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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포십경(大浦十景)
대포십경(大浦十景)은 대포 마을에서 후학 양성에 공이 많은 우포(愚浦) 김종훈(金鍾勛;1877~1949) 선생이 처음 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우포의 유고를 바탕으로 필자가 현장을 답사하고 주민들과 면담을 하여 그 내용을 보완하였다. 필자가 집필한 <대포마을지>에 수록된 글을 옮겨 실었다.
(1) 사단고송(社壇孤松)
대포의 제일경으로 삼는 것이 바로 사단고송(社壇孤松)이다. 사단고송은 대포동 777번지 일대인 ‘큰솔동산’(큰술동산)에 사시사철 푸른 기상을 잃지 않고 의연하게 서 있는 해송의 고고한 모습을 말하는 것이다. 마치 조상들이 후손들에게 언제나 푸른 소나무처럼 항상 절개와 기상을 지키며 살도록 가르치는 듯하다. 이 곰솔은 자태가 매우 뛰어나서 대포 주민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다. 1990년 12월 17일 서귀포시 보호수(고시번호 90-124)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2000년 제주임업시험장에 수령조사를 의뢰하였다. 이 곰솔에서 채취된 시료를 가지고 5회에 걸쳐 연륜 측정한 결과 수령이 197년으로 판정되었다. 나무 높이는 8m, 둘레는 230㎝였다. 이 나무에 대한 진단 결과 부패 부위를 제거하고 콜크 분말을 부착시키는 외과수술이 필요하며, 소나무혹병 방제 및 주변 토양 소독, 배양토 처리 등을 해야 할 것으로 조사되었다.
소나무 아래에는 예로부터 조상 대대로 마을의 평화와 번영을 기원하며 제사 지냈던 제단이 있었다. 여기서 조상들은 남성 위주의 유교식 마을신앙인 ‘포제’를 지내기도 했었다. 이곳은 대포 주민들이 가장 신성시하는 곳 중의 하나이며, 조망도 뛰어나다. 이곳에 서면 대포 마을 전경 및 대포 해안 일대와 넘실거리는 태평양이 한눈에 들어와 가히 대포 제일경이다.
(2) 송전신지(松田新池)
소낭밭에 새로 만든 연못의 아름다움을 말하는 것이다. 지금 마을회관 일대는 과거 소나무들이 많이 있어 ‘소낭밧[松田]’이라 했다. 일제 강점기인 1910년대 재일청년회와 마을청년회 주최로 모금하여 이 ‘소낭밧’ 일대의 부지를 매입하였다. 1927년경 방화수 및 우마용 식수로 사용키 위해 이 일대를 파서 새롭게 못을 만들었다(新池). 1931년에는 현재 마을회관이 있는 자리에 대포 최초의 함석 지붕인 청년회관을 건립했다. 1974년에 못을 매립하고, 그 후 포장하여 지금까지 마을 광장 및 시내버스 종점으로 사용하고 있다. 마을의 각종 노천 행사를 개최하기에 적합한 장소가 ‘못디광장’ 밖에 없는데, 협소한 편이다. 농협창고가 광장 남쪽에 들어서 있어 그렇지 않아도 좁은 이 곳을 더욱 비좁게 만들고 있다.
(3) 남산관해(南山觀海)
대포동 1808번지 일대에 ‘동물개동산’이 있다. 대포 마을 남쪽에 있다고 해서 ‘남산’(南山)이라고도 한다. 남산관해(南山觀海)는 ‘동물개동산’에서 대포 해안가에 펼쳐져 있는 바다의 아름다운 모습을 조망하는 것을 말한다. 이곳에서 남쪽을 보면 대포 해안에 파도치는 모습, 고깃배가 유유히 오가는 모습, 잠녀[潛女]들이 물질하는 모습들이 한 폭의 그림처럼 다가온다. 지금은 동물개 동산 바로 서쪽으로 신도로가 관통하면서 옛 절경이 많이 훼손되고 말았다.
