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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속의 동아시아사" 논문에 대한 질문(일, 3월 10일까지)
* 교재를 읽고 다음의 Questions에 대한 답해주세요.
각 교재 문헌에 관해 “새롭게 알게 된 점”, “여전히 의문이 남거나 설명을 원하는 점”, “같이 토론해 보고 싶은 점”을 각각 1개 이상 쓸 것.
1. 강진아, 「16-19세기 동아시아무역권의 세계사적 변용-따라잡기형 발전모델의 모색」, 백영서 편,『동아시아의 지역 질서』, 창비, 2005.
2. 강진아, 「조공질서와 한중 관계: 데니는 왜 청한론을 저술했는가」, 한국고등교육재단 편저, 『중국, 새로운 패러다임: 18인 석학에게 묻다』, 2015.
3. 강진아, 「따라잡기형 발전모델과 16-19세기 아시아의 설탕 교역」, 김병준 편, 『아시아를 상상하다』, 진인진, 2023.
<이유미>
「16-19세기 동아시아무역권의 세계사적 변용-따라잡기형 발전모델의 모색」 中
일본과 조선은 20년의 시간 차를 두고 개항과 불평등조약을 맺었고 또 따라잡기형 발전도 한국이 더 빨랐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단기간에 엄청난 성장을 거친 반면 조선은 정체되고 식민지화의 길로 나아간 것에 대해 그 이유가 궁금했음. 책을 읽은 후, 일본의 은이 동아시아무역권을 통해 국내에 축적한 자본 및 자급화의 과정을 국가가 계획적이고 적극적으로 주도했다는 점 등의 답변을 얻을 수 있었음.
- 「조공질서와 한중 관계: 데니는 왜 청한론을 저술했는가」 中
중국 입장에선 조공체제가 전혀 경제적 이익이 나지 않는 질서였고, 오히려 강력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변경을 안정시키며 평화를 사는 정책이었다는 하마시타 다케시의 입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함께 토론해 보고 싶음.
- 「따라잡기형 발전모델과 16-19세기 아시아의 설탕 교역」 中
아시아 대부분의 지역은 서구 열강의 식민지가 된 상태였으므로 식민 당국의 정책에 큰 영향을 받아 발전은커녕 가지고 있는 잠재력에 비해 퇴보할 수밖에 없었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 성장을 이룩한, 자유무역에 성공한 경제 후진국은 없는지 추가적인 설명을 듣고 싶음.
<정선우>
1. 16-19세기 동아시아무역권의 세계사적 변용
-새롭게 알게 된 점
16-19세기 일본의 은 생산량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었고 은이 역사적으로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알게 되었다
-여전히 의문이 남는 점
식량, 원료 등 토지자원이 필요한 산업을 라틴 아메리카에 할당하는 것과 유럽의 투자능력, 소비능력 향상 사이의 어떠한 관계가 있는지 의문이다
-같이 토론해 보고 싶은 점
라틴 아메리카가 독립된 정치권력을 소유하고 있어 일본과 같은 경제발전을 이루었다면 일본의 따라잡기형 모델이 이 정도로 성공적일 수 있었을까
2. 조공질서와 한중 관계
-새롭게 알게 된 점
데니라는 인물과 그의 저서인 청한론과 조공국들 사이의 상호협력적 관계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었다
-설명을 원하는 점
중국 왕조에 변화에 따라 조공질서가 자세히 어떻게 변화했는지 알고 싶다
-토론하고 싶은 점
갑신정변과 청일 전쟁이 없었다면 데니가 청한론에 서술한 것과 같이 조공질서를 이용해 열강의 침탈을 막고 근대화를 이룰 수 있었을까
3. 16-19세기 아시아의 설탕 교역
-새롭게 알게 된 점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설탕 무역에 중국이 차지한 비중과 그 영향력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었다
-여전히 의문이 남는 점
송 대의 설탕의 서민화와 청 대의 설탕의 서민화에 차이가 의문이다
-토론하고 싶은 점
일본 내 번끼리의 경쟁과정이 일본사의 미친 영향은 무엇이 있을까
<고원>
1.새롭게 알게 된 점:
본 연구는 글로벌 무역 시스템이 점진적으로 형성되는 방법과 이 과정에서 동아시아의 역할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으며 16-19세기 해상무역의 다양한 기술과 수단의 발전이 무역로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무역량을 증가시켰는지 그리고 더 먼 거리의 무역을 가능하게 했는지에 대한 상세한 분석과 함께 세계 무역 네트워크 형성에 있어 기술 발전의 중요성을 이해하는 것은 도움이 될 수 있다. 동시에 이 시대에는 동아시아 국가들이 근대 글로벌 무역의 수동적 참여자에서 특정 상황에서 능동적으로 글로벌 무역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중요한 세력으로 어떻게 변화했는지 자세히 분석함으로써 지정 지연 정치와 경제적 힘의 균형 변화를 이해하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의문점:
동아시아 무역의 정책 변화가 무역 모델의 변화에 어떻게 구체적으로 영향을 미치는가?
같이 토론해 보고 싶어 점:
16세기부터 19세기까지의 역사 경험이 현대 세계 무역 시스템에 영감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2. 새롭게 알게 된 점:
조공체제의 역사적 배경과 정의, 동아시아에서의 운영 방식, 그리고 그 존재의 중요성에 대해 알아보았다. 뿐만 아니라 조공체제의 틀 속에서 무역, 문화교류, 외교적 교류 등 한국과 중국 간의 관계가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의문점:
조공 시스템은 전통적인 동아시아 외교 및 무역 시스템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현대 국제 관계를 이해하는 데 여전히 시사하는 바가 있을 수 있다. 이런 전통이 어떻게 현대 국가의 외교정책에서 재해석되거나 활용될 수 있을까? 전통적인 조공 시스템이 어떻게 역사적으로 역내 평화와 안정을 촉진시켰는지 그리고 이러한 위계 및 의례에 기초한 교류가 현재의 동아시아 나아가 글로벌 국제 관계에 긍정적인 영향이 있을까?
같이 토론해 보고 싶어 점:
현재 글로벌화와 국제 관계가 빠르게 변화하는 상황에서 전통적인 조공체제는 여전히 적용 가능할까?
<이정렬>
1. 강진아, 「16-19세기 동아시아무역권의 세계사적 변용-따라잡기형 발전모델의 모색」, 백영서 편,『동아시아의 지역 질서』, 창비, 2005.
새롭게 알게 된 점
난 단순히 조공이라는 것을 정치적으로나 군사적으로나 중국이 강력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여기에서 주변국들이 조공권에 참가하는 유인은 강력한 중국이 아니라 부유한 중국이라는 사실에 놀랐고 따라잡기형 발전이 어떻게 발생하는지 새롭게 알게 되었다. 또한 중국이 그냥 예전에도 큰 나라였다고만 생각했었지 16세기에서 19세기까지 이렇게 큰 동아시아 무역 시장의 중심이었다는 새로운 사실에 놀라게 되었다
여전히 의문이 남거나 설명을 원하는 점
여기에서는 조선에 대한 이야기들은 거의 안 나오는데 이 시기에 조선은 무역이나 다른 분야에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어떤 기술을 가지고 있었고 어떻게 발전 중이었는지 더욱 더 자세히 궁금하다. 또한 조선이 왜 일본에 비하여 발전 속도가 느렸을지 더욱 자세히 궁금해졌다.
같이 토론해 보고 싶은 점
여기에서 조선은 조공 체제에 적극적 참여로 중국의 선진 기술을 일본이나 타 지역보다 먼저 흡수하고 이를 사회발전에 이용할 수 있었다고 했지만 오히려 이것 때문에 새로운 시대에서는 자립적 발전의 폭과 속도가 오히려 제한 받을 수 밖에 없어 일본보다 발전이 느렸다고 하는데 이 적극적 참여로 인하여 그래도 사회발전을 이뤘기 때문에 장점이 더욱 많은 것일까 오히려 이 때문에 새로운 시대의 자립적 발전이 느려 단점이 더욱 많았던 것일까 토론해보고 싶다.
2. 강진아, 「조공질서와 한중 관계: 데니는 왜 청한론을 저술했는가」, 한국고등교육재단 편저, 『중국, 새로운 패러다임: 18인 석학에게 묻다』, 2015.
