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전 한국은 IMF를 지나고 어떤것에 도전하는 이들에게는 많은것이 도약이었다. 그렇게 봄은 시작되고 내삶은 꿈과도 같이 벗꽃 흐드러지듯 피어났다.
서른 초반에 시작된 내 부동산 사업 아니 투기라고 말하는게 좋겠다. 지나보니 모두 그건 도박과 다를바가 없었다. 마치 바카라의 한쪽 장줄 깡뱃처럼 이어진 배팅은 계속해서 이겼다.
십대에 시골에서 상경후 가난한 10년을 셋방살이 살때 운전중에 화장실을 찾던중 대로변에 호스트가 사은품 준다며 한참 홍보중이고 그틈을 타서 모델하우스에 소변보러 들어갔다.
내 수준에서 보기에 모델하우스 아파트는 대궐같았고 어떻하면 이런데 살수있는건가? 싶었다. 어느날 부동산 간판이 눈에 띄었다. 중개사에게 아파트에 대해 추상적이지만 물어보았다.
현재 보증금 2천만원에 월세 산다하니, 있는것 하고 당시 저금리의 여신을 끼우면 10년된 아파트지만 언제든 현금화할수있어 시장성이 좋은 내집을 살수도있다고 중개사가 부추겼다.
집값의 70%이상을 대출 받아야 가능했지만 겁나지 않았다. 당시 월세 25만원에 살았으니 월이자는 그것에 반이되지 않는게 나에겐 매력적이었다. '원금은 벌어서 갚지 뭐! ' 생각했다.
그렇게 일을 저지르고나서 페인트를 두어통사고 아파트문을 열었다. 24평형 이었지만 앞발코니 끝에서 뒷발코니까지 하루종일 걸어가야 닿을것 같이 넓어보였다.
몰딩에 주황색 페인트를 한통 칠하고나니 지쳤지만 보기좋았다. 진작에 내집을사서 올수 있었는데 방법을 몰랐던게 아쉬웠다.
이제는 돈을벌어 대출을 갚을 궁리를 했고 기존에하던 막일로는 안되겠다 싶었다. 그러자면 무언가 일을벌여야 했다. 어느날 아줌마들이 센베이 박스과자를 파는것이 눈에띄었다. 그것을 할수있을것 같았다.
때마침 막노동하여 중고상에서 100만원에 구입한 승합차를 활용하면 적격이었다. 수소문하여 공장에 찾아가니 대리점 계약보증금 천만원걸고 계약을하면 베개 크기만한 과자 한박스를 2천원에 공급 받을수 있었다.
주부사원들이 5천원에 팔고 있었으니 마진이 좋았다. 하지만 나에게 천만원은 없었다. 엘리베이터 바닥에 보인 쪽지! '추가담보 즉시대출 최저금리 월 20%'
과자 한파트에 천박스 다팔면 3백만원 마진이고 사채이자 20만원 내고도 280만원 남는것이니 한달간 하루에 30박스씩 팔자고 도전에 주저하지 않았다.
숨도쉬지 않고 담보대츨을 질렀다. 막상 추가대출 절차를 진행해보니 그것은 그냥 고금리 근저당 담보 사채대출이었다. 부동산 관계자들 눈치에 창피했지만 집이있으니 이런 방법도 있구나 위안삼았다.
과자를 떼서 아파트 방이 3개이니 남는방에 잔뜩 채웠다. 15층이다보니 엘리베이터의 주민들 눈총이 따가웠다. 해서 이른새벽에 제품배송을 사정했다.
과자를 팔기위해 이곳저곳을 돌다가 초중고 교무실로 교사들을 집중적으로 찾아갔다. 비교적 교사들은 세상물정에 어둡고 "우와 과자 싸다!" 하며 까다롭지 않았다.
어떤 리더쉽 강한 교사는 "내가 많이 팔아줄테니까 나 한박스 줘요!" 하고는 거의 대부분 교사들에게 두박스씩 강매시켜 한군데서 30박스를 떨이치기도 했다.
그러던중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한 아주머니가 "그거 파는거에요 ?" 하길래 설명해주었더니 자기 동서가 생활 형편이 어려워 뭐라도 하겠다니 소개하면 어떨까 말했고
봉고차에 같이타고 다니며 방문판매 하다가 수입이 괜찮아지니 아줌마 주변에 지인들 세명이 추가되어 우리는 다섯명 한팀이 되었다. 다들 전업주부였지만 두명은 미인이었고 두명은 입담이 좋았다.
마진 3천원중에 이천원을 판매사원에게 주었지만 나는 불어난 물량을 차에서 교무실 앞으로 배달만하면 되었고 판매수량은 몇배로 늘어났다.