(4) 암지명월(暗旨明月)
‘어둔르’(暗旨) 동산에서 동쪽으로 둥근 달이 떠오르는 월출(月出) 장관을 바라보는 것을 말한다. 중문상업고등학교 남쪽에 ‘어두동’이라는 작은 동네가 있는데, ‘어둔르’는 ‘어두동’ 서쪽 구릉지(동산)를 말한다. 지금은 대부분 감귤원으로 이용되고 있다. 방풍용으로 밀식된 삼나무들 때문에 동산 꼭대기에 올라도 과거처럼 탁 트인 경관을 보기 어렵다.
(5) 하봉목마(下峯牧馬)
대포동 산 1번지에 있는 ‘알오름’[下峯] 일대의 목장에서 말을 풀어 기르는 풍경의 아름다움을 일컫는 것이다. ‘거린사슴’은 두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오름이다. 위에 있는 봉우리를 ‘붉은오름’이라 하고, 아래에 있는 오름을 대포 지역에서 가장 아래에 위치한 오름이라 하여 ‘알오름’이라 한다.
제주도는 예로부터 목마장(牧馬場)으로 유명했다. 조선시대에는 한라산을 빙 돌아가면서 국영목장인 10개의 소장(所場)이 있었다. 대포 중산간 일대에는 제8소장이 자리잡고 있었다. 1700년대에 만들어진 <제주삼현도>를 보면 8소장은 대포 및 하원, 강정, 중문 등 과거 중문면의 중산간 지대에 위치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한라산 쪽으로는 ‘상잣성’, 마을 쪽으로는 ‘하잣성’을 쌓아 이 곳 초지대에서 말을 방목했다. 어떤 말들은 ‘상잣성’을 넘어 한라산으로 도망가 야생마가 되기도 했고, 먹을 것이 모자라면 ‘하잣성’ 너머 해안가 마을 주변으로 내려와 농작물에 피해를 주기도 했다.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1703년)의 산장구마(山場驅馬) 그림에는 그 당시 산장(山場)이라는 목마장에서 말을 취합하는 장면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1702년 가을날 말 취합 행사에 동원된 군인과 목자의 인원이 6천 500여 명이며, 그날 하루 사로잡은 말의 수는 2천 300여 마리로 기록되어 있다. 이처럼 목마장에서 방목하던 말들을 어느 날을 정하여 취합한 다음, 선박을 이용하여 중앙 조정으로 진상(進上)했던 것이다. 구전(口傳)에 따르면, 대포 일대의 8소장에서 취합한 말들은 ‘질’을 따라 대포 동쪽 해안인 ‘배튼개’로 끌고와 선박을 이용해 중앙으로 공수했다고 한다. 조선 말엽에 국영목장 제도가 폐지되면서 소장들은 마을의 크기에 따라 사이좋게 나뉘어져 마을 단위의 공동목장으로 전환하게 된다.
대포 목장은 하원목장과 중문목장 사이인 ‘거린사슴’ 바로 아래에 있다. 과거 대포 주민들은 이 곳에서 마소[牛馬]를 방목하기도 했으나, 지금은 방목할 가축들이 없어 관리 및 이용이 저조한 편이다. 대포 주민들은 과거 이 곳에서 마소가 한가로이 풀을 뜯는 모습을 하봉목마(下峯牧馬)라고 부르면서 대포의 절경으로 자랑하기도 하였다.
최근 ‘알오름’ 아래 지역에 대규모 양돈단지 시설이 들어서 있다. 마소가 한가로이 풀을 뜯는 ‘하봉목마(下峯牧馬)’의 아름다운 모습은 사라져 버리고, 돼지의 울음소리만 들리는 하봉양돈(下峯養豚)으로 변해 버렸다. 이 곳에 양돈축사가 들어서면서 ‘거린사슴’ 일대의 빼어난 풍광이 훼손된 것은 물론이고, 여기서 발생하는 축산 폐수로 인한 지하수 오염 또한 우려된다. 돈사는 사방이 탁 트인 곳에 위치해 있어 대포 마을에서는 물론이고, 국제적인 관광지라고 자랑하는 중문관광단지에서도 한 눈에 들어온다. 국내외 관광객들에게 저 건물이 돈사라고 하면 어떤 표정을 지을 지 두렵다.
