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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푸른 하늘은 뭔가?
[서평] 이시영 시집 <조용한 푸른 하늘>
07.01.25 11:50 ㅣ최종 업데이트 07.01.25 11:50 이종암 (bluewind65)
1997년 도서출판 솔에서 나온 <조용한 푸른 하늘>은 이시영 시인의 일곱 번째 시집이다. 지금까지 펴낸 시집의 양과 그가 이룩한 시적 성취면에서 이시영은 우리나라의 중견 시인임에 틀림없다. 그는 첫 시집<만월>(창작과비평사, 1976)에서부터 줄기차게 70,80년대 폭압적 정치 상황 하에서 늘 소외당하고 고통 받는 민중들의 삶을 노래해 온 리얼리즘 시인이다. 그의 시는 70, 80년대의 이른바 민중시의 중심에 서 있으면서도 90년대에 들어 자주 비판당해 온 민중을 선전 선동했던 그 투쟁시, 슬로건시와는 처음부터 달랐다.
그의 시는 시대의 아픔을 애써 외면한 채 시적 기교에 지나치게 치중하지도 않았고, 민주주의 회복과 노동해방이라는 당면한 현실 문제 해결에 성급한 나머지 문학적 형상화라는 그물을 멀찍이 벗어난 엉터리시도 아니었다. 소외받고 억압당해 온 민중들의 삶, 그들의 고통과 투쟁, 사랑을 시의 중심 내용으로 삼으면서도 시의 진로를 벗어남이 없는 팽팽한 시적 긴장을 가진 완성된 시 형식을 그동안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정님이', '후꾸다' 등이 예의 작품들이다.
이시영의 시집 <조용한 푸른 하늘>을 펼쳐보면 병든 시대에 우리를 다시 살아 숨쉬게 할 깨끗한 산소가 가득 쏟아져 나온다. 인간의 유전자로 새끼 양을 복제하는 시대지만,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오늘은 한마디로 '죽임'의 시대다. 무한질주의 속도만이 추구되고, 그 모든 것이 숫자(가격)로 체크, 평가되는 상품, 상품만이 우리 앞에 놓여 있는 도시 문명은 분명 비인간화, 죽임의 시대라 불려도 마땅하다.
그의 시 '상품, 상품', '홀리데이 인 서울', '회식', '자본주의' 등에는 타락한 현재의 사회적 삶이 가감 없이 잘 드러나 있다. 여기에서 시인은 우리 시대가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되고 이렇게 되어야 한다'는 식의 어떤 메시지도 남겨놓지 않고 그저 우리들 삶의 한 단면을 보여줄 뿐이다.
시에 표현된 어투를 빌려 우리 시대를 다시 말하자면 납빛 하늘 밑에서 공허의 흰 피를 먹고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살아가는 절망의 시대다. 이런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이시영의 새 시집 '조용한 푸른 하늘'을 천천히 정독하면 다시 살아날 것 같은 新生의 힘을 얻을 수 있어 기쁘다.
심심했던지 재두루미가 후다닥 튀어올라
푸른 하늘을 느릿느릿 헤엄쳐간다
그 옆의 콩꼬투리가 배시시 웃다가 그만
잘 여문 콩알을 우수수 쏟아놓는다
그 밑의 미꾸라지들이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봇도랑에 하얀 배를 마구 내놓고 통통거린다
먼길을 가던 농부가 자기 논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가만히 들여다본다
-'시월' 전문(69면).
위 시에는 생명의 꿈틀거림이 생생(生生) 드러난다. 꿈틀거리다 못해 종이 표면 위로 쏟아져 나오는 느낌이랄까. 푸른 가을 하늘로 유명한 우리나라 시월의 금가지 않고 살아 있는 모습 그대로다. 우선 위 시에서 드러나는 내용상의 특징은 등장하는 시의 소재인 각 사물들이 각(角)지거나 끊어짐이 없이 모두가 사랑의 숨결 하나로 연결되어 나타나는 모습이다. 날짐승 재두루미와 땅 위의 콩꼬투리, 물 속의 미꾸라지, 길 위의 농부가 완벽하게 하나의 모습으로 세계를 이루고 있다.
이것이 생명체 우주의 평화스런 본래의 모습이 아닐까. 그래서인지 시집에서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어휘가 바로 '푸르다'의 형용어와 '하늘'이라는 단어이다. 말할 것도 없이 '푸르다'라는 시각적 이미지는 보통 살아 있는 생명력이나 희망을 상징하는 것일 터이고, '하늘'은 앞의 푸른 이미지를 갖고 있으면서도 공간의 확장을 통한 우주나 우리가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고귀한 그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 것이다.
