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암문학 31호 원고
단추가 웃었다
전홍구
첫 단추를 삐뚤게 채웠더니
와이셔츠가 훌쩍훌쩍 울고 있었는데도
나는 멀쩡히 웃으며 넥타이를 맸다
거울이 아니었다면 어쩔 뻔했나
길모퉁이 바람도 나를 비웃고
사람들의 눈길이 “킥킥”했을 터
단추 하나 어긋났을 뿐인데
인생 전체가 왼쪽으로 기우는 듯
가슴께서부터 허리까지 삐뚤빼뚤
그래도 천만다행이었다
거울이 먼저 웃으며 알려주었으니
세상 앞에서 내가 먼저 코미디를 면했다.
다섯 맛의 열매
전홍구
한 알 속에 다섯 개의 맛이 숨어 있는
달콤한 빛 짭짤한 바람 시큼한 별빛
씹을수록 맵게 피어나는 불씨와
쓴 듯 깊은 어둠이 함께 따라온다
껍질은 웃음처럼 입술을 감싸고
과육은 번개처럼 혀끝을 찌른다
씨앗은 작지만 불과 그림자를 품어
마지막엔 바다가 스며든다
신맛은 간을 살리고 단맛은 비장을 살리며
매운 기운은 폐를 열고
쓴 기운과 짠맛은 심장과 신장을 적셔
몸속에 다섯 방향의 바람이 돈다
찻잔에 오미자를 띄우면 피로가 물러가고
숨 가쁜 기침도 바람에 흩어지며
붉은빛 물결을 마시면 피로가 풀리며
잃었던 힘이 다시 되살아난다.
오미자 너는 작은 우주
다섯 개의 별을 한 알에 묶어
입속에 넣을 때마다
또 다른 세상이 새로 태어난다.
첫댓글 보약같은 글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