마진이 줄어도 판매량이 늘어나니 수익은 더 많아졌으며 공장에서는 실적이 좋은 도매인에게 장려선물로 한달에 한두번 20박스씩 더 싣고와 내려주기도 했고 이후에는 박스당 공급가를 300원 내려주었는데 그 금액은 가히 대단했다.
조그만 물품적재 상가도 얻어서 물량은 매번 꽉채워졌고 팀원 아주머니에게 일이 없어 놀던 승합차 소유자도 소개받아 이후 네팀으로 늘어났다. 그렇게 8개월 정도 지날즈음 아파트 빚을 다 갚고도 내 통장에는 1억원 이상이 더 있게되었다.
그러다 과자사업은 여기저기 경쟁이 되어 이제는 난립하고 매출은 줄어들었으며 낮은가격에 덤핑이 속출했고 끝날때가 되었다. 팀원들에게 다른아이템을 제공해야됨을 고민했고 두번째 아이템은 고향 마을에 '사과'였다.
봉지에 담아 팔수는 없었기에 스치로폴 공장에 포장용기를 주문했고 어설프지만 황금사과 라고 스티커도 제작하여 붙혔다. 사과 또한 시장가에비해 판매가가 절반이고 과수원에서 바로 가져오니 품질이 좋았다.
기존에 적군이었던 과자판매 경쟁업체도 팀해체위기를 맞자 나를 찾아와 과일 공급을 요청했다. 그러다보니 1억 이상은 더 벌었던것 같다. 지금에 비하면 그때돈 2억은 지금 대략 네배정도는 될것이다.
과일은 제철이 지나면서 공급이 끊겼고 또다른 아이템은 찾지못했다. 아니 솔직히 찾지 않았다. 하루 20시간을 일하다보니 지쳤고 좀 쉬고 싶었다. 문득 오창신도시 모델하우스에서 보았던 아파트가 완공된 모습이 정말 그러한지 가보고 싶어졌다.
다들 멋있게 지어졌으나 여러 시공사들의 동시입주와 실거주자 빈약으로 인해 전세활용 매입을 계획했던 투자자들의 물량이 쏟아졌고 프리미엄을 기대했던 아파트가는 원가보다 3~4천씩 하락하여 급매물로 나왔다. 사고 싶었다.
기존 살던집을 팔면 얼마나되는지 문의하니 몇천이 더올라서 거의 배의 가격이 되어있었고 바로 팔면 세금이 많다하여 전세를 놓기로했는데 한화공장 지방 이전으로 회사원의 대거이주 정책에 전세가와 매매가가 거의 비슷해지는 이상현상이 생겼기 때문이다.
현금을 다주고 30평의 집을 사려 계획했는데 부동산 하는말이 지금 대출 고정금리가 최저이고 이걸 받아서 사 놓아야 나중에 팔기도 수월하다고 완납하지 말으라 조언했다. 계약후 잔금일 한달남짓을 기다리던중 부동산에서 연락이 왔다.
갑자기 전세세입자들이 늘어나서 집이 필요하다고 세놓으라고 했다. 내가 살집은 어떻하냐했더니 입주시작한 또다른 아파트를 저렴하게 구해줄테니 안심하라했고 승낙했다.
그 과정에 계산해보니 대출금과 전세금을 합하면 집을 사는데 현금이 고작 천만원 조금넘게 들뿐이었고 실상 내 현금은 그대로인데 집은한채 생기는 경우가 되다보니 왠지 뿌듯했다.
그리고 부동산에서 만난 분양자들이 투자목적이었지만 팔리지 않아 계약포기를 하느니 살던집을 정리해서 실입주를 해야겠다고 투덜거렸다.
그런것들을 접하자니 내 통박에 대거 입주가 전세던 실입주이던 다 채워지기만 한다면 내려간 원가는 다시 보충될거라는 생각을했다. 1년동안 내야할 전체이자 1억정도를 현금으로 남겨두고 급매물들을 골라서 대출과 전세를 끼워서 열다섯채의 집을샀다.
잘못되더라도 1년후에 일은 그때 생각하기로 했다. 그중 하나는 내가 이사해서 살았고 3개월이상 그냥 놀고 먹으며 부동산 사무실만 여기저기 주구장창 놀러다니며 오창에 집 팔리면 다른매입을 해보겠다며 커피를 얻어 마셨다.
그 즈음에 하나둘의 부동산에세 연락이 왔다. 집값이 제법 올라가고 있다고.... 그리고 팔생각이 있나고....
첫댓글 읽다보니 엄청나네요..
글솜씨가 남다르십니다.^^
오~ 필력 좋으시네요
금방 후다다구 읽어집니다
흥미진진하네요~
즐겁게 보고있습니다 ~
점점 빠져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