닥치는 대로 소비하고 마구 내다버려 인간을 포함한 생명체의 삶의 터전인 세계를 병들게 하고 죽게 만드는 20세기말 산업소비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이시영의 시는 생명의 "강한 전류와 뜨거운 불꽃을" 불어넣어 주고 있다. 그의 시집을 펼쳐보면 곳곳에서 이러한 생명의 숨소리가 용솟음치고 있는 모습을 우리는 쉽게 목도할 수 있다. 아무렇게나 펼쳐본 아래의 시들에서 그것은 확연히 느껴진다.
새끼 새 한 마리가 우듬지 끝에서 재주를 넘다가
그만 벼랑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먼길을 가던 엄마 새가 온 하늘을 가르며
쏜살같이 급강하한다
세계가 적요하다 - '화살' 전문(25면).
겨울 나무의 찬 가지 위로 올해의 가장
매서운 눈보라가 휩쓸고 지나가자
땅속의 앞 못 보는 애벌레들이 제일 먼저 알고
발그레한 하품을 한다 - '新生' 전문(49면).
건재상에 팔려와 기다리는 모래 속에는
거이의 발자국과 새 발자국과
어느 맑은 여름 낮의 천둥 소리와
서서 닿지 못하는 먼바다의 신음 소리와 - '水墨' 전문(64면).
푸른 하늘에서 밤톨 하나가 툭 떨어져 팽그르르 돈다
오양간의 송아지란 놈이 슬픈 앞발을 들고
맨 처음 그것을 치어다본다 - '凋落' 전문(66면).
인용한 시 모두 그 길이가 3~5행으로 유난히 짧은 형식을 갖추고 있다. 극도의 절제된 시어의 운용과 팽팽한 시적 긴장이 빚어놓은 빼어난 단형의 서정시다. 우주의 어느 한 모습과 순간을 시인의 예리한 직관력으로 움켜잡아 대우주의 숨결을 그대로 살려내고 있는, "짧은 시어와 행간의 울림으로써 더 깊고 많은 뜻을 전"하고자 하는 시인의 시적 전략이 맘껏 발휘된 작품으로 보인다. 그러나 필자는 위 시들을 보면서 우리 인간들의 자질구레한 생활이 구체적으로 그려졌더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본다. 자연 현상만을 그리든지 그것으로 인간 사회와 우주의 어떤 모습을 그린 시들, 그것도 고도의 압축과 생략을 통한 여백으로 나타내고 있는 시의 내용은 아무래도 관념적으로 기울어지기가 쉽다.
그런데 '석양녘'과'당숙모'라는 시는 참 재미있는 작품이다.
가을이 깊어가자 수수는 작 익어 고개를 푹 수그리고 산두밭 사잇길로 무거운 쟁기를 끌고 오던 소리가 갑자기 뒷발질로 송아지 뱃구레를 지른다. 매애 하고 수수밭 속으로 뛰어든 송아지가 와삭와삭 수숫대를 훔치다 말고 놀란 눈으로 미끈한 하늘에 불끈 솟는 피비린 노을 기둥을 본다. - '석양녘' 전문(14면).
비 맞은 닭이 구시렁구시렁 되똥되똥 걸어와 후닥 헛간 볏짚 위에 오른다
그리고 아주 잠깐 사이 눈부신 새하얀 뜨거운 알을 낳는다
비 맞은 닭이 구시렁구시렁 미주알께를 오물락거리며 다시 일 나간다 - '당숙모' 전문(48면).
인용한 두 편의 시 모두가 인간이 아니라 소와 닭이라는 짐승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사람의 이야기로 읽을 수 있어 생활의 온기와 사람 냄새가 나는 아름다운 작품들이다.
먼저 '석양녘'을 보자. 깊어가는 가을 산일을 마치고 무거운 쟁기를 끌며 돌아오는 어미소, 수수밭 옆을 지나자 갑자기 뒷발로 자기 새끼 뱃구레를 질러 수수밭에 몰아넣어 주린 배를 채우게 한다. 동물과 사람의 구분 없이 새끼를 둔 세상의 모든 어미의 마음은 한 가지가 아닐까. 길이가 좀 짧기는 하지만 이 산문시에서 유독 두드러지게 필자의 시선을 끌고 있는 시어는 '놀란 눈'이다.
남의 곡식밭에서 훔쳐 먹다 누군가 보고 있는 듯해 깜짝 놀란 표정의 송아지 눈은 참으로 생기가 넘쳐 보인다. 갓 돌을 넘긴 필자의 아들놈의 커다란 두 눈처럼 친애감이 간다. 석양녘 노을 기둥은 송아지의 눈을 놀라게 한 것이면서도 '놀란 눈'이 시각적으로 선명히 두드러지게 만든 상황의 바탕색이다. 위 시는 이렇게 석양녘 깊은 가을 산의 한 풍경화를 보는 것 같다. 이 풍경화를 값지게 만들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그림 속에 선명히 살아있는 송아지의 그 놀란 눈을 그려 넣은 점경(點景)의 효과로 가능한 것이다.
