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2불의 도시 투루판(吐魯番)의 고창고성(高昌故城).
◈ 일시 : 2007. 9. 29~10 .7일 (8박 9일).
◈ 위치 : 중국 제일 서쪽의 신장위그루자치구와간쑤성.
◈ 여행코스: 인천공항 →우루무치(烏魯木齊 오노목제)(신강 위그루자치구 박물관. 천산천지)→투루판(吐魯番토로번)
(고창고성,아스타나 고분군,베제트릭 천불동,카레즈,교하고성,소공탑,포도농원,화염산,토욕구 천불동)→
산산(鄯善:선선)(쿠마타크사막)→하미(哈密 합밀)(마귀성,빠리쿤초원,회왕릉)→둔황(敦煌 돈황)
(돈황고성,양관,명사산,월야천,막고굴)→우루무치(烏魯木齊 오노목제)(홍산공원,남산목장,국제바자르)→인천공항.
◈ 지도 : 중국지도. 눌러 보세요.
간쑤성지도. 눌러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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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실크로드의 핵심인 둔황과 신장자치구의 위치를 그려본 것이다.
실크로드 전체루트.붉은점표시한곳이 이번에 들린곳이다.
실크로드. 눌러 보세요. 좀 크게 잘라본 그림이다. 붉은점표시한곳이 이번에 들린곳이다.
실크로드를 입체적으로 그려 이해를도운 그림이 있길래 퍼온 그림이다.
신장위그루자치구의 우무루치-투루판-선선- 하미까지의 경로다.
우무루치 주변 지도다.
투루판지역의 관광지 위치.역은 시내서 60여km떨어져있다.
10. 1(월).3일.투루판(吐魯番 토로번).
09 :00~09 :45. 시내동쪽 40여 km거리의 고창고성(高昌故城 가오창구청)으로 이동.
09 :45~10 :33. 당나귀차 타고 고창고성관광.
09 :43~11 :17. 고창고성인근의 아사타나 고분군(阿斯塔那古墓어쓰타나구펀췬).
11 :35~12 :15.베제크릭천불동(柏孜克里克千佛洞( 바이쯔커리커쳰푸둥).
12 :15~12 :52.투루판시내로 돌아옴(45km).
13 :47~14 :22. 식사후 카레즈박물관.
14 :25~15 :23. 양탄자 상점들려 쇼핑.
15 :23~16 :53. 시내서쪽 10여 km떨어진 교하고성(交河故城).
17 :15~17 :35.시내동쪽 2km거리의 소공탑(蘇公塔(쑤궁타) .
17 :45~18 :15. 포도농원.
18 :25~ 양고기 바베퀴로 저녁식사.
투루판(吐魯蕃 - TULUFAN) .
중국 신장웨이우얼[新疆維吾爾] 자치구 톈산산맥[天山山脈] 동쪽에 있는 도시이름이나
때론 이 도시를 중심으로 남북 60km, 동서 120km 분지 전체를 통틀어 투르판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지명은 15, 16세기에 이 분지에서 세력을 떨쳤던 투르판국(國)과 그 도성(都城)의 이름에서 유래한다.
총 면적은 6.97㎢이며, 50만 명의 인구가 살고 있다. 위구르족, 한족, 회족 등 25개의 민족이 살고 있으며, 그 중 위구르족이 전체 인구의 73%를 차지한다.
투루판은 신강위구르 자치구의 일부분으로, 1975년 7월 15일, 국무원의 비준을 거쳐 성립된 도시이다. 투루판이란 위구르어로 '패인 땅'이라는 뜻이다.
투루판 분지는 이름의 뜻만큼이나 중국에서 가장 표고가 낮은 지역으로, 그 중에서도 애정호(艾丁湖- 아이띵후)의 수면은 평지보다 154m나 낮다.
세계에서는 이스라엘의 사해에 이어 두 번째로 낮은 곳이다. 그 모습이 또한 장관을 연출해 뒤에 둘러진 천산의 주봉과 함께 신강의 아름다운 모습을 대표하고 있다.
