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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성경에 관하여 4-5절
벧후 1:20-21 계시된 하나님의 일 찬송: 260, 439장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1647) (본문 인용: 믿음의 고백: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입문, 성약출판사)
1장 성경에 관하여
4절. 성경의 권위 때문에 우리는 성경을 믿고 순종하는데, 그 권위는 어떤 사람이나 교회의 증언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고, 오직 그 저자이신(그리고 진리 자체이신)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존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이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벧후 1:19-21; 딤후 3:16; 요일 5:9; 살전 2:13; 계 1:1-2).
5절. 우리는 교회의 증언으로 감화를 받고 이끌림을 받아 성경에 관한 고상하고 경건한 존경심을 갖게 될 것입니다(딤전 3:15). 또한 그 천상적인 내용, 교리의 효력, 문체의 장엄함, 모든 부분의 상호 일치성,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성경 전체의 지향점,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유일한 길을 충만히 제시함, 그 밖에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여러 탁월함, 그 전체적인 완전함 등은 성경이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임을 넘치게 입증하는 근거들입니다(히 4:12; 요 10:35; 사 55:11; 롬 11:36; 시 19:7-11; 딤후 3:15). 그렇지만 우리가 성경이 무오(無誤)한 진리이고 신적인 권위를 가진 것이라고 완전히 수긍하고 확신하게 되는 것은 말씀을 통하여, 또한 말씀과 함께 우리 마음에서 증언하시는 성령의 내적 사역에서 나옵니다(요일 2:20, 27; 사 59:21; 요 16:13-14; 고전 2:4-5, 10-14; 살전 1:5).
타락한 인생이 어떻게 하나님의 일을 알 수 있을까? 아담의 타락은 하나님을 거부하게 만들었는데, 그 이유는 그 안에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형상이 오염되었기 때문이다. 모든 인생은 타락 이후에도 여전히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오염은 하나님을 찾기에 불가능하게 만들었고, 하나님 앞에서 방자한 행동을 하게 만들었다. 롬 1:18-32을 보면 타락한 인생의 특징을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어졌나니…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고 선언한다. 이것은 하나님을 찾고자 하는 마음도, 그분의 일하심도 알고자 아니하는 타락한 인간의 특징이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함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 즉 성도는 그 마음에 성령께서 좌정하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하신 일을 듣게 하신다. 그리고 이 하나님의 일하심은 영감된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인 성경에 기록해 두셨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의 말씀을 읽는다.
그렇지만, 성경에 기록된 말씀들이 하나님의 계시인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이에 대해 WCF는 1장 4절에서 이렇게 말한다.
WCF 1.4 "성경의 권위 때문에 우리는 성경을 믿고 순종하는데, 그 권위는 어떤 사람이나 교회의 증언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고, 오직 그 저자이신(그리고 진리 자체이신)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존합니다.”
여기에서 “믿고 순종한다”는 번역으로 인해 믿음과 순종의 영역은 각 개인이 결정하는 문제인 것처럼 오해할 수도 있지만, 원문은 ‘믿어지게 만드시고 순종하게 만드신다’는 의미로, 수동적으로 하나님께 받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 WCF는 믿게 하는 일과 순종하게 하는 일을 하나님께서 친히 행하시는 일임을 선언한 것이다. 따라서 성경은 성경 스스로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임을 증언하며, 인간의 지적인 영역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름을 받은 이후 하나님 나라의 도덕적인 의무로 주어진 것임을 선언하고 있음을 WCF는 바르게 고백한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 앞에 나아온 성도는 반드시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인정하게 된다. 이것이 성경의 권위가 갖는 의미이다.
