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지오 바사리(Giorgio Vasari,1511~1574)가 「미술가 열전」에서 얀 반 아이크의 ‘비밀의 기법’에 대해 말한 이래 그는 오랫동안 유화의 발명자로 알려졌다.
그러나 유화를 발명한 사람은 얀이 아니라 ‘크레마-루의 화가’ 로베르토 칸빈이다. 그는 화용액, 그리고 휘발성 유를 사용해서 최초의 유화를 사용한 사람이다.
템페라가 분말로 된 안료에 수용성인 투명한 계란을 혼합하지만 얇고 강한 속건성의 피막을 사용하기에 적합하다. 그러나 풍부한 색을 표현하기가 힘들고 색조를 단계적으로 표현하는 것도 힘들다. 유채화는 용제에 기름을 사용하는 것에 따라 템페라의 단점을 보완한다.
물론 중세의 미술가들도 유화물감을 사용했지만 그것은 한정된 부분이었다. 예를들면 돌의 표면에 물감을 바르는가 하거나 금박에 착색하는 정도였다.
건조는 빠르지만 점착력이 있는 유화물감을 사용해서 얇은 투명한 피막으로부터 두터운 칠까지 다양한 변화를 준 사람이 칸빈이다. 칸빈의 다음에 얀 반 아이크는 기법을 개발해서 얇고 투명한 물감에 깊이를 주고 다양한 색, 부드러운 음영, 매끄러운 명암, 빛의 반영과 질감 묘사에 따라 놀라운 사실을 실현했다.
예를 들면 투명한 색(프러시안 블루)을 불투명한 색(레몬 옐로우)의 무게를 가한다면 새로운 색(녹색)이 만들어지지만 그 순수함과 강렬함은 빠렛트 위에 두 개의 색을 직접 혼합 할 수 있다. 그러나 칸 빈과 얀 반 아이크가 사용했던 기법은 정확하게는 유화와 템페라가 혼합된 기법이다.
예를 들면 얀 반아이크의 <아르놀피니의 부부상>에서 피부가 전해지는 것처럼 의복과 모발, 전경의 개의 털 등 (많은 부분이 많은 화가들에게 전수되었지만 혼합기법은 현대에는 인상파 일부에게 남겨져 있다)
세필묘사는 유화물감에서는 불가능하고 템페라에서는 묘사가 가능하다. 유화기법에 따르면 화구가 용해된 것에 바로 닦는 것이 회화가 가능하며 색의 강약에 따라 원근법의 암시가 가능해졌다. 이 배경에는 당시 활기를 일으킨 현실주의적 사상과 운동이 크게 작용했고 유화기법은 이탈리아를 시작으로 유럽 각지에 퍼지게 되었다.**
유화의 발명자로 알려진 얀 반 아이크 형제의 유명한 작품 '아르놀피니의 부부'. 하지만, 이들이 유화를 무의 상태에서 에디슨처럼 발명한 것이 아니라 이전에 있었던 유화 기법을 가장 적절하게 개선한 작가라고 하는 것이 맞다. 유화물감은 중세시대에도 있었다.
이렇게 유화는 발명된 것이 아니라 템페라를 사용했던 작가들이 표현법의 한계에 부딪쳐서 계란 대신 기름을 섞어 쓴 것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표현법의 계발, 발견이라는 말이 맞고, 얀 반 아이크의 작품에서는 이러한 유화 기법의 특징을 처음으로 잘 살린 작가이다. 얀 반 아이크 이전에도 수많은 화가들이 기름을 사용하려고 했으며,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그리고 템페라로 작업한 화가들도 템페라에 기름을 섞어 그렸다.
미술 재료의 역사의 흐름을 읽어 나가면 흥미로운 점을 발견 할 수 있다. 에디슨이 전기를 발명하듯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새롭고 신기한 물건을 발명한 것이 아니라, 이전의 것에서 좀더 좋은 쪽으로 개발하고 개선했다는 것이 맞다.
예를 들어, 템페라 물감을 썼던 북유럽 화가들이 계란 노른자에 기름을 섞게 된 것은 좀더 부드러운 효과를 원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점차 계란 노른자를 빼고 기름만을 쓰게 된 게 오늘날의 유화이다.
처음에 유화는 현재 사용하는 물엿과 같은 점성을 가지지 않았었다. 좀더 묽고 엷고 투명한 액체와 같았다고 한다. 따라서 점성이 있는 템페라와 혼용하는 혼합 기법을 많이 사용했다.
그러다가 독립적으로 유화를 사용하게 된다. 모리타 츠네유키 교수는 ‘유화와 유화재료의 어제와 오늘’이라는 글에서 유화물감을 중세시대에도 사용했다고 한다. “유화의 가치가 유화역사 상에서 인정되기 시작한 것은 15세기 중반 부터이다. 그러나 유화물감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중세의 회화기법술사의 사례를 보면 10세기 말에는 유화물감을 사용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강아지의 털, 옷의 털의 부분 묘사에서는 유화기법에서 쓰이는 그라데이션보다는 템페라의 해칭기법이 남아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작품은 템페라 기법과 유화기법에서 쓰이는 기법들의 혼용이 보이는 과도기적 그림이다,
유화물감을 적절하게 처음으로 개선한 곳이 북유럽의 프랑드르 지방의 화가들이었다면 유화물감을 가장 멋지게 적용하고 기법을 발전시킨 것은 이탈리아의 피렌체이다.