이곳은 중국에서 가장 더운 곳으로 연간 최고 기온은 47.5℃, 지표면의 온도는 무려 70℃나 된다.
그러나 사막기후의 특유한 일교차가 크므로 해가 지면 급격히 기온이 내려가 15℃정도가 된다.
이런기후로 인해서 포도가 많이 생산돼 포도축제가 열리고 위구르족의 전통무용도 볼 수 있는 곳으로,
가을이나 겨울에는 선선해서 여행하기 매우 좋다.
또 투루판이 오아시스 도시이기때문에 규모가 크지 않아 걸어서도 도시전체를 돌아볼 수 있는데,
거리에는 차보다도 양이 너 많이 지나다니며, 그 분위기가 독특한 이슬람문화와 어우러져 이국적이고 색다르다.
최근에는 새로 신설된 천산지구(天山地區)로 통하는 철도의 주요역(驛)이 되어 옛부터 서역의 교통요지였던 명성을 유지해 가고 있다.
이 도시의 북서쪽에 있는 야르호토는 한대(漢代)의 사서(史書)에 차사국(車師國)이라고 기록된 교하성(交河城)이고,
남서쪽의 카라호토는 고창국(高昌國)의 수도였던 고창성(高昌城)이다.
그 때문에 청대(淸代) 이전까지는 분지 전체를 고창 또는 호토라고 불렀다.
투루판의 특산품은 포도와 주머니칼,하마과가 있다.
◈ 여행후기.
2007.10.1.3삼일째.
어제 우루무치와는 사뭇 날씨가 다르다. 어젠 제법선선해서 트라우져를 입었는데 오늘은 반팔이다.
중국에서 가장더워 최고 47.5도까지 내려갔고 지대도가장낮은 -154m까지 내려가는 지방이란다.
아침에 일어나서 우선 옥상엘 올라가 봤다. 어떻게생긴 동네인가 보려면 옥상이 제일이다.
옥상은 온통 태양열판이 차지하고 있고 오성기를 비롯한 형형색색의 깃발들이 나붓끼고 있다.이사람들 참 깃발을 어지간히 좋아한다.
주변은 온통 포도밭이고 키큰 미류나무들이 줄을 서 있다.거긴아마 카레즈 수로일것이다.
농가집들지붕엔 나뭇가지들을 올려 더위를 덜고있고 포도 건조장들도 보인다.
이포도 건조장도 대형화돼서 돈많은 사람들은 여러개씩 가지고 임대를 하는곳도 있단다.
호텔안 정원엔 낯설은 나무로 만든 인물조각들이 보이는데 라마교의 작품이란다.
아침을 먹고 시내를 지나서 어제 온 312번 도로를 따라 돈황가는길로 한참을 가니 왼쪽에 붉은색의 화염산이 보이고
우측으로 꺽어져 좀 들어가니 마을이 나오고 어느 허름한 창고같은곳으로 들어가더니 고창고성이란다.
변변한 매표소하나없이 옷가지가 걸려있는작은 상점이 두어개있고 함석문을 열면 옛고창고성의 폐허가 있다.
고창고성(高昌故城 : 까오창꾸청)
황량함 속에 옛 고대인들의 생활자취를 그대로 엿볼 수 있는 곳이다.
499년 한나라 출신인 국문태가 고창국을 세워 1275년 원나라에의해 망한 옛 고창왕국의 유적지다.
투루판시 동쪽에서 40㎞ 떨어진 화염산 기슭에 위치해 있는데, 지금은 불타오르는 듯 화염산을 배경으로 폐허만 남아있다.
기원전 1세기에 고창벽이 지어졌으나, 13세기에 전쟁으로 훼손되었다.
교하고성과는 달리 흙벽돌로 축적된 사각형으로, 벽돌을 견고하게 하기 위해 버들가지나 마른풀을 섞었는데
황국이 멸망한 후 주위 농부들이 벽돌을 깨서 비료로 쓰는 바람에 폐허가 된 것이라 한다.
지금은 사원과 궁전 유적 이외에는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만큼 파손되어 있다. 그러나 아직 성윤곽은 남아 있다.
