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살기 너무 힘들어요. 제발 좀 도와주세요.”
3월 중순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에 위치한 보건복지콜센터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어색한 한국말로 어려움을 호소하던 사람은 다름 아닌 중국동포 한 모씨. 4년 전 한국으로 건너 온 그는 한국남자를 만나 아이를 낳고 살며 사실혼 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었다.
하지만 얼마 전 그의 남편이 실직하며 가정이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불행은 한꺼번에 찾아오는 것인지, 게다가 사고로 남편의 몸도 성치 않은 상황. 한 씨 또한 경제적 활동을 할 정도의 몸 상태가 되지 않는다. “부부가 둘 다 아프다보니 아이들 돌보는 것도 힘들다”는 그는 “어떻게든 살아보려는데 막막하기만 하다”고 털어놨다.
사실 외국인의 경우에는 아무리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어도 구제해 줄 적절한 규정이 없다. 하지만 한 씨의 경우는 사실혼 관계가 인정됨에 따라 경제적 지원을 모색해 볼 방법이 있다는 것.
복지콜센터 김인숙 상담반장은 “한 씨처럼 지원 기준에 못 미칠 경우에도 경제적 개입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기타란에 타법 지원 가능할 듯하다고 코멘트를 작성해서 해당 시군구로 넘겨준다”고 말했다.
비상근무체제 돌입, 365일 24시간 대기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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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긴급지원 상담반 등 4개의 상담반에 100여명의 상담원들이 근무하는 보건복지콜센터는 최근 비상체제로 돌입, 365일 24시간 대기 상태다. | 전 세계적인 경기침체의 여파가 서민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이는 보건복지콜센터로 걸려오는 전화 한통 한통에서 느낄 수 있다. 센터 한 관계자는 요즘은 무턱대고 통장 계좌번호를 불러주고는 무조건 돈을 넣어달라는 말만 하고 끊어버린다던지, 돈을 안 빌려주면 죽어버리겠다고 하는 협박성 전화까지 걸려올 정도다.
김 반장은 “예전에는 의료지원에 대한 문의가 많았는데 작년 하반기부터는 생계 지원을 요청하는 경우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고 밝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보건복지콜센터도 비상근무체제를 갖추고 궁지에 내몰린 서민구제에 적극 나서고 있다.
현재 콜센터는 소득보장상담반, 복지서비스상담반, 건강생활상담반, 긴급지원상담반 등 4개의 상담반을 구성, 100여명의 상담자가 상시적으로 일을 하고 있다.
소득보장상담반은 기초생활보장 및 기초노령연금, 의료급여, 자활사업, 가족정책, 국민연금 등의 상담을, 복지서비스상담반은 장애인복지와 사회서비스, 인구정책, 사회복지시설, 사회복지사제도, 아동·청소년 복지, 보육정책 등을 주로 상담한다.
또 건강생활상담반은 보건의료와 건강보험, 한의약정책, 건강정책, 노인보건복지, 노인장기요양보험 등에 대한 상담을 맡고 있다. 그리고 국민연금공단과 건강보험공단, 심사평가원에서 각 1명씩 차출돼 와, 전문상담 및 다른 상담원들의 헬퍼를 자청하고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모든 상담반에서는 생계관련 긴급지원상담을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특히 긴급지원반은 특별 근무조를 편성해 3교대로 365일 24시간 센터에서 국민들과 함께 하고 있다. 밤에 걸려오는 전화 한통까지도 소홀히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김인숙 상담반장은 “밤에 걸려오는 전화는 대부분 지원요청보다는 하소연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김 반장은 지난 밤 걸려왔던 사연을 이야기했다. 새벽녘에 129로 전화를 건 한 남성은 이미 술에 취해있었지만 전화선을 타고 들려오는 그의 음성에서는 주정이라기보다는 삶에 지친 한 중년 남성의 애환으로 읽혀졌다고. 사연인즉슨, 현재 중소기업 사장인 그 남성은 어렵고 힘든 자신의 얘기를 할 상대가 없다는 것. 친구들한테 조차도 말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살기 힘들다는 말을 계속 되뇌었다고 한다.