시 '당숙모'는 시인이 독자의 상상력을 한 치의 옆도 돌아보지 못하도록 견고하게 붙들어 매어 강한 전류의 메시지를 전달해주는 작품이다. 위 시는 닭의 행위를 보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당숙모의 행위를 머릿속에 그려놓게 만들고 있다. 시골에서 자란 필자는 위 시를 처음 읽으면서 군소리를 종종하시면서도 억척같이 살아오신 고향 당숙모가 자연스레 떠올라 입가에 웃음을 금할 수 없었다. 들일을 나갔다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 때문에 얼른 집에 들어와 비 설거지(마당이나 지붕에 말리려고 내다놓은 고추 등을 치우는 것)를 얼른 하고서 다시 들일나가시는 당숙모, 일 나가시며 어디에서 놀고 있을 아들놈, 서방 욕을 구시렁대며 당숙모의 삶과 위 시가 이렇게도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을까? 깊은 시적 성찰로 숨김과 드러냄의 팽팽한 균형을 유지한 작품이다. 전혀 가능하지 않을 듯한 닭과 당숙모의 비유적 결합을 훌륭히 이뤄내고 있는 이것을 보면 시인의 탁월한 시적 재능을 짐작케 한다.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강철 같은 투시력으로 생명력 넘치는 한 순간을 붙잡아 그림같이 생생히 보여주는 그의 짧은 시가 좀더 인간적인 사람 냄새나는 것이었으면 하는 바람은 계속 남는다.
출처 : 조용한 푸른 하늘은 뭔가? - 오마이뉴스
▲ 이시영 시집 -<조용한 푸른 하늘>(솔출판사,1997)
남도이야기<13> 지리산편<6>
지리산이 낳은 시인 이시영
지리산 아래 구례출신 시인이라면 이시영을 꼽을 수 있다. 그가 활동해왔던 무대는 창작과 비평사였다. 이 출판사의 연원은 1966년 백낙청 등의 주도로 창간된 계간지 창작과 비평에서 시작된다. 창비는 민족민중문학의 본거지였다.
이 시인의 얘기를 꺼내기 전 잠깐 옆길로 한 번 가보자. 대학캠퍼스에 학생보다 사복경찰이 많았던 그 시절. 신군부가 집권한 직후였다. 그 시절 필독서의 상당분이 창비사를 통해 나왔고, 계간지 창비도 필수목록 이었다. 그때 필자는 창비 영인본을 눈 딱 감고 구입했다. 월부였는데 매달 5000원, 기간은 10개월이었다. 한달 용돈(당시 기숙사비 45,000원을 제외하고 책값과 술값 등을 포함한 한달 비용)이 15,000원 안팎이었으니 당시로선 거금이 아닐 수 없었다. 당시 대학구내 짜장면이 200원이었다.
이시영 시인이 창비사와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1971년. 이해 창비 가을호에 시를 발표한 것이 인연이었다. 전남 곡성출신 조태일(1999년 여름 작고) 시인에게 10여편의 시를 주었는데, 그중 다섯 편이 창비에 실렸던 것이다. 이 시인은 당시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 4학년이었다. 서라벌고교 국어교사였던 그는 유신체제에 반대, 자유실천문인협의회에 참여했고, 1980년 편집장으로 창비사에 입사했으나, 그 해 7월 창비는 강제폐간됐다.
계간지가 사라진 직후 돌파구를 마련하고자 그는 1982년 김지하 시인의 시집『타는 목마름으로』를 출간, 고초를 겪었고 곧바로 김 시인의『대설 남1,2』를 출판했다. 1989년 창비 겨울호에 황석영의 방북기「사람이 살고 있었네」를 실어 국가보안법위반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어디 가 무엇 하고 있을까 낙식이형은
호리호리한 키에 굽은 등 합죽한 턱
땅마지기 하나 없는 홀아버지 모시고 살지만
입담이 걸고 노래가 구성져
가는 곳마다 아낙들을 웃기고 조랑별을 웃기더니
자라서는 쇼단장이 되겠다고 되고야 말겠다고
밤 저수지 등천을 쩌렁쩌렁 울리고는
더벅머리 나부끼며 서울로 갔지
한번은 구두통을 메고
또 한번은 얼음배달 오토바이를 타고
내가 다니는 대학으로 찾아와
배워야 살겠더라고 너 하나만은 꼭 출세를 해야 된다고
주먹을 흔들며 맹세하라고 조르더니
어디 가 무엇하고 있을까
시골로 약장사를 따라다닌다는 소문도 들었고
오토바이에 다리를 잘리고는
영등포 어디서 또 구두를 닦더라는 말도 들렸고
아버님전 상서를 남기고 가진 것 없는
한 목숨 깨끗이 한강에 던져버렸다는 말도 들렸고
정말로 쇼단장이 되어 고향까지 내려왔더라는 소문도 들었지만
형은 다시는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
배운다는 것이 무엇인지
대학을 나와 출세한다는 것이
누구를 위한 무엇인지를
끝내 가르쳐주지도 않은 채… …(「낙식이형」)
그의 1970년대를 중심으로 한 대부분의 시작품에는 민중지향성이 강하다. 1960년대와 70년대, 농촌이 살기 어려워던 사람들은 보따리를 싸 전라선을 타고, 호남선을 타고 서울로 서울로 갔다. 그러나 그들이 편히 쉴 수 있는 ‘그들의 집’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는 고향을 상실한 이들이 가질 수 밖에 없었던 도시속의 소외와 절망을 그려내고 있다. 아래 작품을 보자.