고창고성은 장방형으로 매우 크고 길이는 5㎞이며, 외성, 내성, 궁성의 세 부분으로 나뉜다.
지금은 외성,내성터는 거의 없고 궁전이 있던 궁성터만 남아있고 평민 유적은 남아잇는것이 없다.
궁성 유적지의 중요한 유물들은 대부분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걸쳐
러시아ㆍ독일ㆍ영국ㆍ일본 등의 소위 “탐험가”라는 약탈자들에 의해 도굴당했다.
문을열고 들어서면 우선 당나귀마로 영업하는 위그루인들이 반긴다.
중심부까지는 거리가 멀고 뜨거운 모래람에 먼지가 일어서 당나귀차를 타고간다.
고성의 맨위엔 대불사 사원터가 있고 그 앞엔 둥근원형의 사원터안에 현장법사가 설법하던 설법당이있다.
현장법사가 천축으로 불경을 구하러갈때 이곳을 들렸는데 고창국왕의 간곡한 권유로 한달동안 이곳에서 설법을했다.
한달후 천축으로 갈땐 왕의 호의로 여타 다른 나라를쉽게 통과하여 천축엘갔단다.
그후 현자법사가 천축에서 돌아올땐 고창국은 망하고 없었단다.
위그루인 여인들은 고유의상을하고 사진찍는 모델을 하고 남자들은 고유악기로 연주하며 돈을 벌고있다.
고창고성에서 보는 화염산은 붉은색을 띄고 화염에 이글거리고 있다.
다시 당나귀차를 타고 내려와서 다음 아사타나고분군으로 간다.
투루판의 포도밭과 농가들.
투루판은 인구 5만정도 되고 덮고 건조한곳이라 포도가 세계적으로 유명한곳이다.
년 강수량이 16mm에 증발량은 3000mm인 지방이니 지붕은 엉성하고 그늘지게 나뭇가지들을 얹어놨다.
이틀간 묵었던 교하장원모습.
우루무치서 2-3시간 돈황서는 12시간거리다.중국에서 가장낮고 가장 더운지방이다.
사상도 정치도 인종도 뛰어넘어 중국과 동남아를 통일시킨 발 맛사지.
호텔 정원엔 이런 나무 조각상들이 많다.라마교란다.
조각상들을 한데 모아봤다.
포도 건조장.
이건 부잣집인지 고급이다.보통은 엉성한 흙벽돌로 얼기설기 얹어서 만든다.
불타는 화염산이다.
최고 47.5도까지 올라갔고 지표온도는 70도를간단다. 손오공의 화염산불길을 끄는 파초선이 나오는곳이다.
엉성한 고창고성입구의 매표소.이문을 열면고창고성이다.
499년 한나라 출신인 국문태가 고창국을 세워 1275년 원나라에의해 망한 옛 고창왕국의 유적지다.
고창고성뒤로 불타는 화염산이 보인다.
고창제국이 멸망한 후 주위 농부들이 벽돌(풀과 나뭇가지를 넣어 만든)을 깨서 비료로 쓰는 바람에 폐허가 된 것이라 한다.
고창성은 길이가 5km되며 , 외성, 내성, 궁성터가 있다. 이것은궁성터의 대불 사원터이다.
현장이 천축으로 갈때 한달간 머물면서 설법한 설법당.현장에 천축에서 돌아올때도 들렸는데 그때는 고창국은 망하여 없었다.
고창고성은 이렇게 벽돌을 쌓아서 지은 성이고 교하고성은 땅을파서 지은 성이다.
현장이 설법한 설법당과 모델인 위그루아가씨들.
악기를 여주하는 위그루남자들모습. 광광객들은 모래바람이 불어 이렇게 마스크를하고 하고있다.
대불사터.고대 고창국시절 서역의 굩오,문화의중심지였다.
고창고성과 화염산.
고창고성은 벽돌로 쌓은 성이고 교하고성은 땅을파서 만든성이다.
고창고성입구의 당나귀마차.당나귀는 이지방에선 아주 유용한 일꾼이다.
아래의 그림들은 보지는 못했지만 안내책자에 있는 고창고성에서 나온 유물들 그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