그렇다. 성경의 권위는 성경 자체가 선언하는 것이며, 성도로 부름을 받은 이후에 성도는 성경을 읽을 때, 이 권위가 사람의 감화나 교회의 명령에 의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권위가 성경에 깃들어 있음을 믿게 되고, 또 그 믿음을 입술로 고백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4절에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이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라고 강력하게 고백하도록 요청한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베드로 사도가 본문에서 말한 의미를 알 수 있다. 성경의 모든 예언은 하나님의 영감에 의한 저자들의 증언이며, 이 증언은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 영감에는 베드로가 쓴 편지도 포함이 된다. 그래서 성경은 분명히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이며, 구약의 감추어진 계시가 신약에서 밝히 드러나기 때문에, 구약성경과 신약성경 전체가 성도의 모든 신앙의 원천이요, 최종 권위를 갖는다. 그래서 종교개혁자들은 로마 가톨릭과 결별하면서 “오직 성경”이라는 모토를 내세웠던 것이다. 우리의 신앙은 성경에서 시작하여 성경으로 검증하며 성경으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성경에 우리의 모든 신앙의 근원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이 말한 부분까지 나아가고, 성경이 멈춘 곳에서 멈추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성경을 대하는 바른 성도의 태도이다.
그리고 성경이 신적 권위를 가진다는 것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가 성경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를 가르쳐준다. 그것은 이 책으로 교훈을 받고 책망을 받아 바르게 되는 방식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딤후 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 말씀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우는가? 모든 가르침의 주체는 여호와 하나님이시요, 그 대상은 하나님의 백성이요, 가르침의 내용은 하나님의 계시라는 것이다. 이 계시를 통해 성도는 조상들의 타락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자들 가운데 있었지만, 구약의 계시를 통해 여자의 후손을 보내실 것에 대한 약속을 듣고, 그분께서 오셔서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하시고 다시금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르셨음을 듣는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셔서 성도에게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게 하신다는 약속을 듣는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성경의 계시를 통해 듣는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한 내용이다.
요일 5:9-10 “만일 우리가 사람들의 증언을 받을진대 하나님의 증거는 더욱 크도다 하나님의 증거는 이것이니 그의 아들에 대하여 증언하신 것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대하여 증언하신 증거를 믿지 아니하였음이라”
그렇다. 우리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고백하며 받는다. 이에 대해 우리는 두 가지 증거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는 외적 증거이다. WCF 1.5절에서 고백하듯이 성경은 “그 천상적인 내용, 교리의 효력, 문체의 장엄함, 모든 부분의 상호 일치성,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성경 전체의 지향점,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유일한 길을 충만히 제시함, 그 밖에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여러 탁월함, 그 전체적인 완전함 등은 성경이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임을 넘치게 입증하는 근거들”로 가득하다. 물론 교회 역사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들에 의해 구약의 정경과 신약의 정경이 각각 형성되었지만, 믿음의 선조들은 말씀 안에 담겨 있는 천상의 내용, 가르침의 효력, 문체의 장엄함과 상호 일치, 그리고 무엇보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내용, 인간 구원의 길을 충만하게 제시하는 점, 여러 탁월함 등, 이런 것들이 성도로 하여금 성경에 관한 고상하고 경건한 존경심을 고백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책들을 모아 성도들의 신앙을 바르게 세울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저장한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이렇게 고백할 수 있다. 성경에 들어온 66권의 성경은 성도에게, 성경의 시선은 하늘을 향하여 있고, 성경의 교훈은 성도를 변혁시키고 감화시키는 힘이 있으며, 구원 얻는 유일한 길을 소개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증거는 “말씀과 함께 우리 마음에서 증언하시는 성령의 내적 증거”에서 나온다. 이것이 WCF 1.4-5절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이다. 성령 하나님의 사역은 진리를 듣게 하며, 진리를 분별하게 하며, 진리를 따르게 하신다. 원래 인간은 하나님의 진리를 바르게 따라가도록 창조되었다. 하지만 조상이 이 선물을 잘못 사용하였기 때문에 모든 후손들은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인정하지 않고 떠나버렸다. 하지만 성령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자들 안에 임재하실 때 성경의 권위를 깨닫고, 성경의 말씀이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이요,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는 것을 분명히 고백하게 하신다. 그리고 성경 안에 기록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들을 붙들고 그 약속들을 신뢰하는 가운데 살아가도록 이끌어 주신다. 따라서 모든 성도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고전 2:12)을 깨닫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5절에 기록된 것처럼 “우리는 교회의 증언으로 감화를 받고 이끌림을 받아 성경에 관한 고상하고 경건한 존경심을 갖게 될 것입니다”라는 고백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성경의 권위는 성경 자체가 증언하며, 성도는 이를 믿음으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성도는 성경의 사람이 되어야 하고, 성경을 통해 교훈과 책망을 받아 바르게 함으로 이끌림을 받아야 한다. 이것이 성도에게 성경을 주신 하나님의 의도이다. 성경은 단순히 우리의 미래를 점치는 책도, 삶의 방법을 제시하는 책도 아니다.