새롭게 알게 된 점
조선은 조공을 하면서도 청에게 야만인이라고 생각하고 청도 계속 조선을 의심했다는 것과 일본도 조선입장에서는 우리가 문명국이니 한 수 가르쳐준다고 생각하고 일본은 조공하러 왔다고 서로 생각이 많이 다르고 그것을 어느정도 알면서도 질서가 평화롭게 유지되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되었다. 그리고 청과 조선이 부담스러운 서양과의 교섭을 떠넘기려고 청은 조선은 청의 속국이어서 내정 외교는 자주라고 표현하고 조선은 종주국인 청을 두고 속국이 함부로 이국과의 관계를 맺을 수 없다 라고 표현한 것이 굉장히 재미있었다. 그리고 저 시기때 조선의 자주성에 대해 책을 쓴 데니와 청한론에 대하여 알게 되어서 굉장히 좋았다.
여전히 의문이 남거나 설명을 원하는 점
조선은 서구의 주권 개념과 속국 개념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조공질서의 '속국자주'라는 개념이 있었다. 그 당시 조선의 입장은 군사적 보호는 하되 내정 간섭은 조공질서에 위배된다는 것이라 했는데 이 입장으로 조선은 어떤 자세를 취하고 어떤 행동을 취했는지 자세히 궁금하고 설명을 듣고 싶다
같이 토론해 보고 싶은 점
데니는 조선이 홀로 되었을 때 일본이나 러시아 등 열강의 침탈을 막아낼 힘이 없다고 보고 청과 관계를 끊으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에서 일본이 청일전쟁을 슬리하고 조선을 압박해 고종이 자주독립의 기초를 확고히 세운다고 선언하게 하여 일제의 침략이 가속화되었가는 점도 하나의 사실로 인정할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럼 아주 만약에 청과의 관계가 끊기지 않고 데니의 바람대로 되었다면 일제에게 지배를 받지않았을지 아니면 청이나 다른 나라의 침략에 의해 지배를 받았을지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에 대하여 토론해보고 싶다.
3. 강진아, 「따라잡기형 발전모델과 16-19세기 아시아의 설탕 교역」, 김병준 편, 『아시아를 상상하다』, 진인진, 2023.
새롭게 알게 된 점
이 과거의 무역관계를 설명할때 설탕이라는 주제를 중심이로 다룬다는것이 신기하고 굉장히 흥미로웠다. 또한 설탕이 무역에서 이렇게 중요한 역할을 하고 큰 비중을 차지했었다는 사실에 놀랐고, 우리나라가 주변국들의 비해 설탕생산의 자립화나 설탕소비의 서민화가 늦었다는 점도 새롭게 알게 되었다. 그리고 자유시장하면 약간 긍정적 느낌이 있어서 자유시장이라는 단어를 보고 오 이건 좋은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강제적 자유시장이라는 표현도 나오고 보호관세가 없어서 자국사업을 보호하지 못한다는 내용을 읽고 좋은거는 아니라고 생각들게 되었다.
여전히 의문이 남거나 설명을 원하는 점
여기에서 조선에서 설탕이 많이 공급되기 전에는 주로 약으로 썼다는 내용이 있는데 현재 나의 생각으로는 도대체 설탕을 어떻게 약으로 쓴건지 너무 궁금하다. 그리고 조선은 청에게 적극적 조공참여로 선진기술을 타 지역보다 먼저흡수했다고 첫번째 책에서 나왔는데 왜 설탕에 관한 기술은 주변국보다 늦게 자급화가 되었는지 궁금하다.
같이 토론해 보고 싶은 점
이 책에서 설탕은 과거 중요하고 큰 비중을 차지한 무역상품이었다. 그렇다면 설탕이 큰 무역상품이었던 것 만큼 설탕수출을 통해 나라가 발전할수 있었을 것이다. 이 것에서 나는 무역이라는 것이 한 나라의 성장에 어떻게 얼만큼 영향을 미칠까 궁금해지며 무역이 국가의 성장에 얼만큼 영향을 미칠지에 관하여 한번 토론해보고 싶다.
3.새롭게 알게 된 점:
아시아에서 설탕의 생산, 거래, 소비의 역사적 배경과 그것이 아시아의 각 지역을 연결하는 중요한 경제활동이 되는 과정을 이해하였다.
의문점:
설탕이 상품으로서 아시아 지역 간의 경제적 및 문화적 연결을 어떻게 구축하였으며, 이러한 연결이 세계 설탕 무역 발전에 어떤 영향을 미친가? 설탕 산업의 발전은 종종 노예제(奴隶制) 및 강제 노동을 포함한 노동 착취와 사회적 불평등의 심화를 동반하기 때문에 설탕 거래의 역사에서 이러한 문제는 어떻게 처리되는가?
같이 토론해 보고 싶어 점:
상품 거래가 문화 간 이해 증진과 경제적 상호 연결을 촉진하는 역할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임유태>
1. 강진아, 「16-19세기 동아시아무역권의 세계사적 변용-따라잡기형 발전모델의 모색」, 백영서 편,『동아시아의 지역 질서』, 창비, 2005.
1)새롭게 알게된 점: 중국과 주변국의 조공 관계는 정치적 종속이 아니라 경제적 유인을 목적으로 한 무역이었음.
2)여전히 의문이 남거나 설명을 원하는 점: 현대에는 수입품으로부터 자국 산업을 지키기 위해 관세를 부과하는데 당시 일본은 수공업을 지키기 위해 관세가 아닌 대외 무역 봉쇄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함.
3)같이 토론해보고 싶은점: 기초 과학 및 기술 발전의 격차가 많이 벌어진 현대에도 후발 주자가 과거 일본의 사례처럼 자체 개발로 선진국을 역전하는 것이 가능한가?
2. 강진아, 「조공질서와 한중 관계: 데니는 왜 청한론을 저술했는가」, 한국고등교육재단 편저, 『중국, 새로운 패러다임: 18인 석학에게 묻다』, 2015.
1)새롭게 알게된 점: 서양은 이해할 수 없었던 조공체제를 기반으로 한 아시아의 속국 자주 개념이 있었다.
2)여전히 의문이 남거나 설명이 필요한 점: 조선은 러시아가 조선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을까? 알았다면 왜 러시아의 도움을 원했을까.
3)같이 토론해보고 싶은점: 전근대 조공 질서는 현대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중국 학자의 말과 달리 중국 중심과 미국 중심으로 동 서로 나눠짐이 심해지지는 않을까?
3. 강진아, 「따라잡기형 발전모델과 16-19세기 아시아의 설탕 교역」, 김병준 편, 『아시아를 상상하다』, 진인진, 2023.
1)새롭게 알게된 점: 사탕무 재배가 유럽 내 설탕 생산을 장려하기 위해 보조금을 지급해가면서까지 이루어졌다는 점.
2)여전히 의문이 남거나 설명을 원하는 점: 왜 아시아는 관세자주화와 보호무역이 뒤쳐졌는가.
3)같이 토론해보고 싶은점: 조선이 설탕 문화에서 뒤쳐져 있던 이유.
<이상민>
1. 강진아, 「16-19세기 동아시아무역권의 세계사적 변용-따라잡기형 발전모델의 모색」, 백영서 편,『동아시아의 지역 질서』, 창비, 2005.
새롭게 알게 된 점: 16-19세기 따라잡기형 발전에서 일본이 조선에 비해 더 빠른 속도로 따라갈 수 있었던 이유로 일본은 대량의 은 생산을 통해 국내 자본, 소비층, 안정적 시장을 확보할 수 있었고, 이를 추구하고 주도하는 강력한 국가권력이 존재했으며, 기존 조공체계에 비교적 약하게 편입되었기 때문임을 알게 되었다.
여전히 의문이 남거나 설명을 원하는 점: 1930년대 동남아시아는 독립국 시암을 제외하고는 모두 서구의 식민지였는데 서구는 일본이 동남아시아를 일본자본주의의 원료 및 시장으로 편입시키는 것을 경계하거나 식민지에 대한 정치적 지위를 활용해 이를 제한하지는 않았는가? 특히 대공황 이후 1930년대 서구의 각 국가들은 자국과 식민지 간 블록을 형성하고 보호무역을 추구하는 정책을 추진했는데 이러한 상황에서 대다수가 서구의 식민지인 동남아시아를 일본이 어떻게 자국의 시장으로 편입시켰는지 궁금하다.
같이 토론해 보고 싶은 점: 16-19세기 아시아무역체제가 이전 시대의 무역체제와는 구별되는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서구경제권과의 링크이다. 그런데 몽골-원 시기에도 몽골의 유럽 지역까지 무역로를 정복, 확장하고 유지하면서 서구 지역과의 무역이 이루어졌다. 몽골-원 시기 서구 지역과의 무역이 16-19세기의 그것과 차별되는 점이 무엇이기에 이를 16-19세기 아시아무역체제만의 중요한 특징인지 토론해 보고 싶다.
