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당 최남선이 신문관에서 펴낸 첫 번째 출판물은 창가집 《경부 철도 노래》다. 115×190mm 판형의 이 책은 세련된 본문 34쪽의 소책자에 불과했지만 표지 디자인부터 남다를 뿐 아니라 경부선 지도 1장과 사진 9장, 악보 등을 함께 수록하고 있어 당대 최고급의 책으로 내세울 만하다. 내가 확인한 바로는 지질과 잉크 상태 역시 최상이다. 이 책은 지금 국내에 단 두 권만이 남아 있다.

겉표지는 신문관이 줄곧 내세운 태극 무늬와 무궁화 무늬로 디자인 되어 있다.
판권장의 기록에 따르면 이 책은 1908년 3월 20일에 초판, 4월 20일에 재판, 그리고 5월 10일에 3판이 발행되었다. 앞선 포스트에서도 말했지만 이건 신문관의 창립 시기를 둘러싼 핵심 미스터리 가운데 하나다.
최남선이 인쇄 기계 구입을 위해 일본으로 출발한 것이 이해 4월 14일이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것은 적어도 6월 25일 이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최남선이 일본에 건너가기도 전에 출판되고 그 사이에도 두 번이나 판을 거듭했다는 사실을 그대로 믿기는 어렵다. 게다가 《경부 철도 노래》의 활자와 디자인 등으로 보아서는 일본에서 인쇄 기계를 들여오기 전에 출판했다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게 사실이다.
실제로 《경부 철도 노래》의 판권장을 보면 인출처(인쇄소)는 신문관 인출국, 총 발행처(발행소)는 신문관으로 기재되어 있지만 주소는 전혀 기재되어 있지 않다. 당시 출판물에는 인쇄소와 발행소의 주소를 명기하게 되어 있었다. 따라서 이 책의 출판에 대해서는 두 가지 가능성을 떠올릴 수 있다.
첫째는 신문관이 아직 자리를 잡기 전에 신문관 이름만 먼저 내걸고 출판되었을 가능성이고, 둘째는 신문관이 자리를 잡은 이후인 6월 이후에 날짜를 앞당겨 기재하여 출판되었을 가능성이다.
지금으로서는 첫째의 경우가 더 믿을 만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보기에는 지금 남아 있는 책이 너무 적다. 순식간에 3판을 돌파할 정도라면(실제로 이 정도라면 정말 대단한 속도다.) 초판이나 재판도 남아 있어야 하고 당시 신문에도 거론될 법하지만 더 이상의 흔적이 없다. 또 이게 사실이라 치더라도 그렇다면 대체 이 책은 어디에서 편집되고 인쇄되었는가의 문제가 남는다. 위에서 슬쩍 내비쳤지만 내가 보기에는 이 정도 책이라면 1908년 한국의 여느 출판사에서 낼 수 없었다. 그렇다면 일본에서 인쇄되었을 가능성이 있는데, 굳이 추정하자면 최남선의 요청으로 슈에이샤에서 주문 출판되었을 가능성을 떠올림 직하다. 일종의 시험 출판이었을 터인데, 그렇다고 보기에는 또 증쇄 간격이 너무 짧은 문제가 있다. 불과 20~30일 만에 이런 일들이 일어나기에는 당시 우편이나 물류 상황이 그리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경우는 현실적으로 더 있음 직해 보인다. 말하자면 일종의 허위 기재다. 실제로는 7월쯤 신문관에서 출판되었지만 어떤 이유로 날짜를 앞당겨 기재하거나 착오를 일으켰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이다. 마땅한 이유 없이 날짜를 앞당겨 기재할 리는 없기 때문이다. 착오라고 보기에도 기재 날짜가 너무 정확하다. 게다가 그렇게 본다면 3판이라는 기록도 허위라는 말이 된다. 역시 뚜렷한 이유를 찾기 어렵다. 또 6월 말 이후에 정식으로 신문관의 간판을 내건 뒤 출판된 것이라면 왜 굳이 주소를 명기하지 않았을까? 그 이유가 무엇인지 설명하기 어렵다. 짐작건대는 이 시점을 전후해서 출판법의 변화나 행정적인 문제가 개입되었을 가능성도 있지만 아직은 분명하지 않은 터다.
신문관의 첫 번째 출판물 《경부 철도 노래》가 실제로 어떤 우여곡절을 거쳐 탄생되었는지 살피는 일은 신문관의 창립 과정을 이해하는 열쇠다. 아쉽게도 지금으로서는 이런저런 추정으로 마무를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