대포목장 입구 바로 동쪽 대포동 산 3-1번지 일대에는 1998년 제주도농업기술원에서 설치한 ‘수출양란 생산용 저온처리망실’이 있다. 약 4천여 평 규모의 부지에 조성된 고랭지 재배단지에서 양질의 양란을 생산하여 수출함으로써, 제주도 화훼 농업의 발전 및 농가 소득 향상에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6) 남포귀범(南浦歸帆)
고기잡이 나갔던 배들이 만선되어 ‘큰개’ 포구로 돌아오는 모습을 말한다. 남포(南浦)는 ‘큰개’ 포구를 의미한다. 만선을 알리는 고동을 힘차게 울리며 포구로 입항하는 풍선의 모습은 과거에 종종 볼 수 있었으나, 지금은 그런 낭만이 사라져 버렸다. 풍어를 비는 어부당인 ‘개당’이 포구 뒤 언덕에 있고, ‘데시비개’에서 ‘자장코지’로 넘어가는 곳의 큰 바위 위에는 ‘녀당’이 있다. ‘큰개물’에서 ‘모살넙개’로 넘어가는 언덕 위에는 밤에 입․출항하는 배들의 안전 운항을 위해 도대불(등명대)이 세워져 있다.
대포 포구는 관광단지 및 서귀포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기 때문에 횟집들이 즐비해 있고, 사시사철 손님들이 끊이지 않는 낚시 및 먹거리 관광지로 유명하다. 지역 미식가들이 횟집 등급을 매길 때 일대포(一大浦), 이…, 삼…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대포 포구의 횟집들은 인근 지역의 횟집들과 달리 저렴한 가격에 싱싱한 회를 푸짐하게 내놓으며, 맛과 서비스가 최고라는 것이다. 한여름 밤에 대포 포구에서 싱그런 바닷바람과 함께 파도 소리를 들으며 맛보는 활어회 맛은 일품이다.
대포 포구는 최근 그 중요성이 크게 부각되고 있다. 동중국해로 진출하는 길목에 위치에 있는 데다 인근에 세계적 관광지인 중문관광단지가 있기 때문에 앞으로 많은 발전이 기대된다. 중문관광단지와 관련된 관문 기능과 해양관광 기능, 수산물 공급 기능 등 많은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라는 말이 있다. 예나 지금이나 대포 마을이 인근 마을과의 차별성, 유리한 지리적 입지 조건 등은 해양(海洋)과 관련되어 있다. 대포 주민들은 대포항이 역사적으로 중요했던 항구였다는데 만족치 말고, 항만을 새롭게 정비하고 확대하는 등 해양지리적 위치를 잘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적극 모색해 볼만하다.
(7) 보성낙조(堡城落照)
‘선돌동산’(堡城)에서 바라보는 저녁 노을과 해 지는 모습의 아름다움을 일컫는 것이다. ‘선돌동산’은 대포 서(西)동네 끝에 있는 언덕으로 선돌(立石)이 있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과거 이 돌의 방향은 예래 마을을 향하고 있었는데 그 당시 예래 마을에서는 화재가 많이 발생했다고 한다. 이 선돌이 태양 빛을 반사시켜 예래동을 비추기 때문에 화재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예래동 청년들이 밤중에 몰래 와서 돌을 굴려 부숴버렸다고 전해진다.
과거 ‘선돌동산’에서 ‘너백이, 잉그니, 불묵케, 오름골’ 들판을 바라보면 철 따라 노랗게 익은 벼와 보리, 유채꽃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은 마치 황금 물결이 출렁이는 것처럼 장관이었다. 색달동 해안에 있는 중문해수욕장이 아스라이 다가오고, 저 멀리 군산, 산방산, 송악산 등이 한 폭의 동양화처럼 다가온다. 그 능선 뒤로 해가 지는 낙조의 모습과 저녁 노을은 언제 봐도 장관이다.
(8) 선천관어(先川觀魚)
대포동 동쪽에 하원과 대포의 경계를 이루는 하천이 있는데 이를 ‘선궷내’라 한다. 사시사철 맑은 물이 흘러내리는 ‘선궷내’는 은어, 매옹이, 다슬기 등 각종 물고기들이 많았다. ‘선천관어(先川觀魚)’란 이 곳에서 물고기들이 한가로이 노니는 모습을 유유자적하게 완상하는 풍류를 말한다. 선천(先川)은 ‘선궷내’의 한자식 지명이다. <대정군지도>(1872년) 등 제주도 고지도에는 ‘동해천’(東海川)이라고 표기되어 있기도 하다.