2. 강진아, 「조공질서와 한중 관계: 데니는 왜 청한론을 저술했는가」, 한국고등교육재단 편저, 『중국, 새로운 패러다임: 18인 석학에게 묻다』, 2015.
새롭게 알게 된 점: 단순히 시대착오적 사대주의자로만 여겨지곤 하던 개항기 유학자들을 단순히 전통에 따라 사대를 주장한 것이 아닌, 당시 상황에서 조선의 독립을 지키기 위한 가장 현실적인 방안을 전통적인 조공관계에서 모색해 내정은 자주를 지키면서 외세의 침략으로부터는 청의 도움을 받고자 한 것이라는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게 되었다.
여전히 의문이 남거나 설명을 원하는 점: 청이 타 조공국과는 다르게 조선에만 만주인을 계속 사신으로 보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같이 토론해 보고 싶은 점: 데니는 미국인이며 중국에서 일하면서 이홍장과 친밀한 사이를 형성했다. 이처럼 데니는 조선에 외교 고문으로 부임하기 전까지는 조선과는 별다른 접점이 없었다. 이러한 데니가 이후 이홍장과의 관계가 악화되는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청한론을 통해 조선의 입장을 대변한 이유는 무엇일지 토론해 보고 싶다.
3. 강진아, 「따라잡기형 발전모델과 16-19세기 아시아의 설탕 교역」, 김병준 편, 『아시아를 상상하다』, 진인진, 2023.
새롭게 알게 된 점: 사쓰마 번이 일본 내 설탕 생산과 전매를 통한 막대한 이익을 얻음으로써 확보한 경제력을 통해 메이지 유신 당시 에도 막부에 맞서는 주요 세력이 될 수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여전히 의문이 남거나 설명을 원하는 점: VOC의 자바 개발이나 대만 개발에 들어간 노동력의 주는 화교였다. 어째서 대만 원주민, 자바 섬 원주민이 아닌 화교들이 노동력의 주가 되었는지 궁금하다.
같이 토론해 보고 싶은 점: 일본과 자바의 설탕 생산을 비교해 보면 일본의 경우 일본인이 기술을 습득하여 산업을 일으키지만 자바의 경우 화교들이 직접 자바로 이주하여 보유한 기술을 통해 산업을 일으킨다. VOC 입장에서도 현지 원주민이 화교에 비해 확보하기 수월하고 인두세 감면 등 이주 장려책도 필요하지 않아 부담도 덜 했을텐데 어째서 자바는 일본처럼 현지 원주민이 기술을 습득하여 산업을 일으킬 수 없었는가?
<도현준>
1. 강진아, 「16-19세기 동아시아무역권의 세계사적 변용-따라잡기형 발전모델의 모색」, 백영서 편,『동아시아의 지역 질서』, 창비, 2005.
2. 강진아, 「조공질서와 한중 관계: 데니는 왜 청한론을 저술했는가」, 한국고등교육재단 편저, 『중국, 새로운 패러다임: 18인 석학에게 묻다』, 2015.
3. 강진아, 「따라잡기형 발전모델과 16-19세기 아시아의 설탕 교역」, 김병준 편, 『아시아를 상상하다』, 진인진, 2023.
1. 새롭게 알게 된 점: 일본은 은 이라는 고유상품을 16c~18c 까지 대량공급할 수 있었던 반면에, 조선은 일본의 은과 같은 대표상품이 없었다. 이러한 점에서 일본이 따라잡기형 발전에서 시작이 한국보다 늦었어도 더 빠른 속도로 한국을 따라잡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전히 의문이 남는 점: 19c중반 이후 중국이 서양에 추월당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잘 납득이 되지 않는다. 아편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지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같이 토론해 보고 싶은 점: 16~19c 일본과 조선의 선진 기술 수용과 발전의 차이를 토론해보고 싶다.
2. 새롭게 알게 된 점: 조공 질서가 명나라 부터는 단순한 문화적 공동체가 아니라 상당한 정치적,경제적 고려로 이루어진 질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전히 의문이 남는 점: 데니가 중국 중심의 조공질서를 인정하면서 국제법적으로 중국과 조선의 관계를 해석하였는데, 서로 다른 두 체제를 엮는 데니의 논리가 통할 수 있는지가 의문이다.
같이 토론해 보고 싶은 점: 중국 중심의 조공질서와 서양 조약질서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대해 토론해보고 싶다.
3. 새롭게 알게 된 점: 설탕이 16c부터 19c까지 직물류를 제외하면 세계 제2위의 교역 품목일 만큼 그 영향력이 큰 상품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전히 의문이 남는 점: 조선에서는 일본이 자국 내에서 설탕의 공급을 늘리려 했던 것과 다르게 19c중엽까지 설탕의 수요가 적었는지가 궁금하다.
같이 토론해 보고 싶은 점: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자바를 통치한 것과 네덜란드 정부가 자바를 통치한 것의 그 차이점과 당시의 시대상에 대해 토론해 보고 싶다.
<박해주>
1.새롭게 알게 된 점은 중국이 이렇게 빠르게 성장할수 있었던 이유나 아무생각없이 살던 때에 이렇게 치열한 동아시아의 경제적인 역사가 움직이고 있었다는게 인상깊었습니다.
;의문이 남거나 더욱 설명을 원하는 점은 딱히 없었습니다.
:저에게는 아직 어려운 내용이라서 토론 주제를 아직 생각 못했습니다..!
2.먼저 청한론이라는 단어를 처음 알게되었고 또 이 청한론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보았고 그것으로 인해서 중국과 한국간의 관계를 또 다시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 데니가 연구한 내용이 한중 관계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어떻게 바꿀 수 있는가?
:아직 내용 이해가 부족해 잘 모르겠습니다.
3.아시아의 설탕교역에 대해서 더욱더 이해를 가질수 있게되었고 또 이 설탕교역이 유럽의 식민지 제국의 확장과 연결되어있다는 것 또한 알게되었습니다.
; 따라잡기형 발전 모델을 적용하려는 아시아 지역의 노력은 어떠했으며, 그 결과는 어땠는가?
: 유럽의 설탕 교역이 아시아 지역에 미친 영향은 긍정적인가, 부정적인가?
<권승현>
1. 16~19 세기 중국과 일본의 경제 발전 상황을 따라잡기형 발전이라는 모델을 통해 설명하는 방식이 흥미로웠다. 그 설명 중 조선과 일본의 문화적 경제적 수준의 역전의 원인 중 하나가 조공무역의 부담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2. 이 논문은 일본이 자급화의 과정을 국가가 계획적이고 적극적으로 주도했다고 한다. 이를 설명하면서 각 번의 다이묘들이 계획적으로 이웃나라의 수탈을 기획했다고 하는데 조선시대 왜구들이 생계를 위해 수탈했다는 일반적인 생각과는 괴리감이 있는것 같다.
3. 앞으로의 중국과 일본의 따라잡기 관계는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해 토론해보고 싶다.
2
1. 데니라는 사람이 누구고 그가 쓴 청한론이 무엇인지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었다. 이를 통해 그동안 조선을 침략해야 한다는 정한론에 대해서만 얕게 알고 있던 당시 세계관들을 깊게 이해할 수 있었다.
2. 조선이 중국에게 산업 스파이를 보내 기술을 훔친 경우가 많았다고 서술되었는데 문익점 말고 그런 사례가 더 있는지 궁금하다.
3. 청한론 같이 당시 조선의 미래를 두고 주장한 여러 이론들이 대해 탐구하고 토론해보고 싶다.
3
1. 일본이 17세기 중반에 중국 설탕의 수입량이 연간 최대2000톤이나 되었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또한 제당 기술 체득 과정에서 일본이 중국에게 직접 채득한 것이 아닌 류큐왕국의 기술이 일본 본토에 전해짐으로써 채득했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2. 경제학적 설명을 바탕으로 논문이 진행되었기 때문에 다양한 인과관계에 대한 사례나 구체적인 설명이 원할한 이해를 위해 필요할 것 같다.
3. 설탕으로 동아시아의 경제사를 파악해봤는데 설탕만큼 세계 역사에서 중요한 후추는 동아시아 경제사에 무슨 영향을 끼쳤는지 토론해보고 싶다.
<공유진>
1.
- 새롭게 알게 된 점 : 17세기 이후 유럽과 일본이 대중국 무역을 하면서도 단순히 교역을 하는 것 그 자체에 그치지 않고 자국의 발전 전략을 모색했다는 점이다. 이전까지는 일본이 중국과의 무역을 중단하고 쇄국정책을 실시한 것의 이유가 종교적인 이유에 국한되어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자국의 국내 수공업생산 보호와 기술의 자급화라는 목적이 있었다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한편 유럽이 중국과의 교역에서 중국 상품의 기술을 흡수하면서도 산업혁명을 통해 경쟁력을 확보하여 중국과의 교역을 자국의 발전 전략으로 이용한 점도 알게 되었다.