이런 상담 전화를 여러 차례 받다보면 상담자들의 특성에 따른 상담스킬도 필요하다. 하루에 전화가 수백 통 이상 걸려오는데 마냥 상대방에서 이야기하는 것을 다 듣고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적절한 선에서 자르고,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김 반장은 “상담을 하다보면 그 사람이 우울증인지 정신분열증인지 어느 정도는 상담자의 상태를 가늠할 수 있다”면서 “그러고 나면 그 특성에 맞게 상담기법을 발휘해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게 된다”고 설명했다.
구청담당자 현장조사 후 서비스 지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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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보겆복지콜센터를 통해 희망을 찾았다는 사연이 늘고 있다. 이는 한통의 전화도 소홀히 하지 않고 개인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해왔던 것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
긴급지원상담반 이선영 상담원은 유치원에 다니는 자녀들 둔 주부의 상담 전화를 받았다. 자살이라는 두 글자를 검색해보니 ‘보건복지콜센터’가 눈에 띄었다며 이야기를 시작한 그 주부는 갑작스런 시한부 인생과 가정문제로 힘들어 자살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근래에 자주 발생하고 있는 연예인의 자살도 그 사람에겐 자살충동의 한 요인이라고 말했다. 이미 상담자는 아이들이 유치원에서 돌아오기 전에 여러 번의 자살시도를 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는 어느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고, 해결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항상 반복하는 그 지겨움도 만만치 않다며 울면서 호소했다.
이 씨는 “대상자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경청하고 있노라면 이해가 된다”면서 “특별히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없고 혼자 묵묵히 이겨내야 하는 현실이 참 답답할 뿐”이라고 아쉬워했다.
소득보장상담반 김성희 상담원도 같은 시각 긴급의료비 지원 요청상담을 접수했다. 어머니의 의료비를 지원해 달라는 젊은 남자는 보증금 400만원에 25만원의 월세를 살고 있으며 일용직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또 여동생은 후천성 심장병을 앓고 있어 수술을 해야 하지만 수술비가 없어 약물치료만 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는 “매번 독한 약과 주사로 인해 동생의 정신은 온전하지 못하고 나이 38살에 혼자서 막노동을 하며 생계를 꾸려나가다 갑자기 본인도 병이 생겨 수술을 해야 된다”고 했다.
빚 독촉은 계속 되고 돈은 없어 수술도 못하는 상황에 ‘이렇게 살면 뭐하겠어, 우리 같이 죽자’는 생각으로 가족 모두 동반 자살을 시도하게 됐다는 가슴 아픈 사연이었다. 하지만 다행히 모두 병원에 실려가 치료를 받고 본인과 동생은 4일 만에 퇴원을 했다.
다만 어머니는 아직 병원에 계속 입원중이라 병원비가 다시 빚이 되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있는 것. 김성희 상담원은 “‘이 분이 긴급복지지원제도만 알고 있었다면 마지막 수단으로 자살을 생각하지 않았을텐데’하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긴급의료비지원과 생계비지원접수를 해 구청담당자에게 어려운 상황이 이야기했다”며 “다행히 구청담당자의 현장조사 후 지원대상자로 선정돼 병원비와 생계비를 지원받게 됐다”고 말했다.
'고맙다'는 전화, 감사편지도 늘어 불철주야 복지콜센터를 지키는 상담원들의 이 같은 노력이 결코 헛되지는 않은 듯하다. 간간히 고맙다고 다시 전화를 해 오는 상담자들도 있고, 그 고마움을 한 통의 편지로 전해주는 사람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에는 한 상담자가 보건복지부장관에게 고마움의 편지를 보내기도 했단다.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에 살고 있다는 상담자(49)는 “바쁘신 장관님께 이렇게 글을 올리는 이유는 희망의 전화 129에 근무하는 상담원과 동대문구청 긴급의료지원 복지사 등 따뜻한 마음과 친절함을 장관님께 전하기 위해서다”라는 문구를 시작으로 편지를 써내려 갔다.