예를 들면, 이미 다 알고 있지만, 다음의 연속적인 구절들은 성경을 자신의 삶의 위한 책으로 생각한 자의 잘못된 성경읽기의 방법을 보여준다.
마 27:5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
눅 10:37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요 13:27 “이에 예수께서 유다에게 이르시되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하라”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는 성도의 성경관은 이러한 방법을 따르지 않는다. 오직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사랑하시는 방식, 그들을 어떻게 구원하시는가에 대한 책으로 알고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배운다. 바로 이것 때문에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인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이다.
또 다른 예도 생각해 보자. 어떤 이들은 이 책 자체를 굉장히 귀하고 경건하게 여긴다. 그래서 성경을 성스러운 것으로 여기기도 한다. 그래서 이런 질문을 한다. 낡은 성경책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대한 것이다. 너무 낡거나 크게 손상돼 사용할 수 없는 상태가 되면 처치 곤란이다. 요즘에는 책을 리폼하기도 하는데, 리폼조차 할 수 없는 상태가 되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 방식은 간단하다. 여러분이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처리하면 된다. 왜냐하면 성경은 낡은 성경의 처리 방식에 대해 답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을 처리하는 방법은 개인 취향의 문제일 뿐이다. 이와 관련하여 어떤 분은 성경책을 어떻게 버릴 수 있느냐고 말한다. 종이로 되어 있기 때문에 재활용을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을 굉장히 불경스럽게 여긴다. 왜냐하면 그렇게 행동하는 것은 신성모독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성경책 자체를 성스럽게 여기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굉장히 위험한 생각이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은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그 권위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마음으로 대해야 하지만, 인쇄된 성경 자체를 우상처럼 취급하면 안 된다. 이러한 생각이 바로 미신적이고 우상숭배적 태도이다.
우리는 성경에 대한 분명한 태도를 가져야 한다. 인쇄된 이 책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통해 성도로서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배우고, 삶의 태도를 인지하고 깨닫는 태도가 더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고 믿고 순종하는 자리에 나가야 한다. 성경을 읽을 때 그 의미를 파악하려고 애를 써야 할 것이지,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인지 아닌지에 대한 의문을 갖는 것은 불경스러운 것이요, 사탄의 꾀임에 빠지는 것이다. 사탄은 우리를 늘 유혹한다. 창 3:1에서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는 질문으로 사탄은 하와를 유혹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느냐’는 의문을 제시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성령 하나님의 증언을 통해 이미 이 사실을 고백했다. 성경은 “무오(無誤)한 진리이고 신적인 권위를 가진 것이라고 완전히 수긍하고 확신”한다고 말이다.
세상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롬 1:18)로 가득하다. 그들의 유혹으로 성도들도 성경의 가르침에 의문을 갖고 그것이 과연 하나님의 말씀인가를 질문한다. 이러한 생각들이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를 거쳐 지금까지 교회를 미혹하는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주장이다. 그들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이 만든 한 권의 책으로 생각하여 그것을 그들 나름대로의 해석 방법으로 칼질을 한다. 예를 들면 예수님의 이적에 대해, 그것은 사람들이 믿음의 영역에서 상상하여 만들어낸 이야기라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 성도를 위하여 계시된 하나님의 기록임을 고백한다. 분명히 이것은 믿음의 영역이다. 여기에서 우리의 믿음이 시작된다.
성도는 성경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교훈과 책망을 받고 하나님 앞에 바르게 되는 유익을 얻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성도가 마땅히 가져야 할 성경을 대하는 태도이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가르침을 받아 성경의 무오한 진리와 신적인 권위를 깨닫고 바른 성도의 삶을 성경에 기초하여 드러내는 삶을 사는 온전한 성도가 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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