- 여전히 의문이 남거나 설명을 원하는 점 : 16세기 이전부터 조공체제에 강력하게 편입되어 있었던 조선의 경우 중국과의 교역에서 어떠한 전략을 이용했어야 자립적인 따라잡기 모델의 또 다른 사례가 될 수 있었을지 궁금하다.
- 같이 토론해 보고 싶은 점 : 중국이 21세기 무역에서의 패권을 다시 쥐게 된 것은 과거 유럽과 일본의 따라잡기 전략과 어떤 점이 비슷할지 이야기해보고 싶다.
- 새롭게 알게 된 점 : 조공질서 내에서의 ‘속국’의 의미와 서양에서의 ‘속국’의 의미가 다른 배경을 알게 되었다. 또한 아시아 각국의 식민지화하는 과정에서 <서양이 중국의 개입 차단-속국이 종주권을 주장-무력충돌>의 특정한 패턴이 있다는 것 역시 알게 되었다.
- 여전히 의문이 남거나 설명을 원하는 점 : 청, 일본, 그리고 여러 서구 열강과 얽힌 관계 속에서 조선이 청한론에 근거하여 독립할 방안을 마련할 수 있었을지 의문이 든다.
- 같이 토론해 보고 싶은 점 : 중국이 서구 열강들과의 무력 충돌에서 이겼다면 조공관계 하의 속국들에 대해 의례적 관계가 아닌, 서양과 같은 실질적 종주관계를 행사할 가능성이 있었을지 토론해보고 싶다.
3.
- 새롭게 알게 된 점 : ‘설탕 무역’이라고 하면 아프리카에서의 무역에 대해서만 알고 있었는데 대만과 자바 지역에서도 노예를 동원하여 제당업 시장을 육성하였다는 점, 설탕이 유통되기 위해서는 높은 구매력과 상업경제와 대외무역의 발달 등 많은 시장 조건이 필요하다는 점, 식민지였던 자바와 홍콩이 자유시장을 기반으로 성장한 따라잡기형 발전을 보여준 한편 일본은 유럽 열강처럼 식민지를 이용한 발전을 보여준 점 등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 여전히 의문이 남거나 설명을 원하는 점 : 마지막 부분에 따라잡기형 발전의 관성적 경로에 동요를 가져온 것이 외부 세력, 즉 서구의 참여였다고 나와 있는데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궁금하다.
- 같이 토론해 보고 싶은 점 : 일본이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강제된 자유시장에서 벗어나 서구 열강 식의 제당업 발전을 꾀할 수 있게 된 배경 중 하나인 관세자주권의 확보에 대해 더 자세히 이야기해보고 싶다.
<홍지원>
1. 동아시아무역권의 세계사적 변용
- 무역에 있어서 16~19세기에 조선은 다른 나라에 비해 비교적 소외되어 있었음을 알게되었다.
- 따라잡기형 발전에서 조선은 일본처럼 자급화의 과정을 국가가 계획적이고 적극적으로 주도하지 않았나? 만약 조선이 국가적 측면에서 주도를 했다면 달라지는 점이 있는가?
- 토론: 동아시아무역권의 네트워크 속에 조선이 속해있었다면 조선은 더 빨리 발전될 수 있었을까
2. 조공질서와 한중관계
- 조공체제를 생각 해볼때, 조선이 중국에 굴복했다는 느낌이 강해서 나쁘게만 생각해왔는데 또 다른 입장에서 보면 조공체제는 나라 간에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나름의 합리적인 질서일 수도 있었겠구나 라는 것을 깨달았다.
- 데니가 말한 '복종이나 영향력이 명확한 조약의 형태를 취하고 있고, 그 조약에 따라 약소국가의 주권이 법적으로 다른 국가로부터 영향을 받을 경우에는 그 국가의 주권이 손상된다'라는 문장 속 그러한 조약의 또다른 예시는 무엇이 있는가?
- 토론: 청일전쟁이후 청으로부터의 독립이 없었다면 일제의 침략은 달라졌을까
3. 설탕교역 아시아를 상상하다
- 설탕의 발견,제조, 유통만으로도 아시아의 경제적 여건과 흐름을 살펴볼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 왜 조선은 제당업을 발전시키지 못한 것인가? 제당업을 제외한 다른 품목 중 조선이 우위를 차지했던 교역물품은 없는가?
- 토론: 아시아 내에서 조선은 경쟁력이 약한 나라였을까
<김민찬>
「16-19세기 동아시아무역권의 세계사적 변용-따라잡기형 발전모델의 모색」
새롭게 알게된점
: 조선도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조공무역에 있어 무역적인 부분에 더 포커스를 두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의례와 무역 그 중간에 애매한 위치에 있었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의문이 남거나 설명을 원하는 점 :
은의 유통 흐름이 어떻게 세계 경제의 흐름이 되었는지 그 경위가 궁금합니다.
한국이 일본자본주의 하부구조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다는 말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지 궁금합니다.
같이 토론해보고 싶은 점
: 만약 21세기에 동아시아에서 조공무역과 유사한 경제시스템을 가진다면 미국의 헤게모니를 넘어설 수 있을까?
「조공질서와 한중 관계: 데니는 왜 청한론을 저술했는가」
새롭게 알게된점 :
영락제가 파견했던 정화의 원정이 정통성의 확보하기 위한 그저 쇼였다는 것.
청이 유목제국에게는 대칸으로서의 지위를, 주변국에게는 중화제국으로서의 지위를 지니며 그 지위로서의 조공을 받았다는 점.
여전히 의문이 남거나 설명을 원하는 점
: 청이 여러 사건들(신미양요, 병인양요)에 대한 책임을 조선에 떠넘길 때 이에 대한 조선의 대응은 없었는지 궁금합니다.
같이 토론해보고 싶은 점
: 청 왕조가 중화제국으로서의 자격을 정말로 지니는가?
「따라잡기형 발전모델과 16-19세기 아시아의 설탕 교역」
새롭게 알게된점
: 인도네시아가 네덜란드의 식민지였던 것은 알고 있었지만 자바섬에서 설탕을 위해 사탕수수의 재배를 장려했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의문이 남거나 설명을 원하는 점
: 그 당시 서양에서 설탕이 어느정도의 경제적인 가치를 지녔기에 식민지를 통해 많은 양을 재배하려고 했는지 궁금합니다. (관련 사료가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박지수>
1-1: 조공의 성격이 여러가지인 것은 몰랐는데, 권력에 대한 조공부터 따라잡기 위한 조공까지 시대에 따라 조공의 목적이 조금씩 달라져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2: 유독 조선은 왜 다른 나라와 달리 16세기 때 바뀐 따라잡기 조공 문화에 빨리 적응하지 못하였을까?
1-3: 아편전쟁이후 노쇠해진 중국이라도 계속 조공을 하는 것이 맞는 선택이다. vs. 아편전쟁이후 노쇠해진 중국에 조공하기 보다는 다른 정치적 전략이 필요했다.
2-1: 조공국 사이에서도 서로 원조가 발생했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동아시아의 국가간 위계질서, 유럽의 국가간 대등성을 비교할수 있게 되었다.
2-2: 과거 동아시아에서 중국이 문명, 기술의 선진성을 차지할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일본은 왜 명이후 조공질서에 참여하지 않았을까?
2-3: 중국의 조공질서는 동아시아 지역 안정을 촉진했다. vs. 중국의 조공질서는 동아시아 지역의 갈등을 부추겼다.
3-1: 일본이 강제된 자유시장에서 국가 개입형 성장을 이루게되는 과정을 알게되었다.
3-2: 중국에서는 홍콩당이 독점하고 있는 상태에서 일본은 어떻게 홍콩당과 유럽당의 경쟁구도가 성립되었을까?
3-3: voc의 화교학살은 voc의 이익 관점에서 옳은 선택이였다. vs. voc의 화교학살은 voc의 이익 관점에서 옳은 선택이 아니였다.
<신세라>
1. 일본이 중국과의 조공무역에 소극적이었던 시기가 있었다는 것만 인지하고 있었는데, 대외무역의 봉쇄가 자국의 수공업 생산기반을 보호하기 위함이었음은 새로운 사실이었다. 또한 조선, 베트남, 일본 각국에서 소중화주의, 대남사상, 코꾸가꾸 등이 발흥했다고 하는데, 이러한 현상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드러났는지 더 알고 싶다.
