감탄(感嘆)하였다고 한다.
미염공(美髥公) 관우(關羽)하면 아름다운 수염과 함께 그 풍채의 수려함으로 잘 알려져 있거니와 우리의 의성공 안한 선조께서도 관우처럼 뛰어난 풍채를 가지셨는데, 수염을 날리며 말을 타고 길을 가시면 으레 수많은 아이들이 졸졸따라 다녔다고 한다.
견한잡록에 기록되어 있는 공(公)의 시로 견한잡록은 조선 중기의 문신인 청천당(聽天堂) 심수경(沈守慶)이 다년간 연대에 따라 문신들과 교우하면서 기록한 것으로 그중 안한(安翰)과 송서교(宋西郊 송찬)와 주고받은 시의 내용이다.
갑오년 겨울에 주고 받은시
심청천(沈聽天 심수경)-77세
吾鄕耆老會多年(오향기로회다년) : 우리 마을 노인들 다년간 모임 갖더니
一散東西事幾遷(일산동서사기천) : 한번 동서로 흩어진 후 세상사 몇 번이나 변했는고
今日生存只三箇(금일생존지삼개) : 지금 살아 있는 이는 단지 세 사람
回思舊興却茫然(회사구흥각망연) : 옛일 회상하노라면 그저 멍해지네
안죽계(安竹溪 안한)-80세
四隣知姓不知年(사린지성불지년) : 이웃에서 성은 알아도 나이는 몰랐으니
自少交情老豈遷(자소교정로기천) : 젊어 사귄 정 늙은들 변할까
今日三人成鼎坐(금일삼인성정좌) : 오늘 셋이 솥발처럼 앉으니
這間肝膽照皤然(저간간담조파연) : 그 동안의 마음이 흰 머리에 비춰지네
송서교(宋西郊 송찬)-동지(同知) 송찬 82세
城西爭鵠屬殘年(성서쟁곡속잔년) : 성 서쪽에서 활이나 쏘며 여생을 보내노라니
成癖難爲他技遷(성벽난위타기천) : 습관이 되어 다른 일은 하기 어려웠네
今日漂零思射?(금일표령사사?) : 오늘 쓸쓸히 활쏘던 옛일을 생각하노라니
不禁哀涕自潸然(불금애체자산연) : 슬픔을 금치 못하여 눈물이 흐르네
을미년 가을에 주고 받은 시
심청천(沈聽天 심수경)-80세
二年經大亂(이년경대란) : 두 해나 큰 난리를 겪고도
三老保餘生(삼로보여생) : 세 늙은이 여생 보전하였네
舊會猶堪續(구회유감속) : 옛 모임을 여전히 계속하여
新醅正可傾(신배정가경) : 새 술이나 꼭 마셔보세
相看鬚鬢白(상간수빈백) : 서로 수염과 귀밑털이 흰 것을 바라보며
共作笑談淸(공작소담청) : 똑같이 웃으며 담소가 맑네
托契知多少(탁계지다소) : 계모임에 몇 사람인지 알겠어
吾儕最有情(오제최유정) : 우리가 가장 정이 두텁구나
안죽계(安竹溪 안한)-83세
重修舊契客(중수구계객) : 다시 옛 계를 계속하니
庚癸丙年生(경계병년생) : 경오ㆍ계유ㆍ병자생이네
仙果金盤薦(선과금반천) : 선과는 금쟁반에 올리고
香醅盡盞傾(향배진잔경) : 향기로운 술은 잔 가득 기울이네
白頭商嶺老(백두상령로) : 흰 머리는 상산사호처럼 늙고
高興竹林淸(고흥죽림청) : 높은 흥은 죽림처럼 맑네
百歲無多日(백세무다일) : 백 세를 살아도 날이 많지 않으니
終須盡此情(종수진차정) : 모름지기 이 정을 다하리
송서교(宋西郊 송찬)-86세
濛濛昏雨歇(몽몽혼우헐) : 부슬부슬 내리던 비 그쳤으니
促席話平生(촉석화평생) : 어서 앉아 지난 일이나 이야기하세
靑眼論文對(청안론문대) : 청안으로 문장을 의논하고
丹心挾酒傾(단심협주경) : 단심은 마시기에 기울어지네
征鴻呼侶急(정홍호려급) : 가는 기러기 짝 부르느라 급하고
寒菊送香淸(한국송향청) : 찬 국화 맑은 향기 보내 주네
倚醉看斜日(의취간사일) : 취해서 지는 해 보자스랴
誰知坐久情(수지좌구정) : 뉘라서 오래 있는 정 알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