시흥역전 공터 위에 낮게 뜬 제비 몇 마리
하늘로 날아올랐다가 내려와 앉을 곳이 없어
파랗게 돋은 머리를 들고 본다
공터에는 부서진 벽돌들과 오래 전에 밥지은 자취
새로 들어선 군부대에서 버린 깡통들과 쓰레기
늙은 개 한 마리가 철조망 가를 어슬렁거리다
성난 군가소리에 놀라 내빼는 곳엔
애를 업은 중년남자가 구들장을 파고 있다
이등병 같은 노오란 새끼를 데리고 온 작년 제비는
제 주인인가를 알아보려고 곡괭이 끝에 앉았다
잠든 애기 볼을 스쳤다하며 재재거려보지만
파자마 바람의 사내는 하늘 높이
곡괭이를 들어올려 땅을 찍고
돌을 찍고 무심한 가슴을 찍는다(「시흥의 봄」)
그의 시에서는 80년대 접어들면 이 땅의 민주화를 갈망하는 메시지를 절절하게 토로한다. 다시 시 한편을 들어보자.
오지 않는 봄을 기다리며
나는 쓴다 민주주의여
겨울 푸른 들판에서
논둑길을 걸으며 쓴다
쓰디쓴 풀뿌리를 씹으며 쓴다
(중략)
최루탄 위에 쓴다
동맹휴학 위에 쓴다
캄캄한 세월 기나긴 어둠의 세월
철창 속 마룻바닥 위에 엎드려
언 손 불며 쓴다
칼바람 속을 나서며 쓴다
서슬 푸른 사슬에 놀라
뒷걸음치며 쓴다
어머니 가슴에 갈대머리 묻고
조용히 조용히 흔들리며 쓴다
(중략)
언제 어디에 써볼 것인가
그대 승리할 날의 눈부신 펄럭임
푸르른 날의 고요의 깃발이여(「깃발」)
1949년 출생한 그는 196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조가 당선되었고,『월간문학』제3회 신인작품공모에 시가 당선됐다. 결혼주례는 고은 시인이었다. 그는 창비사에서 편집장, 주간, 부사장 등을 맡아 지금의 창비사로 키우는데 일익을 담당했다. 시집『滿月』(1976),『바람 속으로』(1986),『길은 멀다 친구여』(1989),『이슬 맺힌 노래』(1991),『무늬』(1994),『사이』(1996)가 있다.
내 마음의 집은 전라남도 구례군 마산면 사도리396번지. 등기부상으론 203坪. 무슨 평수가 그리 넓으냐고 질책하신 마십시오. 삼면은 아슬아슬한 돌담, 그러나 한번도 무너져본 적이 없지요.(중략)사랑방 바짝 옆엔 아버지의 서재방. 새벽녘까지 긴 담뱃대 놋재털이에 탕탕거리던 소리만이 들렸습니다. 인공 때는 물론 그 사랑채가 텅 비었었고 토벌 때는 그곳에 국방군들이 아예 자리를 트고 득시글거렸습니다. 가마니 잘 짜고 입담 구수하던 그 많던 덥석부리들은 놀란 눈을 뜨고 어디로 가버렸는지?(하략)(「마음의 고향5」시 일부)
첫 시집『滿月』의 후기에서 이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정말, 좋은 시를 쓰고 싶다. 그것이 나의 꾸밈없는 노래이면서 우리들의 진정한 노래로 불려질 수 있는 시를.(중략)허나 시인이 어디 하루 아침에 똥누다가 이루어지랴!” 지금도 이 시인은 스스로의 대작을 꿈꾸고 있을 것이다. “장대한 폭포는 통쾌히 한 번 쏟아지고 난 뒤에도 만상(萬象)의 적요 속에 그 은은한 울림의 여운을 끝까지 남길 줄 안다”고 쓴 시집『사이』의 후기가 퍽 인상적이다.
첫댓글 감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