2. 중국에 대한 조공관계의 실체가 평화를 위한 형식적인 것이든, 다른 것이든 조공이라는 단어의 어감에는 분명히 종속성이 있다. 이러한 특징은 평등성과는 언뜻 배치되어 보이기도 하는데 476 p의 신좌파 지식인의 거두로 알려져 있는 왕후가 조공관계를 평등관계로 본다는 말이 있다. 여기서 평등이 정확히 어떤 개념으로 등장하는지 알고 싶다.
3. 대만이 식민 지배를 받지 않았다면 어떤 경로로 대만의 제당업이 발전했을지 토의해 보고 싶다.
<예진>
1. 16~19세기 동아시아무역권의 세계사적 변용
(1) 의문이 남는 점
- 일본과 다르게 조선에서는 지방까지 농업서가 확대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2) 토론해보고 싶은 것
- 조선은 왜 공식적 조공무역 체제를 고집했을까?
(3) 새롭게 알게된 것
- 중국 재정의 은납화가 ‘북로남왜’ 상황 속에서 촉진되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2. 조공질서와 한중관계
- 조선이 중국에 많이 의지했던 이유가 오랜시간 동안 왕의 나라로 섬겼기 때문이라고 알고있었는데, 조선이 청을 방패막이로 사용하기 위해 종주권 관계에 집착했다는 것를 새롭게 알게되었다.
3. 설탕교역 아시아를 상상하다
(1) 의문이 남는 점
- 조선에서 설탕 수요가 적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 국가권력이 적극적으로 기술을 도입하려 하고 자국화하려고 노력했던 것이 아시아 무역의 특징이라고 언급되어있는데, 조선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인가?
<박건우>
<동아시아 무역권의 세계사적 변용-따라잡기형 발전모델의 모색>
1.새롭게 알게 된 점
-중국을 중심으로 한 조공 무역 체제의 원동력이 중국의 정치적 외압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중국의 월등한 기술과 상품에 대한 주변국들의 수요였다는 것과 현대 제조업에서 볼 수 있는 기술 이전과 국제 분업화, 정부의 수입 대체 정책 등이 과거에도 볼 수 있는 사례였다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2.여전히 의문이 남거나 설명을 원하는 점
-자료에서 동남아시아와 일본의 경우 중국과의 무역에서 중국 상인들이 기술 이전을 담당했고 무역의 큰 비중을 화교 세력들이 장악했다고 설명되어 있었다. 화교들이 일본과 동남아시아에 미친 영향은 알 수 있었지만 조선과 중국과의 무역에서 화교들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과, 다른 주변국들과 달리 조선 경제를 화교들이 장악하지 못했다면 그 이유에 대한 언급이 없어 이에 대한 의문점이 들었다.
3.같이 토론해보고 싶은 점
-만약 조선에도 일본처럼 은과 같은 귀금속 대표상품 매장량이 충분했다면 조선도 일본처럼 발전된 경제를 바탕으로 근대화를 이룩했을지 의견을 나눠보고 싶다.
<조공질서와 한중관계-데니는 왜 청한론을 저술했는가>
1.새롭게 알게 된 점
-서양에서의 속국과 종주권의 개념이 동아시아의 조공 체제 속에서의 속국자주 개념과 다르고 서양에서의 속국이 식민지와 같은 개념이라면 동아시아 조공 체제 속에서의 속국은 현대의 영연방, 프랑코포니와 같은 성원국의 개념과 비슷하다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2.여전히 의문이 남거나 설명을 원하는 점
-티베트, 위구르, 몽골처럼 자료에서 속지로 언급 되어있는 지역과 베트남, 한국, 일본 등 조공체제 속에서 속국자주 개념으로 있었던 국가들의 외교적 권리의 구체적 차이점이나 중국의 간섭 방식의 차이점을 더 알고 싶다.
<설탕교역으로 아시아를 상상하다>
1.새롭게 알게 된 점
-근대 시기 유럽의 보호무역주의와 기계식 정제당으로 인해 관세 주권을 확보하지 못한 아시아 국가들의 설탕 시장이 잠식당해가는 과정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2.여전히 의문이 남거나 설명을 원하는 점
-자료에서 설탕 무역의 중심지로 언급 되었던 홍콩, 말라야 모두 반도의 이점을 살려 무역의 중심지로 발전했지만 똑같은 반도국가인 조선은 왜 무역이 발달하지 못하였는지 의문이 들었다. 또한 열대지방에서 자라는 설탕이 아니라 중국과 인도에서 거의 독점적으로 생산하는 차에 대한 무역사를 더 알아보고 싶다.
3.같이 토론해보고 싶은점
-자료에서는 근대 시기에 유럽 국가들이 자국의 설탕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보호무역 정책을 실행하였고 이러한 유럽의 보호무역 정책은 아시아 국가들의 설탕 산업에 큰 피해를 입혔다고 언급 하고있다. 자국의 산업만을 보호하기 위해 다른 국가들의 피해를 발생시킨 유럽의 설탕 보호무역 정책이 옳은 정책인가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싶다.
<김예인>
[1] 새롭게 알게된 점
일본의 은광개발 사실은 들어봤는데, 중국의 경제발전에 이바지 할정도로 방대한 양의 은이 일본에 내장되어 있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의문이 남는 점
일본과 중국이 조공무역을 하는 과정에서 비공식무역(민간무역) 이 조금씩 증가했을텐데, 일본은 우리나라와 다르게 중국으로 가려면 배를 타야한다. 배는 한번에 많이 띄울 수록 이득이기에 점점 민간무역의 규모는 커졌을것 같다. 그렇다면 그 과정에서 큰 무역상단이 존재하지는 않았는지 궁금하다.
토론해보고 싶은 점
만약, 일본이 아닌 한국에서 막대한 양의 은이 매장되어있었다면 16-19세기 세계무역체제에서 한국이 경제적 약진의 기회를 잡을 수 있었을지 토론해보고 싶다.
[2] 새롭게 알게된 점
조공관계에서 조선이 속국임은 인정하지만, 외교•정치가 자주라는 것과 이것이 동아시아에서의 평화유지에 기여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의문이 남는 점
’조선은 청의 속국이고 내정과 외교는 자주다‘ 라는 지배층의 주장에 대해, 그 당시 일반 백성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을까?
토론해보고 싶은 점
현대시대에 살고있는 우리의 관점으로 자주속국이라는 단어를 보았을때 이는 양립가능한 단어인지 아닌지 토론해보고 싶다.
[3]새롭게 알게된 점
설탕을 통해서 중국처럼 기술이 많았던 곳에서 기술이 없는 곳( 류큐, 대만 등) 으로 설탕산업이 이동하여 따라잡기형으로 기술의 전파가 이뤄졌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그리고 후에 서구의 새로운 기술로 인해 중국의 설탕 산업에 다시 영향을 끼친 것을 보고, 따라잡기형 무역 모델의 주체와 객체는 언제든 바뀔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의문이 남는 점
16세기부터 국제적으로 교역되는 세계상품 중 설탕을 제외한 다른 상품들도 설탕산업과 비슷한 발전경로를 거쳤을지 궁금하다.
토론하고 싶은 점
과거 중국은 따라잡기형 모델의 대상이었지만 서구의 발전으로 인해 새로운 기술의 학습이 필요한 처지에 놓이기도 하였다. 그렇다면 현대사회 초강대국으로 불리는 미국또한 먼 미래에 다른 산업이나 기술을 따라잡기형 발전모델로 삼을 가능성이 있을지 토론해 보고싶다.
<김찬오>
1. 새롭게 알게 된 점
1-1 중국에 존재하던 해금 정책과 상업을 천시한 조선의 역사를 고려했을 때, 동양 내부에서의 무역규모가 작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세 개의 교재 문헌을 읽은 후, 동양 내부에서도 전통적으로 존재하던 무역 루트의 규모가 컸다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1-2 개항기 유학자들이 시대착오적인 사대주의로 인해 청의 속국을 자처한 것이 아닌, 제한적인 정보 내에서 가장 현실적인 판단을 내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2. 여전히 의문이 남거나 설명을 원하는 점
'데니는 왜 청한론을 저술했는가'를 읽으면, '문명국가'라는 개념이 '국민국가'에 배치되어 서술되어 있습니다.
국민국가와 문명국가의 개념과 차이점이 궁금합니다.
3. 같이 토론해 보고 싶은 점
중국이 수백 년간의 안정, 평화, 번영을 제시하며 조공 질서를 다시 요구한다면, 한국은 이를 받아들여야 하는가?