내용인즉슨, 몇 차례 교도소에 수감돼 생활하는 것을 반복하다 지난 2007년 6월에 춘천교도소에서 출소한 그는 거주지가 없어 갱생보호관리공단의 도움으로 답십리 고시원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특히 그는 교도소에서부터 악성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외 여러 가지 증상으로 교도소 내 의무과에서 치료를 하지 못해 춘천성심병원에서 계속적인 치료를 받아왔다.
하지만 출소 이후에는 소득이 없어 그나마도 여의치 않았던 것. 이에 따라 보건복지콜센터를 알게 된 그는 혹시나 의료비를 지원받을 수 있을까하는 마음에 129번으로 전화를 했다. 단 한통의 전화를 걸었을 뿐인데 그 이후 그에게 수시로 전화를 해 지원받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고,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을 이해할 때까지 몇 번이고 친절하게 알려줘서 긴급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편지를 통해 “129와의 상담을 통해 희망이라는 단어를 알게 됐다”고 표현했다.
국민의 생활 한가운데, 든든한 복지도우미 ‘보건복지콜센터’는 지난 2월부터 그 기능이 더욱 확대됐다. 기존의 보건복지콜센터 기능에 복합적인 위기상황에도 불구하고 주로 복지부소관 서비스 상담 위주였던 문제를 개선해 교육(교과부), 주거(국토부), 일자리(노동부), 자영업자 생업자금지원(중소기업청)등의 분야로까지 상담 영역을 확대, 통합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늘어나는 상담건수만큼 인력적으로는 충분치 않은 상황이다.
양윤선 센터장은 “현재 상담인력에 대한 증원요청을 해 놓은 상태”라며 “이 부분에 대해서는 모든 부처에서 공감하고 있으니 조만간 증원돼, 보다 많은 국민들에게 신속한 지원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미니인터뷰>보건복지콜센터 양윤선 센터장
“보건복지콜센터 129는 사회복지전달체계의 구심점”
“보건복지콜센터는 사회복지의 최일선 현장이자 정부정책을 전달하고 국민과 소통하는 유일한 통로이며 사회복지전달체계의 구심점입니다.” 보건복지콜센터 양은선 센터장은 콜센터의 역할과 임무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청소년복지 전문가인 그가 작년 3월, 처음 부임할 당시 만해도 보건복지와 관련된 모든 민원과 정책이 하나로 연결, 원스톱으로 처리되는 복지콜센터가 생소하기만 했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은 상담원 못지않게 보건복지가족정책부터 상담사례, 상담유형까지 꿰뚫고 있다. 1년 만에 모든 것을 익히기에는 어려움도 많았지만, 항상 상담원들과 함께하며 새로운 정책이나 지침에 대해 학습하고 상담사례에 대한 분석 및 개선방안을 고민한 결과다. 특히 지난해 말부터 불어 닥친 경기한파는 그가 더욱 빨리 업무를 익힐 수 있게 하는 계기가 됐다.
양 센터장은 “부임하고 얼마 되지 않아 경기가 최악으로 치닫기 시작했다”면서 “사실 다들 어렵다 어렵다하지만 여기서 근무하다보면 정말 많은 어렵다는 것이 무엇인지, 국민들이 얼마나 힘든지 체감할 수 있다”고 전했다.
그는 특히 “지난해부터 정책, 사업 일반 상담 건, 생활 긴급, 저소득 각종 혜택 등에 대한 문의가 급증하는데다 자영업자나 일용직 노동자가 생활고를 호소하는 경우도 많다”며 “국민이 호소하는 어려움을 직접 듣고 상담하는 것이 주 업무이다보니 어깨도 무겁고 한건의 전화도 희망을 갖고 응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부임 초기보다 늘어난 상담전화에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많구나’ 싶다가도 또 한 켠으로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했단다.