김광우 씨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과학과 미켈란젤로의 영혼>(미술문화)에서는 이러한 사실을 드라마틱하고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레오나르도는 알레소 발도비네티의 작업장에도 갔다. 그는 발도비네티의 풍경화에 관심이 있었지만 물감비법에 더 관심이 있었던 것 같다. 발도비네티의 작업장에는 아궁이가 있었고 계란 노른자와 송진을 섞어 유약 효과를 냈는 데, 이것을 사용해 프레스코 화를 그리면 유화처럼 신선하고 밝은 느낌을 줄 수 있었기 때 문이다. 바사리에 의하면 플랑드르 대가들의 작품이 1530년대에 나폴리와 우르비노에 소개되어 사 람들을 놀라게 했는데, 화면이 매끈하고 빛났으며 색상과 투명한 효과는 전통적인 방법의 채색으로는 도저히 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화가들은 이런 북유럽 화가들의 비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회화사에 혁명과도 같은 유화물감이 피렌체에 소개된 것은 플랑드르 화가 얀 반 에이크에 의해서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바사리에 의하면 1456~79년에 주로 활약한 시실리 사람 안토넬로 다 메시나가 이 비법에 대한 실험을 했지만 번번이 실패한 끝에 플랑드르로 가서 얀 반 아이크로부터 방법을 직접 알아냈다고 한다. 안토넬로는 베네치아에 안주한 후 친구들에게 이 비법을 가르쳤으며 도메니코 베네치아노 가 이를 배워 피렌체의 작업장에 소개했다.
페루지노 '성 세바스티안의 순교 부분 ' 1494
이탈리아의 화가들은 프랑드르 지방의 그림을 보고 자극을 받아 자신들 만의 독특한 유화기법을 개발한다. 특히 유화기법의 특징인 그라데이션을 잘 사용해 외곽을 흐리게 하면서 부드럽게 하는 기법들을 만들어 낸다. 페루지노는 이를 너무 의식해서 사용하다보니 작품이 좀더 감상적이 되었다. 그러나 유화의 기법을 잘 살린 그림으로 색의 깊이감이나 흐름, 전체적인 유화만이 가질 수 있는 작품을 제작했다.
1470년경 레오나르도가 화가로서 첫 발을 디딜 때만 해도 토스카나 화가들은 유화물감을 사용하는 방법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러나 일부 화가들이 유화물감의 효과를 실험하면서 작품에 유약을 발라 화면을 매끄럽고 빛나게 만들었다. 베로키오의 작업장에서는
유화물감의 혁명을 이룬 것 같았고 이로 인해 상업적으로도 크게 성공한 듯 보인다.
레오나르도와 페루지노가 이곳에서 유화물감 사용법을 배웠으며 이후 라파엘로에까지 전수 된 것 같다. 물 대신 오일을 사용한 것은 회화에 큰 변화를 가져다주었는데, 물감이 번지지 않은 상태 에서 다른 물감을 덧칠할 수 있어 원하는 색을 섞어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마르는 데 시 간이 걸리므로 색을 정정할 수도 있었다. 색 위에 색을 덮어 릴리프 효과도 낼 수 있게 되었으며, 색의 뉘앙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되 었고, 외곽선을 부드럽게 할 수 있었으므로 그림이 부드러워지고 깊이감을 나타낼 수 있어 새로운 미적 감각을 야기했다. 페루지노는 이런 부드러운 느낌을 지나치게 즐긴 나머지 작품을 감상적이 되게 했다. 그는 레오나르도보다 조금 늦게 베로키오의 작업장에 들어왔다. 그는 레오나르도보다 최소한 서너 살 많았고 두 사람은 개성과 야망도 같지 않았다. 그는 이 시기에 이미 자신의 고유한 양식을 갖고 있었지만 피렌체 화가들과의 교류를 통해 현대화 할 필요성을 느꼈던 것 같다. 페루지노와 레오나르도는 젊은 화가 로렌초 디 크레디의 도움을 받아 유화물감을 만드는 방법을 배운 것 같다. 크레디는 베로키오가 사망한 1488년까지 작업장에 머물렀다. 그는 기교에 뛰어났지만 개성 있는 양식을 창조해내지는 못했다. 그는 레오나르도의 초기 양식에 영향을 받았고, 1510년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체에 그린 <성모와 성인들>을 보면 프라 바르톨로메오의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레오나르도가 남긴 기록에는 그가 유화물감을 만드는 비법에 관해 알려고 노력했고 여러 차례에 걸쳐서 실험했지만 실패했다고 한다.”
이 작품에서도 사실적인 묘사와 함께 발의 부드러운 느낌을 잘 표현해 주고 있다.
페루지노 "Santa Caterina d'Alessandria" 의 부분
*『서양화를 배우자』-기법과 제작 표현(동경조형예술대학 편)을 번역, 편집
**『회화의 기법과 표현의 가능성』 기무라 사게노부 번역 홍세연
***『서양화를 배우자』-기법과 제작 표현(동경조형예술대학 편)
ⓒHong Se-Yon's Painting's Meterial and techniq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