<이원준>
1.
새롭게 알게된 점 :. 일본은 은 생산국이고 서구의 개입이 있었기에 중국을 따라잡기보다는 동등하게 성장했다고 생각했는데 이 글을 읽고 일본 역시 은교역을 하며 중국의 선진문물을 따라잡으며 성장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궁금한점 : 일본이 한국보다 늦게 따라잡기를 시작했지만 일본이 20세기 초에는 쇄국과 자국의 체계적인 발전등으로 한국을 능가했다고 나와있습니다. 따라잡기 형 모델로 발전을 할 수 있었지만 오히려 따라잡기 형 발전 모델 때문에 한국의 성장이 늦춰진 것이 아닌지 궁금합니다. 당시에는 중국의 선진문물이 도움이 되었지만 오히려 중국에 의존하게 되고 중화사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잘못이 있지 않을까? 해서 질문드립니다.
토론하고 싶은 점 : 조선이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중국과의 조공관계를 중단했어야 하는가?
2.
새롭게 알게 된 점 : 개항기 시기의 독립, 자주, 속국, 종속국 어휘들의 중요성과 의미를 확실히 알게 되었고 그 당시 국가간 조약의 긴장, 견제 등을 통해 국가관 관계, 힘을 더 쉽게 이해했다.
궁금한점 : 개항시기의 청도 임진왜란의 명처럼 서구의 침입, 성장하는 일본 등 여러가지 외부적인 위협이 존재했음에도 ‘속국이되 내정외교는 자주이다’라는 애매한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이유가 있었을까?
같이 토론해보고 싶은 점 : 현재 중국과 미국의 G2가 도래하며 신냉전 무역전쟁이 펼쳐지는 와중 과거 조선의 조공질서 무역을 참고하면 현 상황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공무역이 현재에게 줄 수 있는 교훈에는 어떤것이 있는가?
3.
새롭게 알게 된 점 : 동아시아사 공부를 통해 설탕의 교류가 있었다는 사실만을 알고 있었는데 무역사, 경제사적 관점에서 설탕의 실질적 가치를 실감할 수 있었다.
같이 토론해보고 싶은 점 : 설탕 같은 음식이 세계사에 영향을 주는 경우는 빈번하다고 생각하는데 설탕을 제외하고 어떤 음식이 무역사 경제사적 관점에서 볼 때 큰 영향을 끼쳤는가?
더 궁금한점 : 사쓰마 번 무사들이 설탕 무역으로 이점을 챙기고 그로 인해 메이지 유신을 주도하는 기반이 되었다는 점에서 왜 이전의 일본 정부에서는 설탕의 중요성을 알지 못했을까, 설탕을 전매하는 사쓰마 무사들에게 왜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는가?
<최준영>
1. 강진아, 「16-19세기 동아시아무역권의 세계사적 변용-따라잡기형 발전모델의 모색」, 백영서 편,『동아시아의 지역 질서』, 창비, 2005.
새롭게 알게 된 점: 일본의 쇄국 정책이 은 유출 억제를 통해 경제성장을 꾀함.
여전히 의문: 일본은 은을 통해 성장했으나 한국은 회취법을 먼저 발견하고도 활용하지 않은 이유.
토론하고 싶은 점: 강하게 편입된 조공 체제는 선진 기술, 물건 등을 수입하는 데 유리하였으나 자급화에는 불리한 측면이 있었다. 조선에는 어떤 체제가 더 큰 이익이였을까?
2. 강진아, 「조공질서와 한중 관계: 데니는 왜 청한론을 저술했는가」, 한국고등교육재단 편저, 『중국, 새로운 패러다임: 18인 석학에게 묻다』, 2015.
새롭게 알게 된 점: 조선의 종주국을 고집한 이유가 청의 군사적 경제적 보호를 위한 것.
여전히 의문: 일본은 조공 관계에 왜 깊게 참여하지 않았는가?
토론하고 싶은 점: 과거의 조공 관계가 무역 방식이라면 중국과 미국 중 누구와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
3. 강진아, 「따라잡기형 발전모델과 16-19세기 아시아의 설탕 교역」, 김병준 편, 『아시아를 상상하다』, 진인진, 2023.
새롭게 알게 된 점: 설탕이 의약품으로 사용되어 조선에서는 왕실에서만 유통되어 조선의 설탕 시장이 확보되지 않은 점.
여전히 의문: 왜 조선은 상업 경제와 대외 무역의 발달, 높은 구매력이 충족되지 않았는가?
토론하고 싶은 점: VOC의 제당업의 쇠퇴의 공통점 화교와의 관계 악화이다. 그렇다면 최대한의 이익을 얻으며 관계를 유지할 방법 모색.
<이지연>
1-1) 조공 무역이 중국의 경제적 이익만을 위해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정권의 정당성 선전과 같은 이념적 목적도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2) 따라잡기형 발전은 20세기 아시아 후발국의 공업화 과정을 설명하는데 쓰이는 용어라고 하였는데, 남미와 아프리카의 개도국에서는 이와 같은 사례가 없는지? 있다면 어떤 나라의 기술을 따라잡기 한 것인지?
1-3) 니시지마는 책봉체제를 정치와 문화를 중심으로 이해하고, 하마시타 타케시는 경제적인 시각으로 이해하고 있다. 둘 중 어느 것이 더 타당한 해석이라고 생각하는지?
2-1) 명의 영락제가 권력의 정통성을 메우기 위해 경제적 손실을 감수하면서까지 ‘정화 원정’을 보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2-2) 조선의 자주 추구 파트에서, 박영효가 ‘속국자주’와 ‘주권국가’를 배치되지 않는 개념으로 사용하였다고 서술되어 있는데 해당 문장이 정확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2-3) ’중국인 중에는 한국이 속국이었다고 폄하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라고 서술되어 있는데, 계속해서 논란이 되어온 중국의 동북공정 사태에 조공체제에서부터 이어져 온 중국인들의 인식이 영향이 있다고 볼 수 있을지?
3-1) 조선에선 설탕을 식용이 아닌 의료용으로 사용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3-2) 조선에서 개항 이후 설탕 수입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고 하였는데, 수입량 증가가 조선인들의 식생활 변화에 영향을 미쳤을지?
3-3) 조선에게는 일본식 발전과 자바식 발전 중 무엇이 더 적합했을지?
<박성재>
1-1 은을 통해 확보한 일본의 재정력이 세계적인 수준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1-2 일본은 조공무역 체제에서 벗어나며 수입대체화가 자급화로 진행되었다. 이 상황에서 발전한 자급화가 현재 일본의 뿌리 깊은 개인의 수공업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 궁금하다.
1-3 조공 책봉 관계에서 벗어나는 것은 일본에게 자유로운 기술 이전을 불렀다. 만약 한국이 조공 책봉 관계에서 벗어났었다면 일본과 비슷한 방식의 따라잡기 발전이 가능했을까?
2-1 1881년 영선사 김윤식이 '조선은 청의 속국으로 내정 외교는 조선의 자주이다.'라는 문구에 동의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2-2 조선은 청나라와의 조공 책봉 관계를 실질적으로 인정했는지 궁금하다. 조선 중화주의의 확산으로 구한말까지 명 숭정제의 연호를 쓰는 경우가 있었다고 알고 있는데, 조공 책봉 시스템이 원활하게 작동하였는지 궁금하다.
2-3 각국의 이해에 따라 언어적 정의가 충돌할 때, 무조건 강대국의 언어가 옳은 것일까?
3-1 케인스학파 이전인 1870년대에도 생산 과잉이 생기자, 정부개입을 통한 보호무역을 만들었다는 점이 신기했다.
3-2 1899년 일본은 부분적으로 관세 자주권을 되찾아 설탕에 보호관세를 부과하였다고 서술되어 있는데 어떻게 하여 관세자주권을 되찾았는지 궁금하다.
교수님이 왜 설탕 교역에 집중하여 논문을 작성하셨는지 주제 선정의 이유가 궁금하다.
3-3 모든 국가가 보호무역에 치중한다면 세계적인 무역 질서는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
<안지우>
1-1: 후발주자가 선진국의 기술과 지식체계를 이용해 발전하는 ‘따라잡기형 발전’의 개념을 알게 되었다.
1-2: 나가즈미 요오꼬의 17세기 동아시아무역 분석에 의하면, 일본에 수입되는 중국 백사 및 견직물의 상당수는 중국선이 담당했다고 하며 그 권력은 정성공 집단이 장악했다고 한다. 정성공이 누구고, 어떻게 권력을 장악했는지 더 알아보고 싶다.