‘동해천’ 또한 하구 서쪽에는 ‘지삿개’ 주상절리 해안보다 규모는 작지만 다양한 주상절리 암주(岩柱)들이 발달해 있다. 또한 이 일대에 동양 최대의 대웅전으로 유명한 약천사(藥泉寺)가 위치해 있다. 과거 이 지역은 교통이 불편했으나, 최근 해안도로가 시원하게 뚫리고 접근성이 양호해졌다. 인근에 대포항과 중문관광단지가 자리잡고 있고, 종교관광이 가능한 약천사도 있어 이를 연계하여 ‘동해천’을 개발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휴게소 및 편의 시설, 전망대 등을 설치하거나, 해안 지역을 정비하여 해안 절경을 즐길 수 있는 산책로를 만들고, 하구 주변을 정비하여 담수욕도 병행할 수 있는 수영장 시설을 만드는 것도 고려해 볼 만하다.
‘동해천’에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깨끗한 물에서만 산다고 하는 은어가 많았는데, 남획과 오염 등으로 지금은 사라져 버렸다. 대포 주민들은 조상들이 물려준 ‘선천관어(先川觀魚)’의 절경을 다시 재현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마을회나 청년회 등 자치 단체에서는 동해천의 잠재적 가치를 주민들에게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오염 물질의 유입을 철저히 감시하여 ‘동해천’을 잘 보호해야 할 것이다.
(9) 동회유천(東廻流泉)
회수 마을 신호등이 있는 사거리에서 ‘16번 국도’를 따라 동쪽으로 800m 정도 가면 길 북쪽에 ‘동수’(東水)라는 샘물이 있다. 대포동 356번지 일대이다. 동회유천(東廻流泉)은 여기서 솟아나는 샘물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것이다.
조선 시대에는 이 일대에 제주도를 방어하는 관방시설의 하나인 ‘동해방호소/동해성(東海防護所/東海城)’이 있었다. 동해방호소는 대정현 동쪽을 방어하는 중요한 군사 시설이었다. ‘동수’는 동해방호소 성내 병사들의 식수로 사용하기도 했다. 4․3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이 근처에는 10여 호의 민가가 있었다. 이 동네를 대포상동(大浦上洞)이라고 불렀는데 4․3사건으로 소개되면서 폐촌되어 버렸다. 폐촌되기 전 대포상동 주민들이 이용했던 식수원도 ‘동수’이다. 지금은 주변 과수원에 농업 용수로 이용되고 있다.
(10) 사지구허(寺旨舊墟)
대포동 1170번지 일대는 절이 있어 ‘절루’(寺旨)라 부른다. 서쪽 ‘선궷내’와 동쪽 ‘큰이물내’ 사이에 있는 지역으로 ‘선궤’ 바로 위에 있는 구릉지이다. 지금은 과수원 방풍림으로 가려져 조망이 나쁘지만, 과거에는 이 동산에 오르면 ‘동해천’(선궷내) 일대 및 ‘선궷내깍, 월평기정, 강정코지, 범섬’ 등이 한눈에 들어왔다. 북쪽의 넓은 용암대지 뒤편에는 한라산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다. 이러한 아름다움을 노래한 것이 바로 ‘사지구허(寺旨舊墟)’이다.
지금은 동양 제일의 대웅전을 자랑하는 약천사가 ‘절르’ 바로 동쪽에 웅장하게 들어서 있다. 구릉과 하천, 그리고 바다가 조화를 이루는 곳에 위치한 약천사는 최근 제주도 사찰관광의 중심지로 부각되고 있다.
‘선궷내’ 및 ‘검자리’ 일대는 옥답들이 있었던 곳이다. 이 곳에서 생산된 쌀은 맛과 품질이 뛰어나 인기가 높았으며, 대포 경제를 풍요롭게 하는 중요한 소득원이기도 했다.