양 센터장에 따르면 지난해 일평균 전화상담 건수는 3800여건. 그에 반해 올해 3월까지의 일평균 건수는 무려 5400여건으로, 1.5배나 증가했다. 그 중 특히 긴급복지지원에 대한 상담건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긴급복지지원상담은 지난 3월까지 3개월간 3만3295건이 접수됐다. 이는 2008년 긴급복지지원상담 건수인 2만7770건을 훌쩍 넘어 선 수치.
그는 “상담 전화가 폭주하다보다 자연히 센터도 비상근무체계로 전환해 근무하고 있다”며 “어려운 경제 상황이지만 센터직원들이 열심히, 성실히 근무함으로써 국민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면 이 또한 기쁜 일 아니겠냐”고 말했다.
3개월 간 긴급복지상담만 ‘3만3295건’ 양윤선 센터장은 ‘오늘 접수된 상담은 무조건 오늘 안에 처리한다’는 것을 기본 철칙으로 하고 있다. 긴급하게 지원이 필요한 사람들이 마지막 희망을 걸고 센터를 찾는데 내일로 일을 미룬다면 콜센터의 기능을 상실한 것 아니냐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그는 “퇴근시간이 몇 시가 되든 개인에게 주어진 상담은 마무리하고 퇴근하는 것이 이제는 생활화가 됐다”고 밝혔다. 특히 신속하면서도 양질의 서비스를 위해 매달 ‘콜 품질 관리’와 ‘업무 지식 평가’를 실시, 모범이 되는 사원에게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그 는 “인센티브 제도는 직원들간 동기유발에도 효과적이고, 업무지식평가는 상담원들간 스터디 그룹을 짜서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함께 공부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다”면서 “이를 통해 내실 있고 양질의 전화상담이 이뤄지고 있다”고 전했다.
이러한 양질의 서비스는 ‘개인별 맞춤형 서비스’로 이어진다. 실직자, 휴폐업자, 일용근로자 등 다양한 형태의 빈곤계층에 대해 그들이 처해 있는 입장에서 상담하고, 의뢰된 사항이 아니더라도 뭔가 다른 혜택을 줄 수 없는지에 대한 고민을 항상 한다. 그리고 시군구청으로 넘어간 사항이라도 마지막까지 ‘해피콜’서비스를 통해 고객 만족도나 불편한 사항이 없는지에 대해서도 꼼꼼히 체크하고 있다.
직원들 스트레스 관리 위해 ‘129데이’ ‘자원봉사활동’도 하루종일 우울한 이야기를 듣는 상담원들의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것도 센터장의 몫. 매일 듣는 이야기가 ‘힘들다’ ‘죽고싶다’는 식의 우울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보니 상담원의 기분이나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다. 때문에 양 센터장은 ‘129데이’를 지정, 매월 18일과 29일 등은 떡을 해서 나눠먹는다던지, 간단한 간식시간을 가지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식으로 직원들을 위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벤트와 산행 등의 워크숍을 통해 심신을 단련하기도 하며, 특히 매월 자원봉사도 빠지지 않는다. 자원봉사단인 ‘희망봉사대’는 자원봉사와 함께 이들 업무의 한 연장선이 된다. 현장봉사를 통해 현장 감각을 자연스럽게 익히고, 나아가 찾아가는 상담서비스까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양윤선 센터장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희망을 주는 것 자체가 희망”이라며 “보건복지콜센터는 복지에 대한 다양한 정책과 제도를 국민에게 알려주고 연결시켜 줌으로써 희망을 전달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많은 상담원들이 고생하고 있다. 앞으로도 신속, 정확하고 친절한 상담원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이라며 “더불어 국민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복지콜센터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