1-3: 만약 당시 조선 정부가 일본의 번정부처럼 재정동원에 직접적인 관심을 기울였다면 조선도 발전할 수 있었을지, 그럼에도 국토의 은 매장량 등 물질적인 차이로 인해 실패했을지 토론해보고 싶다.
2-1: 현대에 조공질서는 사라진 것이 아니고 다른 형태로 존재하고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2-2: 과거 조공질서의 연장선상, 어쩌면 현대화된 조공 시스템으로도 보이는 북한과 중국의 관계에 대해 더 자세한 설명이 있으면 좋을 것 같다.
3-1: 제당업이 전 세계의 경제 시장에 큰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었다.
3-2: 당시 양행들은 무역업과 제당업 중 제당업이 전망이 있다고 판단하고 제당업을 택했다. 무역업과 제당업을 비교했을 때, 제당업은 왜 무선과 통신의 발전으로 인한 시장 정보의 빠른 공개에 상대적으로 영향을 덜 받았는지 더 알아보고 싶다.
<김다은>
논문을 통해 16~19세기 동아시아무역권이 각국에 끼친 영향과 이해관계에 대해 거시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중국의 은납화와 선진화로 인해 동아시아 무역 네트워크가 발전한 과정 속에서 조공체제가 각국의 자급화에 미친 영향과 서구와의 관계에 따른 나라들의 발전의 대략적인 흐름을 알게 되었다.
2. 아시아내의 중국의 조공체제가 평등하며 평화주의적이었다는 주장과 제국주의적이고 위협적이라는 주장이 대립적으로 공존하는 이유에 대해 의문이 생겨 두 주장이 어떤 관점과 시각에서 조공질서를 파악하고 있는지에 대한 논의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3.설탕기술의 발전과 교역이 세계 산업 발전과 시장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음을 알게되었다. 바타비아 제당업에 관한 내용 중 17~18세기에 바타비아 설탕의 유럽 수출량이 급격히 격동한 원인과 사회적 배경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이수아>
1.
새롭게 알게 된 점 :
역사적으로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무역 네트워크가 형성 되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중국을 모델로 하는 따라잡기형 발전이 이루어졌다는 걸 알게 되었다.
여전히 의문이 남거나 설명을 원하는 점 :
중국 중심의 동아시아 조공무역체제를 통해 형성된 네크워크를 활용하여 일본은 경제적으로 큰 발전을 이루어냈다. 반면에 한국은 발전이 더디게 이루어졌는데, 한국이 일본에 비해 빠른 속도로 발전하지 못 한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하다.
같이 토론해 보고 싶은 점 :
따라잡기형 발전모델은 추격하는 측과 추격받는 측이 엎치락 뒤치락하며 성장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렇다면 ‘현재 세계 여러 나라가 추구하고 있는 따라잡기형 발전 모델은 어느나라일까?’라는 질문으로 토론하고 싶다.
2.
새롭게 알게 된 점 :
데니가 쓴 청한론의 내용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데니는 조선이 홀로 있으면 열강의 침탈을 막아낼 힘이 없으니 청과 관계를 끊으면 안 되고, 조선은 주권을 가진 국가라고 주장하며 조선의 입장을 대변해주었다.
여전히 의문이 남거나 설명을 원하는 점 :
‘중국은 왜 그렇게 경제적으로 도움이 안 되는 북한을 지원할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 명확히 해결되지 않아서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문헌 478p)
같이 토론해 보고 싶은 점 :
조선은 청의 속국이라고 주장하는 이홍장의 견해와 조선은 자주국이라고 주장라는 데니의 견해를 나누어 토론해보면 좋겠다.
3.
새롭게 알게 된 점 :
설탕을 통해 이루어지는 동아시아의 교류의 모습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사탕수수에서 설탕을 추출해내고, 이를 자급화하여 서민들이 이용하고, 더 나아가 대량생산이 가능해져 오늘날 우리가 소비하는 설탕이 만들어졌다는 걸 알게 되었다.
여전히 의문이 남거나 설명을 원하는 점 :
당나라 시기 사탕수수의 생산 지역에 변화가 생겼다. 황하강 유역에서 양자강 이남으로 중심이 옮겨졌다고 하는데, 왜 중심지의 이동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같이 토론해 보고 싶은 점 :
‘설탕 이외에 동아시아의 교류의 흐름을 설명할 수 있는 상품은 무엇이 있을까?’라는 주제로 이야기해보고 싶다.
<원서연>
1. 강진아, 「16-19세기 동아시아무역권의 세계사적 변용-따라잡기형 발전모델의 모색」, 백영서 편,『동아시아의 지역 질서』, 창비, 2005.
새롭게 알게된 점: 16세기 중국의 경쟁력. 직접적 기술 이전과 수입 대체를 위한 생산기술을 의식적으로 도입하는 등의 노력. 적극적인 중국의 움직임과, 중국이라는 국가적 특성(인구수 등)이 맞물려 시대 흐름을 읽고 기회를 만들어냈다고 보여진다.
여전히 의문이 남거나 설명을 원하는 점: 조선이 택한 조공체제가 정말로 무역채제 확장에 한계를 상정한 결정적 이유일까? 다른 변수가 있었을 가능성에 대해 알아보고 싶다.
같이 토론해보고 싶은 점: 조선이 조공체제에 편입되어 있지 않았다면, 16세기 이후 무역체제가 확장되었을 때 기술 등을흡수하여 따라잡기형 모델을 이상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었을까?
2. 강진아, 「조공질서와 한중 관계: 데니는 왜 청한론을 저술했는가」, 한국고등교육재단 편저, 『중국, 새로운 패러다임: 18인 석학에게 묻다』, 2015.
새롭게 알게된 점: 조공제도에 대한 여러가지 주장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전히 의문이 남거나 설명을 원하는 점: 데니가 조선의 입장에서 자주국 주장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히 외교 고문으로서의 행보라고 보기엔 조선에 연고가 없는 외국인이다. 타국의 역사나 정세에 깊게 관심을 가지고 더 나아가 그 나라의 자주적 독립까지 주장할 수 있는 대승적 견지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다.
같이 토론해보고 싶은 점: 시대착오적이라 생각되는 당시 유학자들이 진정으로 시대착오적 사대주의자들이었을까? 반면 독립파 유학자들은 진정으로 자주적 독립을 말한 것이 맞을까? 이들을 어떠한 기준점으로 재평가해야 할지에 대해 토론해보고 싶다.
3. 강진아, 「따라잡기형 발전모델과 16-19세기 아시아의 설탕 교역」, 김병준 편, 『아시아를 상상하다』, 진인진, 2023.
새롭게 알게된 점: 자바로 이주한 화교들의 기술과 경작으로 사탕수수가 퍼졌음을 알게 되었다. (설탕과 같은 기술이나종자가 타국으로 옮겨가는 과정 중 한 가지를 알게 되었다.)
여전히 의문이 남거나 설명을 원하는 점: 설탕이 구하기 쉬워졌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은 왜 우편수송 금지 품목으로 지정했을까? 설탕의 수송이 개항의 상징처럼 여겨졌다고 볼 수 있을까.
같이 토론해보고 싶은 점: 자바의 VOC는 화교의 인력을 택하는 방법 대신 다른 선택지는 없었을까?
<정혜원>
16-19세기 동아시아무역권의 세계사적 변용-따라잡기형 발전모델의 모색
본 논문의 주축이 되는 따라잡기형 발전모델에 대해서 처음 알게되었다. 조선과 일본, 동남아시아가 <span;>중국의 문물을 받아들이고 발전하는 과정에 따라 후에 근대화 과정에서 행동하는 양식이 달라진다는것이 특히 새롭게 느껴졌다. <span;>논문이 동아시아 무역권에 집중되어있고, 유럽은 이와 연결된것에 대해서 다뤘지만, 중국의 문물이 유럽권에서 경제와 기술발전을 위해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도 궁금하다. 중국 중심의 조공무역체제에 대해서 그것이 과연 각 나라의 경제발전에 도움이 되었는가에 대해 토론해보고싶다.
조공질서와 한중 관계: 데니는 왜 청한론을 저술했는가
18세기 말 조선과 청의 관계를 조공국과 속국, 그리고 자주국이라는 개념을 통해 자세히 알수있었다. 조선이 당시 청에게 조공국으로서 기대했던 바와 청의 변화한 태도에 따라 양국의 감정이 어떻게 변화하였는지 알게되었다. 다만 청나라가 조선을 대하는 태도가 조공국에서 속국으로 변화하게된 이유가 궁금하다. 조공질서에 대해서 이것이 처음으로 시작된 계기와 어떻게 발전되어았는지 토론해보고싶다.
<장문혁>
(1) 16~19 세기 동아시아무역권의 세계사적 변용
새롭게 알게 된 점: 기존의 나는 중국과 조선의 관계처럼 조공이 정치적 종속 관계라고 생각하였으나 다른 동아시아의 사례들과 하마시따의 시각을 접하고 조공이 문화적 관계뿐 아니라 경제적 행위가 이루어지는 하나의 네트워크라는 관점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여전히 의문이 남거나 설명을 원하는 점: 조선과 일본의 비교뿐 아니라 경제적으로 성공한 일본과 같은 조공권으로 묶여 있던 동남아시아와의 비교를 통해서 두 나라 모두 서구와 교류를 했던 국가이기 때문에 중국의 영향 이외의 것 또한 궁금하다.
같이 토론해 보고 싶은 점: 조선과 일본을 비교함으로써 일본이 따라잡기형 발전 모델을 따라갔다는 주장을 하며 은과 같은 선진국에서 통하는 자원이 없었고 조공의 성격의 차이를 들고 있다. 이에 대해 다른 동아시아 국가들과도 비교해 보며 은과 같은 자원의 부재가 컸는지 조공의 성격의 영향이 컸는지 토론해보고 싶다.
(2) 조공질서와 한중관계
새롭게 알게 된 점: 구한말 조선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에 대해 알 수 있었다. 서양의 입장에서 식민지와 주권국의 개념만이 있었으나 그 속에서 조선은 조공국이라는 동양의 고유한 위치에 있었고 이에 따라 서양 열강들이 조선을 바라볼 때 다양한 시각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여전히 의문이 남거나 설명을 원하는 점: 정치적인 측면에서 보았을 때 강력한 하나의 권력이 중심이 되어 평화를 유지하는 동아시아읭 조공 질서와 현재 미국이라는 강력한 패권국 하에 유지되는 국제 평화가 비슷하다고 느끼는데 따라잡기형 발전 모델과 같이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어떤 유사점을 보이는지 궁금하다.
같이 토론해 보고 싶은 점: 주권의 범위에 대해 토론해 보고 싶다. 조선은 조공국의 위치에 있었지만 데니와 휘튼의 주장처럼 한 국가가 다른 국가의 명령에 복종했다고 해서 그 국가가 주권을 상실한 것이 아니라고 볼 수도 있지만 책봉처럼 나라의 중대한 결정마저 다른 국가의 명령에 따라야 한다면 그것을 주권을 지켰다고 볼 수 있는 것인가.
(3) 설탕 교역 아시아를 상상하다
새롭게 알게 된 점: 설탕을 포함한 국제 시장에서 동아시아가 “강제된 자유 시장”이라는 관점을 처음 알게 되었다. 나는 그전까지 세계무대에서 동아시아 시장을 잠재되고 폐쇄적인 시장으로 생각하였으나 다른 열강들의 보호주의가 팽배해져있는 상태에서 아시아는 불평등 조약을 통해 관세 자주권을 실현하지 못했기에 오히려 자유 시장으로서 가치가 있다느 관점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여전히 의문이 남거나 설명을 원하는 점:일본의 경우 중국과 달리 설탕 재조에 있어 자급화에 성공했는데 그 이유로 관세 자주권을 일부 찾아왔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자원의 차이가 있었을 것 같은데 얼마나 차이가 있었는지
토론 하고 싶은것: 관세 자주권과 자원 다음으로 자급화에 필수 적인 요소는 무었인가
<박다연>
1. 왜 16~19세기 핵심적인 화폐 단위로 은이 사용되었는가? 반면 19~20세기의 세계적인 대세는 금본위제인데, 은본위제에서 금본위제로 변화한 계기는 무엇인가?
2-1. 왜 입관 후 청의 조선에 대한 태도가 조공국으로 변화했는지 그 이유에 대해 좀 더 자세한 필요하다고 느꼈다.
2-2. 개항시기 조선 입장에서의 '속국자주'와 '주권국가' 개념의 의미에 대해 파악할 수 있었고, 이를 둘러싼 세계의 다양한 해석과 논란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3-1. 네덜란드 정부의 직할 식민지가 되면서 자바는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근대적 제당업을 정착시켰는데, 이는 식민지 정책의 차이 때문이라고 언급되어 있다. 네덜란드 식민지 정책과 타국의 식민지 정책이 어떠한 면에서 달랐는지 그 차이성을 구체적으로 알고 싶다.
3-2. 설탕 이외에 커피나 차 등 다른 상품의 무역 역사와 상업적 발전과정은 어떠한가?
**논문 20페이지, 책 페이지로는 157쪽에 있는
《쿠바 제당업은 대규모 플랜테이션 농장과 최신 기술과 과학이 적용된 첨단 산업으로 발전했는데, 이런 유형의 제당업 건설은 19세기 아시아에서 자바가 유일했다.》라는 문장에서 쿠바->자바로 바뀌어야 되는 건가요? 아니면 '쿠바 제당업'이 다른 제당업과 차별성을 가져 그 자체로 고유명사화 되어 쓰인건가요...?
<윤윤상>
1. 소금이 기존의 의료,사치품에서 생활필수품으로 정착하게 된 것을 알고 있었지만 설탕 또한 그러한 과정이 있었다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2. 따라잡기형 발전 모델에서 일본이 한국보다 늦었음에도 더 빨리 따라잡은 이유가 나와있는데(61p), 한국은 어째서 더 빠르게 발전하지 못했는가를 더 알고싶다.
3. 조선이 일본처럼 조공 관계를 정리하고 자주독립국가로서의 지위를 탄탄히 할 수 있었다면 근현대사가 어떻게 되었을것인가에 대해 의견이 궁금하다.
<김주찬>
1. 새롭게 알게 된 점: 중국의 조공무역체제와 그 붕괴가 동남아에까지 영향을 끼쳤다는 것.
설명을 원하는 점: 동남아시아에서는 왜 현지인의 기술획득 노력이 보이지 않았는가.
토론하고 싶은 점: 조선이 16~19세기간 기술발전의 속도가 더뎠던 것이 문화적 이유나 유교와 같은 통치이념의 탓도 있는가.
2. 새롭게 알게 된 점: 고종의 외교고문이 미국인 오웬 데니였다는 것.
설명을 원하는 점: 데니가 조선의 외교고문이 되는 것을 수락한 까닭과 이홍장과의 친분까지도 버리고 조선을 변호해준 이유.
토론하고 싶은 점: 조선이 이렇게까지 주변국에 휘둘리게 된 제일 큰 연유는 무엇일까.
3. 새롭게 알게 된 점: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VOC)가 대만을 식민지로 삼았었다는 점. 사탕수수가 자바에 자연적으로 경작되지 않았고, 화교들에 의해 종자가 심어졌다는 점.
설명을 원하는 점: 왜 VOC는 자바에서의 노동력을 원주민이 아닌 화교들로 채웠는가.
토론하고 싶은 점: 조선은 중국과 가까웠음에도 설탕 문화에서 왜 고립되어있던 것인가.
<박준석>
1. 그동안 서구 중심적인 관점에서 서양이 세계경제를 이끌어 갔다는 저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과 조공무역 체제가 힘에 의해서가 아 '부유한 중국' 과의 얻을 경제적 이익을 고려해서 자발적으로 조공 체재를 맺은 생각보다 세련된 체제이고 조공체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타 지역보다 높은 기술적 우위를 누렸던 조선에 비해 '은'이라는 무기를 가지고 있었지만 16세기 전까지 상대적으로 낮은 기술력을 갖추어 많은 것을 수입에 의존하던 일본이 조공무역 체계를 쇄국을 통해 소화해서 근대의 전개 과정에서 앞서 갔다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2. '속국 자주'에 대하여 '속국'을 더욱 강조하며 이를 관철시켜 속국의 실질을 명백히 하여 내정간섭을 하려던 청의 조선 정책을 맹렬히 비판하기 위해 오웬 데니가 청한론을 저술하였음을 알 수 있었고, 조공국은 곧 독립국이라고 번역하여 조공 관계는 주권이나 독립권에 영향을 미칠 정도가 아니며 영향을 미칠 수도 없다는 결론을 내어 조공 관계를 앞세워 '보호'를 요구하며 대국의 도덕적 의무를 강조하며 내정 간섭을 견제하려던 것이 청한론의 핵심 내용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3. 설탕이라는 상품을 매개로 해서 이에 대한 사례들을 보고 과도기적 상황에 대응형태가 제각각이기 때문에 각 시대별, 나라에 따라 진행되는 과정과 결과는 다르지만 따라잡기형 발전이 실현됨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